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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디어 에반 한센> [No.160]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ew Murphy 2017-01-13 10,233

특별하면서 평범한 성장 스토리   

<디어 에반 한센>



관심을 끄는 독특한 소재


작년 12월 4일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디어 에반 한센>의 마케팅 핵심 색깔은 푸른빛이다. 포스터에 ‘디어, 에반, 한센’이라는 단어가 윗줄부터 차례로 하늘색, 남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쓰여 있는데, 배경에는 팔에 깁스를 한 남자가 하얀 바탕에 옅은 푸른빛 줄무늬가 들어간 셔츠를 입고 있다. 남자 뒤로 보이는 배경 역시 조금 칙칙한 하늘색이다. 포스터 속 얼굴 없는 남자는 주인공 에반을 연상시키지만 불특정 다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푸른색은 일반적으로 안정을 주는 색이지만, 바다의 심연이 그렇듯 색깔이 짙어질수록 개인이 지닌 두려움과 불안함, 또는 떨칠 수 없는 소외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디어 에반 한센>의 마케팅에서 선택한 푸른빛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한 느낌이다. 불안 장애에 가까운 소심한 성격의 외톨이인 에반 한센이라는 고등학생이 동급생의 죽음에 얽히게 되면서 겪게 되는 성장 스토리를 그린 <디어 에반 한센>의 감정 스펙트럼은 그만큼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디어 에반 한센>의 인기는 지난 2015년 여름 워싱턴 D.C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이 올라갔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최근 뉴욕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예 작곡, 작사가 콤비인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최근 개봉해 호평받고 있는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도 두 사람이 맡았다)이 음악을 맡아 입소문을 타고 뉴욕 관계자들의 관심을 샀을 뿐 아니라, 지난해 봄 세컨드 스테이지에서 두 달간 공연하면서 골수팬을 확보했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 공연도 프리뷰 때부터 인기몰이를 하더니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회 매진에 가까운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고 있다. 리뷰 또한 ‘<해밀턴> 이후 최고의 뮤지컬’, ‘눈물과 웃음이 뒤섞여 마음을 울리는 뮤지컬’, ‘21세기 뮤지컬 목록에 이름을 올려야 할 아주 중요하고 반가운 작품’ 등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청소년기,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가족


<디어 에반 한센>이 큰 사랑을 받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오늘날을 사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적합한 소재에 신파적 요소를 더해 음악적, 시각적으로 잘 풀어냈다는 데 있다. 극 중 인물이 겪는 외로움과 소외감이라는 감정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감정이고, 설령 주인공 에반 한센처럼 소외당해 본 경험이 없더라도 그의 가족들이나 학교 친구들 등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 관계망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때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에반 한센이 자기 방 침대에 앉아서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소심하고 자존감 낮은 에반에게 그의 심리상담사가 내준 숙제다. 에반이 오늘 하루는 좋은 날이 될 것이라든가, 오랫동안 혼자 좋아해 온 조이에게 좀 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스스로 되뇌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온다. 남편과 오래전에 이혼한 후 낮엔 간호사로 일하고 밤엔 공부를 하며 혼자 에반을 키우는 엄마는 자신감 없고 소심해 외톨이로 지내는 아들에게 소홀한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와 동시에, 에반의 동급생인 코너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습관처럼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코너와, 그런 아들을 어떻게든 바르게 키워보려는 엄마, 자신이 파트너로 있는 법률 회사 일을 핑계로 코너의 가정교육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듯 보이는 아빠, 그리고 그런 코너가 지겹기만한 동생 조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첫 번째 뮤지컬 넘버는 에반의 엄마와 코너의 엄마가 다르면서도 비슷한 엄마로서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노래인데, 첫 곡에서 이 작품의 초점이 에반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커뮤니티, 그리고 다루기 어려운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엄마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두 번째 장면부터는 곧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새 학기를 맞아 학교에 간 에반은 컴퓨터실에서 숙제로 받은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쓰다 코너와 마주친다(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학교에 온 모양이다). 에반과 코너 둘 다 다른 이유로 학교에서 외톨이인데, 코너가 우연히 만난 에반에게 팔 깁스에 자기 이름을 사인해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둘 다 친구가 있는 척, 서로가 친구인 척할 수 있으니 말이다. 코너가 에반의 깁스에 자기 이름을 쓰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잘 마무리될 뻔했는데, 코너가 우연히 에반의 편지에 자기 동생 조이의 이름이 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학교에서 자신의 평판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코너는 그 편지를 보고 에반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고 못살게 굴기 위해서 일부러 이 상황을 조작했다고 생각해 불같이 화를 내며 편지를 들고 컴퓨터실을 나가 그 후로 삼 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삼 일 후 학교에 온 에반은 교장실로 오라는 방송을 듣고 거기서 코너의 부모님을 만난다. 알고 보니 에반이 학교에 안 온 삼 일 사이 코너가 자살을 했는데, 코너의 주머니에서 에반의 편지가 발견된 것. 코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 없는 부모는 에반의 팔 깁스에 코너의 이름이 크게 써 있기도 하고, 코너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편지가 ‘에반에게(디어 에반 한센)’라고 써 있다 보니 둘이 친구였다고 짐작해 버린다. 아들이 갑자기 왜 자살을 했는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친구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울면서 에반에게 물어본다. 이 상황이 너무 곤란하고 불편해서 제대로 말을 못 잇는 에반은 사실 그 편지가 자신에게 쓴 편지라는 사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편지를 그 부모들의 손에 둔 채 자리에서 나온다.



