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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버스커 오페라> [No.154]

글 |조연경 런던통신원 사진제공 |Simon Annand 2016-07-18 4,054

버스커 맥히스의 귀환, <버스커 오페라>



영국 극작가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는 1728년에 런던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그 형식을 풍자하며 등장한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사용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작품엔 기존 오페라들의 단골 등장인물인 왕과 귀족이 아니라 도둑들의 왕 맥히스를 중심으로 장물 매매업자 피첨, 그의 딸 폴리, 간수 로킷과 그의 딸 루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를 보여주며 신랄하게 사회를 풍자한 이 작품은 그 당시 단연 돋보였을 것이다. 그 명맥이 이어져 1928년에는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서푼짜리 오페라>를 선보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작품이 <거지 오페라>를 현대에 되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버스커 오페라>가 2012년, 올림픽이 한창이던 런던을 배경으로 현대 사회 풍자에 나섰다.



런던 올림픽 삐딱하게 보기


런던 파크시어터에서 공연된 <버스커 오페라>는 분명 2016년에 창작된 작품이지만, 현대판 <거지 오페라>를 표방하면서도 굳이 4년 전인 2012년 런던을 공연의 구체적인 배경으로 삼았다. 이야기는 런던 올림픽 개막 직전부터 폐막할 때까지 진행된다. 이 시기를 통해 <버스커 오페라>는 <거지 오페라>가 초연된 18세기부터 현재인 2016년까지 아우르며 사회 부조리를 응축해서 보여주려고 한다.


상위 1%가 부를 통제하고 나머지 99%는 열심히 노력해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부를 나눠 가질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이것이 버스커 맥히스와 그가 이끄는 ‘99퍼센트의 사람들’이 뒤엎으려는 사회다. 그런 만큼 이 뮤지컬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맥히스는 버스킹을 하며 관객들에게 체제 비판적인 목소리를 전하고, 런던의 전(前) 시장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극 중 런던 시장 로킷은 자본주의의 선봉에 서서 맥히스를 일개 길거리 뮤지션으로 치부하고 올림픽에 집중한다. 로킷이 언론 재벌인 피첨과 함께 맥히스를 막을 음모를 꾸미는 모습을 보면 둘은 전형적인 악역이다. 반면 ‘안티히어로’인 맥히스는 올림픽으로 하나 되어 고양된 시민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노숙자들을 전부 브라이튼으로 보내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런던의 집값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냐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맥히스는 단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할 때부터 시작된 자유경제주의와 산업혁명 이후 공고해 온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비난한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은 죄인으로 취급되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날 운명이고,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망쳤다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준다. 영국은 전반적으로 정치 표현이 자유롭고, 노동자 계층의 자부심이 대단해 때로는 정부 비판이 멋으로 여겨질 정도로 흔한 만큼 극 중에서 맥히스가 체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관객들도 즐겁게 호응했다. 하지만 <버스커 오페라>는 말뿐인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점점 혼돈으로 치닫는다. <거지 오페라>에서 일부 차용해 온 주인공들은 당시 설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코믹하게 극을 이끌어 나갔다. 맥히스는 거리의 영웅이지만 동시에 두 여자와 엮인 난봉꾼이기도 하다. 맥히스는 게릴라 전법처럼 불시에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그 옆에는 맥히스에게 푹 빠져 있는 폴리도 함께하고 있다. 언론 재벌 피첨의 딸이기도 한 폴리는 아버지가 반대할 것을 알면서도 맥히스와 결혼식을 올린다.


