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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③] 임태현, 진심의 가치

글 |이솔희 사진 |포트레이트262 2025-05-09 1,330

2025 라이징 스타 특집_<봄을 닮은 얼굴들>

이토록 반짝이는 봄, 무대 위에도 다채로운 반짝임이 가득합니다. 꽃봉오리 터지듯 눈부신 가능성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지금 무대 위에서 가장 반짝이는 여덟 명의 배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살면서 종종 잊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진심이나 노력, 설렘, 꿈 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이 가치들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길잡이별이 되기도 한다. 배우 임태현에게도 그렇다. 꿈과 설렘을 좇아 무대로 온 임태현은 여전히 진심과 노력의 가치를 믿는다.

 

처음 배우라는 꿈을 품게 된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어렴풋하게 배우의 꿈을 꾼 건 더 어린 시절이지만, 뮤지컬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확실하게 결심한 건 군 복무를 하던 시기였어요. 휴가를 나와서 <위키드> <빨래> 등 여러 작품을 봤거든요. 마침 그때 한창 진로 고민을 하던 때였어요. 제대하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머릿속에 여러 고민을 안고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무대 위의 배우분들이 다들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공연을 보는 내내 배우들이 주는 에너지가 저한테 확 와닿았어요. ‘아 저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구나‘ 싶었죠.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고요. 그 꿈은 언제 시작됐나요.

15살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왜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건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공연이나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녀서 그런지 배우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연기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아무래도 그때까지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다 보니 부모님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우선 공부해서 대학까지만 가라고, 그때도 네 생각에 변함이 없으면 도전해 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대학 가는 날만 기다렸어요. (웃음)

 

그런데 그 이후의 행보가 독특하더라고요.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어요. 배우라는 꿈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요. (웃음)

그때의 저는 뭔가를 대충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왕 공부할 거면 1등 해야 하고, 이왕 대학 갈 거면 제일 좋은 곳으로 가야 하는….(웃음) 저 자신도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이 ‘서울대 가면 너 하고 싶은 연기해라‘ 였거든요. 비록 서울대는 실패하긴 했지만…(웃음)

 

정말로 대학교까지 간 후에 ’이제 진짜 연기를 해보겠다‘고 결심한 아들에게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여주셨나요?

사실 그때도 썩 좋아하시진 않았어요. 부모님은 아마 이쯤 되면 제 마음이 바뀌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휴가 때 뮤지컬을 보고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이 불타올랐거든요. 그래서 군대를 제대한 후, 2016년~2017년 즈음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어요.

 

 

2018년에 <광화문 연가>의 앙상블로 데뷔했는데, 그럼 제법 빠르게 배우라는 꿈을 이룬 거네요?

주변에 이런 길을 가는 친구도 없고, 어떻게 해야 배우가 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찾아다녔어요. 레슨을 듣고,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장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남들이 1시간 연습하면 저는 2시간, 3시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래와 연기를 연습했어요. 그러다가 <광화문 연가> 오디션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합격으로 이어졌어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그때는 지금보다 부족한 점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아마 빨리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심사위원분들에게까지 보였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후로 <벤허> <그날들> 등 대극장 앙상블로서 무대에 섰어요. 작품의 일원이 되어 무대에 오르면서 뮤지컬 배우로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깨달았나요.

노래나 춤 같은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배웠지만,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무대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는 거예요. 본보기가 되어주는 형, 누나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사실 앙상블 배우들은 한 장면 안에서 그림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대충 해도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제가 함께했던 선배들은 짧은 순간에도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무대를 정성스럽게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어요.

 

 

그 후로 벌써 7년이나 흘렀네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제 상상 속의 ‘7년 차 배우‘는 능숙하고 실력도 좋은 모습인데, 전 아직 아닌 것 같아요. (웃음) 매 작품 늘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저 스스로 아직 신인 배우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저를 신인 배우라고 생각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해요. 제게 성장 가능성이 계속 남아있다는 의미 같아서요.

 

2023년 <오즈>에서 버튼 역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대학로 무대에 올랐어요. <오즈>라는 작품을 만났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설렘 반, 걱정 반이었어요. 정말 감사한 기회를 얻게 된 거긴 하지만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환경이었으니까요. 특히 창작 초연작에서 처음으로 캐릭터를 맡아 준비해야 한다는 게 걱정이 많이 됐어요. 절대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자다가도 대사를 읊을 정도로 대본을 달달 외웠죠.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관객분들이 이 작품을, 제 캐릭터를 어떻게 봐주실까 걱정돼서 개막 전날까지도 마음이 불안했는데, 다행히 좋게 봐주시는 분이 많아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어요.

