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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작곡가가 만든 <아리랑, 경성 26년> <포에틱> [No.115]

글 |박병성 사진제공 |스펠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박스 시야 2013-05-09 4,125

작곡가의 유쾌한 외도

이지혜의 <아리랑, 경성 26년> 이나오의 <포에틱>

 

뮤지컬 <아리랑, 경성 26년>, <포에틱>. 지난 2월  말 비슷한 시기에 두 편의 워크숍 공연이 올라갔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워크숍 공연이 일반화되어 특별하진 않지만, 이 작품들을 주목한 것은 한 인물이 작곡, 극작, 작사까지 전담했다는 점이다. 작가가 극작과 작사를 하거나, 작곡가가 작곡과 작사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세 가지를 한 사람이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아리랑, 경성 26년>과  <포에틱>에서 일인 삼역을 한 재주꾼은 이지혜, 이나오이다. 이지혜는 <첫사랑>, 고궁 뮤지컬 <대장금>의 작곡가로, 이나오는 <콩칠팔 새삼륙>의 작곡가로 둘 다 작곡을 전공한 다재다능한 인재다. 이들의 흥미로운 도전을 소개한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다 <아리랑, 경성 26년>

<아리랑, 경성 26년>은 올해 대국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 선보일 개막 예정작이다. 이에 앞서 2월 23일~24일 양일간 숙명아트센터에서 워크숍 공연을 치렀다. 전막이 아닌, 1막에 2막 엔딩을 결합한 형식으로 공개됐다. 경성 26년은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발표한 해이다. <아리랑, 경성 26년>은 경성 시대 부족함 없이 자란 철없는 부잣집 딸 노진요가 <아리랑>을 제작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서서히 사회에 눈을 뜨게 되는 성장 스토리와, 예술로 사회에 참여하려는 젊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작품의 발상은 5~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상은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시기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사회가 어수선했던 때였다.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예술로 사회와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할 거다. 그런데 뮤지컬은 그런 장르가 아니잖나. 우연히 나운규의 <아리랑>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 작품은 예술로 할 수 있는 가장 사회적인 일을 한 것 같았다. 작품의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잠시 묻어두었는데, ‘아리랑’이 마침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딤프(DIMF) 쪽에서 이를 소재로 한 작품 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작곡과 작사를 한 사람이 할 때 노래에서 말맛이 한결 살아난다. <아리랑, 경성 26년>의 노래에서도 노래에 녹아든 가사, 노래의 적절한 타이밍과 노래를 통한 효과적인 드라마 전개가 흥미로웠다. 극작은 처음이지만 이지혜는 작가로서도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특히 철부지 노진요 삼총사의 수다는 대사가 살아있다. 얼굴 없는 레코드 스타 신금파나, <아리랑>의 발단이 되었던 동네 바보 삼돌이 캐릭터 역시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인물이다.(실제 나운규가 그런 인물에 착안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단지 나운규는 당시에도 메소드 연기를 했던 배우로 장님 역할을 할 때 직접 장님을 찾아가 연기를 연구했다고 한다. 여기에 착안하여 삼돌이 캐릭터를 만들었다.) 아리랑 가락에 맞춰 느리게 춤을 추는 삼돌이는 일제 치하의 조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내용이 참신한데도 아쉬운 점은 있다. 매끄럽지 않은 장면 전환과 여자 캐릭터에 비해 남자 캐릭터의 매력이 부족하다. “애초에 나운규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배경처럼 등장하는 인물로만 만들 생각이었는데, 무대화하면서 비중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산엽(극 중 아리랑 작곡가, 진요의 상대 역)과 나운규가 남자 주인공의 비중을 나눠가지면서 존재감이 없어졌다. 이 부분은 고민이다.”

 

이지혜는 <아리랑, 경성 26년>이 애국심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염려한다. 이번 공연은 앞서 말한 대로 워크숍 공연으로 아직 열린 작품이다. 2막은 결말 이외에 아직 방향만 잡혀 있을 뿐이다. 대구에서 어떤 모습으로 선보일지 기대된다.

 

 

 

 

 

시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다 <포에틱>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중독>은 중독에 관한 에피소드와 최승자의 시 네 편을 노래로 만들어 결합한 옴니버스 뮤지컬이었다. 작년 예그린 앙코르 공연에서는 에피소드 간의 간극을 좁히면서 좀 더 견고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포에틱>은 바로 <중독>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중독 에피소드와 최승자 시로 만든 노래는 분명 겹치는 지점은 있었지만, 이질적인 요소가 있었다. <중독>을 발전시킨다고 했을 때 최승자 시에 음악을 붙인 부분을 축소하고, 중독 에피소드를 강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최승자 시로만 송사이클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어요. 함께했던 연출을 설득할 필요는 있었지만, 제 생각은 분명했어요.” 이렇게 태어난 것이 <포에틱>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창작뮤지컬을 찾고 있는 프로젝트박스 시야가 제작 후원하면서 워크숍 공연이 이루어졌다.

 

뮤지컬 <포에틱>은 시인의 내면 풍경을 꿈과 같은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의 욕망을 자극하고 슬픔으로 몰아넣는 남자 아니무스가 등장한다. 아니무스는 융 심리학에 나오는 여성 속에 있는 남성 인격을 의미한다. 아니무스를 따라 꿈과 꿈 사이를 이동하는 시인은 자신이 이끌렸던 아니무스가 다름 아닌 자신이었음을 발견한다.

 

뮤지컬 <포에틱>은 논리적인 설명이 어려운 작품이다. 분명한 서사보다는 장면 장면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시의 감성을 따라간 거예요. 시인이 아니무스를 따라 떠나는 여정인데 서사의 틀은 아니무스에서 가져왔어요. 아니무스의 형상이 개인에게 드러날 때 단계가 있는데, 육체적, 낭만적, 정치적(웅변적), 종교적이라고 해요. 그 순서를 적용한 거예요.” 이나오는 그런 심오한 것까지 관객들이 파악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창작자의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해하고 낯설어서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다. 대중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기존의 관습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시인의 삶은 시로 쓰였고, 그것은 욕망의 집적물이다. 시를 창작하는 시인의 은유로 작품을 받아들인다면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최승자 시인의 서늘하면서도 반듯한 언어들이 뜨거운 록에 실려 태어난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이나오의 말대로 이번 공연은 씨앗에 불과하다. 기본 에센스만 분명하다면 앞으로 설득해가는 것은 과정 속에서 해결하면 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2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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