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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프랑켄슈타인> 원작 비교 [NO.126]

글 |송준호 2014-04-09 4,554

원작의 실험실에서 파생된 새로운 피조물들

‘드라큘라’에 이어 ‘프랑켄슈타인’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전부터 현대물까지 이어지는 호러 영화에서 빈번하게 출현해온 ‘프랑켄슈타인’은 다양한 장르에서 재해석되며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한다. 최근 화제가 되는 것은 단연 뮤지컬이다. 왕용범 연출은 새로운 시각으로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의 관계를 변주하며 또 한 번 이색적인 실험을 도모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해석의 원천, 괴물
멀리서 초인적인 속도로 다가오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는 깨진 얼음 틈새로 펄펄 날아다녔다. 키는 보통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선 듯했다. 그 형체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끔찍하고도 몹시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818년에 세상에 나온 『프랑켄슈타인』은 이후 약 200년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용됐지만, 괴물의 모습은 대체로 이 최초의 표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거대한 체격과 흉측한 외모, 시체와 살아있는 사람의 중간인 듯한 기괴함. 이 모든 것은 ‘목덜미에 나사가 박힌 괴물’로 정형화된 채 오랫동안 활용되고 있다.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 살에 창조한 이 괴물은 과학 기술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야심과 몰락을 보여준다. 괴물의 존재는 다시 그 창조주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관계로부터 원작이 담은 메시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발생한다.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신의 영역에 도전한 프로메테우스에 비견하는 시각을 담고 있다. 과학적 탐구에 대한 천착과 지적 자만심 등 과학 기술에 뒤따르는 해악을 경계하자는 메시지도 이와 연관된다. 또한 메리 셸리의 개인적 상황과 시대상을 고려해 ‘여성을 배제한 생명 창조’라는 극 중 설정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접근법도 있다.

 

괴물의 정체와 의미에 대한 이런 다양한 시각은 물론 원작의 표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설에서 괴물은 특정한 고유명사 대신 ‘혐오스러운 괴물’이나 ‘악마 같은 시체’ 등의 표현으로 불린다. 이제까지 영화에서 활용되어온 사례를 보면 이런 이미지를 그대로 비주얼로 옮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빅터와 괴물의 관계를 철저히 창조자와 피조물로 보는 시각에 근거하는 것이다. 반면 원작의 다른 부분에서 빅터는 그를 ‘무덤에서 나온 나 자신의 영혼, 나의 흡혈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빅터와 괴물을 같은 인물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는다. 실제로 괴물은 설득력 있는 언변을 통해 자신의 창조자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지능을 갖춘 존재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 또는 괴물을 보는 관점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중요한 점은 이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중 어떤 시각으로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에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은 ‘실패한 피조물’로서의 괴물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간의 과욕이 빚은 비극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기본으로 원작은 세 가지 내러티브로 이뤄져 있다. 즉, 빅터의 괴물 창조 과정, 빅터와 괴물이 북극에서 만난 영국의 탐험가 월턴에게 전한 이야기, 그리고 월턴이 이들의 사연을 자신의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의 액자식 구성이다.

 

왕용범 연출은 이번 뮤지컬에서 원작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이 말은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사체 실험, 괴물 등의 핵심 코드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재창작 수준으로 새롭게 접근했다는 뜻이다. 제작진이 의도하는 뮤지컬만의 새로운 재미는 여기에 있다. 왕 연출은 작품의 두 가지 중심축을 세웠다. 하나는 누군가의 꿈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우정과 사랑이다. 이러한 모티프를 투영한 인물들이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앙리 뒤프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상관과 부하로 출발했지만, 곧 공통의 목표에 의견 일치를 보이면서 친구가 된다. 왕 연출이 두 사람의 관계를 우정뿐만 아니라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은 ‘헌신’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극단적인 헌신이 이후 극을 움직이는 강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는 뮤지컬의 전체를 관통하는 ‘혼자라는 공포’다. 생명 창조에서 빚어지는 윤리적 접근은 이미 많은 다른 작품들이 시도했으니, 뮤지컬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왕용범 연출은 ‘고독’에 주목했다. 그 어떤 존재도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지만, 괴물은 철저히 혼자이기 때문에 그런 존재의 슬픔은 어떤 것인가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또 어릴 때의 트라우마로 외톨처럼 자라난 프랑켄슈타인 역시 혼자라는 점에서 공통의 공포를 갖게 된다. 이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극의 다른 한 축이 된다.

 

 

‘주요 배우 1인 2역’이라는 파격 실험
물론 이런 중심축 외에도 새로 창작된 캐릭터들의 활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에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가 서사 진행과 함께 뮤지컬의 재미 요소가 될 예정이다. 제작진이 이로부터 야심차게 내세운 설정이 바로 모든 주·조연 배우들의 1인 2역이다. 왕용범 연출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든,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는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같은 배우의 다른 역할을 설정했다. 그리고 이 ‘같은 인물의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캐릭터의 존재가 이 컨셉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두 번째 캐릭터들은 2막의 격투장 장면에서 등장한다. 원작에서는 실험실을 탈출한 괴물이 오두막에서 만난 장님 노인을 통해 심성의 변화를 겪는데, 뮤지컬에서는 그 장소가 격투장으로 바뀌었다. 이 역시 괴물이 인간 사회의 속성을 더 뼈저리게 경험하기 위한 극적 장치의 일환이다. 앞서 고상하고 교양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던 배우들은 여기서 180도 상반된 천박하고 비열한 인물들로 변신한다. 빅터 역을 맡은 유준상, 류정한, 이건명은 피비린내 나는 격투장의 주인이자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자크를 삼색 개성으로 함께 연기한다. 왕 연출은 프랑켄슈타인의 광기, 그림자, 외로움을 각각 세 배우의 특색으로 꼽았다. 또 박은태는 왕 연출이 이 작품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배우이고, 한지상은 격투 신에 가장 적합한 앙리/괴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1막에서 빅터의 누나로 등장한 엘렌(서지영, 안유진)이 2막에서는 자크의 표독스러운 아내 ‘에바’로 등장해, 1막의 남매가 2막에서는 부부가 되는 진풍경도 펼쳐질 예정이다.

 

결국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정체나 결말에 반전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 또는 ‘괴물성’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원작과 맞닿아 있다. 원작의 괴물은 빅터의 또 다른 내면으로, 당시의 여성상으로, 타자(他者)로, 사회적 소수자로 다양하게 해석되어 비평의 좋은 텍스트가 되어왔다. 반면 뮤지컬에서의 괴물은 기존의 흉측한 괴물의 모습 대신 상처받은 인간의 일면처럼 그려지며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6호 2014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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