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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using On Music] <태평양 서곡> 음악 세계 [No.116]

구술 | 이나오(뮤지컬 작곡가) | 정리| 박병성 2013-05-28 4,180

동양의 색채를 음악에 녹여내다 <태평양 서곡>

 

 


이번 주제는 ‘스타일(장르)’이다. 손드하임은 일본을 배경으로 <태평양 서곡(Pacific Overture)>을 만들면서 동양적인 색채, 정서, 분위기를 작품 스코어의 전체에 반영하려 했다. <태평양 서곡> 이전에도 동양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았다. 그 작품들이 주로 서양의 시각에서 동양을 바라보았다면 <태평양 서곡>은 철저히 동양의 시각에서 그들을 표현하려 한다. 즉 어설프게 동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동양의 ‘스타일’을 담아내려고 했다. 더불어 작품의 창작자들인 손드하임과 존 와이드먼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태평양 서곡>은 당시 기존의 뮤지컬들과 남다른 색깔로 미국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서양의 시각에서 본 동양의 모습에 서구적인 관점들이 반영되어 두 문화가 절묘하게 섞였다. 음악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화성의 단순화로 나타났다. 동양 음악이 선율과 리듬 위주라면, 서양 음악은 화성이 주요 요소로 포함된다. 손드하임은 <태평양 서곡>에서 화성을 굉장히 단순화해 단선적으로 느껴지도록 했다. 또한 리듬이나 질감, 반주의 정교한 변화를 이용해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극을 세밀하게 따라간다.

 

손드하임의 음악을 속속들이 이해한 조나단 튜닉의 편곡이 동양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서양의 색채를 조화시킨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편곡만 판단한다면 이 작품이 조나단 튜닉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튜닉은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Shamisen), 사쿠하치(Shakuhachi) 등의 동양적 색채를 내는 악기를 중심으로 사용하다가, 가사의 변화나 인물의 감성이 고조되는 지점에 서양 악기를 적절히 배치하여 감정을 고조시킨다. 프롤로그는 샤미센 연주로 시작한다. 샤미센 연주와 보컬 라인도 일본풍으로 시작해 작품의 배경이 다른 어느 곳이 아닌 일본임을 강하게 드러낸다.

 

 

 

 

두 번째 곡 ‘타마테의 춤 - 다른 방법이 없다’에서도 샤미센이 사용된다. 이 노래에서는 정적이고 단선적인 일본 음악의 절대적인 미가 표현된다. 전장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은 하급 사무라이 카야마, 그의 부인의 심정이 담긴 노래이다. 부인이 직접 노래를 하지 않고  두 명의 관찰자들(Observers)이 부인의 마음을 대신해서 들려준다. 이는 일본 극 가부키의 서사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같은 멜로디가 여러 번 반복된다. 노래 초반에는 샤미센 등 동양적 색채가 짙은 반주(b)와 함께 ‘다른 방법이 없을까?(Is there no other way?)’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중간 부분쯤에서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There must be other ways)’라며 아직 희망을 놓치 못하는 부인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때 첼로의 묵직한 선율이 조금씩 드러난다(c). 노래 말미 ‘다른 방법이 없어(there is no other way)’라는 가사에 다다르면 바이올린이 중심 선율로 도드라지면서 일본 악기들과 뒤섞인다(d). 마치 그들 앞에 곧 다가올 미래, 막을 수 없는 서양의 파도를 예시하듯 반주가 극과 함께 어우러진다.

 

 

 

<태평양 서곡>은 내러티브보다 이미지와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작품의 배경을 병풍으로 나타내는데 검은 옷을 입은 인물들이 병풍을 옮기면 장소가 바뀐다. 또한 가부키의 방식처럼 전체 캐스트가 남자 배우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일본의 단시인 하이쿠를 차용한 가사와 그것을 응용한 음악은 선이 중심이 된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평면적인 무대나 단순한 배우들의 움직임, 그리고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가사와 그를 담아낸 단선적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그들만의 독특한 동양적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사무라이인 카야마와 어부인 만지로가 하이쿠를 주고받는 ‘Poems’라는 노래는 감정에 빠지지 않은 건조하고 상징적인 시어의 이미지와 톤이 노래에 그대로 녹아있다. 만지로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카야마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데, 서로 다른 주제이지만 같은 멜로디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런 모습이 무대에서 정적으로 그려진다.


손드하임의 가사는 대체적으로 신선한 라임, 복선, 서브 텍스트 등으로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하이쿠를 가사로 하는 ‘Poems’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노래의 가사를 단순하고 절제된 언어로 고집한다. 동양적 색채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다시 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Welcome to Kanagawa’는 일본이 처음 개항하는 장면에 나오는 곡으로 게이샤를 섹슈얼하게 표현했다. 음악도 일관되게 유지하던 동양적 색채를 버리고 완결성 있게 표현하여 작품 안에서 가장 서양적인 색채가 짙은 곡 중 하나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평론가나 관객들은 대체적으로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이 작품을 지루하게 보고 있던 관객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음악이 나왔다며 반기는 곡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손드하임은 “작품 안에서 일본이 처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송 모멘트이기 때문에 서양적인 색채를 짙게 반영했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을 대표하는 곡이자, 작품의 주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은 ‘Someone in a Tree’이다. <태평양 서곡>은 서양인이 바라보는 일본과,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서양이 맞물려 있다. 이 노래는 ‘역사란 그것을 본 사람의 기록이므로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만약 나무에서 청년이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역사로 남을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역사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노래에 담고 있다. 이 곡은 전반적으로 거의  두 개의 코드로만 진행되며 60여 마디가 한 화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음악적으로 동양적 색채를 담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반주에서 리듬의 변주가 계속 이어지고, 패턴이 변하고 다양한 텍스처가 결합되면서 단조로움에서 벗어난다. 동양의 색채를 작곡가 자신의 색깔로 표현하며, 장르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장르를 자신의 음악에 녹여냈다.


작품 전체에 공통으로 적용된 원리가 ‘Less is More’이다. 연기적으로나, 무대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이 원리는 모두 통합되어 작용한다. 화성의 단조로움, 절제된 언어, 동양 악기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은 간결함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더욱 풍부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5호 2013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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