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칼럼] <위키드> 글린다, 변화와 성장의 이름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Jeff Busby 2025-09-26 334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금발입니다.” 뮤지컬 <위키드>의 엘파바는 글린다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하지만 관객은 한 문장만으로도 단번에 글린다의 캐릭터를 이해한다. 대중문화가 오래도록 축적해온 ‘금발’의 편견 덕분이다. 내면보다 외양의 치장에 몰두하고, 철없고 미성숙하며, 모두의 시선을 즐기는 존재.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타인을 평가하고, 언제나 환호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 글린다는 ‘금발의 퀸 비(Queen Bee)’라는 전형적 인물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그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정서는 우월감이다. 글린다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언제나 위계를 나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고쳐야 할 대상’이 된다. 글린다는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불어넣는 쪽에 가깝다. 그의 행동에 특별한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가 오래도록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맞춰진,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특권이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문제는 글린다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 그 다름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데 있다. 그는 처음 본 엘파바의 초록 피부를 ‘문제’로 지칭하며 동정한다. 자신의 선의를 강조하고, 소외의 분위기를 강화하면서. 악의 없는 무례와 의도 없는 차별, 시혜적 태도는 그 자체로 상처가 된다. 이러한 태도는 교사에게도 반복된다. 글린다는 ‘갈린다’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딜라몬드 교수를 타박한다. 글린다는 상대의 신체적 한계를 무시하고, 이를 농담으로 소비하는 상황에도 침묵한다. 침묵은 동의가 되어 동물을 배제하려는 오즈 사회의 분위기를 더욱 공고히 한다.

 

 

그러나 글린다의 세계는 엘파바로 인해 서서히 부서진다. 글린다가 엘파바를 대하는 태도는 배제에서 동정으로, 동정에서 의문으로, 의문에서 존중으로 변한다. 글린다에게 엘파바는 더 이상 고쳐줘야 할 대상이 아닌, 낯설지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은 엘파바가 억압받는 동물을 구하기 위해 마법사와 맞설 때다. 그는 강력한 힘을 가진 다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옳지 않은 일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설령 고립된다 하더라도 옳다고 믿는 길을 선택한다. 그 순간 글린다는 처음으로 자신이 틀렸음을 알아차린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며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 기꺼이 다름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이자 용기라는 것을.

 

‘Defying Gravity’는 글린다 역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정립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엘파바와의 이별 이후 글린다는 ‘착한 마녀’라는 칭호와 모두의 환호를 받는다. 그런 글린다의 모습은 기존 체제에 순응한 것으로 보인다. ‘나쁜 마녀’ 엘파바를 비난하기 위한 선전 도구라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그러나 글린다는 더 이상 맹목적으로 권위에 동조하지 않고, 모리블 학장과 마법사의 폭압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대중의 지지를 이끄는 장점을 무기 삼아, 흩어진 오즈 사회를 통합하고 책임 있는 리더로 성장한다.

 

글린다의 성장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세계의 붕괴와 함께, 타인의 신념과 감정을 존중하는 윤리적 성숙으로 이어진다. 특히 1막에서 보여준 글린다의 태도가 무지와 무신경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모른다는 사실이 잘못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하고, 무지를 방치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두려워도 자신을 믿고 내일로 나아가는 엘파바가 지도라면, 글린다는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아주 투명한 거울이다. 거울 속의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다름을 무신경하게 틀림으로 몰고 있는가. 모른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비난하고 있는가. 잠시 멈춰서 거울을 닦아보자. 글린다처럼.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믿는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