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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뮤지컬번역] 번역의 실제1/ 씨 왓 아이 워너 씨 [No.73]

글 |박천휘 (뮤지컬 번역가/ 작곡가) 2009-11-06 6,950


번역은 최고의 차선책을 찾는 일

 

 

 

 

 

번역은 필요악이다. 잘해야 본전, 아무리 잘해도, 하나를 실수하면 그 실수가 눈에 띠는 법이다. 게다가 <씨 왓 아이 워너 씨>(이하 <씨왓>)처럼 원작이 여러 가지 다원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작품이라면 번역자로서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 댈 수도 없는 일이다. 번역자의 주관성 개입은 피할 수가 없다. 과연 마이클 존 라키우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 작품을 썼을까? 보여지는 대사 사이사이 행간의 의미가 무엇일까? 단순히 대본에 있는 언어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 작품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라키우사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언제나 번역가는 원작자의 적극적인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작곡

연극 <필로우 맨>, <마라, 사드>, <베토벤 이야기>

뮤지컬 <그림자 도둑>, <토킹> 무성영화 변사극 <청춘의 십자로> 외
번역

연극 <필로우 맨>, 뮤지컬 <쓰릴 미>, <스위니 토드>, <씨 왓 아이 워너 씨>, <나인>, <굿바이 걸>, <오즈의 마법사> 외

 

 

언제나 번역의 첫 출발은 초벌 번역이다. 뮤지컬에서 정확한 초벌 번역을 만들어 놓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가사 부분에서 음률을 맞출 필요가 없기에 조금은 언어가 거칠더라도 직역을 하는 것이 좋다. 원작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초벌 번역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프로덕션에 들어갔을 때 대본이나 가사 중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배우나 연출, 스태프들이 가장 먼저 참고로 찾아봐야 하는 것 또한 바로 이 초벌 번역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투자를 받을 때, 또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단계에서 초벌 번역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선행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번역을 할 때, 영어를 잘하고, 우리말을 잘 구사하고, 드라마를 읽는 눈도 필요하지만,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의 초벌 번역도 많이 보아온 경험으로는 성실한 게 가장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가거나 잘 모르는 부분은 자료조사를 해야 한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실수를 줄일 수 있는데도 , 어처구니없는 오역이 난무하는 번역본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일단 초벌 번역을 하고 나면 가사 작업을 하는데, 우선 작품 전체의 톤을 잡는데 중요할 것 같은 노래를 하나 골라 작사를 시작하게 된다. 이건 일종의 워밍업이기도 하고, 작품 속의 세계를 처음으로 내 안에서 구축해 보는 시험대가 된다. <씨왓>의 경우 첫 곡으로 작품의 오프닝 곡인 ‘케사와 모리토’를 골랐다. 이 노래는 1막과 2막 앞에 프롤로그처럼 붙어 있는 독립적인 곡인데,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이 불륜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두 연인이 무대에서 최후의 정사를 벌이며 각각의 속내를 노래로 표현했다. 1막의 ‘케사와 모리토’에서는 케사가 모리토를 죽이려하고, 2막의 ‘케사와 모리토’에서는 모리토가 케사를 죽이려 한다. 멜로디는 같으며, 반복되는 가사도 많지만, 서로의 극명한 입장 차이가 마치 서로 반사된 것처럼 대칭을 이뤄야 하는 가사이다.

 

 

 

영어를 보면 He/I my/her 등 거의 대명사의 변화만을 통해 두 입장의 대칭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영어는 한국말에 비해 조사도 없고 압축적이다. 위의 예를 보아도 직역해 놓은 우리말의 어절수가 영어보다 거의 2배 정도 많다. 그렇기에 한글가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말쓰기를 해야 한다. 가사는 시와는 달리 시간예술이다. 시는 읽는 사람의 속도에 따라 읽히기에 함축적이고 복잡한 시상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가사는 일단 간단명료해야 하며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음악이라는 멈추지 않는 엔진 위에 올라탄 가사는 관객에게 딱 한 번의 들을 기회를 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악의 강세, 음정의 높낮이, 선율의 끊어 읽기를 잘 살리는 것이 노래하기 좋은 가사를 만드는 비결인데,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은 재치 있는 가사도 음악 위에 잘못 놓이면 그 빛을 잃기 마련이다. 그래서 문안해도 음악 위에 잘 올라가 있는 가사가, 기발하지만 음악에 약간 성의 없게 올라간 가사보다 항상 공연에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게 된다. 음악만 조금 이해할 수 있다면, 가사 붙이기는 일종의 낱말 퍼즐 맞추기가 된다.
이 부분의 가사는 드물게도 처음 썼던 가사가 이후 수정 없이 공연에까지 올라갔다. 위의 직역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면, 분명 번역의 과정에서 잃은 것이 보일 것이다. 몇 안 되는 어절 수에 모든 내용을 다 넣을 수는 없다. 생략도 분명 주관적인 선택인 것이다. 반면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약간 맛이 달라진 부분도 눈에 띌 것이다. 원작의 정신, 스피릿(Spirit)을 훼손 하면 안 되겠지만, 음악적인 어절 수에 맞추어야 한다는 엄청난 제약은 때론 아주 신선한 영감의 원천의 되기도 한다. 따옴표 안 마지막 두 줄의 가사가 가장 어려웠다.

