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TIME TRAVEL] 응답하라 2004 MUSICAL! [No.124]

글 |이민선 2014-02-11 5,045

과거를 호출해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때가 ‘참 좋은 시절’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장년층에게 어필하고 있는 시간 여행지는
PC와 인터넷 보급으로 디지털 문화가 도입되고
국내산 드라마와 가요, 영화 등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던
1990년대다. 그들의 청춘 한가운데.
한 문화의 융성을 지켜본 것 그 자체가 역사적 순간을
경험했다는 짜릿함을 안겨주어서, 그 시절을
추억하며 다시 한번 뭉클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번성기라 하면,
언제로 돌아가야 할까? 시장의 형성과 함께
늘 언급되는 공연이 2001년의 <오페라의 유령>이다.
이전까지 유례없었던 7개월의 장기 공연과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 2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액 등 <오페라의 유령>은 기록적인 성과를
남겼다. 이에 고무된 국내 뮤지컬계는 선진 시장의
영향을 받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2003년까지 서울에서 공연된 뮤지컬
편수는 50편을 상회하는 수준.
그런데 2004년에는 89편으로 급증했고,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이 속속 첫선을 보였다.
편수 증가와 더불어 소개되는 작품의 색깔도
다양해졌다. 보는 공연마다 새롭고 재미있었던
그 시절,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한국 뮤지컬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억을 더듬어보려 한다.
응답하라 2004 뮤지컬!

 


20040101
2004년 차세대 스타는 누구?

WHAT HAPPENED     <더뮤지컬> 21호, 그러니까 2004년 2~3월 호(당시는 격월로 발행했음)의 표지를 장식한 9명의 배우가 있다. 지금도 매해 예상해 보듯, 2004년에 활약이 기대되는 뮤지컬 배우를 선정한 것이다. ‘2004 ISSUE MAKER’란 제목 아래 모인 이들은, 놀라지 마시라, 김영주와 서영주, 배해선, 성기윤, 김선영, 이건명, 김소현, 엄기준, 조정은이다. 이들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더욱 기대되는 배우’라 칭했던가. 지난 10년간 그들의 가능성은 충분히 증명됐고, 그걸 넘어 이제는 스타가 되었다. 기대주로 뽑힌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지만, (지금은 서너 명을 꼽기도 쉽지 않은데)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만한 차세대 스타가
9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THEY WERE     당시 김영주는 전년에
<페퍼민트>에서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섹시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큰 키와 개성 있는 음색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카리스마는 그때부터 관객의 눈에 들었던 듯하다. 진지함과 코믹함을 오가는 서영주의 연기 역시 10년 전부터 인정받고 있었다. 베르테르와 바비 스트롱 같은 ‘순수 열혈 청년’을 연기하는가 하면, 케니키와 고길동 역으로 뺀질거리는 모습도 보여준 것. 늘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던 배해선은 과거엔 경험하지 못한 큰 무대 <맘마미아!>를 앞두고, 자신이 그해 최고의 라이징 스타가 되리라 예상이나 했을까? 그녀와 함께 <맘마미아!>를 통해 입지를 높인 이건명과 성기윤 역시 성실함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그때에도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깊이 남겨주었다.
지금은 명실상부 ‘뮤지컬계 여왕’이 된 김선영이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던 건 아니다. ‘뮤지컬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차에 2003년 <마리아 마리아>로 무대에 서는 재미를 느끼게 됐고, 2004년을 전후해 그녀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에 비하면, 김소현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데뷔할 때부터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렸다. 성악 전공자로서 클래식 뮤지컬의 프린세스로 머물 줄 알았으나, <그리스>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에서 성공적인 변신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2004년 엄기준과 조정은의 모습에선 그야말로 풋풋한 신인의 냄새가 가득하다. 베르테르의 뜨거운 진심을 보여주었던 엄기준이 무대를 넘어 드라마 스타로 발돋움하고, 롯데와 줄리엣으로 순수한 소녀의 인상을 남겼던 조정은이 알돈자와 판틴 같은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관객으로서 행운이 아닐까.

