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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뮤지컬 학과 현황 1 [No.78]

글 |박병성 2010-03-09 6,622

국내에서 ‘뮤지컬’은 굉장히 매력적인 키워드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뮤지컬 배우를 지망하는 학생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런 추세를 반영하듯 뮤지컬 학과들이 속속 생겨났다. 전국에 있는 뮤지컬 학과 수는 22개에 이른다. 이렇게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뮤지컬 학과의 한 관계자는 “지방 대학들은 학생이 안 오니까 뮤지컬 학과를 만들고, 서울 대학들은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호에서는 국내 뮤지컬 학과의 실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해본다. 뮤지컬 학과를 졸업한 배우와 재학생, 현재 가르치고 있는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현재 뮤지컬 학과의 위치를 알아본다.

 


뮤지컬 성장 속도를 추월한 뮤지컬 학과

 

1990년대 한국 영화가 붐을 맞으면서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연극영화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연극영화과, 연극영상학과, 공연영상학과, 공연예술과, 무대예술과 등 비슷비슷한 성격을 띤 학과들이 이름만 달리하면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학생들이 몰리면서 연극영화 관련 학과들은 다른 학과들에 비해 월등히 경쟁률이 높았다. 그만큼 1990년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인이 되기를 원했다. 최근 4~5년 사이에 빠르게 늘어나는 뮤지컬 학과의 증가세를 보면 1990년대 연극영화과가 들불 번지듯 늘어나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해외에도 희귀한 뮤지컬 학과
많은 대학교에서 뮤지컬 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뮤지컬 학과가 등장한 것은 10년이 넘지 않는다. 국내에 뮤지컬 학과가 등장한 것은 2000년이다. 2000년 동서대에서는 차순례 교수를 중심으로 공연예술학부 내에 뮤지컬 전공이 신설되었다. 독립 학과로서 등장한 것은 같은 해 백제예술대에서였다. 백제예술대에서는 장성식 교수를 중심으로 뮤지컬 학과를 신설하고 뮤지컬 배우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뮤지컬이 지금같이 성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두 곳 모두 뮤지컬이 앞으로 공연예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임을 인지하고 혁신적인 도전을 한 것이다. 


