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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스타캐스팅] 득(得)과 실(失) [No.74]

글 |박병성 2009-12-01 6,537

스타캐스팅 득(得)과 실(失)

 

인기 탤런트 최진실의 자살은 사회 전체를 깊은 우울과 무기력 속으로 몰아넣었다. 한 배우의 자살이 그토록 큰 영향력을 미쳤던 것은, 한때 잘나가던 스타였던 그녀가 삶의 굴곡을 거쳐 재기를 꿈꾸던 시점에서, 비운의 소식을 접하게 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가 스타였기 때문이다. 스타였기 때문에 그의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됐고 그로 인해 그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픈 것이다. 과거에는 대중들의 선망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이가 정치인이고, 영웅이었다면, 오늘날의 영웅은 연예인이다.
공연 성수기인 연말을 앞두고 올 뮤지컬계에서는 유독 연예인 캐스팅이 활발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유명 연예인이라고 해도 예전에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안정기의 배우들이 참여했다면, 이제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을 뮤지컬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연예인들이 캐스팅될 때마다 스타 캐스팅에 대한 찬반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중예술에서 스타들이 출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호에서는 스타 시스템을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입장에서로 살펴보면서 지금의 과열된 스타 캐스팅 현상과 비교해보려고 한다.

 

 

대중예술의 역사와 함께 한 스타 캐스팅


뮤지컬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올라가는 대형 뮤지컬 작품 중 연예인이 참여하지 않은 작품은 <오페라의 유령>과 <영웅>뿐일 정도로 연예인 캐스팅은 일반화되고 있다. 요즘은 대형 작품뿐만 아니라 소형 창작뮤지컬들도 연예인 캐스팅을 하는 형편이다. 연예인 캐스팅, 소위 스타 캐스팅이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창작뮤지컬의 효시로 여겨지는(‘최초의 창작뮤지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전세권이 연출한 <새우잡이>가 <살짜기 옵서예>보다 1년 앞서 공연되었다) <살짜기 옵서예>의 경우 주인공 애량 역을 가수 패티김이 맡았다. 일종의 스타 캐스팅인 셈이다. 당시 인기 개그맨이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애량에게 이까지 뽑히며 망신을 당하는 정비장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을 최초의 창작뮤지컬로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로 스타 캐스팅을 꼽기도 한다. 그만큼 대중예술과 스타 시스템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 시스템의 시작은 영화산업이라고 말한다. 초창기 영화에서 기존에 발달한 대중연극인 보드빌의 인기 배우들을 출연시키면서 스타 시스템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최초로 영화산업의 독점력을 행사했던 MPPC(Motion Picture Patents Company)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후에 다른 제작사와 경쟁하는 구도에서 인기 배우들을 보다 조직적으로 출연시켰다. 또 일각에서는 할리우드에 스타가 등장한 것을 1909년으로 못박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영화 제작사들은 배우들이 개런티를 올려달라고 할까봐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영화 크레딧에 배우의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지만 1909년 플로렌스 로렌스(Florence Lawrence)가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최초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면서 본격적인 스타 시스템의 개념이 생겼다.


그녀가 스타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 데에는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1909년 플로렌스 로렌스는 남편과 함께 IMP(Independence Moving Picture Company)로 소속을 옮겼다. 이곳의 프로듀서였던 칼 램믈(Carl Laemmle)이 플로렌스 로렌스가 뉴욕에서 차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유망한 배우의 죽음에 대해 언론은 깊은 관심을 보였고 칼 램믈은 광고를 통해 플로렌스 로렌스는 살아있으며 새로운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사건으로 지대한 관심을 받은 로렌스는 명연기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할리우드 영화사가들은 이때부터 스타 시스템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스타이거(J. Staiger)는 그보다 앞선 1820년대에 작품성보다는 연기자의 유명세를 광고하여 공연을 했을 뿐 아니라 극단 전속제 등이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스타 시스템의 시초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스타 시스템은 대중예술이 본격화되면서 필수적으로 이루어진다.