 


20040117
<맘마미아!> 초연 개막

WHAT HAPPENED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맘마미아!>의 첫 번째 공연날. 추운 날씨도 거뜬히 녹일 만큼의 뜨거운 반응? 그런 열기는 없었다. 하지만 공연이 개막하자마자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져, 이 작품은 그해 최고의 히트작이 된다. 4월 24일까지 석 달간의 공연이 성황리에 이어졌고 약 14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 소피 역의 배해선과 스카이 역의 이건명은 대형 공연의 주연으로 우뚝 섰고, (정선아는 당시 앙상블이었다!) 지금도 찰떡궁합인 타냐 역의 전수경과 로지 역의 이경미는 초연 때부터 빛나는 호흡을 자랑했다. 하지만 <맘마미아!> 초연의 최고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박해미이다. (임성한 작가, 김병욱 PD 같은 유명 스태프와 함께한) TV 드라마 <하늘이시여>와 <거침없이 하이킥> 등으로 전 국민이 알 만한 스타가 되었지만,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데는 <맘마미아!>의 공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혼모로 살면서도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도나 역은 박해미라는 배우의 매력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And Then     <맘마미아!>의 성공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이 흥행 아이템으로 떠오른 것은 비단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주크박스 뮤지컬 바람이 불었다. 2004년 1월 30일에 개막한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7월 11일에 첫선을 보인 <달고나>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2001년 개봉한 동명의 한국 영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오고 7080 가요들을 엮었다. 영화의 현실적인 진지함은 걷어냈지만, 중년의 삼류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꿈 많고 첫사랑에 들떴던 학창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은 뮤지컬에서도 동일했다. 영화보다 과거 회상 장면의 비중을 늘렸고, ‘세상만사’와 ‘라밤바’, ‘호랑나비’ 등 인기곡으로 객석 분위기를 달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였지만, 뮤지컬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이들은 첫사랑의 상대 인희를 비롯한 버진 블레이드의 여성 멤버들이다. 김선영과 김영주, 박준면, 세 디바는 정말 한 팀 같은 호흡과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했다. 이들이 부르는 ‘하늘색 꿈’은 단연 인상적이었다.
제목만으로도 달콤한 과거가 연상되는 <달고나>의 가제는 ‘새우깡.’ ‘거친 바다의 새우처럼 나약한 인물들이 그들의 희망을 깡으로 부르는 노래’를 뜻하는 제목이었단다. ‘담배가게 아가씨’와 ‘골목길’,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등병의 편지’ 같은 유행가들을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2004년에 주크박스 뮤지컬을 한 편 더 볼 수도 있었다. 2013년의 히트 아이템이 된 ‘김광석 뮤지컬’이 당시에도 준비 중이었으니까. 게다가, 영화 <친구>를 원작으로 한 가요 뮤지컬로! 하지만 결과는 10년 후에 밝혀졌듯이, 김광석과 <친구>는 친구 먹지 않은 걸로~
WHAT ELSE     <맘마미아!>의 첫 공연이 올라가던 날, 또 다른 기념적인 첫 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2004년 1월 16일과 17일 양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스튜디오에서 장유정 작·연출, 김혜성 작곡의 <김종욱 찾기>가 첫 날개를 편 것이다. 물론 교내 졸업 공연이었지만. 곧이어 학교 대표 작품으로 뽑혀 슬로바키아 국제학생연극제에 초청됐고, 한국에 돌아온 후 12월 9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쑥부쟁이>와 함께 유료 공연을 올리는 기회를 얻었다. 호평에 힘입어 2006년 4월에 대학로에 입성, 이후 성공 스토리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내 공연의 출연진은 전병욱과 김지현, 그리고 (극단 간다의 연출가로 활동하는) 민준호였다. 예술의전당 공연 때는 김태한이 민준호를 대신했다.

 

 

 

 

20040723
<지킬 앤 하이드> 초연

WHAT HAPPENED      2004년 여름, <지킬 앤 하이드>가 한국의 대표 흥행 뮤지컬로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당시 ‘This Is The Moment’와 ‘Once Upon a Dream’ 등의 뮤지컬 넘버가 CF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익숙했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인지도는 낮았다. 브로드웨이와 일본에서 흥행하지 못했고, 조승우의 이름값도 지금 같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뮤지컬에서 어두운 스릴러물은 무리수였다. 하지만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조승우의 공연을 본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고, 이후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초연 때만 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39회 공연의 객석 점유율은 98%에 이르렀다. 조승우와 더블 캐스팅된 류정한 역시 뮤지컬 마니아들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엠마 역은 김소현과 김아선이, 루시 역은 최정원과 소냐가 맡았다. 초연의 성과는 같은 해 12월 24일 앙코르 공연 개막으로 이어졌다. 흥행의 주역 조승우와 더불어 서범석과 민영기가 출연했고, 최정원이 빠지고 루시 역으로 이영미와 김선영이 가세했다. 후에 레전드로 기억될 조승우와 김선영의 첫 만남이 이때 이루어진 것. 강필석은 초연의 프룹스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MAYBE      2004년에 <지킬 앤 하이드>를 본 관객이라면, 옆자리에 앉은 강동원 닮은 학생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스타의 반열에 오른 주원은 여러 인터뷰에서 뮤지컬 배우가 된 계기로 이 작품을 언급하곤 했다. 조승우가 공연하는 <지킬 앤 하이드>를 보면서, ‘뮤지컬이 이런 거구나’, ‘한번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지킬 앤 하이드>가 배우 여럿 키웠다.
WHAT ELSE     2004년 여름에 열정을 불태운 또 한 명의 청년이 있다. 6월 29일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식을 치른 김재범. 일인다역을 맡는 작품의 특성상, 김재범은 제비와 장애아, 단속반, 잡상인 등을 연기했다.

