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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캐머런 매킨토시,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했을 뿐 [No.112]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3-01-08 4,099

12월 호 마지막 작업이 한창이었던 11월 26일 캐머런 매킨토시와 휴 잭맨이 영화 <레 미제라블> 홍보차 내한했다. 메가 뮤지컬 빅4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중 하나만 제작했더라도 명 프로듀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캐머런 매킨토시는 이 작품 모두를 제작했다. 이외 <올리버>, <마이 페어 레이디>, <오클라호마> 리바이벌 공연을 성공시키고, 디즈니와 <메리 포핀스>를 제작해 그의 흥행작 리스트를 늘려갔다. 12월 호를 최종 마무리하는 순간이고, 인터뷰 기사는 1월 호에 게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취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 기자 회견 전에 사전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여러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해서 인터뷰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서로 인터뷰를 배정받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그가 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가 이룬 성취 때문이었을까. 그는 생각보다 작고, 젊어 보였다.
전 세계 뮤지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고, 가장 성공한 프로듀서인 그에게 거대한 질문들을 품고 갔다. 브로드웨이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나, 두 거대 뮤지컬 시장의 차이, 80년대 메가 뮤지컬이 흥행하던 시대와 지금의 뮤지컬 시장의 변화, 앞으로의 뮤지컬계의 비전 등등.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단순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해왔을 뿐이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지만, 그 짧은 대답이 그 어떤 수사나 설명보다도 큰 울림을 주었다. 그가 이렇게 엄청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근 한 달간 묵혀두었던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와의 만남을 공개한다.

 

 

 

 

성공과 실패는 중요치 않다                                                                 

캐머런 매킨토시는 여덟 살 때 뮤지컬을 보고 프로듀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연극 학교에 진학했지만 대학을 마치지 않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바로 공연 현장에 뛰어들었다. <올리버> 제작감독을 찾아가 무조건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스물한 살에 처음으로 작품 기획에 참여하고 스물세 살에는 <애니씽 고즈> 리바이벌 공연을 제작했으나 참담한 실패를 맞았다. 그는 이 실패를 통해 개인이 어느 정도까지 절망에 빠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실패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연극을 전공했지만 학교를 다 마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빠르게 현장에 진출하려고 했나?

여덟 살 때부터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 돈은 없었고 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열아홉 살에 무조건 공연장에 가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무대 청소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무대감독, 컴퍼니 매니저, 제너럴 매니저, 조연출 등 거의 모든 무대 스태프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나, 작곡가, 배우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도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됐다. 만일 돈이 많았다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가장 성공한 흥행 프로듀서이다. 수많은 흥행작들을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가 아닌, 자신이 평가하는 그것의 기준이 있는가?

생각해 본 적 없다. 왜 그래야 하나? 나는 항상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해 왔다.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흥행을 할 수도 있고,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다. 또 오랫동안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10여 년이 지난 후 리바이벌된 작품이 성공해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칼라 드림코트>도 처음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시카고>도 초연에선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성공에 대한 판단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다.

 

뮤지컬을 상업 예술이라고 비하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이미 80년대에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예술감독인 트레버 넌에게 <캣츠>와 <레 미제라블>의 연출을 맡겼다.

정극이나 뮤지컬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트레버 넌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 뛰어난 아이디어를 많이 냈고, 샘 맨더스는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면서 뛰어난 작업물을 남겼다.

 

2000년대 중반경에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해준다면?

중국에 처음 간 것은 1993년이었다. 여행을 하다 우연히 방문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여행하면서 중국에 유능한 뮤지션과 배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언젠가 이곳에서 뮤지컬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0년쯤 지나서 상하이에서 실제 공연을 하게 됐다. 중국은 인구가 많은 만큼 발전 가능성도 높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매해 뮤지컬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의 뮤지컬 성장은 놀랍다. 16년 전 <레 미제라블>이 처음 공연할 때만 해도 뮤지컬 시장이 매우 빈약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제 한국의 <레 미제라블> 공연을 직접 보니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아시아는 지금 뮤지컬 시장이 태동하는 단계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굉장히 많은 성장을 이룰 것이고 성공을 거둘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국 문화의 기반에서 뮤지컬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많은 젊은이들이 당신 같은 성공한 프로듀서가 되길 꿈꾼다. 좋은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지닐 자질이나 태도는 무엇인가?

나는 특별한 비결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운이 좋게도 대중들이 좋아해준 것뿐이다. 단지 뮤지컬을 굉장히 사랑한다. 철칙이 하나 있다면,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외에 진출할 때는 더욱 그렇다. 언어가 중요한 성공의 열쇠이다. 뮤지컬에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은 전적으로 언어의 힘이다.

 

 

 

 

 

 

영화 프로듀서에 도전                                                                               

영화 <레 미제라블>이 개봉했다.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감독은 현장에서 녹음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해 기존의 뮤지컬 영화들보다 라이브성이 강조된 느낌을 주었다. 25년 전 알란 파커 감독이 영화 제작 의사를 비쳤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12년 개봉한 영화는 뮤지컬에 버금가는 감동을 준다는 평가다. 이 작품은 매킨토시가 영화 프로듀서로 첫 데뷔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프로듀서로 데뷔한 소감은?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영화 결과에 만족한다. 후퍼 감독이 라이브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의 비전을 실현시킬 팀이 필요했고, 우리 뮤지컬 팀이 그 역할을 했다. 알랑 부브릴과 미셸 쇤베르크가 합세해서 뮤지컬을 해체하고 영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도왔다. 영화계와 뮤지컬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환상적인 협업을 이룬 것이다.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는 아무리 비주얼이 멋지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도 음악의 힘이 없으면 제외했다. 멋지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쇤베르크의 음악을 통해서 스토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뮤지컬을 제작할 때는 상당히 세세한 부분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는 첫 작품인데 제작에 어느 정도까지 참여했나?

모든 부분에 다 관여했다. 원작자들과 내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촬영 중에는 매체가 영화이니까 감독이 우선권을 갖고 작업했다. 그래도 매일 출근하면서 제작 과정을 살폈다.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독에게 조언하고, 편집 전 과정에 참여해서 끊임없이 의견을 나눴다. 그냥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영화이고, 또 이 작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작업 과정을 거쳤다. 무엇보다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소리를 녹여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 음악 팀도 참여했다. 좀 더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오케스트라를 구성했고, 감독의 획기적인 제안에 대해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검토하면서 완벽한 협업을 이루어냈다. 

 

현장 녹음 방식이 확실히 스토리나 드라마 전달을 좋게 했다. 그러나 음악적인 측면만 봤을 때, 뮤지컬 원곡의 매력보다 떨어진 것은 아닌가.

영화 작업은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과는 다르다. 뮤지컬에서는 무대라는 공간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장소라 해도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감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좋은 콘텐츠라면 영화에서는 그것을 빛나게 해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영화에서는 무대와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에서도 원작에 대한 찬사를 유지하면서 영화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그런 작업들이 즐거웠다.

 

수많은 작품을 제작해왔다. 첫 영화화 작업으로 <레 미제라블>을 택한 이유와 이제야 영화 제작에 나선 이유는?

사실 25년 전 알란 파커 감독이 영화를 만들자고 했지만 그때는 휴 잭맨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역할에 맞는 나이가 될 동안 기다린 것이다. (웃음) 앤 해서웨이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어머니가 판틴 역을 맡은 적이 있는데 엄마를 따라 공연장에 놀러 오곤 했다. 그런 꼬마가 이제 나이가 들어 판틴 역을 충분히 소화하게 됐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2호 2013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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