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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뮤지컬 평론] 비평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정리|김영주 2009-10-08 6,604

 

뮤지컬 칼럼니스트,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KMTV와 NTV(구 HBS 현대방송)의 프로듀서와 기자, 런던 특파원을 거쳤으며 주요 일간지와 공연 전문지 등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제작 현장에 대한 이해를 잊지 않기 위해 <오페라의 유령>(2001),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2004), <캣츠>(2003) 등 다수 작품의 번역 작업에 참여 했고, 한국뮤지컬대상과 더뮤지컬어워즈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저서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뮤지컬 티켓, 없으면 훔쳐라』

 

 

그동안 주로 써온 글
90년대 후반 한국에서 처음으로 뮤지컬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가장 많이 의뢰를 받는 글은 새로 올려지는 공연에 대한 프리뷰이고 리뷰를 연재 중인 매체도 있다. 뮤지컬계의 트렌드나 현상에 대한 분석을 요청 받기도 한다. 조선일보에서 뮤지컬 별점을 매기고 있는데, 제작자들은 그에 대해서 성적표를 받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성적표가 아니다. 단지 원종원이라는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단하는 추천작에 대한 의견일 뿐이다. 그런데 관객들이 작품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 중 하나로, 공연을 선택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보조 자료에 불과한 이 별점을 성적표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상화된 객관성을 증명하라는 요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평론가로서 내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이 결론을 내리게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화두를, 담론을 제기하고 싶다. 그런 것이 평론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뮤지컬 비평의 특징
뮤지컬 평론가라는 것이 뮤지컬의 세 가지 구성요소인 음악과 드라마, 무용에 대해 모두 전문가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와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영화평론가가 영상 분야의 전문가도 되어야 하고, 음향의 전문가도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 그 복합 예술의 완성도에 대해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영화 평론이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역시 음악만 뛰어나다고 해서 명작이 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만 뛰어나다고 해서 명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뮤지컬 비평이 갖추어야 하는 것은 뮤지컬의 각 구성요소를 나누어서 전문적인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다. 물론 안무가 출신의 연출가가 춤을 잘 표현하고, 작곡가 출신의 연출가가 음악을 잘 이해하는 것처럼 평론가 역시 자신의 백그라운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방점을 두는 부분이 다를 수는 있다.  

 

한국에서 뮤지컬 비평이 어려운 이유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평론을 평론으로 보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 비판을 하거나, 그 비판을 받아들여서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 더군다나 뮤지컬은 제작비도 많이 들고 상업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좋은 평을 쓰거나 좋은 별점을 주었을 때 작품의 티켓판매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연히 반대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평론가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뮤지컬이 자기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고 티켓을 파는 행위가 따르는 대중예술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평론가들의 평을 현명하게 받아들여서 작품의 개선점을 찾거나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판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여주는 문화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평론가로서 활동하는데 있어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평론가는 신이 아니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평론가는 아주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주관의 배경에 객관적인 근거와 전문적인 식견이 있을 뿐이다.
또한 지면의 부족도 큰 문제점이다. 조선일보 뮤지컬 별점의 경우에도 처음 계획은 그 달의 가장 뛰어난 작품 한 편을 선정해서 우리 중 한 명이 그 이유를 칼럼으로 쓰는 것이었는데 지면의 한계상 무산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평론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부담을 덜 느끼지만, 평론만 해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 때문에 간간히 뮤지컬 평론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먼저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는 것이 좋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활동하는 평론가가 굉장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평론가조차 전업으로 삼을 수 없을 만큼 활동할 수 있는 지면이 부족하고 정당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면 이 분야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뮤지컬 비평이 필요한 이유
‘평가를 하는 것은 쉽다. 네가 한 번 직접 만들어봐라’ 라는 말은 평론가의 전문적인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뮤지컬 평론가로 활동을 하기 전에 음악방송의 PD로 일했는데, 그때 홍보를 위해 음반을 가지고 오는 모든 제작자들은 그 곡을 히트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그 음악을 수천 번, 수만 번 들었기 때문에 그 멜로디가 너무 친근하고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새로운 노래를 수없이 접하게 되는 PD의 귀에는 그렇게 들릴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뮤지컬 창작자나 제작자들도 자신이 작품을 만들기까지 수없이 반복해서 고민해왔기 때문에 이 장면이 여기서 이렇게 되어야 하고 이 곡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한다. 객관적인 거리감을 잃은 것이다. 그 작품을 한 걸음 물러서서 충분한 식견을 가지고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평론가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이 상업적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 2000년 이후에야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과도기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90년대에 활동한 어떤 기자, 어떤 비평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사람이 작품을 비판하면 받아들였다, 왜냐면 비판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위로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넣어서 공연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평론은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뮤지컬계는 그때와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이 발달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공연 감상을 대중들에게 노출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다보니까 평론가라는 사람들의 역할은 과거보다 더 중요하게 됐다. 객관성이나 전문성이 결여된 감상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과 경험을 가지고 작품에 대해 비판을 해줄 수 있는 평론가는 더욱 필요하다. 
또한 뮤지컬 관람자들이 한 번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작품의 숨겨져 있는 의미와 사연들을 찾아내서 소개해줄 수 있는 것 또한 비평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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