국내에 개설된 모든 뮤지컬 학과는 엄밀히 말해서 ‘뮤지컬 연기 학과’이다. 오직 뮤지컬 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만을 위한 학과라는 뜻이다. 연극과가 학과 내에 극작 전공, 연출 전공, 연기 전공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에 개설된 모든 뮤지컬 학과에서는 오직 연기자 양성만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해외에서도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해외에서도 뮤지컬 배우만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은 매우 드물다. 백제예술대 뮤지컬 학과가 초창기 커리큘럼을 구성할 때 롤 모델로 삼았던 AMDA(American Musical and Dramatic Academy)나 NYU Steinhardt의 보컬 퍼포먼스 전공이 있긴 하지만, 이러한 학과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에서도 매우 희귀한 예다. 일반적으로 해외의 연극학과는 춤과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다. 특별히 뮤지컬 배우를 한정해서 양성하기보다는 배우를 양성하고, 그 배우들이 뮤지컬이나 연극에 출연해왔다. 그래서 배우는 배우일 뿐 뮤지컬 배우, 연극 배우로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과도하게 늘어난 뮤지컬 학과
공식적으로 뮤지컬 전공이나 뮤지컬 학과를 가지고 있는 곳은 4년제 대학이 11곳, 2~3년제 대학이 11곳, 모두 22곳이다. 이들 학교들 중 절반 이상이 2005년 이후에 생긴 신생 학과이다.
근래 들어 뮤지컬 학과가 늘어나게 된 이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 때문이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만 기존의 교육 기관에서 이들을 도와줄 학과는 없었다. 해외처럼 연극과 내에 보컬이나 무용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추었다면 연극학과에서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극이나 음악 관련 학과에서 뮤지컬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보강하면서 뮤지컬 전공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다 아예 뮤지컬 배우를 양성하는 뮤지컬 학과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뮤지컬 관련 학과가 있는 학교들을 보면 이전 연극학과나 음악학과에서 파생되어 뮤지컬 전공이 생기고, 이 학과들이 공연예술학부 등의 좀 더 포괄적인 학부로 개편되면서 뮤지컬 전공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된 경우가 많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뮤지컬 학과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성악과나 연극과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뮤지컬 학과로 변모하기도 했다. 서울보다는 서울 근교나 지방에 뮤지컬 학과가 많은 이유는 바로 인기 학과를 신설해서 학생들의 지원을 높이려는 욕구가 아무래도 지방 대학이 더 높기 때문이다. 뮤지컬 배우를 양성하려는 욕구를 수용하다보니 기존의 연극과나 음악과, 무용과에서 뮤지컬 전공이 파생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새로운 학과를 만들기보다는 기존 학과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뮤지컬 전공을 만드는 것이 수월한 일이다. 지원 미달까지 벌어지는 지방대 연극과, 성악과, 무용과라면 인기 학과인 뮤지컬 학과로 변신하고 싶은 유혹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문제는 기존에 교수들이 전임 교수로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학과 대문만 바꿔 달 때 발생한다. 이런 경우 춤, 노래, 연기의 커리큘럼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야 하는데, 음악이나, 연극 전공 교수들의 수업이 많아지다 보니 전임 교수들의 전공에 따라 한 축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뮤지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교수들이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뮤지컬 학과의 명찰만 단 대학의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잃고 자퇴를 하거나 학교에 나가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인기 학과라는 이유로 만들었다가 파행 운영되면서, 생긴 지 불과 2~3년 만에 학과를 폐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뮤지컬 학과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뮤지컬 학과의 정원은 적게는 20명, 많게는 60명 정도이다. 평균 30명만 잡더라도 총 22곳이 있으므로 수치상으로 한 해에 600명이 넘는 뮤지컬 학과 졸업생이 배출된다. 아직 뮤지컬 시장은 이 정도의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학생은 매우 제한된다. 전체 졸업생 중 20퍼센트 정도만이 뮤지컬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뮤지컬 무대를 경험하게 된다. 학교에서 오직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80퍼센트 학생이 자신이 배운 것과 무관한 일을 해야 한다.


 

커리큘럼 개발은 진행 중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생이 학교에 쏟아붓는 시간은 상상 이상이다. 대부분의 뮤지컬 학과 학생들 역시 그에 못지않는 시간을 학교생활에 투자해야 한다. 졸업까지 주어진 정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일반대학에서는 주로 3학점 수업을 2시간 넘게 하는 편이지만 뮤지컬 학과 수업들은 1학점이 90분이거나 심하게는 2시간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매 학기마다 보통 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도 새벽까지 작품 연습에 참가해야 한다. 주말도 없고, 심지어 방학도 없이 보낸다. 청강산업대의 경우에는 전원이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집에도 가지 않고 오직 학교생활에만 빠져 산다. 동서대학교나 서울예대, 송원대 등 많은 대학의 뮤지컬 학과가 스파르타식 교육을 채택한다.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노래와 연기, 춤을 모두 배워야 한다. 무용만 해도 기본이 되는 발레부터 재즈 댄스, 탭, 한국 무용, 아크로바트, 마임 등 배워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연기 역시 장면 연기, 즉흥 연기, 대본 분석을 해야 하고, 노래 또한 시창, 성악 실기, 합창 등을 그리고 매 학기마다 작품제작까지 해야 한다. 4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게다가 절반 정도가 2~3년제 대학에 개설되어 있어 더욱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가르치려다 보니 스파르타식 수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뮤지컬 학과마다 제작 실습의 비중이 작지 않다. 실제 작품 제작 과정을 통해 실제 필요한 능력을 익히게 한다는 취지다. 현장 같은 시스템으로 소위 말하는 졸업 후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작품 제작 실습에 더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한다. 뮤지컬 학과 협의회에서 개최하는 ‘즐겨라 뮤지컬 페스티벌’이나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내에 ‘대학생 뮤지컬 페스티벌’ 같은 경연대회가 있어 각 학교별 경쟁을 통해 실력을 향상시키고 대외적인 인지도도 높이려고 한다.


