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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뮤지컬번역] 번역의 실제 2/ 금발이 너무해 [No.73]

글 |이지혜 (뮤지컬 작곡가/ 번역가) 2009-11-02 6,538


미국의 ‘유러피안’이 한국의 ‘발레리노’로?

 

번역이란 신경이 곤두서는 작업이다. 차라리 내 작품을 쓸 때는 그 일이 쉽고 어렵고를 떠나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의도를 나라는 필터를 통해 전달하는 일이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원작의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이를 다른 언어로 옮겨 완벽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작업인지도 모르지만.

 

작곡
궁궐 뮤지컬 <대장금>, <첫사랑> 외
번역
<자나 돈트>, <벽을 뚫는 남자>, <맨 오브 라만차>,
<아이 러브 유>, <프로듀서스> 외 다수
작사
<미녀는 괴로워> 외
조나단 라슨상 수상

 

 

평범한 각운보다 재미있는 표현 선택
시간 예술인 공연물의 번역은 관객이 한 번 듣고 이해하게끔 해야 한다는 점이 관건인데, 특히 뮤지컬에서 개사는 언제나 큰 고민덩어리다. 말이 음악에 실릴 것까지 고려해야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개사란 음악성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하기는 힘든 일이며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수월하다.

나 같은 경우 개사를 할 때 처음에는 말의 운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직역을 한다. 이 번역본을 읽고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제작/연출팀의  가사에 담긴 의미 파악을 돕기 위해서다. 가사 직역본의 에센스만 뽑아내는 작업+음악성을 살리기+표현의 한국화 과정을 거치면 1차 개사가 완성되고, 연출, 음악감독, 배우들의 재해석 및 의견 수용의 단계(이 과정은 어떤 사람들과 일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를 거쳐 공연에서  관객들이 듣는 가사가 탄생하게 된다.

개사를 할 때 발음하기 힘든 모음을 고음에 두지 않고 부르기 쉽고 들어서 예쁜 발음을 찾는 등의 노력을 하기는 하지만, 나는 라임(각운) 맞추기 등 디테일한 말의 음악성 살리기보다는 의미 전달 및 특이하고 재미있고 캐릭터가 느껴지는 어휘 선택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사실 라임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는 것이, 한국 관객의 귀는 각운을 찾는 데 그리 쫑긋하지도 않은데 만드는 측에서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말 가사에서 확립되지 않은 외국어의 전통을 굳이 뮤지컬 가사에서 교육시킬 필요가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다. 그래서 평범한 각운과 재미있는 표현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면 아직은 후자로 마음이 기운다. 이상하게도 나는 본래 뮤지션이면서도 개사를 할 때는 음악성보다 문학성에 더 신경이 쓰이는 작가 마인드가 발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같이 일하는 음악감독, 연출자들의 음악성에 기대어 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늘 신경 쓰이는 문제 중 하나는 조크의 번역이다. 대개 유머 감각이란 그것이 발생한 문화를 온전히 습득해야만 느낄 수 없는 것이니까. 고전물이나 진지한 스토리는 코미디물보다 상대적으로 이런 부분은 덜 걱정이 된다. 예를 들어 <맨 오브 라만차>를 번역할 때는 <자나 돈트>나 <금발이 너무해>에서처럼 ‘이 난무하는 미국식 조크들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할 필요는 별로 없었다.

 

 