 

 

스타 캐스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 1960~1980년대


앞서 말한 대로 우리날에서는 초창기 뮤지컬이 등장한 1960년대부터 스타 캐스팅이 일반화되었다. <살짜기 옵서예>에는 가수 패티김, 탤런트 김성원, 코미디언 곽규석 등이 출연하였으며, <대춘향전> 역시 춘향 역에 패티김, 이몽룡에 김성원, 월매에 강부자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이루어졌다. 후문이지만 이몽룡 역에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인기가수인 한상일을 캐스팅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스타 캐스팅은 예그린의 전매 특허가 아니었다. 1966년 ‘애모의 노래’라는 히트곡을 남긴 <카니발 수첩>에는 미국에서 정식 뮤지컬 수업을 받고 온 김석강, 이로미와 이성웅, 이순재 등이 출연했고, 1967년 실험극장에서 올린 <동키호테>에는 돈키호테 역에 나영세, 산초에 피천득의 아들이자 성우였던 피세영, 알돈자에 영화배우 김난영, 마부들의 두목 역에는 가수 조영남이 캐스팅되었다.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있는 스타들을 캐스팅하고자 한 데에는 뮤지컬이 큰 자본이 요구되는 대중예술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 뮤지컬 초창기인 1960년대는 물론 1990년대까지도 연기와 노래, 춤이 가능한 재능 있는 배우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인지도가 높고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전문가였던 가수나, 탤런트들을 뮤지컬 무대에 세웠던 것이다.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예그린은 정치권의 지원에서 멀어지게 되고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때만 해도 예그린을 제외하고는 뮤지컬을 올리는 극단이 매우 드물었다. 1967년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고 온 후 실험극장에서 <동키호테>를 올렸던 김의경은 1977년 류관순기념관에서 에디뜨 삐아프의 생애를 뮤지컬로 만든 <빠담 빠담 빠담>을 올린다. 이 작품에서 에디뜨 삐아프 역으로 당시 해외에서 순회공연을 다녔고, 국내에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윤복희를 캐스팅한다(몇 해 전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일화를 연상시키는 CF가 있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여가수에게 계란을 던지는 장면이었는데, CF의 의도는 아마도 패션 리더, 선구자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겠지만 사실 윤복희는 귀국 당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았다. 이는 언론에서 와전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 뿐만 아니라 코미디언 곽규석, 탤런트 이순재, 임동진 등이 이 작품에 출연하였다. <빠담 빠담 빠담>(5.19~23)은 2천석 류관순 기념관을 연일 가득 메우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연이어 이어진 앙코르 공연과 이듬해 재공연에서도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평단의 반응은 달랐다. <신동아> 8월호에서 <빠담 빠담 빠담>을 “유행과 시류에 아부하는 간교한 상업 근성”을 드러내는 공연이라면서 ‘저질 상업극’으로 규정했다. 이에 현대극장의 대표인 김의경이 일간스포츠에 반박 기사를 게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상업극 논쟁’(일명 빠담 논쟁)이 불붙었다. 김의경의 글에 다른 연극 평론가들이 가세하면서 논쟁이 이어졌는데 그중 한 대목을 보면 <빠담 빠담 빠담>을 건전한 상업극이나 예술로 볼 수 없는 이유로 ‘극적 소재를 한국에서 찾지 않은 점, 나이트클럽의 무희를 등장시킨 점, 가수와 코미디언을 참여시킨 점’을 들었다. 특히 세 번째 이유는 대중예술의 스타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당시 학계와 뮤지컬계의 간극을 알게 해준다.


1980년대의 뮤지컬은 세종문화회관 산하의 시립가무단과 현대극장이 주도해나간다. 이 당시 현대극장은 국내에 해외 뮤지컬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나가는데 <빠담 빠담 빠담> 이후 스타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 그리고 1980년 공연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 역에 가수 이종용, 마리아 역의 가수 윤복희, 유다 역에 가수 김도향, 배우 추송웅, 헤롯왕에 코미디언 곽규석, 빌라도 역에 탤런트 유인촌을 캐스팅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당시 뮤지컬을 할 수 있는 배우층이 없었기 때문에 연예인 캐스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김성원, 윤복희, 곽규석, 유인촌, 추송웅, 임동진, 조영남 등은 뮤지컬이 올라갈 때마다 거론되는 연예인들이었다. 지금처럼 뮤지컬 작품이 충분했다면 이들의 진로도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한 해 올라가는 뮤지컬 편수가 시립가무단이 정기적으로 올리는 2~3편을 포함해도 5편이 넘지 않았다. 이렇게 뮤지컬 배우층이 얇았기 때문에 1983년도에는 극단 민중, 광장, 대중이 연합하여 <아가씨와 건달들>을 올렸다. 이 공연은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 2000년대까지 매해 한번은 공연되는 레퍼토리 작품으로 남았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흥행으로 뮤지컬 제작 편수는 점차 늘기 시작했고 스타 캐스팅 역시 여전히 이루어졌다.


