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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①] <렘피카> 김선영, 나를 닮은 너 | 예스24

글 |이솔희 사진 |표기식 2026-03-05 143

2026 여성의 날 특집 인터뷰

2026년 처음으로 관객을 만나는 네 편의 작품. 그리고 그 무대를 채우는 열한 명의 배우.


 

 

뮤지컬 <렘피카>는 20세기 초 유럽을 풍미한 화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인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4년 뮤지컬 <하데스타운> 이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던 배우 김선영이 타마라 드 렘피카 역을 맡아 무대로 돌아온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대를 지켜온 그는 예술과 사랑으로 삶을 채운 인물에게서 언뜻 비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2024년 <하데스타운> 이후 1년간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2025년에는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하데스타운>을 끝낸 후, 저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저를 돌아보고,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죠. 그래서 자체적으로 2025년을 안식년으로 정했는데 1년이 금방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안식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민망할 만큼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어요. (웃음)

 

지난 연말에는 팔이 골절되는 사고가 있었다고요.

다사다난한 한 해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었죠. 여러모로 혹독한 겨울이었어요. (웃음) 팔이 부러지는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거든요. 단순히 일상생활 중에 넘어졌을 뿐인데, 운이 안 좋았어요. 그때가 <렘피카> 연습 시작을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던 터라 불쑥 겁이 나더라고요. '연습을 해낼 수 있을까? 공연에 피해를 주면 안 되는데.' 싶어서요. 오랜 생각 끝에, 약간의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해낼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또, 타마라가 무대 위에서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인물이라서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이 고난을 타마라의 마음에 연결해야겠다!' 이런 '아티스트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웃음) 수술, 재활을 거친 후 연습을 시작했고, 다행히 큰 무리 없이 준비 중이에요. 덧붙여, 제가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기간 동안 가족들이 함께 고생해 줬어요. 작품 연습 과정에서 <렘피카>를 함께하는 남편(김우형 배우)이 많은 도움을 줬고, 아이도 혼자서 많은 것을 해내 주었죠.

 

 

그런 고난의 시간을 거쳐 곧 있으면 약 1년 6개월 만에 다시 무대에 섭니다. 복귀작으로 <렘피카>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20세기 초에 여성 화가로 살았던 타마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어요. 남성 화가가 주류를 이뤘고, 여성 화가는 이름을 알리기 어려운 시대였죠. 그 시대에 명성을 얻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저희 작품은 타마라를 미화해서 그리지 않아요. 엄청난 위인도 아니고,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있었던 인물이 아닌데, 이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우리는 이 사람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런 궁금증이 들어서 작품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인물에 관해 공부를 하려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타마라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쯤, 당시 주류를 이루던 인상파 화가들에게 협업 제안을 많이 받았대요. 근데 그걸 거절했다고 해요. 그 지점에서 뭔가가 제 마음속에 '탁' 하고 걸렸어요. 유명한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건 자기 이름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텐데,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갔다는, 그 당당함과 용기가 흥미로웠어요. 음... 저만 느끼는 거일 수 있겠지만, 저도 뮤지컬을 하면서 늘 타마라와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뭘까, 나만이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늘 생각하면서 작품에 임했죠. 그런 면에서 타마라와 맞닿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타마라는 김선영 배우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마라가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을 이어간 것처럼, 김선영 배우 역시 1999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후 30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왔죠. 타마라의 삶을 마주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타마라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림을 선택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유명해지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죠. 평범함을 선택했는데, 특별해진 거예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저 역시 대의를 품고, 혹은 대단한 예술을 하려고(웃음)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거든요. 내가 잘할 수 있으면서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을 찾다 보니 뮤지컬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거죠. 시작은 그랬을지언정, 사람이 오직 생존만을 위해 일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경계선 위에서 방황, 고민, 그리고 선택을 거듭하는 타마라의 모습에서도 제 모습이 보였어요.

 

 

