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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s] 제주 방언과 가까워지기 [NO.114]

글 |이민선 2013-04-02 6,695

<살짜기 옵서예> 제주만의 독특한 단어

 

 


 

 

 

애랑이 노래한다. 꿈에도 못 잊을 그리운 님이여,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 이 노래 제목 ‘살짜기 옵서예’는 제주 방언으로 ‘살금살금 다가오세요’라는 의미이다. 표준어 ‘살그머니’에 해당하는 제주도만의 표현 ‘솔째기’가 내륙 사람들에게 가깝도록 ‘살짜기’로 살짝 발음을 순화했다. ‘오다’는 존대형 어미 ‘ 서’체를 만나 ‘옵서’가 되었고, 여기에 강세 접미사 ‘예(또는 양)’가 붙었다. 대사의 많은 부분이 현대적이고 표준적인 표현으로 바뀌었지만, <살짜기 옵서예>에서는 여전히 제주만의 언어를 맛볼 수 있다.

방언이 형성된 데는 사회·문화적 요인도 있지만, 우선 자연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강이나 산 등이 가로막고 있으면 그 너머로 자주 왕래하지 못했고, 통신 기술 역시 부족해 타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자연히 한 지역에 눌러 살던 사람들은 그들만의 언어문화를 만들어갔고, 그것이 방언으로 굳어졌다. 육로로 연결돼 있지 않은 바다 너머 제주도는 내륙 언어의 변화에 호응하지 못하고 마치 외국어인 듯 그들만의 방언을 갖게 되었다.

 

 

 

 

 

 

독특한 어휘

다른 어떤 지방 방언보다 독특해서 발음으로 의미를 유추해보기도 힘든 낯선 단어들 중에는 제주의 특별한 자연 환경에서 비롯된 것들이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돌과 산이 많은 화산섬에서 그와 관련된 어휘들이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코지’가 곶을, ‘오름’이 산을 뜻하는 말임은 제주의 관광지 이름에서 이미 접해 알고 있을 것이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식어서 굳어진 암반은 ‘빌레’ 또는 ‘돌빌레’라 불리며, 해녀들의 작업을 뜻하는 ‘물질’은 ‘잠수질’ 또는 ‘숨비질’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제주의 환경적 특징을 드러내는 어휘들은 이외에도 아주 많다. <살짜기 옵서예>의 엔딩곡 ‘제주라 비바리는 인정도 많아’에 등장하는 ‘비바리’는 처녀를 뜻하는 말이다. 원래는 전복을 뜻하는 ‘비’에 접미사 ‘바리’가 더해져 전복 따는 사람을 의미했으나, 그 일을 주로 여자들이 행했기에 그 의미가 축소돼 결국 처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비바리의 반대말은 뭘까. 막을 올리면 해녀들이 부르는 ‘제주  나이 멀대같아’에서 들을 수 있듯, 사나이와 비슷한 ‘ 나이’다.

 

제주 관광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말 중 하나인 ‘ 저 옵서예(어서 오세요)’에서도 볼 수 있듯, 제주 방언에는 훈민정음에서나 보았던 아래아나 쌍아래아가 여전히 남아있다. 제주어는 내륙 언어에 비해 변화를 덜 겪어 중세어의 흔적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말(馬)은 ‘  ’, 달(月)은 ‘ ’, 하루(一日)는 ‘ 루’ 등이 그 예이다. 사랑하다는 뜻의 중세어 ‘괴다’의 방언형인 ‘궤다’를, 동생을 가리키는 단어로 ‘아우’ 대신 ‘아시’라고 사용하는 등 중세어에서 파생한 어휘들이 제주에서는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제주와 몽골은 1266년부터 1367년까지 100여 년 동안 외교적 교류를 활발히 했다. 그 덕에 말이나 목장에 관련된 어휘를 중심으로 몽골어가 제주로 유입되기도 했다. 털 색깔에 따라 말을 ‘가라(까만 말)’, ‘고라(누런 말)’, ‘구렁(밤색 말)’, ‘부루(하얀 말)’, ‘적다(붉은 말)’ 등으로 부르며, 조문을 뜻하는 ‘고렴’과 친척을 뜻하는 ‘우룩’, 무리를 의미하는 ‘수룩’ 등도 몽골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재밌는 어미 활용