이 당시 눈에 띄는 스타 캐스팅을 살펴보면 1984년 시립가무단에서 올린 <성춘향>에 이몽룡 역으로 이덕화, 변사또 역에 김진해, 방자에 최주봉, 주모에 김애경 등 대중적인 연기자들이 캐스팅되었다. 1986년 <양반전>에도 남능미, 나문희, 김애경 등이 참여했다. 이처럼 이 당시 시립가무단 작품들은 주역에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인물들을 내세우고 단원들은 비중 있는 조역이나 앙상블을 이루었다.

 

뮤지컬 전문화 인식 대두, 1990년대


88올림픽 이후 외래 문화가 급격하게 들어오고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공연에 있어서도 상업성이 전면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전문 뮤지컬 배우’라는 개념이 없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구분하지 않고 배우들이 출연했고 그 빈자리를 가수나 탤런트들이 메워주었다.


1990년대에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뮤지컬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무엇보다 제작되는 작품 수에서부터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문예연감 자료에 따르면 1990년 10편에 불과했던 뮤지컬이 1994년에 이르면 59편으로 급격히 늘어나고 1995년에는 140편으로 200퍼센트에 육박하는 성장을 보인다. 이후 2000년도에 이르기까지 뮤지컬 작품 수는 100편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1995년은 <사랑은 비를 타고>와 <명성황후>가 공연된 해이기도 하다. 이 해에는 유독 뮤지컬이 많이 올라갔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뮤지컬에 참여해 부족한 뮤지컬 배우들의 빈 자리를 채웠다. <스타가 될거야>(에이콤 제작)에는 가수 이상우, 탤런트 나현희,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제작 환 퍼포먼스: PMC 전신)에는 최수종, 엄정화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극단 신시 제작)에는 탤런트 신애라가,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극단 신화, 성좌 제작)에는 하희라가, <개똥이>(학전 제작)에는 가수 윤도현이 참여했다.


뮤지컬 배우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형 뮤지컬에서 연예인 캐스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게다가 1995년 갑작스럽게 뮤지컬 작품 수가 증가하다 보니 참여할 수 있는 배우도 부족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스타 캐스팅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과도하게 연예인 캐스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가수 이문세, 탤런트 안재욱, 나현희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캐스팅한 <베이비 베이비>는 무대 스태프들의 개런티를 지급하지 못해 결국 공연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무리하게 연예인들을 캐스팅하다 보니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1990년대의 주목할 만한 스타 캐스팅을 조금 더 살펴보면 <쇼 코미디>(1996, 서울뮤지컬컴퍼니 제작)에 국악인이자 영화배우인 오정해가 출연하였고, <겨울 나그네>(1997, 에이콤 제작)에는 탤런트 윤손하가, 최근 자주 뮤지컬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 신성우가 <드라큘라>(1998, 갖가지 제작) 초연 공연 때 드라큘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또한 <바리-잊혀진 자장가>(1999, 서울예술단)의 바리 역으로 가수 이선희와 무장승 역에 가수 유열이 출연했다.


이처럼 연예인 캐스팅은 여전히 대중예술인 뮤지컬에서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지만 199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전문배우’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발점은 롯데월드 예술극장이다. 1988년 조직된 롯데월드 예술극장은 브로드웨이의 트레이너와 안무가를 초빙하여 배우들을 트레이닝하였고 전문 뮤지컬 배우를 양성하였다. 롯데월드 예술극장에 소속된 배우들에게는 ‘뮤지컬 전문배우’라는 명칭이 따라 붙었다. 뮤지컬 전문단체로 예그린의 명맥을 잇고 있는 시립가무단과 1986년대 새롭게 생긴 서울예술단이 이미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뮤지컬 전문배우에 대한 관념은 불분명했다. 그러나 롯데월드 예술극장이 이곳에서 트레이닝을 거친 배우들을 ‘뮤지컬 전문배우’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경주, 최정원, 주원성, 전수경 등은 롯데월드 예술극장 소속 배우로서 뮤지컬 전문배우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명칭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았을 뿐 예그린악단 배우들은 뮤지컬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배우였다).


롯데월드 예술극단 이외에도 1993년에 에이콤이 뮤지컬 전문극단을 표방하고 등장하면서 ‘전문화’ 인식이 커져간다. 1995년 극단 신시가 극단 명칭을 ‘신시뮤지컬컴퍼니’로 고치고(신시는 올해 뮤지컬과 연극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신시컴퍼니로 명칭을 고쳤다) 뮤지컬 전문극단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1993년 롯데월드 예술극장 해체 이후 그곳에서 프로듀서 역할을 했던 설도윤, 김용현이 만든 서울뮤지컬컴퍼니 역시 뮤지컬 전문단체로서 꾸준히 뮤지컬을 제작한다. 특히 에이콤은 뮤지컬 전문배우를 양성하기 위해 배우학교를 운영하는 등 전문배우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전문화의 노력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을 지나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서면 뮤지컬은 뮤지컬 전문배우에 의해 공연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해지면서 연예인의 참여가 줄어든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뮤지컬은 뮤지컬 배우들만 해야 된다는 고정된 생각이 싹트기도 한다.