런던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기세등등한 런던 시장 로킷과 피첨은 눈엣가시 같은 맥히스를 처리하기 위해 그를 불시에 체포해 가둔다. 이때 로킷의 딸이자 맥히스의 아이를 임신한 루시가 찾아와 실랑이 끝에 맥히스를 풀어준다. 마침 맥히스를 면회하러 왔던 폴리가 둘을 발견하고, 루시와 폴리가 싸우는 사이 맥히스는 도망친다. 도망친 맥히스는 올림픽 개막일에 맞춰 ‘99퍼센터즈’와 함께 퍼포먼스를 꾸민다. 마침 길에서 우연히 만난 노숙자에게 ‘진짜처럼 보이도록’ 술병을 들려주고 퍼포먼스를 하는데,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인 노숙자가 퍼포먼스 말미에 실수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후 ‘99퍼센터즈’는 와해되고, 맥히스는 노숙자의 환영에 시달리며 폐인이 되어간다. 이때를 틈타 피첨은 아들처럼 키운 직원 필치를 설득해 맥히스를 무너뜨릴 계략을 짜고, 폴리를 짝사랑해 온 필치는 이에 동참한다.

필치는 맥히스로 분장하고 거리에서 맥히스가 그동안 주장하던 것과 반대되는, 친정부적인 캠페인을 펼치다가 폴리를 만난다. 폴리에게 그동안 간직해 온 사랑을 고백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필치는 상심하고, 이후 진짜 맥히스처럼 열심히 노래한다. 열광적인 관중의 반응에 점차 고무된 필치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가 추락하고 만다. 피첨은 맥히스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폴리와 루시는 사라진 맥히스를 찾다가 만나게 되는데, 루시가 폴리를 독살하려고 가져온 독약을 실수로 같이 먹고 둘 다 죽어버린다. 모두 죽어가는 와중에도 런던 올림픽은 여전히 성대하게 진행된다.


피첨은 정보통을 통해 숨어있는 맥히스를 찾아내 새로운 제안을 한다. 올림픽 폐막식이 진행될 때, 맥히스도 결국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방송을 하고, 그 방송의 시청률이 폐막식보다 높게 나오지 않으면 자살하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지 않는다면 맥히스가 노숙자를 죽도록 방치한 영상을 공개해 버리겠다는 협박도 덧붙인다. 결국 피첨에게 등떠밀려 방송을 하게 된 맥히스는 예술가도 자본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 후에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피첨이 맥히스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상속한다는 서류를 건네주고 죽음을 맞는다. 피첨은 자신이 곧 병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후계를 찾는 중이었는데, 낭만주의에 젖어 자신의 재산을 그냥 자선단체에 줘버릴 딸이나 줏대 없이 착해서 연약한 필치보다 강하고 한 방이 있는 맥히스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맥히스는 시스템을 비판하는 아웃사이더로서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을 순 없다고 버티지만,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홀로 살아남은 멜키어가 그랬듯, 유령들의 목소리를 듣고 상속을 받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맥히스는 자신이 하던 말뿐인 비판도 결국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앞으로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관객들에게도 이를 종용한다.



정제된 언어의 미학


<버스커 오페라>는 거의 모든 대사가 각운(Rhyme)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어구마다 딱딱 들어맞는 각운 덕에 <버스커 오페라>의 대사 전달은 박자가 빠를 땐 리듬이 살아있는 힙합 같고, 느릴 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같다. <버스커 오페라>는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운율을 맞춘 대사들이 극 전체를 꽉 잡고 있기 때문에, 길거리 버스커들이 할 법한 합주에 맞춰 랩을 하는 것처럼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운율에 실린 대사들과 멜로디가 있는 넘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오페라 같은 느낌을 낸다.


최근 리바이벌된 버전의 뮤지컬 <캣츠>에서 기존에는 록 스타 같던 고양이 ‘럼 텀 터거’가 힙합 고양이로 변신한 것처럼 근래에는 힙합 뮤지컬이 자주 창작되고 있고, 힙합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장르가 됐다. 18세기의 <거지 오페라>가 당대 유행한 노래를 사용했던 것처럼, <버스커 오페라>는 21세기의 대세인 힙합을 택해 메시지를 전한다. 철저하게 각운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는 독특한 단어들과 어떤 상황에서도 각운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배우들의 모습은 이 공연의 대표적인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이런 표현 방식을 택한 만큼, 이 공연은 진짜 버스킹이나 힙합처럼 관객들과 충분히 소통한다. 공연을 시작할 때부터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2012년으로 인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 중간에도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며 관객들이 공연을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배우들이 신세한탄을 하듯 늘어놓는 독백부터, 자신은 원래 각운을 잘 못 맞춘다는 고백까지 듣고 있자면,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전체가 버스킹처럼 보이기도 한다.


