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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가난한 백인 로미오와 푸에로토리칸 줄리엣 [No.74]

글 |박병성 2010-01-05 6,200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마 지금까지 가장 많이 각색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은 프랑코 제페렐리,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로, 존 프랑코 안무의 발레로, 구노의 오페라로,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으로, 오태석을 비롯한 많은 연출가들의 연극으로, 그리고 서울예술단과 프랑스 작곡가 제라르 프레르귀르빅의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특히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6세기 베로나의 배경을 1950년대 뉴욕으로 옮겨와서 연애 비극인 원작을 사회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는 연출과 안무에 제롬 로빈스, 작곡 레너드 번스타인, 작사 스티븐 손드하임, 작가 아서 로렌츠, 그리고 후에 <오페라의 유령> 등의 연출가로 명성을 날리는 해롤드 프린스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당대 천재들이 총집합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안무, 음악, 드라마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탄생
<로미오와 줄리엣>을 20세기의 사랑 이야기로 바꿀 생각을 한 것은 제롬 로빈스였다. 한 연기자가 자신이 로미오 역을 맡게 되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찾아왔고 제롬 로빈스는 그때 문득 ‘현대에 로미오는 누굴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이때가 1940년대 말이었다. 이후 그는 이 시대의 빈민가에 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이에 관심을 보이는 아서 로렌츠와 레너드 번스타인을 끌어들인다. 처음 로빈스가 구상한 것은 서로 대립하는 유태인과 가톨릭 집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각자 자신들의 작업에 열중했던 그들은 작업을 한동안 진행하지 못하다가 1955년 우연히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로미오 프로젝트를 다시 진전시켰다. 이때 로빈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과 영국인으로 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냈고, 작가인 로렌츠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흑인과 푸에르토리칸의 대립으로 하자며 새로운 의견을 냈다. 당시 신문지상에는 서로 다른 이민자 출신의 10대 청소년들이 벌이는 집단 싸움이 큰 이슈였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자는 의견에 로빈스는 매우 기뻐했다. 로렌츠는 가난한 백인 집안의 청년 토니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마리아의 사랑이야기로 큰 줄거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0년대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배우 선정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기존의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가난한 빈민가 젊은이들을 연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발라드와 재즈 등 대중적인 선율을 매우 클래식한 음악으로 만들어낸 번스타인 역시 노래를 잘하는 배우로 캐스팅하되 어떠한 훈련을 받은 듯한 목소리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게다가 제롬 로빈스의 고난위도 춤을 소화하는 어린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까다로운 오디션을 거쳐 토니 역으로 래리 커트와 마리아 역으로 캐롤 로렌스가 선발되었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로빈스는 배우들이 연습을 하지 않을 때도 제트파(가난한 백인 젊은이 집단)와 샤크파(푸에르코리칸 젊은이 집단)로 존재하기를 요구했다. 그는 배우들이 캐릭터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다른 집단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금지했고, 연습 도중에 실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이 각각 ‘제트’와 ‘샤크’라고 새겨진 점퍼를 입고 다니며 마치 작품 속에 등장인물처럼 서로를 경계하고 경쟁하도록 했다.

 

원작과 다른 구조적인 차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갈등하는 두 집단의 젊은 남녀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둘은 두 집단의 싸움을 말리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남자는 여자의 가족을 살해하게 된다. 남자를 용서한 여자는 남자와 함께 이곳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도시에서 추방당한(경찰에게 쫓기는) 남자는 여자가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죽음 속으로 뛰어든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원작과 구조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마리아(줄리엣)가 토니를 따라 함께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두 젊은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몬테규가와 캐퓰릿가가 해묵은 갈등을 풀고 화해한다. 로미와와 줄리엣은 일종의 속죄양인셈이다. 그러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두 집단의 갈등은 해결되지 못한다. 토니와 마리아는 갈등을 해결하는 속죄양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갈등의 희생양으로 존재한다. 제트파와 샤크파가 죽은 토니의 시체를 함께 들고 나가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화해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온전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반부에서는 둘의 사랑이 중심을 이룬다. 두 집안의 싸움으로 시작해서 이들의 사랑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복선을 깔고 있지만 이를 잊을 정도로 그들의 사랑은 행복한 감정으로  충만하다. 이것이 후반부에 둘의 사랑을 더욱 비극적으로 이끄는 장치가 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첫 장면에서 원작과 같이 두 집단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불행을 암시한다. 토니가 처음 등장해서 부르는 노래 ‘Something Coming’은 무언가 놀라운 일이 다가올 것 같다는 예감을 노래하고 있다. 이는 사랑에 대한 기대와 함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불안을 동시에 암시한다. 또한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이 전개될 때도 불행을 예고하는 암시가 음악적으로 깔려있다. 사랑의 아리아일수록 불협화음인 트리톤(tritone, 두 개의 음 사이에 반음이 포함되지 않은 증 4도)을 빈번하게 사용한 것이다.

