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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아이다> 김준현, 여유를 덧입힌 카리스마 [No.111]

글 |정세원 사진 |김호근 2012-12-17 4,895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겠냐마는, 김준현에게 <아이다>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대학 시절 그는 극단 시키의 <아이다>를 보며 ‘왜 한국에서는 공연하지 못 하냐’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시키 입단 이후 150여 회 이상을 라다메스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2010년 한국행을 결심한 그가 가장 먼저 오디션에 지원한 작품 역시 <아이다>였다. 비록 최종 오디션에서 탈락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지만 김준현과 라다메스 사이에 놓인 인연의 끈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2012년 12월, 한국에서 공연되는 <아이다>의 세 번째 무대에서 그가 라다메스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김준현의 라다메스를 한국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다. 한국어로 연습해보니 어떤가.

정서적으로는 같다. 우리말이니까 편하긴 한데, 대사하기에는 일본어가 좀 더 좋은 언어인 것 같다. 한국어는 그냥 대화할 때는 잘 모르지만 대사로 옮겼을 때 번역극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아이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다보면 마치 사극 대사 같아서 연습하면서 계속 조금씩 대사를 수정하고 있다. 오늘도 저녁 식사 중에 대사 수정에 관한 노트를 전달받았다.

일본어 공연이었지만 <아이다>는 이미 경험한 작품이다. 라다메스 역에 처음 도전하는 최수형 씨와는 고민하는 지점이 다를 것이라 예상된다.

 내 몸에 배어있는 것들을 지워내는 게 숙제라면 숙제다. 2~3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몸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물론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방해도 많이 된다. 가끔 연기하는 패턴도 그렇고, 시선 하나도 예전의 감정대로 할 때가 있다. 틀린 건 아니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안 하면 좋겠다’는 연출가의 얘기를 들을 때면 ‘아차’ 싶다. 한국 공연은 좀 더 리얼하고 자연스러운 호흡과 연기를 요구하는데 몸에 밴 것들은 자칫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드라마에 무게를 두고 연습을 했다면 이제부터 노래를 디테일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테크 리허설 동안 다잡을 생각이다.


<아이다>와의 인연이 꽤 깊다. 대학 시절부터 손꼽던 작품 중 하나였다고.

그땐 <지킬 앤 하이드>와 <아이다> 음악을 참 많이 들었다. 2004년 극단 시키 연수 갔을 때 <아이다>를 처음 알게 됐는데, 1막 보고 나서 (강)태을이와 담배 피우면서 불만을 표출했던 기억이 난다. ‘왜 한국에서는 못할까. 저 정도면 우리 배우들이 훨씬 잘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때 자극을 많이 받았고 음악 들으면서 꿈을 꿨던 것 같다. 내 나이 스물아홉 때 말이다.

한국행을 결심하고 처음으로 참여한 오디션이 <아이다>였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시기적으로 맞았던 것 같다. 2009년 말에 다음 해 공연 스케줄을 받았는데 이미 내가 다 출연한 작품들이었다. 반복되는 시간을 보내겠구나 싶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2008년 한 해 동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공연하면서 너무 지쳤던 것 같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으로 이어진 투어 공연을 혼자서 책임져야 했고, 본드를 잘못 써서 등에 난 상처 분장이 잘못 돼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다 <아이다>와 <에비타>를 다시 한 거다. 만약 2010년 리스트에 내가 안 해본 역할이나 작품이 있었다면 꾹 참고 눌러앉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작품을 반복하기가 싫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두렵긴 했지만 지금 두드리지 않으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아이다> 오디션이 있어서 지원하게 된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원을 안 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오디션에서 떨어진 건 내가 이 배역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컴퍼니, 같은 연출가가 참여하는 작품이니까 지원을 할 수가 없었다. 근데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오디션 보라고 먼저 연락하신 걸 보면.(웃음)

라다메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불사한 사랑을 택한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글쎄. 그는 나와 닮은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결심이 서면 앞뒤 재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난 계산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만 보는 것,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사랑인 거다. 라다메스라고 아이다를 선택했을 때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던 거다. 겉치레, 형식적인 것들을 싫어하는 나로선 암네리스와의 결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극단 시키의 간판 배우였던 남편이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

당연히 이해를 못해줬다.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극단에 남을 수는 없었고, 그래서 설득했다. 그들이 내 남은 인생을 책임져주지는 않을 거라고. 물론 한국에 온다고 해서 잘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둘 다 모험이었지만 사표를 낸 건 자존심이었다. 내가 <아이다> 오디션을 본 걸 이미 다 알게 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라이온 킹>에 무파사로 출연할 때부터다.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에 신경을 쓰느라 공연의 순수한 감동을 주지 못한 것 같아 관객들에게 항상 미안했기 때문이다.


