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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Beyond LYRICS] 에포닌의 ‘나 홀로’ [NO.114]

글 |송준호 사진제공 |레미제라블코리아 2013-04-29 4,148

 짝사랑의 대명사 On My Own

 

 

 


지난 몇 달 동안 <레 미제라블>은 소설이나 뮤지컬을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됐다. 동명 영화의 힐링 효과에서 촉발된 ‘레 미제라블 신드롬’은 기어이 <레 밀리터리블>이라는 패러디 작품으로까지 이어지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루면서 보편적인 감수성을 획득하는 빅토르 위고의 솜씨는 이처럼 시대를 뛰어넘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애잔한 넘버들로 그런 원작의 위력을 더욱 끌어올린다. 딸을 위해 고생만 하다 죽음을 맞는 판틴의 고달픈 인생(‘I Dreamed a Dream’), 양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장 발장의 마음(‘Bring Him Home’), 애처롭고 비극적인 에포닌의 짝사랑(‘On My Own’) 등은 현대인들에게도 뭉클한 정서와 공감을 일으키는 곡들이다.


그중 이번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번안을 맡은 조광화 작가가 가장 애착을 보였던 곡은 ‘On My Own(나 홀로)’이다. 영국 프로덕션은 조 작가의 개사 참여가 결정된 후 일종의 역량 검증으로 ‘I Dreamed a Dream’과 ‘Confrontation’ 두 곡을 번안해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에포닌에 대한 애정이 컸던 조 작가는 ‘On My Own’도 하겠다고 자처했다. 영어와 우리말은 어순도 다르고 말의 음률감도 달라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은 불가피했다. 또 영국 측에서는 아무리 한국어의 특성에 맞는 의역을 한다 해도 원어에서 중요한 단어들은 누락시키지 말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에도 불구하고 ‘On My Own’은 조 작가가 처음 영국에 보냈던 버전에서 거의 바뀌지 않았다. 원곡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우리말의 정서를 잘 녹여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까닭이다.

 

‘나 홀로(On My Own)’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과 행복한 상상이 계속 교차되며 짝사랑의 쓰라림이 듣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이되는 곡이다. 크게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나뉜 구성에서도 현실과 상상이 반복되며 밤길을 혼자 걷는 에포닌의 고독한 감정을 표현한다. 부정적 의미의 단어들(All Alone, Nowhere, No One, Without)로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드러내는 전반부의 레치타티보에서는 약간의 축약만으로 원어의 어감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또 다시 나는 혼자 갈 곳 없고 찾을 사람 없어
AND NOW I’M ALL ALONE AGAIN NOWHERE TO TURN, NO-ONE TO GO TO
집 없이, 친구 없이 인사 나눌 그 아무도 없어
WITHOUT A HOME, WITHOUT A FRIEND, WITHOUT A FACE TO SAY HELLO TO

 

 

아리아는 크게 A-B-A’-후주로 구성돼 있다. A 부분에서는 각 단락의 첫 음절이 우리말 3음절로 반복되는데(On My Own-All Alone-Without Him, In The Rain-All The Lights-In The Darkness), 조 작가는 이를 각각 ‘나 홀로-혼자서-너 없이, 비 내려-가로등-어둠 속에’로 바꿔 운율을 맞추고 있다. 이어지는 가사도 모두 7음절로 맞췄다. 이 과정에서 ‘Pretending He’s Beside Me(그가 옆에 있는 척)’는 ‘너와 함께한 상상’으로, ‘I Walk With Him Till Morning(아침까지 그와 걷네)’은 ‘너와 맞이한 아침’으로 의역됐다. 조 작가는 “노래를 부르는 배우와 듣는 관객 모두 ‘나’의 입장으로 그 상황을 느끼도록 바꿨다”고 말한다. <레 미제라블>에는 이런 은유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I Dreamed a Dream’의 ‘한밤중에 천둥소리를 내며 들이닥친 호랑이(The Tigers Come At Night With Their Voices Soft As Thunder)’다. 조 작가는 “일단은 배우가 편안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원어의 표현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했다”고 말한다.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들도 고민거리가 됐다. 이런 특징은 다음 가사에서 두드러진다.

 

 

비 내려, 거린 흔들린 은빛  IN THE RAIN, THE PAVEMENT SHINES LIKE SILVER
가로등, 어른거리는 강물  ALL THE LIGHTS ARE MISTY IN THE RIVER
어둠 속에, 나무들마다 별빛  IN THE DARKNESS, THE TREES ARE FULL OF STARLIGHT

 

 

이어지는 B 파트에서는 한껏 로맨틱한 상상에 빠져 있던 에포닌이 누군가에게 핀잔이라도 들은 듯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한 가사가 출현한다. ‘And I Know It`s Only In My Mind-(알아요, 모두 나의 상상) ‘That I’m Talking To Myself And Not To Him(나만 홀로 말해, 그는 못 들어)’. 그다음의 ‘And Although I Know That He Is Blind’에서 ‘He Is Blind’는 마리우스가 에포닌의 마음을 아는지의 여부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 작가는 짝사랑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 아플 수 있는 상황을 택했다. ‘못 본 척, 날 외면하지만, 난 말해, 그게 우리야’로 바뀐 가사에서 마리우스는 에포닌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나쁜 남자’다.


A` 파트는 A 파트와 마찬가지로 3~7음절의 운율이 절마다 반복된다. 효과적인 압축과 개사로 번안의 경제성을 보여주는 조 작가의 존재감은 이곳에서 가장 돋보인다. ‘그가 없으면 세상은 변해버려(Without Him The World Around Me Changes)’ 다음의 묘사적이면서도 긴 노랫말 ‘The Trees Are Bare And Everywhere, The Streets Are Full Of Strangers’는 오히려 ‘저 마른 나무 거리마다 나만 홀로 걷네’로 시적으로 바뀌었다. ‘매일 난 알게 돼(Everyday I’m Learning)’라는 가사를 ‘매일 눈 뜨지만’으로 바꾼 다음 절 역시 시적 표현이긴 마찬가지다. 여기서 ‘눈 뜨다’는 ‘아침에 일어나다’와 ‘현실을 깨닫다’의 이중적 의미를 담은 말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후주를 앞두고 최고조를 치닫는 마지막 절에서는 홀로 남겨진 에포닌의 비참한 현실과 행복한 마리우스의 대비를 통해 원망과 야속함이 느껴지는 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날 두고, 그 혼자만의 세상  WITHOUT ME, HIS WORLD WILL GO ON TURNING
난 알지 못할 행복으로 가버리는 너  A WORLD THAT’S FULL OF HAPPINESS THAT I HAVE NEVER KNOWN

 

 

<레 미제라블>의 정수는 결국 완성되지 못한 안타까운 꿈들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더 나은 내일(One Day More)을 꿈꾸며 고생을 감내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우리 현실과 닮아서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다른 이들의 희생을 딛고 완성된 코제트와 마리우스 커플의 사랑이 상대적으로 감흥이 적은 이유다. 그리고 단순히 예쁜 부르주아 커플인 이들보다는 꿈꾸고 상상만 하다 스러지고 마는 서민 에포닌을 더 아름다운 곡으로 비추는 것이 바로 <레 미제라블>이 가진 미덕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4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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