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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옛날 뮤지컬 프로그램북을 보다 [No.71]

글 |정세원 2009-08-05 9,154

옛날 뮤지컬 프로그램북을 보다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졌던 90년대 중반 이후로 나는 공연장에 갈 때면 뮤지컬 프로그램북을 가장 먼저 찾았다. 공연의 감동과 재미를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프로그램북이  없을 때는 공연 포스터나 전단지라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몇 차례의 이사를 하는 동안 포스터와 전단지는 꽤 많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프로그램북만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래된 프로그램북을 한번씩 들춰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공연 정보들이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듯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당시의 아련한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옛날 뮤지컬 프로그램북. 이번 호에서는 2000년 이전 뮤지컬 프로그램북이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예그린에서 서울시립가무단까지
뮤지컬 프로그램북은 뮤지컬의 태동기부터 관객들과 함께 했다. 옛날 프로그램북을 보면 그 시대의 흐름과 다양한 사회상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예그린 극단은 재기 이후  매년 한 편 정도의 창작뮤지컬을 선보였는데, 매 작품마다 뮤지컬  프로그램북을 제작했다. <살짜기 옵서예>(1966)부터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1967),  <대춘향전>(1968), <바다여 말하여라>(1971), <우리 여기에 있다>(1972) 등이 예그린 극단이 선보인 작품들.
예그린의 공연 프로그램북은 표지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그린 재기 제1회 대공연 <살짜기 옵서예>는 김영수가 쓰고 최창권이 작곡한 2막 12장 구성의 뮤지컬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시민회관에서 7회 공연했다’는 정보를  초연 프로그램북을 열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공연 개요뿐만 아니다. 예그린 10년을 결산하며 올린 <바다여 말하라> 프로그램북 표지에는 예그린  합창단과 무용단, 관현악단 등 520 명의 연인원과 특별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까지 기재되어 있어 1천5백만 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맘모스 뮤지컬’의 규모를 상상하게  한다. 작품의 줄거리, 출연  배우 명단, 스태프(작가, 작곡가, 안무가) 소개글이 실려 있는 내지는 특별나지는 않지만, ‘재기에서 <바다여>까지’라는 제목 아래 제2기 예그린 악단의 발자취를 다루고 있어 꽤 유익하다. 작곡가 최창권을 두고 ‘이해 깊은 부인과의 사이에 ‘돼지 3형제’를 둔 다복한 가장’이라고 표현한 데 친근함이 느껴진다. <우리 여기에 있다> 프로그램북을 통해 당시 TBC TV  전속 안무가로 활약하던 한익평 선생과 예그린 악단의 인연이 <꽃님이 꽃님이 꽃님이>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신구, 전운, 가수  김세환과 하춘화 등 낯익은 얼굴들이 재미있게 편집된 배우 소개 페이지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는 예그린의 시작을 함께 한 최창권 선생이 1975년에 창단한 민간단체 뮤지컬센터 미리내가 올린 첫  번째 대극장 공연이었다. 무려 60페이지(표지 포함)나 되는 프로그램북에는 한국 뮤지컬에서  <살짜기 옵서예>가 갖는 의미, 초연 이후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포스터와 공연 사진들, 당시  출연한 배우들의 추억담, 그리고 뮤지컬센터 미리내가 나아가려는 방향과 예그린이 한국 뮤지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대춘향전>(1973), <이런 사람>(1976), <달빛 나그네>(1978) 프로그램북을 통해 예그린 악단이 국립가무단으로, 국립 예그린 예술단으로,  서울시립가무단으로 이름을 바뀌었고, 그들의 무대 또한 시민회관에서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A4보다 조금 작은 16절 크기의 프로그램북은 1973년 <대춘향전>부터  LP판을 연상시키는 정12절 크기로 바뀌었고 표지 두께도 이전보다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프로그램북마다 실려 있는 인사말들은 공연 오픈을 축하한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작품이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예그린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울시립가무단은 <달빛나그네>, <시집가는 날> 등  우리의 창작뮤지컬을 꾸준히 선보이는 동시에 <돈키호테>(1979)를 시작으로 <환타스틱스>(1980), <포기와 베스>(1984) 등의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들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무대에 차례로 선보였다. 그리고 작품의 규모에 맞춰 프로그램북의 크기를 대극장 공연과 차별을 두고 16절에 가깝게 다양한 형태로 바꾸었다.