춤과 노래로 표현된 두 집단의 갈등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춤이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당대의 뛰어난 안무가였던 제롬 로빈스가 안무가와 연출가로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의 뜨거운 혈기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집단의 갈등을 표현한 첫 장면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결투 장면의 춤은 드라마를 효과적으로 담아낸 뮤지컬 댄스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본 갈등 구조를 잘  드러낸 곡들로 구성되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사용된 곡들을 보면 우선 제트파와 샤크파의 갈등을 다룬 곡들이 한 축을 이룬다. 서곡으로부터 제트파들의 결전을 다지는 ‘Jet Song’, ‘The Dance at the Gym’, ‘The Rumble’ 등의 곡은 젊은 두 집단의 대립 관계를 거칠고 불편한 음들로 보여준다. 체육관의 댄스파티에서는 샤크파가 라틴 음악인 맘보에 맞춰 춤을 춘다면, 제트파는 미국적인 음악인 블루스를 사용해서 음악적으로 대립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연애 비극답게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을 담은 곡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Maria’의 리듬을 주요 모티프로 한 ‘Something Coming’에서 조금씩 드러난 사랑의 기대감이 ‘Tonight’으로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러브 송을 장식한다. 아무도 없는 웨딩숍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치루는 ‘One Hand, One Heart’, 그리고 베르나르도를 살해한 후 토니와 마리아가 어딘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Somewhere, There`s a Place for Us’(이 곡은 토니가 마리아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다시 나온다. 토니는 힘겹게 노래를 부르다가 미처 다 부르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등 두 연인들의 사랑 노래가 한 축을 이룬다.
갈등의 노래와 사랑의 노래들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한 노래 속에 역할이 두 가지로 양분되기도 한다.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노래하는 ‘Tonight’ 5부 합창은 토니와 마리아에게는 사랑을 기대하는 노래이자, 제트파와 샤크파에게는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Tonight’은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또다른 한 축은 바로 사회적인 면을 드러내는 노래이다. 아니타를 비롯한 푸에르토리코 여인들이 부르는 ‘America’에는 미국 사회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다. 이들은 미국을 꿈의 나라라고 생각하고 이민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좌절당한다. 아니타가 마리아의 메시지를 가지고 덕 아저씨 가게로 가는데 그곳에 있었던 제트파 일행은 그녀를 불신하고 모욕한다. 이때 나오는 노래가 아이러니하게도 ‘America’를 변주한 곡이다. 이 곡은 아니타를 비롯한 그들이 가진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헛되이 작용하는지를 드러내준다. 제트파 일행이 크럽케 경감을 비웃으며 부르는 ‘Gee, Officer Krupke’는 자신들이 불량스럽게 자란 것은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풍자적으로 노래한다.

 

탄탄한 드라마가 보강된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오래 전부터 반목하는 두 집안의 갈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 원인을 명확한 사회적인 원인, 즉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문제에서 찾는다. 당시 주로 동유럽에서 이민 온 가난한 백인들(번스타인은 토니 역에 ‘신장 6피트의 금발 폴란드계 테너’라는 조건으로 오디션을 공고했다고 한다. 그가 폴란드계라고 지목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초연 때 토니 역을 맡은 래리 커트는 유태인이다)과, 남미에서 이민 온 사람들 사이에 일자리를 두고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뮤지컬을 보면 아니타가 베르나르도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대사가 나온다. 대본상으로 샤크파와 제트파 중 일을 하고 있는 청년은 덕 아저씨 가게에서 일을 하는 토니와, 샤크파 중에서는 점원인 치노뿐이다. 베르나르도는 동생인 마리아를 치노에게 짝 지워주려고 한다. 가난한 백인 입장에서 보자면 치노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푸에르토리코인이다. 그런 치노의 여자를 토니가 가로채는 행위는 일종의 보복 심리를 담고 있다. 첫 장면에서 제트파는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샤크파를 응징하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이들이 말하는 영역은 특정 공간을 뜻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를 의미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머큐쇼와 티볼트가 싸움을 하기 전, 피를 끓게 하는 뜨거운 날씨와 다혈질의 기질을 타고난 이탈리아 남자의 혈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암시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도 젊은 혈기 때문에 두 집단이 패싸움을 일삼는다. 그러나 이들이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보다 사회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Gee, Officer Krupke’에서 제트파 일행은 자신들이 건달이 된 것은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은 원래 착했는데 사회 때문에 범법자가 되었다고 노래한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형무소가 아니라 정신병원이라며 자신들 역시 사회적인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이처럼 가난한 이민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적은 봉급을 받는 직장을 얻는 데도 라틴계 이주민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폭력으로 드러나고 끝내 살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회적인 배경을 명확하게 하면서 원작에서 막연하게 제시했던 것들을 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신부가 보낸 메시지가 로미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바람에 로미오는 사랑하는 여인을 따라 죽음을 택한다. 우연적인 사고로 인해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에서는 운명의 캐릭터가 메시지를 가로채도록 만들어 그들에게 숙명적인 속죄양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 이유를 보다 사회적인 문제에서 찾는다. 남자친구를 죽인 토니였지만 마리아의 사랑을 이해한 아니타는 기꺼이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덕 아저씨네 가게를 찾아간다. 하지만 제트파는 인종적인 편견으로 인해 그녀를 모욕한다. 결국 미국에 호의적이었던 아니타도 베르나르도의 생각이 옳았다며, 치노가 마리아를 죽였다는 거짓 정보를 전한다. 그것이 결국 토니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고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시대 배경을 분명히 하면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갈등을 사회문제와 결부시켜 드라마를 좀더 탄탄히 했다. 두 집단을 표현한 제롬 로빈스의 춤과, 드라마를 완벽하게 담아낸 음악은 원작에 비견되는 뮤지컬적인 재미를 보여주었다. 

 

참고자료

성미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관한 연구」,
 2008 서경대 석사학위 논문

김광선, 「뮤지컬의 다층적 언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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