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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해외시장에서의 패자부활전 [No.75]

글 |조용신 2009-12-08 5,588

뮤지컬계의 금의환향자들

 

집 나가서 잘되는 사람들이 있다. 모 광고에서는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떠들고 있고, 성경에서는 집 나갔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탕아(蕩兒)가 등장한다. 정말 집 나가면 개고생이고, 집 나가면 땡전 한 푼 없이 털리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뮤지컬계에서 집 나가는 작품은 대체적으로 집에서도 대접받은 작품들이다. 아닌 말로 본바닥에서도 대접 못 받았는데 밖에서 대접받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드물게 집에서는 조용하다가 나가서 큰 대접을 받으며 금의환향하는 작품들이 있다. 왜 그럴까? 집 나가 공연한 땅이 좋았나? 대표적인 작품들을 살펴보자. 


집 나가서 잘된 탕아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역시 <지킬 앤 하이드>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만 4년(1997~2001) 동안 총 1,543회라는 장기 공연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중반 이후에는 록그룹 스키드 로우(Skid Row)의 리드 싱어 세바스찬 바흐와, 드라마 <전격 Z작전>의 데이빗 핫셀호프 등 연예인을 캐스팅했지만 흑자로 돌아서지는 못했다. 브로드웨이에 오기 전의 성적은 좋은 편이었다. 이 작품은 1990년 5월, 휴스턴 앨리극장에서 2개월간 프로페셔널 버전의 초연을 가졌고, 5년 후인 1995년에는 다시 휴스턴을 시작으로 이듬해까지 총 28개 도시를 도는 첫 번째 미국 투어의 여세를 몰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핵심 관객인 중장년층이 좋아할 만한 뮤지컬 코미디가 아니었고, 대중적인 멜로디 때문에 비평가들로부터 낮은 점수를 받았다. 토니상에서도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아예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고 극본, 남우주연, 의상, 조명 부문은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수록곡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브로드웨이 공연을 갖기도 전에 이미 일반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곡은 1994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기념해서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Soccer Rocks the Globe: World Cup USA 94’에 록음악의 거장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의 노래로 당당히 수록되었다. 이 음반이 축구의 대륙인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음은 자명한 일이고, 불굴의 의지를 찬양하며 애국심을 자극하는 노랫말은 미디어와 정치인들도 선호하게 되어 1996년 미국 대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모두 주제곡으로 쓰였다. 브로드웨이 공연을 앞두고이러한 분위기를 탄 <지킬 앤 하이드>는  작품의 지명도가 급상승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전세계에서 작품의 투어와 라이선스 공연 요청이 밀려들었다. <지킬 앤 하이드>는 지난  12년간 벨기에(1997), 독일/스웨덴(1999), 스페인(2000), 헝가리/캐나다(2001), 네덜란드/그리스/오스트리아(2002), 덴마크/일본(2003), 영국/호주/멕시코/한국(2004), 아일랜드(2005), 체코/스웨덴(2006), 홍콩(2008) 등에서 초연을 가졌고 현재도 수도 없이 재공연 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의 배경인 런던에서는 2004년 이래 영국 투어 공연만 열렸을 뿐, 웨스트엔드에 아직 입성하지 못한 것은 제작진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미국 출신의 뮤지컬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브로드웨이까지 올라간 네 작품 모두 흥행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듯하다. <지킬 앤 하이드>의 후속작인 <스칼렛 핌퍼널>(1997)은 준 히트를 거두었지만 공연 기간 중 두 번의 커다란 수정을 거치는 바람에 홍보에 차질을 빚으며 흥행에 실패했고, <남북전쟁>(1999)은 거창한 역사물을 음악 중심의 레뷔로 엮는 참신함을 선보였지만 두 달 만에 막을 내렸다. <드라큘라>(2004)는 배우들의 플라잉 기술 이외에는 볼 게 없다는 혹평을 받으며 조기 종연의 쓴잔을 마셨다. 게다가 가장 환영받지 못한 곳이 그의 모국인 미국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그가 태생적으로 유럽적인 소재와 에픽 뮤지컬을 선호하고 현대 유럽 뮤지컬들처럼 대중적인 멜로디를 추구하기 때문인데 이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전통적인 흥행작들의 스타일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젊은 관객이 많은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그의 많은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 최근 프랭크 와일드 혼의 주활동 무대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많은 작품이 유럽에서 세계 초연을 하고 있다. 이미 <루돌프-라스트 키스>(2006)가 부다페스트와 비엔나에서 매진 사례를 빚었다. 또한 <카르멘>(2008)은 체코에서, <몬테카를로 백작>(2009)은 스위스 장크트갈겐에서 각각 세계 초연을 가졌다. 그의 활발한 신작 활동은 아시아까지 범위를 넓혔다. <시라노 드 벨쥬락>은 올해 5월에 일본에서 세계 초연을 했고, <천국의 눈물(Tears From Heaven)>은 내년 한국에서 초연을 가질 예정으로 지난 9월에 뉴욕에서 워크숍을 개최했다. 미국에서의 초연 계획도 줄을 잇고 있다. 올 겨울에는 <원더랜드: 앨리스의 새로운 모험>이 휴스턴에서, <보니 & 클라이드>가 캘리포니아 라욜라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각각 세계 초연 공연을 갖는다. 또한 <하바나>가 캘리포니아 패서디너에서 내년 여름에 개막할 예정이다.