 

 

 

뮤지컬의 역사를 보여주는 현대극장 프로그램북

1976년에 창단된 현대극장은 민간 극단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빠담 빠담 빠담>(1977),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1980), <사운드 오브 뮤직>(1981), <에비타>(1981),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87), <레 미제라블>(1988) 등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을 국내에  선보이며 한국 뮤지컬을 주도해갔다. 현대극장의  프로그램북의 크기는 정12절을  유지하다가 90년대 들어 A4 크기로 바뀌었다. 초기 프로그램북의  다양한 표지화는 현대극장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빠담 빠담 빠담>의 표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에디뜨 삐아프가 연상되는 색연필화이고,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의 표지는 운보 화백이 1952년  피난지 군산에서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 30점 중의 하나인 ‘예수 물 위를  걷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표지는 홍종명 화백의 작품이다. 내지  첫 페이지에 공연 개요와 참여  스태프를 비롯해 공연에 참여한 모든 협찬사와 프로그램북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명단까지 게재되어 있다. 80년대 말까지 현대극장 프로그램북의 캐스트 소개에 사용된 배우들의 사진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직접 촬영했는데, 프로그램북에 의하면 을지로 입구의 허바허바사장님의 솜씨라고 한다.
현대극장 프로그램북의 가장 큰 특징은 공연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대극장의 대표이자 극작가인  김의경 선생은 “프로그램북은 단순히 배우와 스태프를 소개하는 책자가 아니다. ‘공연하는 작품을 관객이 얼마나 이해하게 하는 가’가 가장 중요하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환경,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하고, 한국에서 그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많은 자료를 담다보면 학술 서적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보를 담아야 한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윤복희의 흑백 사진이 첫 페이지를 장식한 <빠담  빠담 빠담> 프로그램북을 들여다보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사진과 함께 꾸미고, 그녀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들, 작품 줄거리,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연출자와 음악감독의 기록, 대표곡의 악보와 주요 곡목해석까지 담겨있다. 재공연 프로그램북에는 ‘내가 본 <빠담  빠담 빠담>’이라는 주제로 여러 인사들에게 받은 리뷰가 함께 수록돼 있는데,  이것은 <지저스…>나 <에비타> 등 현대극장의 대표작 프로그램북의 공통된 특징이다. 1986년 故 추송웅 추모공연 <빠담 빠담 빠담>프로그램북에 수록된 4페이지에 달하는 추송웅  특집 기사는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신다.
현대극장의 프로그램북은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 1981년 <사운드 오브 뮤직> 프로그램북에는 박용구 음악평론가와 이근삼 작가, 임영웅 연출가, 최창권 작곡가가 ‘한국의 뮤지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쓴 칼럼이 게재되어 있어 뮤지컬에 대한 당시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레 미제라블> 프로그램북에 게재된 ‘현대극장과  뮤지컬 12년’은 현대극장이 선보인  뮤지컬의 제작 뒷이야기 외에도 관객수와 공연횟수까지 정확하게 표기된 ‘뮤지컬 BEST 6’ 도표와 공연사진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91년 <길 떠나는  가족> 프로그램북에는 1976년부터 1991년까지의 현대극장 15년사와 함께 연극계 일지가 수록되어 있어, 한국 연극사를 읽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현대극장 20주년을 기념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94) 프로그램북에는 뮤지컬 넘버 전곡의 가사와 함께 1928년부터 1994년까지의  한국 음악극 연표가, 1997년 프로그램북에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음악극 연표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현대극장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역대 출연자 및 스태프를 알고 싶다면 윤도현이 유다 역으로 출연했던 2000년 프로그램북을 찾아보길 바란다. 공연기념사진과 함께 정리되어 있다. 