충청도의 ‘돌 굴러가‘유’’나 경상도의 ‘이게 뭐‘꼬’’ 같은 어미들은 상당히 익숙하나 제주 말은 흉내 내려 해도 여간 어렵지가 않다. 상투를 주십‘서’, 마음이 흐뭇헙‘주’, 귤 사러 보냈‘저’, 무슨 궤‘우까’. 표준어와는 전혀 다른 어휘에서 사투리의 짙은 개성을 느낄 수도 있으나, 알 듯 모를 듯 방언이 흥미롭게 들리는 데는 문장의 종결 어미가 더 큰 역할을 한다.
상대를 높이는 정도에 따라  서체와  여체,  라체로 나누어, 제주 방언에서 경어법에 맞게 기억해야 할 어미는 엄청나게 많다. 존대하는 어미로는 ‘-다, -궤(게)’가, 평대하는 어미로는 ‘-주, -은게, -어’ 등이 있다. ‘밥을 먹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먹엄ㅅ쑤다, 먹엄ㅅ쑤궤’라고 하면 된다. ‘엄ㅅ’은 진행 중임을 뜻하는 선어말어미이고, 상대를 존대하는 선어말어미 ‘쑤’가 덧붙었다. 완료형을 표현할 때는 ‘엄ㅅ(암ㅅ)’ 대신 ‘엇(앗/랏)’을 넣어 ‘먹엇쑤다’고 하면 된다. 존대하지 않고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는 ‘먹엄ㅅ어’라고 한다.

 

의문문에서는 ‘-과’ 또는 ‘-꽈’를 붙이면 된다. ‘먹엇쑤과?’처럼. (때에 따라 -까, -꽝, -깡, -광, -강 등으로 변한다.) 친구 사이에서는 ‘먹엇어? 먹어신고?’ 등으로도 말하며, 여자들끼리 말할 때는 ‘-순’을 붙여 ‘먹엇순?’이라고 한다. 어간에 ‘-읍서’나 ‘-읍주’ 등의 어미를 붙인 ‘먹읍서’나 ‘먹읍주’는 명령과 청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접미사 ‘-마씀(마씸, 마슴, 마심, 마시)’은 말을 높일 때 유용하게 활용된다. ‘집마씀’ 하면 ‘집입니다’는 표현이 되고, ‘삼촌마씀’ 하면 삼촌을 존대하는 말이 된다. ‘-양’과 ‘-예’는 존대와 강조의 뜻을 더한다. ‘밥 먹으카?’에 ‘-예’를 붙이면 ‘밥 먹을까요?’라는 의미가 되고, ‘집이 가쿠다양’은 집에 가겠다는 말을 강조하는 식이다.

지금껏 언급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제주도에서 쓰이는 어미는 쓰임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하다. 적당히, 뭐뭐 합서, 뭐뭐 했쑤과, 정도로 흉내 내면 애교로 봐 줍서.

 

 

 

 

영화로 제주 방언 즐기기  

                                                                                                              

오는 3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제목 ‘지슬(지실)’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영화는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영문도 모른 채 폭도로 오인받을까 두려워 산속으로 피신한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산속에 숨어 감자를 나눠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웃다가도 섬뜩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두운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서민들의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그린 이 영화의 감독은 물론 배우들 역시 제주도 출신이다. 오멸 감독은 전작인 <어이그, 저 귓것>과 <이어도>, <뽕똘>에서도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주 출신만이 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제주에서의 삶을 스크린에 담았다. ‘귓것’은 ‘귀신이 데려가 버려야 할 바보 같은 녀석’이라는 뜻의 제주 말이며, ‘뽕똘’은 키는 작지만 야무지게 생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록 다수의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나는 행운을 얻진 못했지만, 그의 영화들은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오멸의 영화는 제주도의 자연과 역사, 예술의 한 조각들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 제주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보고서라는 흥미로운 가치를 지닌다. ‘어머니, 잘못해마씸’, ‘다 죽이렌 거우다’ 등 모든 대사가 제주 말이라, 한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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