 

 

20040816
극단 시키의 한국 진출 논란

WHAT HAPPENED      2004년 공연장 밖의 최고 이슈는 일본 극단 시키의 한국 진출 선언이었다. 극단 시키의 아사리 게이타 대표는 롯데 그룹과 함께 잠실 롯데월드 부지에 뮤지컬 전용극장을 세우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맞다, 지금의 샤롯데씨어터이다.) 한국보다 앞선 뮤지컬 경험과 자본을 지닌 일본 극단이 한국 진출의 의지를 밝히자, 한국 공연계는 난색을 표했다. 좋게 보면 선진 문화 교류이지만, 제 밥그릇 뺏길까 두려운 제작자들에게는 시장 잠식으로 보인 것이다. 급기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당시 회장 박명성)가 시키의 한국 진출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고, 8월 16일 시키 측은 한국 진출을 포기하노라 발표했다. 당시 한국 공연계는 포기가 아니라 유보일 거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실제로 2006년에 시키가 제작한 <라이온 킹>이 샤롯데씨어터의 개관작으로 공연됐다. 시키를 향한 경계심과 한일 관계에서 빠지지 않는 반일 감정의 영향 때문인지, <라이온 킹>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흥행 실패를 맛보았다.
WHAT ELSE     2004년에 극단 시키와 한국 뮤지컬계의 관계가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2004년 1월, 서울예대 김효경 교수와 시키 소속 배우 김지현의 도움으로, 서울예대 연극과 34명의 학생이 시키에 입단하는 오디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해에 일본으로 넘어가 활약하고 돌아온 이들이 바로 김준현, 강태을, 이경수 등이다.

 

 

 

 

20041130
<아이 러브 유> 초연

WHAT HAPPENED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차례 공연된 <아이 러브 유>를 향한 호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2004년에는 참 예상치 못한 성공이 많다.) 7개월 장기 공연에서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초연 후 2년간 전국적으로 38만 명이 이 작품을 즐겼다. <아이 러브 유>는 연애와 결혼을 중심으로, 남녀가 한평생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남녀의 특성을 디테일하게 살린 스무 개의 에피소드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어느 연령대의 관객이라도 만족할 만했다. 남자 둘, 여자 둘, 단 네 명의 배우가 매 장마다 다른 인물로 등장해, 배우들의 연기 변신을 지켜보는 재미도 컸다. 초연의 출연진은 남경주와 정성화, 이정화와 오나라. 재공연에 출연한 최정원과 더불어 남경주는 관록 있는 연기로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아이 러브 유>가 한국 뮤지컬계의 미래에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정성화의 데뷔작이라는 점이 아닐까.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 앞에 달린 ‘개그맨 출신’이란 수식어는 당시에는 그에게 더욱 큰 짐이었을 것이다. TV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얼굴을 본 적 있는 ‘웃기는 사람’이 웬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서 호연에도 ‘역시 개그맨이라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군’ 정도의 반응에 그치지 않았을까. 그런 그가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로,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으로 감동을 안겨 주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정성화 자신도 그의 “인생에 뮤지컬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데, 그를 뮤지컬로 인도한 설도윤 대표에게 관객들을 대표해서 감사드려야겠다.
WHAT ELSE     정성화만큼, 아니, 대중적인 면에서는 그보다 더 유명한 스타가 된 조정석의 데뷔 역시 2004년 겨울을 훈훈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그의 데뷔작은 12월 11일부터 26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가족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 평일 11시와 2시에 공연한 것으로 보아, 가족 중에도 자녀들에게 초점을 맞춘 공연인 듯하다.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박승걸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고, 이희준이 작사를 맡았다. 악어컴퍼니와 오디뮤지컬컴퍼니가 함께 제작했다. 호두까기 인형 역의 서영주와 마리 역의 오진영, 말탄 기사 역의 김태한, 프리츠 역의 최인경 외 다수가 참여했다. 조정석은 바로 그 ‘다수’에 포함된 캐스트. 앙상블 중에서도 유난히 뽀얀 얼굴을 빛내고 있는 조정석이 눈에 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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