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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AST VS CAST] <프랑켄슈타인> 빅터, 앙리/괴물 [No.128]

글 |송준호 사진제공 |송준호 2014-06-29 5,797
‘인간의 조건’에 대한 다른 해석

개막 전부터 <프랑켄슈타인>은 모든 배우의 일인이역을 홍보 컨셉으로 내세워 관객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역시 
재해석된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에 있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지나온 세월만큼 두 캐릭터 사이엔 이미 익숙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뮤지컬은 여기에 ‘앙리’라는 매개를 삽입해 묘한 정서를 만들어냈다. 다섯 명의 빅터와 앙리/괴물은 이 찜찜한 이인삼각의 서사를 저마다 어떤 방식으로 풀어냈을까.


빅터 
이건명 vs 유준상 vs 류정한
                                                                                     

이 작품의 두 축은 철저히 빅터와 괴물이다. 비중도 비슷해 1막은 빅터의 카리스마와 광기가, 2막은 괴물의 기괴한 존재감과 슬픈 정서가 극을 지배한다. 빅터는 ‘생명 창조’라는 화두에 사로잡혀 신의 영역에 도전한 오만한 과학자다. 여기까지는 원작 소설과 비슷한 설정이지만, 무대 위의 빅터는 광기 뒤의 상처와 고통을 함께 표현하면서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이건명은 원작의 ‘빅터’에서 연상되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에 적절히 과장된 감정 표현을 덧입힌다. 세 빅터 중 카리스마와 광기가 가장 꾸준하게 지속되고, 무엇보다 오만한 과학자의 모습이 짙다. 그는 기본적으로 ‘나쁜 남자’다. 그의 주변인과의 마찰은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기인한다기보다 강한 자아에서 비롯된다. 이런 성정은 거침없고 쾌활한 눈빛과 보컬에 그대로 담긴다. 박은태, 한지상, 두 앙리/괴물 중 누구와 만나도 이런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또 괴물에서 앙리를 완전히 배제한 채 대하는 것도 다른 빅터들과 다른 점이다. 실패작임이 확인된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앙리는 말끔히 사라진다. 그래서 북극에서 마침내 괴물과의 인연을 정리했을 때, 그는 앙리를 떠나보낸 슬픔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생적인 가벼움을 무대에서 장점으로 승화시켜온 유준상은 이 어둡고 기괴한 작품에서마저 그런 개성을 발휘하려 한다. 가령 명령 불복종으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앙리를 구해주는 초반부에서 그는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뒷걸음질로 퇴장하는 개그를 선보인다. 이처럼 그의 빅터는 광기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다. 유치하고 불안정한 어린아이 같은, 한마디로 ‘초딩’ 빅터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엘렌의 노랫말처럼 ‘조금은 특별한 남자아이’의 정신을 지닌 채 ‘외로운 소년의 슬픈 이야기’를 보여준다. 소년 빅터가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면, 유준상의 성인 빅터는 마지막까지 앙리를 되살리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북극에서 괴물에 의해 죽음의 위기를 맞았을 때 그는 오히려 편안해진 모습이다. 상황이 역전된 후 혼자 남은 그의 절규에서 슬픔과 허망함이 짙게 묻어나는 것도 앙리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광기 어린 과학자와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두 가지 포지션에서 류정한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양극단을 폭넓게 오간다. 뒤틀린 인간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여온 그는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그래서 그의 빅터는 종종 하이드나 팬텀, 시드니 칼튼 같은 사악함이나 위악성을 띤 인물들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특히 앙리와 룽게 등 측근을 제외한 주변인들을 비아냥으로 대하는 그는 예민한 성격 파탄자에 가깝다. 실험이라는 명제 아래 친구의 목숨을 두고 고민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내 절실하게 안타까워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가 악마성을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의 피조물이 탄생하는 대목이다. 전반부에서 억제된 듯한 느낌이었던 그는 구속된 것을 벗어던지듯 내면의 광기를 폭발시킨다. 이때 류정한 특유의 뒤틀린 매력이 그 거대한 에너지와 만나며 극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정확한 발음은 그런 분위기에서도 류정한의 존재감을 빛낸다. 하지만 2막에서 그는 지킬 것이 많은 연약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오열하는 마지막 신에서 그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의 한계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앙리/괴물  
박은태 vs 한지상
                   
                                                                                   
빅터나 괴물과 달리 앙리는 뮤지컬에서 새로 창조된 인물이다. 원작 소설에도 비슷한 이름인 헨리(Henry Clerval)가 등장하긴 하지만,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라 앙리와는 다르다. 뮤지컬에서 앙리의 머리를 사용한 괴물의 존재는 빅터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원작과는 또 다른 차원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앙리는 초반부에서 빅터와 상관과 부하로 만나지만 곧 친구 또는 동료가 된다. 여기서 두 배우의 느낌이 엇갈리는데, 박은태의 앙리와 빅터는 곧바로 친구처럼 보인다면 한지상은 여전히 부하처럼 느껴진다. 그가 빅터에게 건네는 ‘자네’라는 말은 종종 어색하다. 

 

박은태의 앙리는 차분하고 단호하다. 뭔가를 한번 결심한 후에는 너무나 확고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이런 확고함은 고스란히 괴물의 아우라로 이어진다. 그의 괴물은 아무 대사 없이 우뚝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다. 차갑고 막강한 괴물의 슬픔은 자연스레 북극의 혹독한 추위와 삭막한 냄새를 연상시킨다. 반면 한지상의 앙리는 혈기 넘치는 청년의 모습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선택하는 행동에서는 젊은이의 뜨거운 피가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괴물은 여리고 감성적인 느낌이 두드러진다. 상처받은 짐승이 거칠어지는 자연의 섭리가 그의 괴물에서도 발견된다.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모두 ‘괴물 연기’와 연결돼 있다. 두 사람 다 콰지모도처럼 일부러 목소리를 뭉개거나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연기는 하지 않는다. 괴물의 정형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그 표현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박은태의 괴물은 앙리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청명하고 단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잔혹한 인간 무리에게 핍박받는 고독한 존재라는 점에서 언뜻 지저스의 아우라도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한지상의 괴물은 격정적이고 불안한 감정을 전달한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한지상이 맡아온 인물들처럼 거대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두 괴물의 특징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박은태는 ‘귀신’이고 한지상은 ‘짐승’이다. 괴물이 깨어난 후 룽게의 목을 물어뜯고 도주하는 신에서,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창가에 서 있는 박은태는 섬뜩한 미장센을 연출한다. 어둠 속, 다리 위에서 지긋이 빅터를 내려다보는 박은태의 괴물은 흡사 망령이나 저승사자 같은 포스를 보여준다. 한지상은 디테일한 움직임이 많고, 특히 침을 많이 흘리며 제어되지 않는 육체를 표현한다. 신음소리도 박은태가 천식 환자와 같은 호흡법을 하는 정도라면, 한지상은 ‘끄아아아아아’와 같은 괴성을 지르며 인간과 다른 이질적 존재를 그려낸다. 대단원인 북극 신에서도 박은태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체험하게 하며 복수하는 차가운 괴물이라면, 한지상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처지를 이해받고 싶어했던 감성적인 괴물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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