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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범죄과학 전문가가 본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 [No.128]

글 |표창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사진제공 |알앤디웍스 2014-06-26 4,092
모든 것의 시작, 19세기 말 런던



안개가 자욱한 새벽 도심 한복판,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공기를 찢고 듣는 사람의 심장을 무딘 못으로 긁어대는 듯한 고통을 안기는 그 처절한 비명은 오랫동안 계속된다. 늘 그렇듯, 경찰은 신고를 받은 뒤 한참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한다. 경찰관의 손에는 현장 보존을 위한 도구도, 아직 남아있을 범인의 흔적을 발견할 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다. 아니, 아예 ‘현장보존’이나 ‘과학수사’의 개념조차 없다. 이때 이들이 내뱉는 대사는 대개 이런 식이다. “흠, 또 다시 사건이 벌어졌군. 벌써 5명의 여성이 희생되었어. 모두 거리에서 몸을 파는 성매매 여성이지. 범인은 여성들의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내놓고 일부는 가져가기까지 했지. 아마도 칼을 잘 쓰는 의사이거나 짐승을 잡는 도축업자가 아닐까?” 

이것은 1888년 8월부터 11월까지 런던 시내 화이트채플(Whitechapel) 지역 반경 1마일 이내에서 발생한 5건의 연쇄살인, ‘살인마 잭(Jack The Ripper)’ 사건 이야기다. 아직 지문이나 DNA 등 법과학이 발달하기 전,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검거하거나, 용의자를 붙잡아 자백을 받는 것. 19세기 말 런던은 혼란과 무질서,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경찰은 소요와 폭동과 시위 진압에 동원되느라 범죄 예방이나 수사는 뒷전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살인마 잭 연쇄살인은 당시 절정을 맞았던 언론의 훌륭한 먹잇감이었고,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고, 경찰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했다. 

같은 시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당대 최고의 법의학자인 죠셉 벨(Joseph Bell) 박사에게서 의학 수련을 받은 코난 도일은 경찰의 무능과 고집 때문에 가축 살해범의 누명을 썼던 인도인 변호사 에달지를 도와 법정에서 무죄를 이끌어낸다. 사건 현장의 특성과 증거, 그리고 피고인 에달지와 그의 주거 및 범행 도구로 제시된 농기구 등에 대한 코난 도일의 냉철하고 명확한 비교 분석은 판사로 하여금 무죄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찰관도 변호사도 아닌 의사 코난 도일이 모든 사건에 다 개입할 수는 없었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결국 코난 도일은 현실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소설을 쓰게 된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탐정 ‘셜록 홈즈’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범죄 수사의 기본 원칙과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 그리고 분석적인 태도와 논리적인 추리 방법을 널리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품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이 경찰의 수사 교범이 되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신문기자들과 독자들의 추리와 분석 수준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찰의 수사 역량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했다. 당연히, 경찰은 셜록 홈즈의 탄생과 인기를 매우 불편해했다. 더구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경찰의 모습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다. 늘 홈즈에게 의존하면서 나사가 하나 정도 빠진 듯한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대표적이다. 


연쇄살인마와 명탐정의 흥미로운 가상 대결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현실과 가상의 범죄 세계를 장악했던 ‘살인마 잭’과 ‘셜록 홈즈’, 두 사람은 사실 만난 적이 없다.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선 살인마 잭이 등장하지 않으며, 코난 도일 역시 이 사건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화이트채플 연쇄살인 사건’은 아직도 범인의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미제사건(Cold Case)’이다. 그런데 국내 창작뮤지컬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은 이 당대 최고의 탐정과 최악의 연쇄살인마의 만남을 주선해 대결을 성사시켰다. 물론 뮤지컬 이전에도 소위 ‘셜로키언(Sherlockian)’ 또는 ‘홈지언(Holmesian)’이라고 불리는 셜록 홈즈 팬들이 만든 소설들과 영화, 게임 등에서 잭 더 리퍼와 셜록 홈즈의 대결은 이루어진 적이 있다. 뮤지컬 제작진 역시 이런 작품들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셜록홈즈2>는 홈즈의 영원한 조수이자 친구 ‘왓슨’을 여성으로 둔갑시켜 흥미와 긴장감을 더했다. 왓슨이 살인마 잭에게 붙잡혀 살해당하는(물론 반전이 있다) 설정은 관객의 예상을 뒤엎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살인마 잭’이 만들어지는 배경과 과정에 대한 설명 역시 단순한 예술과 오락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실에 기인한 학문적 접근과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충실히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살인마가 납득하기 어려운 괴상한 모습으로 살인을 반복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대부분의 장르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깊은 수준의 고민과 연구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부모가 없거나 생활고 등으로 보호시설에 맡겨진 어린이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어른들, 그들에 의해 인간성이 말살당한 채 괴물로 키워진 아이들. 이처럼 <셜록홈즈2>가 보여주는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실적이고 분석적이며 학술적이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극적인 단순화, 권선징악, 흑백논리를 좋아하는 최근 대중 예술 소비자들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노래보다 대사가 많다.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함보다는 머리와 가슴을 건드리고 생각을 요구하는 진지함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더 많은 관객이 이 작품을 보게 하려면 다소의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있다. 가령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재밌고 극적인 변화가 더 필요하고, 잔상과 잔향이 오래 남도록 음악적 완성도도 좀 더 높였으면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대로도 <셜록홈즈2>는 충분히 호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 장르만의 극적 재미 외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는 점이 그런 부분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이나 지금이나 ‘신(神)’을 팔아 장사하고 치부하는 종교와 교회의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룬다. 또 급변하는 감정의 흐름, 다양한 캐릭터들의 고른 비중, 연습과 공연 과정에 쏟았을 땀과 노력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 뮤지컬 전문가가 아닌 범죄심리학자의 눈으로 볼 때 이 작품은 가히 ‘최고의 수작’이다. 

다행히 일본에서 <셜록홈즈2>의 판권 계약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는 해외 시장에서도 이 뮤지컬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높게 평가한다는 증거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추리물이 일본산 만화  『명탐정 코난』인 상황에서 이런 시도와 변화는 고무적으로 느껴진다. 한국 창작뮤지컬 <셜록홈즈> 시리즈가 일본과 중국, 아시아를 넘어 셜록 홈즈의 본고장 영국과 유럽, 미국의 무대를 휩쓸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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