 

 

 

흑백 프로그램북, 칼라 옷을 덧입다
빛바랜 프로그램북 속에는 그 시대의 흐름과 다양한 사회상을 읽을  수 있고, 그 당시의 인쇄술과 디자인 감각까지도 엿볼 수 있다. 현대극장 김의경  대표는 1960년 실험극장 시절에 처음으로 32절 크기의 4페이지짜리  프로그램북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당시  공연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프로그램북에 실었는데, 지인이 제공한 음료까지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대극장 30년사>에는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을 두고 지난 30년간 현대극장의 공연 프로그램북 표지와 광고 이미지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당시 프로그램 제작비가 따로 나오지 않아 알음알음 인맥을 동원해 실은 광고들이다. 1960~70년대 뮤지컬 프로그램북은 표지를  제외한 모든 지면이 흑백으로  프린트되었다. 광고 지면도 마찬가지였는데, 1978년  <살짜기 옵서예> 프로그램북에 거의 처음으로 칼라 광고와 공연 사진이 게재되었다. 이후의 프로그램북이 다시 흑백인  것을 보아 <살짜기 옵서예>는 뮤지컬센터 미리내의 첫 대극장 공연인 덕분에 광고비 수익이 어느 정도 난 것이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1988년 <에비타>가 전체 컬러 프로그램북을 선보였지만 본격적인 컬러 프로그램북은 90년대가 지나서야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어린이뮤지컬 프로그램북의 경우 80년대부터 전체 컬러 인쇄가 진행되었다.  정12절이 주를 이루던 프로그램북 크기는 90년대 들어 다시 16절 크기로 바뀌었고,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극단과 작품의 성격에 따라 그 크기는 8절까지 커지기도 했다.

 

 

 

 

옛날 프로그램북에서 만난 젊은 그대

오래된 프로그램북을 살펴볼 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알고 있는 얼굴 혹은 이름을 발견할 때다. 특히 현대극장 출신 배우들 중에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 제작자들이 많은 편이라 프로그램북을 보는 재미가 꽤 크다. 윤복희가 주연한 <빠담 빠담 빠담> 초연 프로그램북에는 장 꼭도 역의 이순재, 폴 뫼리스 역의 추송웅을 비롯해 보기만 해도 훈훈한 임동진, 정동환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981년 프로그램북에는 조금 더 반가운 얼굴이 있는데,  쌍꺼풀 없이 선명한  눈매가 돋보이는 이브 몽땅 역의 설앤컴퍼니 설도윤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86년  공연에서도 이브 몽땅 역으로 윤복희와 호흡을 맞췄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선한 눈매의 이혜영과 젊은 시절의 김진태, 김갑수, 양금석의 모습도 반갑다.
1981년 <에비타> 프로그램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턱수염을 붙이고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조용남의 모습이다. 당시 김의경 대표의 전화 한 통에  출연을 결정한 그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극단 미추의 간판 배우인 김성녀와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미모가 눈부시다.
곧 무대에 오르는 <로미오 앤 줄리엣>을 연출하는 김덕남 연출은  1984년 <지저스…>에서 유인촌과 함께 빌라도 역으로 출연하는 등 현대극장의 간판 배우로 활약하다 연출가로 진로를 바꿨다. 1994년 <요셉 그리고 어메이징 테크니 칼라 드림코트> 프로그램북에는 그가 연출로 이름을 올렸다. 정원영 밴드의 정원영이 뮤지컬의 편곡을 맡아 김덕남 연출, 강대진 음악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지금은 방송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양금석 역시 윤복희와  함께 <지저스…>(1984)의 마리아 역으로 출연했고, 시몬 역으로 출연한 천호진의 앳된 모습과  군중으로 출연한 박해미의 신인 시절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초연 프로그램북에서는 추송웅과 함께 유다 역을 맡은 김도향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스무 살 시절의 박상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배우로 활동하던 극단 갖가지 심상태 대표의 모습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1978년 <살짜기 옵서예>의 프로그램북을 넘기다 배비장 역을 맡은 신구의 환한 미소에 잠시 멈추게 되는데, 조금 더  찬찬히 살펴보면 작곡가 최창권의 두 아들 최호섭과 최귀섭이 아역으로 출연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978년 <달빛나그네>에서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 송용태는 이후 서울시립가무단의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는데, 지금의 이미지와는 다름 모습에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남경읍, 남경주 형제도 서울시립가무단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선 굵은 외모가 인상적인 젊은 시절의 남경읍은 1979년 <돈키호테>의 빠고 역으로 출발해 이듬해 <환타스틱스>의 마트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남경주의 데뷔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북은 1984년 <성춘향>. 이덕화, 최주봉, 김애경 등도 반갑지만, 단짝으로 알려진 박상원과 남경주가 나란히 포졸 역을 맡았다. 이 작품 이후 박상원은 무대를 떠나 MBC 공채 탤런트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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