 

 

 

다시 불기 시작한 스타 캐스팅 열풍, 2000년대


편의상 연대별로 글을 전개해가고 있지만 스타 캐스팅이 잠잠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로 그 기간은 불과 5~6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스타 캐스팅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시카고>(2000, 신시뮤지컬컴퍼니 제작)의 벨마 역에는 가수 인순이가 캐스팅되었으며, 영화를 각색한 창작뮤지컬 <스팅>에는 터프가이 최민수와 독고영재 등이 출연한다. <킹 앤 아이>(2003, 오디뮤지컬컴퍼니)에서는 탤런트 김석훈이 율 브리너가 연기했던 샤암왕의 역을 맡았다. 공연 성수기인 연말에는 어김없이 연예인이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연예인들의 참여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뮤지컬 관객층에게 남경주, 최정원 등의 인기는 여느 스타 못지않게 많았고, 지속적으로 뮤지컬 전문배우의 양성을 주장해온 분위기가 뮤지컬 배우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결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스타 캐스팅이 활성화되는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2004년 조승우의 활약으로 <지킬 앤 하이드>가 크게 성공했는데 조승우는 이미 <지하철 1호선>, <의형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등을 거친 뮤지컬 배우였다. 조승우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뮤지컬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연예인 중에서도 과거 뮤지컬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명성황후> 초연에 참여했던 김영호나, 1995년 <그리스>에 출연했던 유준상 등이 <투맨>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원작부터가 로커가 출연한 전통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종용, 강산에, 윤도현 등이 거쳐간 작품답게 2004년에는 JK 김동욱, 박완규가, 2006년에는 팝페라 가수 출신인 임태경과 가수 김종서가 출연했다.


옥주현의 <아이다>(2005, 신시뮤지컬컴퍼니) 출연은 2005년 가장 센세이션한 캐스팅이었다. 옥주현은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작품을 주도해가야 하는 아이다 역을 그녀에게 맡긴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공연 초반에는 책을 읽는 듯한 발성 때문에 공연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8개월간 공연을 지속해오면서 배우로서 한층 성숙할 수 있었다. 이후 참여한 <시카고>, <캣츠> 등에서 그녀는 한결 성숙한 실력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배우나 코미디언 등 연기자의 캐스팅이 눈에 띄었는데 중반으로 넘어올수록 가수들이 진출이 눈에 띈다. 이는 음반시장의 침체와도 연관이 있다. 소찬휘(2005, <루나틱>), 리치(2006 <골목길 이야기>), 홍경민(2006 <동물원>), 김태우, 이지훈(2006, <알타보이즈>), 유진(2007, <댄서의 순정), 이현우(2007, <싱글즈>) 등 2000년대 후반 이후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이 늘어났다.


이렇게 서서히 연예인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2008년 기존에 뮤지컬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바다, 옥주현, 소냐는 물론 이제는 스타가 되어서 돌아온 황정민(<나인>), 이종혁(<싱글즈>), 뿐만 아니라 미스코리아 출신의 이하늬(<폴라로이드>), 10여 년만에 뮤지컬로 컴백한 하희라(<굿바이 걸>), 이외에도 신해철(<마리아 마리아>), 김원준(<라디오 스타>) 등이 뮤지컬에 출연했다. 그리고 최근 인기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는 아이돌 스타의 출연이 눈에 띄었다. 빅뱅의 승리(<소나기>), 대성(<캣츠>), SS501의 박정민(<그리스>), 슈퍼주니어의 강인과 희철(<제너두>) 등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2008년 뮤지컬 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진출 역시 작년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95년에 유독 연예인 캐스팅이 많았던 것은 갑자기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뮤지컬계에서 연예인 캐스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지금 올라가는 작품들이 연말 시즌으로 이어지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초 공연 경기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안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음반 시장의 불황, 그리고 대부분 다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매니지먼트사가 예전과 다르게 그룹 전체의 일관된 색깔보다는 각각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려고 하는 전략이 뮤지컬계의 요구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스타 캐스팅은 국내 뮤지컬 시장이 확장되면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중예술과 스타 시스템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전국구를 커버할 수 있는 뮤지컬 스타가 다수 배출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스타 캐스팅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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