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컬처] [NOW IN NEWYORK]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NO.170]

글 |배경희 사진 |Manuel Harlan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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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들어낸 마법

Harry Potter And The Cursed Child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


지난 1997년 세상에 나타난 마법사 ‘해리 포터’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자. 지난해 여름 탄생한 해리 포터의 최신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가 퍼뜨린 신드롬에 대해 말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하니 말이다. 현재 런던의 팰리스 시어터에서 상연 중인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해리 포터 이야기를 무대화한 첫 번째 작품. 이 같은 중대 미션을 위해 뭉친 원작자 J.K. 롤링과 연출가 존 티파니, 극작가 잭 손이 만들어낸 ‘해리 포터 그 19년 후의 이야기’는 개막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티켓을 구하기 힘들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금은 평범해진 마법사들의 이야기


‘해리 포터’의 성장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구세대, 그리고 이제 막 그와의 모험을 마친 신세대라면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어떻게 끝을 맺는지 기억할 것이다. “지난 19년 동안 그 흉터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사했다.” 작가 J.K. 롤링은 에필로그에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를 물리친 위대한 마법 소년 해리가 그 이후 어떻게 평범한 삶에 안착하는지 조그만 힌트를 주는 것으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데,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바로 그 19년이 흐른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는 마법 학교 호그와트로 향하는 출발지인 킹스크로스 기차역. 입학을 앞둔 한 남자아이가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로 힘차게 달려가는데, 열차 탑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해리의 둘째 아들 알버스다. 세상을 구한 영웅 해리 포터가 이젠 세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는 서른일곱 살의 ‘어른’이 된 것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서툰 아빠와 커다란 아버지의 존재가 버겁기만 한 어린 아들.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의 사건은 바로 이 갈등에서 비롯된다. 유명한 마법사의 실망스러운 아들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알버스가 아빠 해리의 과거 실수를 바로잡아 자기 능력을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니 말이다. 알버스는 또 다른 외로운 소년 스코피어스와 함께 불법 시간 여행 장치를 훔쳐 모험을 떠나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와 볼드모트가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가 다시 도래하게 한다. 결론은 물론 해피엔딩. 해리가 부인 지니와 그의 오랜 친구들 헤르미온느와 론, 그리고 드레이코와 함께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 나서면서 결국엔 모든 것이 원래의 자기 자리를 찾는 것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총 다섯 시간이 넘는 대작이지만 긴 시간 동안 지루할 틈 없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하나 불만스러운 게 있다면, 바로 해리가 우리가 아는 것과 조금 달라졌다는 점이다. 가령, 오래전 해리와 얽혀 볼드모트에게 죽음을 당한 소년 케드릭의 아빠 에이머스가 마법부에서 일하는 해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그를 찾아오는 초반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두 달 넘게 해리와 접촉을 시도해 온 에이머스가 기다림에 지쳐 해리를 직접 찾아가자 그는 곤란하다는 듯 냉랭하게 구는데, 그 순간 내가 알던 해리 포터가 맞나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또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 알버스를 대화가 아닌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어른이 됐다는 점도 실망스럽다. 학교 규칙을 어겨가면서 위험한 모험을 펼쳤던 해리가 커서는 마법을 이용해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하다니. 세상에서 가장 선한 마법사 해리가 돌처럼 차가운 사람이 됐다는 사실은, 해리 포터 팬들의 마음을 그야말로 차갑게 만드는 설정 아닐까. 해리 인생의 최대 앙숙이었던 드레이코와 믿을 수 없이 다정하게 협력하는 것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해리 포터 시리즈 마지막에 드레이코가 아무리 개과천선을 했다 해도).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알버스의 모험에 기꺼이 동행해 주는 유일한 친구 스코피어스가 드레이코의 ‘착한’ 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둘을 위험에 빠뜨리는 악당 델피가 알고 보니 볼드모트의 숨겨진 딸이라는 다소 약한 상상력이다.




마법의 순간을 자아내는 연출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가 해리 포터 시리즈에 열광한 이유는 뭘까. J.K. 롤링이 만들어낸 상상력 풍부한 마법 세계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아이가 용감히 세상에 맞서는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 아닐까. 끊임없는 혼란 속에서 발버둥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마법사 해리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에도 소년 성장담이 존재한다. 해리 포터의 아들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의 아들이어야 하는 알버스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인생의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이에 맞서야 한다는 삶의 비밀을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J.K. 롤링이 그려낸 세상이 가슴 설레는 동심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면, 세 창작자가 만든 세상은 세상살이에 얼마간 지쳐버린 어른의 상상력으로 쓴 마법 세계 같았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충분히 흥미로운 공연이다. 이 작품이 지닌 진짜 마법은 이야기를 무대에 옮긴 연극 어법에 있으니 말이다. 1부와 2부, 두 편을 좋은 자리에서 볼 경우 상당한 비용(가장 비싼 티켓의 정가가 한화로 약 38만 원이다)을 지불해야 하는 공연인 만큼 객석에서 첨단 영상 기술을 맛볼 수 있는데, 사실 그보다 더 짜릿한 경험은 간단한 트릭을 활용해 마법을 펼치는 연출을 마주하는 것이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이 망토 의상을 활용해 순식간에 마법 학교 학생들이 되어 있을 때, 알버스와 스코피어스가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여행 가방 몇 개로 달리는 마법 기차를 만들어낼 때, 알버스와 스코피어스, 델피가 시간 여행 장치를 훔치기 위해 마법약 폴리주스를 마시고 각각 론과 해리, 헤르미온느로 변할 때, 그리고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어둠의 존재 디멘터가 객석 위를 날아다닐 때의 짜릿함이란. 심플한 세트를 효과적으로 빛내는 배우들의 적절한 움직임, 그리고 이를 탄탄히 뒷받침해 주는 훌륭한 음향과 조명은 마법 세계에 어울리는 연극적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낸다(연출가 존 티파니를 필두로 안무가 스티븐 호겟, 무대디자이너 크리스틴 존스, 조명디자이너 닐 오스틴, 음향디자이너 개리스 프라이 모두 전작인 연극 <렛 미 인>에서 이미 좋은 시너지를 보여준 바 있는 한 팀이라는 사실). 하지만 존 티파니 사단이 만들어낸 마법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이 훌륭한 팀의 매력적인 마법을 경험한 관객 모두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날의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이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오직 공연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공연 문법이 존재하는 한 나날이 진화하는 기술 발전 아래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영상 매체의 폭격이 쏟아진다고 해도 결코 공연의 감동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라는 것. 바로 그게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비싼 값을 치르고 시간을 들여 극장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0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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