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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3] 사춘기의 죽음

글 |김영주 2009-11-02 5,421


자줏빛 여름에 남겨진 아이들

 

 

청소년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청년이기도 하고, 소년이기도 하다는 것은 청년도 아니고 소년도 아니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세상의 주변인으로 속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정신과 육체를 덮쳐오는 질풍노도를 한꺼번에 겪어내야 하는 4, 5년은 생의 어떤 시기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때문에 우리는 그 시기로부터 한참 멀어진 후에도 지독한 사랑이 끝났을 때처럼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많은 작가들이 이미 충분히 나이 들었으면서도 성장통에 대한 무언가를 쓰고, 노래하고, 만드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를 다룬 작품에서 공통된 테마를 찾아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그래서, 그 아이는 죽고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일 것이다. 살아서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이는 또래의 소년이나 소녀이기도 하고, 어른의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자기 안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청소년기 필독 도서 목록에 단골로 올려지는 헤르만 헤세의 성장물부터 가깝게는 현재 공연중인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연극 <나쁜 자석>에 이르기까지 이 공식은 어긋나지 않는다. 

정신의학자인 J.E. 메이어는 연령별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밝히기 위한 조사에서 죽음에 대해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가장 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성장을 위한 생동력이 가장 왕성한 청소년기이고, 이 시기에 자살률 또한 현저히 높아진다는 보고를 했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솔로곡 ‘난 두려워(J`’ai Peur)’는 원작의 대사(‘아직 운명의 별에 달려 있는 중대한 일이 오늘밤의 연회를 계기로 무섭게 활동을 시작해서(……)때 아닌 죽음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생의 키를 잡으신 이여, 내 삶의 항해를 인도해주소서’)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로미오의 두려움을 청소년기에 느낄 법한 죽음과 삶에 대한 매혹과 공포로 풀어낸 곡이다.

 

내 친구여, 피를 나눈 형제여 /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사랑해 온 그대들이여 / 그대들도 나처럼 어깨를 스치고 가는 죽음을 느끼는가 (……) / 우리를 인도하는 별들은 / 언젠가 텅 비어 우리를 밀어내겠지 / 난 두려워 / 우리를 기다리는 인생이 / 우리의 부모들의 거짓이 / 난 두려워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의 재미있는 점은 ‘난 두려워(J’`ai Peur)’의 가사 일부나 티볼트의 솔로곡 ‘내 잘못이 아냐(C’`est Pas Ma Faute)’처럼 현대의 10대들이 부모에게 할 법한 원망을 그럴듯하게 녹여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사춘기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가장 보편적인 혼란 중 하나가 그동안 자신과 동일시하며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던 부모에 대해 처음으로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은 결국 네 젊은이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데 이 중 두 사람이 자살을 선택했다. 2004년 사망원인통계연보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대에 비해 사람의 감정이나 욕망에 대해 더욱 억압적이고 위선적이었던 20세기 초 독일을 배경으로 한 베데킨트의 희곡 『봄이 눈 뜰 때』에서는 두 아이가 생명을 잃는다. 남자아이는 아버지의 권총으로 스스로를 쐈고,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임신중절 수술을 받다가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는다. 그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절망한, 문제가 된 임신에 책임이 있는 또 다른 소년 역시 스스로 생명을 끊으려고 시도한다. 베데킨트의 원작과 달리,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친구들의 무덤가에서 죽기를 결심한 그를 구한 것은 환영처럼 나타난 죽은 소녀의  노래였다.

 

세상에 고통 받은 사람들 말하지 모두 다 용서할게 / 하지만 너는 말하네 / 네 가슴은 별빛을 부르건만 / 너의 모든 건 아직 밤하늘 어둠 속에 남아있다고

 

내 마음이 향하는 미래의 별빛과 내 과거의 모든 것에 깃든 어둠이 나의 현재에 혼재해 있을 때, 그 분열을 견딘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시기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사춘기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필요한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물론 첫 번째는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이런 혼란을 감당해야하는 사람이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숨을 돌리고 난 후 뒤늦게 돌이켜 보려는 이들, 다시 말해서 아이를 어른으로 바꾸어놓는 불가사의한 마력이 자신의 삶을 지배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되짚어 보고 싶은 이들이다. 그들이 자꾸만 고개를 돌려 되돌아보는 것은 남은 삶 전체를 통틀어서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어떤 일이 그 때 일어났고,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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