1막의 나머지는 에반이 코너의 부모에게 코너와 비밀 친구(게이가 아닌 순수한 친구)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점점 더 큰 거짓말을 하는 것과, 자신들이 몰랐던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이유로 에반에게 차츰 더 의지하는 코너의 엄마와 아빠, 그 이야기를 통해 조이와 가까워지는 에반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에반이 코너의 비밀 친구였다는 사실이 학교에 퍼지면서 학교 내에 에반의 존재감이 커지고, 이것을 계기로 코너의 죽음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자기 자신들을 포함해)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또 다른 동급생과 에반, 에반의 친구가 주축이 되어 ‘코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코너 프로젝트의 첫 행사인 추모식에서 에반이 추도사를 하는데, 이 추도사가 소셜 미디어에 #youwillbefound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퍼지면서 1막이 끝난다.


2막은 예상할 수 있듯이 에반이 코너의 가족과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정작 엄마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코너 프로젝트가 점점 더 확대되면서 거짓이 탄로날까 불안해하던 에반이 코너 가족에게 사실을 밝히면서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에반은 조금 부족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엄마와의 관계도 성숙해지고, 거짓말로 시작된 코너 프로젝트가 아주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이 마무리되고 1년쯤 후에 다시 만난 조이가 에반에게 우리 모두 이런 게 필요했다고 얘기해 주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신인 스타의 등장


사실 학창 시절을 배경으로 외톨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는 설정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울림을 주는 데는 에반 한센을 맡은 벤 플랫의 연기가 한몫한다. 눈빛, 움직임, 그리고 대사 처리까지, 벤 플랫은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에반 한센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연기한다. 긴장해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에반의 모습은 전적으로 웃긴 만큼 짠하고, 긴장감에 얼굴을 손으로 자꾸 만진다든가, 옷자락을 자꾸 잡아당기는 것, 그리고 불안한 시선 처리까지, 벤 플랫은 두 시간 반 동안 온전하게 에반 한센으로 무대에 존재한다. 그의 진정성 있는 연기 덕분에 에반이 2막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코너의 부모와 조이에게 사실 코너가 가지고 있던 편지는 자신에게 쓴 것이었고,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고백할 때, 늘 바쁜 엄마만 있는 집이 아니라 코너의 집에서 자신이 상상하던 무언가를 가졌다고 느꼈다고, 그렇지만 이렇게 엉망진창이 될 줄은 몰랐다고 사죄할 때, 어떤 말도 부족하다며 눈물을 흘릴 때, 코너의 가족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아서 거짓인 줄은 알았지만 그냥 그런 척하고 살면 엉망진창인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진심을 고백할 때, 관객들 역시 벤 플랫의 눈물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피치 퍼펙트>에서 조연으로 출연했고, <북 오브 몰몬>의 투어 공연에 참여한 스물셋 젊은 배우의 앞으로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에반의 엄마를 맡은 레이첼 베이 존스와 코너의 엄마를 맡은 제니퍼 로라 톰슨 역시 TV와 스크린,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배우인데, 특히 레이첼 베이 존스는 벤 플랫과 엄마와 아들로 합을 잘 맞춰 조연에 그칠 수 있었던 캐릭터에 무게를 실어준다. 또 극에 중요한 역할을 한 배우는 에반의 ‘가족 친구’ 자레드 역을 맡은 윌 롤랜드이다. 자레드는 에반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나름 친구라 여기고 긴장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존재다. 실상 그는 에반에게 잘해 줘야 엄마가 차 보험료를 내주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에반에게 잘해 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에반에게 자신은 친구가 아니라 ‘가족 친구’라고 정정해 주며 시니컬하게 굴고 깐족댄다. 그렇지만 에반의 거짓된 시나리오가 걷잡을 수 없어질 때, 그의 방식대로 에반에게 현실을 보라고 쓴소리를 해주기도 한다. 아마추어 공연 경력이 프로페셔널 공연 경력보다 더 많은 신인인 윌 롤랜드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작품에서 진지함과 유머의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들의 간지러운 데를 긁어준다.