<버스커 오페라>는 수시로 관객과 소통하며 공연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앞으로 함께 변화를 이끌어가자는 메시지까지 덧붙이면서 ‘제4의 벽’을 깨고 관객들을 설득하고 이끈다. 배우들은 제3자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해설자 같은 역할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오페라처럼 사중창으로 표현되는 장면들도 있다. 로킷과 피첨이 전화 통화를 하는 도중에 그들의 딸인 루시와 폴리가 각각 전화를 걸고, 각자 통화를 하다가 통화가 혼선이 되는 등, 현대 사회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장면이면서도 실제로는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통해 네 사람의 입장을 담은 사중창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공연이 현대극이기 때문에 이런 장면을 연출했다는 것까지 배우의 대사를 통해 전한다.


정작 이 공연에서는 주인공들이 서로 대화하는, 지극히 평범한 장면이 오히려 드물었다. 서로 대화하다가도 이내 독백이나 방백으로 전환되어 관객을 대화 안으로 끌어들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마당극에서 관객들을 끌어들여 묻고 답하던 형식을 보는 듯했고, 그런 연출이 <버스커 오페라>를 현실에 닿아 있는 생동감 있는 공연으로 만들어줬다.



권선징악이 사라진 사회


다른 공연들이 으레 그렇듯 <버스커 오페라> 역시 초반의 신선함과 독특함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아쉽다. 아무리 시장과 언론이 핍박한다 해도 거리의 영웅으로 군림하던 맥히스는 노숙자를 사망하게 한 사건을 숨기고 도망가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맥히스가 무너지면서 그에게 의존하던 극과 주인공들도 동력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행한 일들을 책임지지 않고 말만 늘어놓던 맥히스는 피첨에게 떠밀려 죽음 앞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말들이 허울뿐인 비난이었고, 그 또한 체제의 일부일 뿐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체제를 비난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고, 비난하면 할수록 체제가 더 공고해진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맥히스는 피첨의 재산을 받기로 결심한다.


<버스커 오페라>는 18세기의 <거지 오페라>를 현대로 끌고 와서, 그때와 다를 것 없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다가 약간의 희망만을 보여준 채 끝을 낸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공연은 극 중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뒤에 천사 날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혀 재미있게 표현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이해하기 쉬운 우화와 비유로 즐겁게 설명한다. 날카로운 현실 감각으로 사회 풍자와 현실 순응 사이를 오가는 이 공연은 거리의 버스커 맥히스를 사회 비판인 영웅인 동시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모르는 패배자 지식인으로 그렸다.


작년에 <서니 애프터눈>의 데이브 데이비스 역으로 자유분방한 연기를 보여준 조지 맥과이어는 <버스커 오페라>의 맥히스로 대중이 영웅이라고 추앙하는 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버스커 오페라>의 장점인 리드미컬한 가사와 멜로디는 모두 더갈 어빙의 작품이다. 버스커들의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다양한 악기와 소품은 히피적인 느낌으로 반사회적인 퍼포머들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일부 역할은 밴드의 악사들이 병행하여 무대를 더 풍성하게 꾸며주었다. <버스커 오페라>는 <거지 오페라>의 핵심만 뽑아내어 영국식 말장난과 사회 풍자를 얹었고, 다분히 영국적인 유머 감각과 독특한 언어 표현으로 장르를 구분하기 힘든 독보적인 공연이 되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버스커들처럼 이 공연도 자유분방함을 뽐내고 예정대로 폐막했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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