 

가족 뮤지컬의 대표주자인 디즈니의 많은 작품들 중 <미녀와 야수>(1994), <라이온 킹>(1997), <아이다>(1999)는 전세계에서 흥행과 비평 모두 고른 평가를 받은 것에 비해서 네 번째 작품인 <타잔>(2006)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이 작품은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붓고도 브로드웨이에서 혹평을 받으며 14개월 만에 막을 내렸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곧바로 유럽으로 건너갔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무대 장치를 그대로 공수해서 간 다음 행선지는 네덜란드였고 기대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 세 번째 프로덕션인 스웨덴 공연은 개막 초기부터 화제였는데, 공연의 프로듀서가 에밀 지그프리손이라는 27살인 젊은이인데다가 대본, 음악만 가져오고 무대 장치를 직접 스웨덴 기술회사를 통해 제작하는 등의 독립 프로덕션으로 운영한 것이다. 스웨덴은 유럽 안에서도 영어권 뮤지컬을 자주 볼 수 없는 시장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전문 배우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는 직접 스웨덴 시장에 맞게 대본 각색 작업을 지휘했으며, 스웨덴의 기존 댄스컴퍼니 단원들, 파트타임 댄서들, 아마추어 배우들을 고용하고, 6인조로 축소한 라이브 밴드는 독일에서 공수하는 등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경제적인 프로덕션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100회 공연에 1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든 것이다. 밀림의 왕자가 몰고 온 바람은 2008년 10월, 오늘날 진정한 유럽 뮤지컬의 중심지로 꼽히는 독일 공연까지 이어졌다. 독일의 뮤지컬 관객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라이온 킹>이 공연된 2001년에는 500만 명을 돌파했고, <타잔>이 공연된 2008년에는 7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타잔과 제인을 뽑는 ‘Ich Tarzan, Du Jane!’라는 제목의 캐스팅 리얼리티 쇼가 함부르크, 에센, 슈투트가르트를 돌면서 수주 동안 TV에 방영되면서 독일 젊은이들 사이에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타잔> 유럽 공연의 성공 비결은 어려서부터 스토리의 보고(寶庫)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유럽인들이 원하는 익숙한 스토리인데다가, 젊은 배우들의 선발 과정을 미디어와 결합시켜서 젊은 관객층 개발을 이뤄낸데에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집 나가서 가장 성공한 작품은 <레 미제라블>일 것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에 승리를 거둔 영국의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서있는 트라팔가 광장 지척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레 미제라블>은 모든 것이 프랑스산이다. 작곡자인 클로드 미셸 쉔베르그와 작사자인 알랑 부브릴은 모두 프랑스인이고,  1980년에 팔레 데 스포르(Palais des Sports)에서 프랑스어로 초연되기까지 했다. 이곳은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 앤 줄리엣>도 초연된 체육관으로 이 작품 역시 거대한 콘서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를 프로시니엄 극장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흥행작으로 재탄생시킨 사람이 바로 영국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연출가 트레버 넌이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1985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도 공연이 이어지며 웨스트엔드 최장기 공연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또한 1987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그에 버금가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흥행의 비결은 다름 아닌 작품성에 있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가 작품 곳곳에 펼쳐놓은 사회복지의 확대, 사형제 폐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생산과 분배의 공평, 여성의 인권과 아동에 대한 배려 등 인도주의적 사상은 국경을 넘어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여기에 영어 버전으로 각색되면서 과감한 스토리의 압축과 아름다운 선율을 가미해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작 뮤지컬로 탄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다시 프랑스로 역수출되었다는 점이다. 1991년 파리의 모가도르 극장에서는 프랑스 오리지널이 아닌 매킨토시 프로덕션의 영어 버전이 공연되었다. 아마도 프랑스인이라면 마치 ‘기무치’가 현해탄을 건너와 우리네 수퍼마켓에서 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작품들이 집나가서 잘되는 데는 제각각 조금씩 다른 이유가 있다. 일단 집을 떠나면 다른 시장과 다른 관객층을 마주해야 하는 적극적인 로컬화(Localization)가 필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먼저 ‘작품성’이라는 집토끼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서 대접 못 받았다고 덜컥 가출 계획부터 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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