Legally Blonde, 제목이 너무해
이번에 작업한 <금발이 너무해>의 경우 제일 먼저 수면에 떠올랐던 이슈는 제목이었다. 외국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최근 추세임에도(물론 2001년 작 영화를 최근작이라 하기는 좀 그렇지만) 굳이 원제목 ‘Legally Blonde’를 우리말로 바꾼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블론드의 의미는 단순히 머리 색깔이 아니라 ‘예쁘지만 머리는 텅 빈 인형 같을 확률이 높은 존재’인데 우리나라에 아예 없는 개념이니 제목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리걸리 블론드 Legally blonde’는 ‘시력이 너무 약하거나 없어 법적으로 간주되는 장님’이라는 뜻의 ‘리걸리 블라인드 Legally blind’에서 온 말장난으로, ‘삼자대면’을 ‘삼자돼면’으로 ‘반지의 제왕’을 ‘반지하 제왕’으로, ‘살인의 추억’을 ‘살인의 추석’으로 패러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금발을 멍청하다 못해 일종의 장애인처럼 느끼게 하는 농담이다. 이런 조크를 우리말로 굽이굽이 풀어 설명한다 해서 전달될 리도 없는데 심지어 제목부터 이러니 타이틀을 바꿔야 하는가 하는 논의도 있었지만(심지어 모 선생님께서는 아예 금발이라는 개념을 빼고 가슴 큰 여자는 멍청하다는 개념에 기대어 ‘가슴이 너무해’로 가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까지 하셨다- 물론 요즘에는 가슴 큰 여자가 대접받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이조차 그렇게 말이 되지는 않지만) 벌써 영화의 제목이 잘 알려진 터라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하여간 작품을 구축하는 전제 자체가 한국 문화에 없는 개념이라는 사실은 내내 문제로 불거져 나왔다. 일단 가사의 측면을 보자면 ‘리걸리 블론드’라는 말이 빈번히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금발이 너무해`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글자 수만 봐도 ‘legally blonde’는 4음절, ‘금발이 너무해’는 6음절) 또한 이 말이 나올 때 상황에 따라 뉘앙스가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기왕이면 같은 가사로 갈 수 있게 만들면 듣는 사람 귀에도 쏙 들어오고 ‘폼’도 나고 여러모로 좋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주인공 엘 우즈가 자조하며 서글프게 자신을 칭하는 곡 ‘Legally Blonde’에서는 ‘that`s fine with me, just let me be legally blonde’는 ‘난 괜찮아 인형처럼 웃으면 돼’로 ‘legally blonde’에 실리는 의미를 ‘인형처럼’에 나누어 실었고 이 곡을 빠르게 재해석한 신나는 곡 ‘Legally Blonde Remix’에서는 코믹하게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legally blonde’라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금발미녀’로 갔다. 아쉬운 것은 제목이 ‘금발이 너무해’인 공연에서 ‘금발이 너무해’라는 가사가 단 한 번도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이 혹은 유러피안?, 게이 혹은 발레리노!
가사의 한국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난감했던 곡은 ‘Gay or European’이다. 저 사람이 아주 새끈하게 잘 꾸미고 있어서 게이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유럽 사람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아마 나중에 공연을 보실 분들은 ‘엥? 그게 무슨 노래야?’할 수도 있는데  우리 버전에서는 ‘European’을 아예 다른 말로 치환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사람과 유럽인들은 무척이나 다른 족속들이다. ‘미드’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미국 남자들, 특히 뉴요커들은 무척이나 멋쟁이고 옷도 유행에 따라 잘 챙겨 입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범한 미국 남자들은 검소하여 옷차림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지 않으며 그것을 ‘남자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비’나 ‘동방신기’를 보여주면 대부분 게이임에 틀림없다고 할 것이며 스키니진을 입은 한국의 보통 청년들을 보고도 같은 반응을 할 확률이 높다. 뉴욕에서 한국 문화를 꽤 오래 접하지 않고 살았을 때 나 역시 동방신기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거의 유행을 따르지 않으며 아무리 낡았더라도 바지 속에 버튼 있는 셔츠를 넣어 입고 넥타이를 착용’하면 예의 있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간주되는 미국에서는 알록달록하고 몸에 착 붙는 신상 옷을 입는 것 자체만으로 게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옷차림에 지나치게 신경과 돈을 쓰는 것으로 보아 유럽인이다(그리고 역으로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테이스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라는 코믹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Gay or European’인데 이 역시 서양에서 살지 않았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런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까? 가사를 점검하는 스태프 회의를 하며 다 같이 고심하던 중 음악감독, 연출자, 안무자 중 어떤 분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발레리노는 어때?’ 하고 의견을 내셨고 모두 잠시 ‘엥…?’ 하다가 곧 ‘그거 괜찮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앞섶에 불룩한 보호대(서포트)를 착용한 발레리노의 모습은 발레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히 웃기고, 그들이 왠지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 사람들이 보는 ‘유러피안’과 비슷한 모종의 이상야릇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유러피안’을 ‘발레리노’로 바꾸고 나니 자연히 가사 전체가 송두리째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노래 한 곡이 흐르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유러피안? 그게 대체 뭐?’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것보다 이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상적인 번역을 위해서
이렇게 원작과는 다른 해석을 선택하게 될 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작자들이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코미디의 경우 이런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고들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은 작품이 잘 전달되고 사랑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통하지도 않는 조크로 타이밍을 죽이고 관객을 고문하느니 원래의 의도를 살려주는 한도 내에서의 변형에 관대하다. 원작자와의 친분으로 번역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작업을 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자나, 돈트!> 때는 작가 팀 아씨토와 ‘미녀는 괴로워’의 곡 작업을 하고 있었고 아직 공연되지 않았지만 1차 번역 작업을 한 <애비뉴 Q>의 작가들은 뉴욕에서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이런 문제를 얘기하면 언제나 ‘당연하지! 원래 뉘앙스를 살릴 수 없다면 네가 웃긴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면 고맙지, 한국 문화를 잘 아는 건 너니까 우린 너를 믿어!’ 하는 반응들이었다. 물론 디즈니 공연이나 앤드루 로이드 웨버 공연 등 세계적으로 굵직한 작품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은 조율을 해야하고 현지 프로덕션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기도 해서 조그만 사항들을 협의하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고 들었다. 번역의 역번역도 이루어지는데, 이를 거치는 과정에서의 오류로 번역한 것이 원작자나 해외 프로덕션 측에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규모가 큰 외국 회사 입장에서는 작품의 현지화보다는 손상을 막고 보존하는 데 힘을 쓰는데, 원작을 보호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지만 가끔은 원작을 보호하겠다는 마음 때문에 번역한 것이 우리 관객에게 전혀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 아쉽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오리지낼리티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현지 관객에게 말이 전달되는 공연이 아닐까. 물론 가끔 성의 없고 엉성한 번역으로 완전히 잘못 전달되는 공연을 보면 창작자의 한 사람으로 나도 화가 날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원작이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 <금발이 너무해>는 한창 리허설 중이다. 작품이 종이 위에서 뛰쳐나와 만들어지고 있다. 리허설에 들어가기 전에 아무리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해도 배우들의 입에 실제로 붙여보면 생각지 않았던 문제점들도 나오게 되며 건의와 토론, 수렴 등을 통해 작품은 마침내 공연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리걸리 블론드’가 ‘금발 미녀’일지라도 실제 막이 올랐을 때는 완전히 다른 가사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으리라.
태어나고, 자라나고, 갈등을 겪고, 진화하고, 펄펄 살아 있기에 공연을 만드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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