물론 배우들의 합이 좋은 것은 마이클 그라이프 연출의 힘이기도 하다. <렌트>와 <넥스트 투 노멀>을 비롯해 무수한 작품의 연출을 맡았던 마이클 그라이프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앙상블의 합이 특히 좋은데, <디어 에반 한센> 역시 그런 부분이 돋보였다. 가족의 이야기, 약을 먹어야 할 정도의 불안함이 있는 주인공이라든가 작품의 군데군데 <넥스트 투 노멀>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현실과 가상공간을 넘나드는 효과


벤지 파섹과 줄리안 폴의 음악을 안 짚고 넘어갈 수가 없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귀에 맴도는 음악은 관객들이 에반 한센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특히 1막 중간에 코너의 가족들이 각각의 다른 이유로 코너를 추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부르는 ‘레퀴엠’은 음악적으로, 언어적으로 그들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잘 담아내고, 1막 마지막 에반 한센의 추도사가 노래로 전환되는 ‘You Will Be Found’는 음악 자체에 에반의 변화를 담아낸 것이 인상 깊다. 2막에서도 거짓말이 탄로 난 이후 모든 것을 다 잃은 듯한 에반에게 엄마가 늘 엄마로서 너와 함께할 거라고 불러주는 노래인 ‘So Big/ So Small’은 그 바로 전에 들은 에반의 감정적인 발라드와 대비되는데, 자장가 같은 느낌의 피아노 위주 반주로 음악적 사운드는 약하지만 강한 엄마의 목소리에 에반도, 관객도 다친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마지막 신이 준비된다.


음악과 연출, 연기 못지않게 이 작품의 시의성을 더해 주는 장치는 프로젝션과 조명, 그리고 음향 효과이다. 작품의 성격상 온라인상에서 급속하게 이야기가 퍼지는 연출이 굉장히 중요한데, 무대에 다양한 사이즈로 배치돼 있는 프로젝션 스크린과 TV 스크린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다양한 소셜 미디어 매체의 화면들을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는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많은 관객들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사회 관계망 속에 얼마나 갇혀 있는지 상징한다.  마지막 신에서 조이와 에반이 1년쯤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될 때 이 화면들이 사라져 있어서 그들의 삶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에서 특히 효과적이다.



오프닝 이후 <뉴요커>에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이 대표하는 대중심리학과 <디어 에반 한센>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에 대한 얘기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대중심리학에 대한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디어 에반 한센>의 중심에 있는 사회적 외톨이에 대한 고찰은 한계가 있기는 하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대학을 보낼 학비가 없어서 장학금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안 되면 일단 학비가 저렴한 2년제 대학에 가야 하는 에반의 가정 형편과, 그런 형편 속에서 엄마를 힘들게 할까봐, 실패하면 엄마에게 더 큰 실망과 부담이 될까 두려워 그 속에 스스로를 가뒀던 에반의 모습은 중산층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어렸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혼자였던 코너의 소외감과는 달랐을 것이다. 코너가 왜 외톨이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진 않지만, 에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코너는 ‘너와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며 그들의 소외감을 동일시하는데, 그 부분은 조금 공감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지난 시즌 한참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었던 것처럼 보였던 브로드웨이에서 굳이 백인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에 백인 가정을 중심에 두고 늘 그렇듯 상징성을 띠기 위해 한 명의 흑인 조연(목적의식이 뚜렷한 에반의 동급생인 알라나 역할)을 둔 것도 불편한 부분이었다. 물론 백인이 주 소비 계층인 브로드웨이에서 백인 가정이 중심이 되는 점은 이해되긴 하지만, 이 작품의 감정적인 임팩트를 생각할 때 특정 관객들의 개인적인 카타르시스를 풀어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소외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조의 문제를 떼어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0호 2017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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