학생들은 어느 수업보다도 실제 작품 제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작품 제작 실습은 적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실제적인 교육법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지나치게 작품 제작에 시간을 쏟으면서 우려되는 점도 없지는 않다. 특히 이러한 수업 방식은 2~3년제 대학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실용적인 기능을 서둘러 교육하려다 보니 배우로서 기본기를 갖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작품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이 배우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런 수업들이 아무래도 소홀해진다는 지적이다. 즉 표면적인 효과는 작품 제작을 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지만, 배우로서 기본적인 재능을 갖추게 하는 데 소홀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대학교 교육기관의 역할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일꾼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능력이나 소양을 충실히 쌓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뮤지컬 학과에서 추구하는 방식은 전자에 해당된다. 뮤지컬 학과가 후자의 방식을 추구한다면 기본이 되는 발성이나, 작품 해석하는 능력, 발레, 뮤지컬 가창법 등을 중심으로 배우면서도, 삶과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배우로서 인문학적 지식을 넓히는 방향이 될 것이다.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이게 들릴 수 있지만 오랜 호흡을 가진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용적인 기능보다는 기본적인 소양과 능력이다. 두 가지가 함께 병행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현재 뮤지컬 학과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후자를 등한시하고 있다.


뮤지컬 학과의 커리큘럼은 연기, 춤, 노래, 뮤지컬 제작 실습에 관련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과의 역사가 짧아서 고정된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이 이루어지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보충해가면서 학교마다 자신들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경험이 쌓여가고 학과 교수들의 교수법을 연구하면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커리큘럼을 개발해가고 있다.


배우면서 가르치는 교수진
국내에 뮤지컬이 활성화 된 것은 90년대 이후이다. 학과가 생긴 지는 10년이 됐다. 뮤지컬은 해외에서 들어온 장르이다 보니 뮤지컬을 이해하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뮤지컬 학과의 교수진을 보면 기존 음악과나 연극과, 혹은 무용과 교수들이 자신들의 전공 분야에 뮤지컬적인 방식을 접목시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가창에 기본이 되는 성악, 움직임에 기본이 되는 발레, 그리고 연기가 뮤지컬 배우에게 기본이지만 장르적인 속성을 배제한 채 기본기만 가르칠 수는 없다. 문제는 뮤지컬을 제대로 이해하는 교수들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뮤지컬 발성은 클래식 발성과 차이가 있어서 클래식 발성만으로는 뮤지컬 무대에서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교수들 역시 뮤지컬을 공부하면서 가르치는 이들이 많다. 역사가 짧은 현 상황에서는 교수법 역시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뮤지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부분은 현장에서 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이나 음악감독, 안무가, 연출가들을 교수진으로 끌어들여 가르치기도 한다. 현장 스태프들이 참여하다 보니 학과 수업이 좀 더 현장 스타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뮤지컬에 대한 이해가 깊고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적인 교육은 가능하지만, 많이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서 두 가지 능력을 갖춘 교수가 많지는 않다.


교수진에 대해서는 각 학교마다 교수법을 연구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동서대학교 차순례 교수처럼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발성을 직접 배워서 가르치기도 하고, 서울예대 뮤지컬 전공 학생들처럼 방학 때 웨스트엔드로 집단 워크숍을 떠나 선진 뮤지컬을 경험하고 오기도 한다. 아직은 국내 뮤지컬 학과가 체계적인 커리큘럼이나 뮤지컬 배우를 양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교수법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역사가 짧은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신생 학과답게 많은 뮤지컬 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도록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78호 2010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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