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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작업노트] <르 마스크> 꺼지지 않는 마음의 불씨

글 |이솔희 사진 |이모셔널씨어터 2025-09-12 422

 

뮤지컬 <르 마스크>는 미국인 조각가 안나 콜먼 래드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얼굴이 훼손된 군인들을 돕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설립한 ‘초상가면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한다.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는 부상병들의 상처를 가릴 수 있는 가면을 제작해 군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왔다.

 

<르 마스크>는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 만난 레오니와 프레데릭의 이야기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조각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레오니와 전쟁으로 인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삶의 희망을 잃은 프레데릭. 레오니가 프레데렉의 초상가면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두 사람은 점차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한다.

 

아늑한 분위기의 무대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에 힘을 싣는다. 1910년대 프랑스 파리의 아틀리에를 입체적으로 풀어낸 무대와 실존했던 초상가면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꼼꼼히 채워 둔 소품은 작품의 따뜻함을 강조한다. 섬세한 고증에 아이디어를 더해 제작한 가면은 관객이 이야기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위로’와 ‘치유’ 두 개의 키워드를 담아낸 무대와 여러 소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조유진 무대 디자이너, 정이든 소품 디자이너, 김숙희 분장 디자이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용기와 응원을 담은 무대

조유진 무대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초상가면 스튜디오는 “무너진 자아를 다시 조각해 붙이고,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치유의 장소”였다. 그래서 <르 마스크>의 무대가 실패나 상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숨겨진 희망을 보여주길 바랐다. 조유진 무대 디자이너는 “아틀리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들이 남기고 가는 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가능성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르 마스크> 공연장에 입장하면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무대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유진 디자이너는 그 포근함 속에서도 미묘한 대비를 주고자 했다. 극 중 인물은 두 개의 통로를 통해 아틀리에를 오가고, 낮은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아틀리에의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업실을 마주할 수 있다. 조유진 디자이너는 “인물들은 단정하고 정리된 공간을 거쳐 부서지고 허름한, 조금은 불완전한 공간으로 내려온다. 이것이 사람의 내면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완벽하고 흠집이 없어 보이지만, 누구나 내면 어딘가에는 쉽게 드러내지 못한 상처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 안쪽 공간에는 벽난로가 놓여 있습니다. 불완전하고 어두운 곳일수록 따뜻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벽난로가 아틀리에를 지탱하는 심장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잠시 몸을 녹이고, 마음의 불씨를 되살려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상징으로요.”(조유진 무대 디자이너)

 

무대 뒤편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조유진 디자이너는 창문과 그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더 나아가 그 빛을 막아주는 커튼에 집중했다. 극 중 창문은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마음의 창문’ 역할을 한다. 누군가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따스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이는 자신의 상처를 비출 수 있는, 두려운 존재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유진 디자이너는 “창문과 커튼이 주는 긴장과 온기를 동시에 담고 싶었다. 인물이 창문을 열 듯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기도 하고, 때로는 커튼을 드리워 스스로를 보호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관객분들이 무대 위에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연의 마지막, 레오니가 창문을 여는 표정을 떠올려 주셨으면 한다. 두려움 너머의 세상을 마주하려는 용기, 다시 살아가려는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 공연이 이야기하는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을 되찾으려는 용기이고, 그 용기를 곁에서 지켜주고 응원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무대를 통해서도 부서진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분들이 이 무대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르게 부서졌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단정하고 단단한 감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조유진 무대 디자이너)

 

 

섬세하게 구현한 가면

가면, 흉상, 사진, 화분 등 무대 곳곳을 채운 소품 역시 ‘따뜻함’과 ‘치유’에서 출발했다. 먼저, 액자 속 사진에는 파티를 하고 차를 마시는 등 마담 래드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보낸 군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마담 래드의 작업물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다. “평범한 일상의 사진으로 채워진 공간이어야 한다”는 정이든 소품 디자이너의 생각이 묻어난 것이다. 또, 생명력을 상징하는 꽃은 ‘전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이든 디자이너는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꽃잎 군데군데 마른 석고가 붙어있는 것도 그러한 의미”라고 전했다. 무대 우측에 위치한 레오니의 작업 공간은 “작은 테이블에서 얻은 기쁨이 큰 기쁨이 되어 돌아오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재료를 채우고, 도구를 관리했을 레오니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꾸몄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군인들, 즉 표면의 상처는 나았을지 모르지만 내면의 흉터를 가진 사람들이 방문했을 초상가면 스튜디오. 이곳은 단순히 가면을 만드는 공간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초상가면 스튜디오는 실제 존재했던 공간을 모티브로 채워졌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 공간의 따스함, 더 나아가 프레데릭처럼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이 힘든 사람들에게 적어도 이곳만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정이든 소품 디자이너)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은 소품은 ‘초상가면 스튜디오’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가면과 흉상이다. 정이든 소품 디자이너는 “가면과 흉상은 그동안 이 스튜디오를 거쳐 간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가면, 흉상 제작의 첫 단계는 실제 부상병들의 사진을 모으는 것이었다. 사진을 참고하여 인물 스케치를 하고, 흉터를 만든 다음 그것을 토대로 인물상을 만들었다. 가면은 종이 소재로 기본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점토를 더해 빚어냈다. 흉상은 스티로폼으로 제작한 기본 틀을 조각하고, 점토를 이용해 섬세한 표현을 더했다.

 

극 중 등장하는 프레데릭의 흉상과 그가 착용하는 가면은 프레데릭 역을 맡은 네 배우의 얼굴을 본떠 만들었다. 배우들의 얼굴을 3D 스캔 기술을 통해 스캔하고, 3D 프린터로 얼굴 형상을 출력했다. 그 후 석고 작업, 조각 작업을 거치며 흉상과 가면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프레데릭이 착용하는 가면은 마스크에 안경이 부착된 형태다. 실제 초상가면 스튜디오의 가면을 구현한 것이다. 대신 배우들이 공연 중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여러 수정 과정을 거쳤다. 김숙희 분장 디자이너는 “마스크에 부착된 안경은 무게 중심을 잡아 고정판을 달았다. 안경다리 부분에는 얇은 알루미늄판을 덧대 배우들이 연기, 노래할 때 안경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게 작업했다. 마스크의 무게는 15g~20g 정도로, 최대한 가볍게 제작했다. 마스크 소재는 ABS 플라스틱이다. 얼굴 모형 몰드 위에 마스크를 올린 후 조금씩 열을 가해 얼굴에 맞게 성형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세밀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프레데릭의 얼굴 흉터는 라텍스, 프로세이드 소재를 사용해 표현했다. 김숙희 분장 디자이너는 “라텍스, 프로세이드는 흉터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고, 특히 가볍고 얇게 질감을 표현할 수 있어 편리하다”며 “흉터가 공연 중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얇게 만들어야 했다. 조명 아래서 켈로이드가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조금 더 붉은 색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업을 하며, 당시 부상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실제 초상가면 스튜디오의 노력이 정말 섬세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의 노력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오는 11월 9일까지 et theatre1(이티 씨어터 원)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르 마스크> 예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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