그렇게 자신과 맞닿아 있는 인물을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렘피카>는 타마라가 얼마나 투쟁하면서 살았는지, 그 투쟁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래서 결국 무엇이 남았는지까지, 단순히 유명한 화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게 아니라 그저 한 인간의 모습으로 타마라를 표현하는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타마라가 보여주는 가치가 평범함에서 특별함으로, 특별함에서 야망과 욕망으로 넘어가는데, 그 야망과 욕망이 그의 삶을 뒤흔드는 여정이 <렘피카> 속에서 그려지죠. 공연의 커튼콜에서 그 여정은 마침표를 찍고, 타마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난 뭘 위해서 살았을까'라고요. 그 질문을 던지기까지, 자기 삶에 끝없이 몰두했던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공연 중에 차근차근 누적시키면서 아주 치밀하게, 그리고 아주 뜨겁게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예술가로서의 이상은 물론이고 사랑과 일상도 잃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 결국에는 무너지지만 그의 그림은 영원히 남는 그런 모순적인 삶을 잘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실 타마라는 한 마디로 규정해서 표현하기 힘든 인물이에요. 보통의 뮤지컬에서 표현하는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만 있는 것도 아니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복합적인 모습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 무대 있는 순간에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연기를 하고 싶고, 몰입된 상태로 임하고 싶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냥 인간 김선영으로 존재하고 싶거든요. 무대 위의 인물에게 들어가지 못하면 너무 괴롭고, 인물에게 들어가 있는 순간 정말 큰 만족감을 느끼지만, 인물에게 들어가 있는 채로 일상을 살 수는 없어요. 무대에 있는 김선영도 놓을 수 없고, 일상을 사는 김선영도 놓을 수 없죠. 저도 여전히 이러한 마음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타마라는 더더욱 그랬을 거예요.

 

 

<렘피카>가 지금 여기 한국의 관객을 만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내 초연을 앞둔 이 작품에, 관객은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우선, 타마라라는 인물의 복합성에서 오는 '예측할 수 없음'이 관객분들에게 재미있는 지점으로 다가갈 거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이 저래서 유명해졌구나, 그래서 멋진 화가가 됐구나' 이렇게 예상되는 길로 이야기가 나아가는 게 아니라서, 관객분들에게 '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거지? 근데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라는 의문 혹은 공감을 유발할 수 있죠.

 

작품의 구조적으로는, 음악이 정말 멋있어요. 앞서 말한 타마라의 캐릭터를 음악이 굉장히 잘 표현해 줘요. 고전적인 듯하지만 동시에 동시대의 음악 같은 느낌을 주고요. 안무도 음악과 같은 느낌이에요. 8~90년대 우리나라의 무용수들이 추는 춤을 연상시키면서도 동시에 세련되고 낯설어요. 무대는 심플하지만 조명을 통해 임팩트를 극대화하고요. 모든 요소가 어우러지면서 관객분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뻔하지 않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주 낯선, 클래식한데 새로운 느낌. 그런 느낌을 <하데스타운> 때도 받았던 걸 보면, 레이첼 채브킨 연출의 특징인가 싶기도 해요.

 

무엇보다... 관객분들이 이 낯선 뮤지컬을 한번 경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타마라, 그리고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을 통해 인생에서의 선택과 책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니까요. 우리는 인간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늘 갈망하잖아요.

 

이번 공연은 <렘피카>의 한국 초연이자 아시아 초연이에요.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하데스타운>, <디어 에반 핸슨> 등 한국에서 초연되는 브로드웨이 신작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는데, 이는 배우에게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일이겠죠?

이미 오랫동안 공연되고 있는 명작도 좋지만, 현시대의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훌륭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굉장히 좋은 기회죠. 그런 기회가 제게 주어진다는 게 감사하고요. 신작을 만나는 일은, 기대감을 주는 동시에 여러 고민을 안겨주는 일이에요. 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없는 셈이니 내가 어디까지 가야 할지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해야 하죠. 하지만 그런 고민 끝에 저를 통해서 한 인물이 처음으로 만들어질 때 느끼는 뿌듯함과 즐거움이 커요. 그런 의미에서 <렘피카> 한국 프로덕션을 통해 타마라 드 렘피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해요.

 

 

이번 작품을 포함하여, 언제나 각기 다른 매력의 작품과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후배 배우들에게도 귀감이 됩니다. <렘피카>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마주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다양한 모습을 많은 분이 꾸준히 지켜봐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건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하지만, 타마라처럼 답변해 보자면,(웃음) 제가 한 선택들이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부러 한 것은 아니에요. 내가 원했기에 그 작품을 선택했고, 내가 잘 해내고 싶었기에 최선을 다한 거죠. 그런데 그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을 거고요. 다만, 나의 선택들, 내가 보여준 결과물들이 누군가의 인생과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부터 종종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선택하지는 않지만, 나의 그런 선택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그럼 전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게 제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라고 생각해요.

 

<렘피카>를 통해 여성 예술가의 삶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동시대의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이 혐오의 시대 속에서 누군가와 경쟁하고 싸우는 이야기보다는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야기의 힘이 세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이 주체적이고 단단하게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우리가 여유롭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면서 주체적인 자세로 서 있는다면 누구든 품을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라고 믿어요. 더 나아가서, 이제는 우리가 여성 캐릭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결국 전 무대 위에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바라는데, 여성이 전할 수 있는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분들이 더 많아진다면, 무대 위에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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