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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EW FACE]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린왕자> 정지우 [No.223]

글 |이솔희 사진 |맹민화 2023-04-17 6,214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린왕자> 정지우 

 

<어린왕자> 속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정지우에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끝없이 반복하는 ‘연습’이다. “무대는 정말 솔직한 공간이에요. 연습이 부족하면 바로 들통나죠. 연습을 많이 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 가장 소중한 건 연습이에요.” 데뷔 3년 차, 이제야 배우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다는 정지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며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확장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연 보는 것을 좋아했던 정지우에게 공연 관람은 단지 ‘즐거운 취미’였다. 하지만 10년 전,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본 순간 그에게 공연은 ‘누군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물해 주는 존재’로 바뀌었다. 정지우가 배우를 꿈꾸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무작정 연기 공부를 시작한 후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뮤지컬학과에 진학했지만, 입학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휴학 신청서를 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무대의 즐거움을 하루빨리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후 어떤 작품이든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과장이 아니라, 오디션 공고가 뜨는 모든 작품에 지원했어요. 근데 오디션을 보는 족족 떨어졌죠. 수없이 많은 오디션에 탈락했는데도 탈락의 아픔에는 도저히 내성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경험이 부족하니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왜 떨어졌지? 나 진짜 잘할 수 있는데!’라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오디션에 떨어질 땐 정말 여러 감정이 오갔어요. 그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식은 적은 없어요. 그때 저장해 둔 불합격 문자를 지금도 종종 봐요. 그때의 간절함을 떠올리려고요.”

 

연일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그에게 2020년 연극 <렛미인>이라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무산돼 배우 데뷔의 꿈은 다시 멀어졌다. 이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이틀간 공연된 <산홍>을 통해 잠시 무대의 즐거움을 맛보았지만, 오디션 탈락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군 입대 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지원한 <붉은 정원>의 오디션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 소식을 받아 들었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구름에 올라탄 기분이었어요. 제가 무대에 선다는 사실이 실감 나질 않았어요. 첫 대본 리딩을 하는 날까지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간절히 바란 무대였던 만큼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첫 무대를 마치고 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뭐였는 줄 아세요? ‘망했다.’ (웃음) 제가 준비한 만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커튼콜 때 관객분들이 제게 박수를 쳐주시는 거예요. 얼떨떨한 기분이었죠. 관객분들의 박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무조건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1년 <붉은 정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정지우는 그동안 쌓인 무대 갈증을 해소하기라도 하듯 쉼 없이 활동을 이어갔고, <박열> <은하철도의 밤> <랭보> 등의 작품으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정지우가 이번에 만난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옮긴 <어린왕자>다. 그는 신비로운 소년 어린왕자를 연기한다. 정지우의 앳된 이미지와 어린왕자의 순수함이 맞닿아 있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점이 정지우를 고민에 빠지게 했단다. “많은 분이 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어린왕자와 달리 전 이미 어른이 되었잖아요. 어린왕자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작위적이지 않게 표현하려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원작 소설에 묘사된 어린왕자의 모습을 최대한 잘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왕자는 보시는 분들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원작 소설에서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났을 때 ‘길을 잃은 것 같지도, 피곤해하는 것 같지도, 목이 마른 것 같지도 않았다’라고 묘사하는 문장에 눈길이 갔거든요. 현실적으로 사막에 덩그러니 서 있는 어린아이가 멀쩡해 보일 수는 없으니까요. 어린왕자의 정체에 대한 제 생각을 잘 설명해 주는 문장이어서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항상 그 말을 되뇌어요.”

 

<어린왕자>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마음속에 어린왕자를 품고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나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는 정지우에게 “어른이 된 것을 체감하느냐”라고 묻자 그는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작품에 참여하면서 저를 둘러싼 울타리가 제법 넓어졌거든요. 물론 아직 한참 더 넓어져야 하지만요. (웃음) <붉은 정원> 공연 당시 제가 가진 거라고는 패기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시도할 수 있었어요. 그게 성장의 발판이 되어줬고요. 그 후로도 매 작품 최대한 많이 배우고, 배운 걸 바탕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해요. 그런 노력의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하나씩 쌓여서 제 울타리를 넓혀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서 꾸준히 제 울타리를 넓혀가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3호 2023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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