 

<오즈> 이후로 뮤지컬 <등등곡> <클로버> 등 많은 작품에 출연했어요. 태현 씨를 가장 많이 성장하게 만들어 준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모든 작품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등등곡>이에요. 처음으로 솔로 넘버를 불러야 하는 공연이기도 했고, 노래나 연기 스타일이 제가 가진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이어서 연습 과정에서 부담감이 컸거든요. 그런데 내게 익숙한 것보다는 내가 어렵다고 느끼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정면 돌파했을 때 한 단계 성장한다는 사실을 <등등곡>을 하면서 다시금 깨달았어요.

 

마침 <등등곡> 재연을 앞두고 있어요. 나를 성장시켜 준 작품을 다시 마주할 때의 각오는 아무래도 남다르겠죠?

저는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어요. <등등곡> 초연을 마치고 지난 1년 동안 적어도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연습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기에 그 노력의 결과가 이번 시즌에 조금이나마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또, 지난 시즌에는 나와 다른 인물을 최대한 잘 소화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면 이번에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저만의 이경신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출연 중인 <이솝이야기>도 지난해 초연에 이어 다시 만난 작품이에요.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 있나요.

한 인물로서 내가 해내야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표현도 나의 능력 내에서만 나오고,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다 보면 내 능력 이상의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1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번 <이솝이야기>에서도 다른 캐릭터를 잘 관찰하고, 그 인물에게 잘 공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물론 지난 시즌에도 진심을 다해 작품에 임했지만,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니 정말 마음으로 함께 느끼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 1월에 열린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는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었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우를 꿈꾸는 학생이었는데 어느새 신인상 후보가 되었다니.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국뮤지컬어워즈에 가본 건 처음이 아니었어요. 2018년에는 관객으로 갔었고, 2023년에는 축하 공연을 하기 위해 <지저스 크라이스 수퍼스타>팀의 일원으로 참여했어요. 2018년에는 <광화문 연가> 오디션에 합격하기 전이어서 제가 정말 뮤지컬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하던 상황이었고, 2023년에는 한국뮤지컬어워즈라는 영광스러운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만으로 행복했거든요? 근데 막상 신인상 후보로 참석하니까, 뭐랄까… 실감이 아예 안 났어요. 그건 제가 뮤지컬 배우로서의 청사진을 그릴 때에도 감히 생각 못 해본 일이었거든요. 말 그대로 꿈을 꾸는 것 같은 하루였어요. 제가 우러러보던 배우분들과 함께 앉아 즐거운 축제를 즐기는 순간 그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최근에는 팬미팅을 열고 팬들을 만났어요.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사실 팬미팅을 준비할 때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객석에서 오는 에너지가 따뜻했거든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중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보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조금은 외롭게 꿈을 지켜왔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그날 그 자리에 모인 몇백 명의 분들이 저를, 제 꿈을 응원해 주신다는 게 크게 느껴져서 진심으로 벅찼어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점수가 매겨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늘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관객분들의 눈빛이 ’지금까지 열심히 잘해왔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태현 씨는 학창 시절까지 점수로 정의되는 삶을 살았잖아요.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배우는 객관적인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직업이죠. 그 간극에서 오는 낯섦이 있지 않나요.

사실 여전히 이런 삶에 익숙해지지 못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칭찬이 고플 때도 있고요. 그래도 타인의 평가에 되도록 의존하지 않으려고 해요.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어요.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체감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매일매일이요. 제가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요. (웃음) 팬미팅을 했던 날에도, 시상식에 후보로 참석했던 날에도 내가 배우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체감됐어요. 아직 배우의 삶에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그런 건지, 공연을 하러 가는 하루하루가 여전히 설레긴 하지만요.

 

 

태현 씨를 설레게 하는 무대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역설적이지만, 부담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작품이 공연되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약속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배우가 그 약속을 무대 위, 아래에서 잘 지켜내야 좋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약속을 잘 지키는 게 배우가 가져야 할 책임감, 부담감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부담감이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약속을 잘 지켜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무대의 매력인 것 같아요.

 

부담감과 뿌듯함이 배우로서 느끼는 무대의 매력이라면, 관객으로서 느끼는 무대의 매력은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드러난 부분만 볼 수 있다는 게 공연의 매력이에요.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만 볼 수 있고, 내게 전해지는 감정만 느낄 수 있다는 거요. 배우가 된 후에는 공연을 보러 가면, 한 명쯤은 꼭 아는 배우가 출연하고, 공연 중 무대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잘 아니까 공연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우려가 생기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그런 생각은 전부 사라지고, 그저 무대가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관객이 눈 앞에 펼쳐진 세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공연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본격적으로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텐데, 지금 태현 씨가 가장 크게 마주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 제 연기 스승님이 저에게 늘 ‘배우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그 얘기가 깊게 와닿지는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느끼고 있어요. 예전에는 단순히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게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의 연기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많이 드러난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어요. 내가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으려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떳떳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어른이란 뭘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하게 돼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공연을 보다 보면 다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저 배우가 이 무대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물론 배우로서 좋은 실력을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저는 제가 이 작품과 캐릭터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대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좋은 배우’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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