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여성의 날 특집 인터뷰
2026년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는 네 편의 작품. 그리고 그 무대를 채우는 열한 명의 배우.

뮤지컬 <인화>는 죽은 것에 집착하는 학생 인화와 죽은 듯 살아가는 고등학교 교사 소현의 이야기다. 소현은 과학실에서 죽은 개구리를 촬영하던 인화를 우연히 발견한 후 그를 집요하게 관찰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점차 잊고 있던 자신 내면의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2025년 공연 제작사 네버엔딩플레이의 ‘인디 뮤지컬 시리즈’ 일환으로 60분 분량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였던 <인화>는 이번 시즌 85분 분량의 정식 공연으로 다시 돌아온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인화>의 소현을 마주하게 된 임찬민은 공연을 준비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시 한번 <인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첫 번째 기억을 떠올려 볼까요.
저는 오래 전 리딩 공연 때 처음으로 이 작품을 접했는데, 원래는 남녀 2인극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과 작품의 결이 조금은 다르긴 하지만, 리딩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같은 분위기를 지닌 작품이었다고 기억하고요. 그 후 여성 2인극으로 각색된 버전의 대본을 받아보았는데, 대본이 제 상상력을 정말 많이 자극하더라고요. 무대화된 모습에 대한 궁금증도 불러일으켰고요. 대본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이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어요.
트라이아웃 공연 당시, 소현은 어딘가 미묘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현을 잘 표현하기 위해 가장 많이 한 고민은 무엇인가요.
제가 어릴 때 이토 준지 만화를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중학교 때 책상 서랍 밑에 만화책을 숨겨놓고 몰래 볼 정도로요. 그런데 그걸 잊고 있었어요. 성인이 돼서 돌아보니 저는 그때의 저를 많이 잃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도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또 다른 기억의 한 조각을 꺼내 보자면, 제가 어린 시절에 죽은 비둘기를 한참 바라보다가 떨어진 깃털을 하나 들고 집에 왔던 기억이 있어요. 비둘기 깃털이 사실 가까이에서 보면 색깔이 되게 오묘하거든요. 엄마가 피 묻은 깃털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바로 빼앗았었는데, 그 기억을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인화>를 하면서 처음 떠올랐죠. 이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의 나와 다시 조우하는 느낌이 들어요.
어른이라는 옷을 입게 되면 자연스럽게 소실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금기된 것에 대한 호기심 같은. <인화>를 통해 그런 감정들을 다시 만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는지, 현재의 나는 어떤지. 제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을 하면서 소현이를 만나고 있어요. 덧붙여, 연출님이 담아내고 싶은 소현이는 누구인지, 함께하는 동료 배우들은 소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네 명의 인화에게 어떤 방식으로 매료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고요.
‘인디 뮤지컬 시리즈’ 공연 당시와 비교해 보면, 러닝타임과 무대 형태에 변화가 있습니다. 관객이 이번 <인화> 정식 초연의 어떤 부분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이번 시즌에는 소현이의 심리 상태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예정이에요. 인화가 소현이의 앞에 왜 등장했는지, 인화가 왜 죽은 것에 매료되는지 등 조금 더 촘촘하게 고민하고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넘버도 추가됐어요. 또, 소현이가 윤리 교사라는 직책을 얻게 되어서, 윤리와 예술의 병행에 관한 토론을 좀 더 깊게 할 수 있도록 이야기 구조를 한층 탄탄하게 짰어요. 윤리와 예술에 대해 각자 가지고 있는 시선이 다 다를 텐데, 관객분들도 <인화>를 통해서 자신의 예술관과 윤리관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무대는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는 카메라 렌즈를 닮은 원형 무대인데, 소현이는…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웃음)

<인화>가 2026년 지금 여기의 관객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화>는 어떻게 보면 불쾌하고 찝찝한 작품이에요. 하지만 불편한 소재라고 명명되는 것들이 무대 위에서 구현되어야 현실에서 그게 불편한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용기 있게 직면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내 안에 잠재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요. 예술에는 다양한 목적이 있지만, 정해진 선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해주는 게 예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인화>는 여성에게도 불편한 본능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여성도 탐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 윤리와 도덕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품이고, 그게 요즘과 같은 시대에 필요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찬민 배우를 생각하면 따뜻하고 강단 있는 캐릭터가 떠오르는데, <인화>의 소현은 내면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새로워요. 어떤 마음으로 소현을 마주하고 있나요.
그냥 소현이 저인 것 같아요. 그게 우리인 것 같고요. 여성은 항상 온화하고 따뜻한 존재로만 기록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화도 낼 줄 알고, 두려움과 욕망을 표출할 줄 아는 존재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딸에게 ‘여자는 이래야지’ 이런 소리를 안 듣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엄마인 제가 먼저 어떤 작품을 만날 때, 작품이 지닌 주제 의식이나 캐릭터의 특성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임할 때 ‘나중에 우리 딸과 이 작품을 통해 철학적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되는 것 같고요. 나중에 아이가 작품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제가 잘 설명할 수 있어야 저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소현이의 정서적인 부분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신중하게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소현이가 가진 색은 푸른색에 가깝지만 제 마음가짐은 여느 작품과 다름없이 열정 가득한 붉은 색이거든요. 제가 가지고 있는 붉은 기운이 소현이에게 버겁지 않도록 더 많이 배려하면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경험은 개인적으로도, 배우로서도 큰 변화를 안겨줬겠죠?
우선 딸에게 감정적인 측면에서 좋은 서포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제가 어렸을 때 이토 준지 만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제 딸도 어떤 것에 흥미를 갖게 되는 날이 올 테니, 그때가 되면 ‘엄마도 그랬어,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웃음) 그 친구가 그 시기에 느끼는 감정의 귀함을 알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죠.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 말고 없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배우 동생들이 ‘언니 덕분에 임신, 출산, 육아가 조금은 덜 무서워졌어요’라고 말해주는 게 되게 고맙더라고요. 사실 저도 차지연 선배님이 임신 7개월 때까지 <위키드> 무대에 섰다는 내용의 기사를 저의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매일 아침 읽었어요. 제게는 동아줄 같은 이야기였거든요. 여담이지만, 언젠간 차지연 선배님을 만날 날이 온다면, 제가 정말 많이 기댔었다고, 정말 많이 감사했었다고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차지연 선배님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듯이, 제 주변 동료들이 저에게서 용기를 얻는다면 큰 영광일 것 같아요.
저는 제 동료들이 활동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제가 출산 후 무대에 빠르게 복귀한 것도, 저희 딸에게 엄마가 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또, 저희 엄마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일을 할 때 엄마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셨거든요. 무대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힘들면 말해달라고, 내 아기니까 내가 책임지고 키우겠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딱 하나 물어보시더라고요. ‘너 일할 때 행복하니’라고요.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해’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넌 그거 해. 내가 어떻게든 할게’라고 하셨어요. 그 빚진 마음에 감사하게 보답하고 싶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요즘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고민이 있다면요.
우선,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온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 정말 여러 가지 고민이 있지만, 오늘의 내가 이 무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오늘의 이 무대를 얼마만큼 더 솔직한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그게 지금의 저에게 가장 큰 고민인 것 같아요. 인물을 대상화하고 싶지 않고, 내가 하는 작품을 보고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응원하는 제 진심을 어떻게 해야 캐릭터에 잘 녹여낼 수 있을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요. 결국 다 일 얘기네요. 여전히.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