 

 

첫 번째 가사 본에서 딱 막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곡이 있었다. ‘사중창(Quartet)’인데, 실제로 1950년대에 일본영화 라쇼몽이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그 극장 간판의 글자 ‘RaShomon’ 중 ‘a’ 자가 떨어져서 영화 제목이 ‘R Shomon’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남편이 묶여 있는 체, 자기 눈앞에서 아내가 강도와 정사를 하는 것을 봐야하는 장면이고, 이것을 보면서 남편과 영매는 ‘a’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영어 가사에 등장하는 ‘a’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너무 어렵지만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영어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 가사로 노래를 한다면 모든 의미심장한 가사의 뜻이 그냥 증발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걸 라쇼몽에서 ‘ㅏ’자가 빠진 걸로 한다면 지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한국말의 ‘아’자가 빠진 것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영어가사가 그대로 그냥 중간 중간 툭툭 나오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물론 ‘우리말 가사가 더 어색하고, 적당한 게 얼마나 없었으면 저럴까’라는 동정어린 추측도 가능하지만, 시도해 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했다는 의혹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이번 곡은 번역의 어려움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실 두 가지 길 중,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번역자로서 만족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는 후자를 택했다. 라쇼몽에서 ‘ㅏ’자가 사라졌다는 것으로. 대신 ‘아’자로 시작하는 우리말을 찾을 때는 영어를 거의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라키우사도 ‘a’자로 시작하는 말 중에 이 극적인 상황에서 등장인물이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단어들을 골랐을 것이기에, 나도 스스로에게 똑같은 자유를 주어야 했다. 물론 어색한 부분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걸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아’자로 시작하는 말들이 극적인 상황과 교묘하게 뒤엉켜, 설득력 있게 연결되어야 했다. 밑에 있는 것이 최종적으로 붙인 가사이다.

 

남편 : 그날 밤 본 영화가 떠올랐죠. 라쇼몽. 라쇼묭.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영화 보는 동안 그녀는 잠이 들었죠. 내 아내는 외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난 영화가 필요해요. 하루 종일 하는 일이 택시와 운전기사들에 대한 얘기뿐이라고 생각해봐요, 뭔가 다른 세계가 필요하죠. 다른 생각을 해야 했어요. 극장 바깥쪽에 걸린 현수막에 제목의 ‘아’자가 빠져서 ‘ㄹ쇼몽’으로 적혀있었죠. ‘아’자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사라지다....

 

(남편이 계속하고 아내와 강도가 등장한다. 서로의 매력에 빠져있다. 그들은 남편 앞에서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처음 가사를 붙일 때는 정확하게 ‘아’자로만 하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받침이 있는 것 까지를 포함해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건 정확하게 ‘아’자로 시작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마지막까지 수정했던 가사이다. 물론 한 음절로 나올 때는 예외적으로 ‘악’으로 처리했다.
<씨왓> 같은 경우 외국 연출이 와서 함께 작업을 했다. 특히 연출이 외국사람일 경우는 연출이 오리지널 텍스트를 머리에 생각하고 연출할 것이기 때문에, 원작에 최대한 충실한 것이 가장 좋다. <씨왓>의 경우에는 직접 한글 번역본을 다시 영어로 만들어 외국 연출에게 보여주는 역번역을 직접 했었는데, 사실 번역자가 아닌 객관적인 제 3자가 해야 하는 작업이다.
영어로 된 역번역본을 받아본 연출은 별의 별것을 다 질문한다. 사실 그동안 참 많은 외국 연출들을 만나봤는데, 단 한 번도 번역을 대충 넘어간 적이 없었다. 오리지널 연출이 직접 와서 한국공연을 연출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슬랭과 패러디가 난무했던 작품으로 번역이 굉장히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원작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는 연출가와의 작업은 오히려 수월했다. 그는 원작의 의도가 이러이러하니 직역이 불가능하다면 한국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주기도 한다.
사실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번역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비싼 돈을 주고 사들여오는 원작은 대본과 악보라는 형태를 통해 수입되는데 여기서 대본과 가사는 번역가의 손에 거의 전부가 맞겨지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자기 자신을 숨기면서도 적극적으로 원작을 대변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번역은 공연 저작권도 인정될 뿐 아니라, 헤롤드 핀터 번역의 <갈매기>, 토니 쿠슈너 번역의 <억척어멈>, 마크 블리츠스타인 번역의 <서푼짜리 오페라> 등 유명한 작가들이 번역가로서도 활동하고 있고, 제목 앞에 누구의 번역판인가를 따질 만큼 번역판에 대한 비판과 비평도 활발한 편이다.

 

 

 

마지막으로 원작에 대한 존중감이 번역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작품이든 무대는 창작자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이다. 그 세계를 창조한 창작자는 절대 단 한 문장도 쓸데없는 말을 집어넣지 않는다. 특히나 뮤지컬은 음악이 많은 정서를 전달하기에, 가사에서 사용될 수 있는 말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고, 중요한 극적 지점을 노래에게 양보해 주어야 하는 대사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정확하고 간결한 경제적 글쓰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각각의 대사와 가사가 왜 나오는지 번역가가 모른다면 그 번역본은 이미 길을 잃은 것이다. 라이선스 경쟁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돈의 10분의 1이라도 제작사들이 번역의 중요성에 눈을 뜬다면, 아마 더 좋은 번역가들도 많아지고, 전체적인 라이선스 작품들의 수준도 높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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