이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작품들에 주역으로 참여한 걸 보면 당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상상이 된다. 작품 운이 좋았다. 특히 웨버 작품들은 음악이 너무 어려워 욕하면서 배웠는데,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됐다. <에비타>의 체는 <라이온 킹> 하던 중에 갑자기 맡게 됐다. 그것도 공연 한 달 앞두고. 한국말로도 못할 공연을 일본어로 하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다. 누구한테 도와달라는 말 잘하지 않는 내가 함께 극단 생활하던 (변)호길 형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깨너머로 배운 노래가 전부였으니. 조금이라도 리듬이 틀리거나 음정이 안 맞으면 같은 소절을 될 때까지 다시 부르며 스파르타 훈련을 받은 덕분에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사정을 알게 된 아사리 게이타 대표도 교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형을 나와 함께 있게 해주셨다. 여비까지 주면서 말이다. 덕분에 <에비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지저스>도 할 수 있었다.


그런 특혜를 받았으니 일본 배우들이 질투할 수밖에 없었겠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준현 씨가 연기하는 예수를 보지 못한 게 아쉽다. 무척 잘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날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웃음) 내년에 다시 한다더라.

준현 씨는 내년에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 역으로 다시 일본 무대에 선다.

아직 계약은 안 했지만 4월부터 10월 말까지, 지방 공연까지 해야 하는 스케줄이다. 괜히 한다고 했나 싶기도 하다. 그 시기 한국에서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꽤 많이 올라가더라.(웃음)

<레 미제라블> 한국 공연 오디션은 1차 이후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앙졸라, 좀 더 큰 꿈을 꾸면 자베르 정도? 소설을 읽으면서 장 발장은 연륜이 필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Bring Him Home’ 같은 노래를 젊은 내가 어떻게 부르겠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영국에서 공연을 보고 온 (이)경수의 권유와 강요에 못 이겨 지원하게 된 거다. 학교 공연 <시련>에서 존 프락터를 연기한 적 있는데 장 발장을 보면서 그 모습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장 발장과 앙졸라 역에 지원했는데 그날 바로 앙졸라 2차 오디션에 콜 받았다. 1년간 앙졸라로 살 것인가, 그러면 한동안 다른 배역들을 포기해야 한다. 뭐 이런저런 고민들을 했는데 결정적으로는 작품에 대한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다> 오디션을 보게 된 거다. 나중에 자베르 역으로 다시 콜 받았는데 이미 포기한 작품이기도 했고, 또 처음부터 고생해서 최종적으로 남아있는 배우들에게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안 갔다.

나이 때문에 도전조차 포기했던 <레 미제라블>이다. 그런데 일본 공연에, 그것도 장 발장으로 무대에 오른다. 어떻게 된 사연인가. 처음부터 장 발장 역으로 오디션 본 건 아니었다. 3월부터인가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땐 당연히 거절했다. 그런데 6월 즈음에 무슨 마음이 동했는지 ‘내년에 일본에 가볼까’ 싶은 거다. 토호 측에서 계속 연락이 오는 건 내가 일본에서 보낸 5년 반의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고. <레 미제라블>로 일본 무대에서 다시 내 존재를 알리고 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했다. 마침 자베르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다. 연출가 로렌스가 음역을 물어봐서 ‘Javert`s Soliloquy’를 한 옥타브 높여 불러봤는데 ‘오! 지저스!’ 하는 거다.
전 세계 장 발장의 오디션 지정곡인 ‘Valjean`s Soliloquy’를 부를 수 있는 음역대의 배우를 찾은 것이군. 두 곡 멜로디가 같지 않나. 대신 말이 엄청 많다.(웃음) 30분쯤 후에 다시 불러서는 ‘Valjean`s Soliloquy’와 ‘Bring Him Home’ 악보를 주며 내일 오디션을 다시 보라는 거다. 벌떡 일어나서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난 자베르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너무 젊어서 한국 오디션은 보다가 중단한 사람이라고. 그랬더니 하는 얘기가 ‘너 안 젊어 보여’였다. 그래서 ‘설마’ 하며 연습을 했고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 후에도 자베르 아니면 안 한다고 했는데 런던에서 최종 통과한 사람이 나뿐이라고, 내가 안 하면 프로젝트가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에 하게 된 거다.


김준현의 장 발장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제작 발표회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가 있는데 실망할지도 모르겠다.(웃음)

 

다시 <아이다>로 돌아가자. 연습 분위기는 어떤가?

내가 원래 잘 안 까부는데 요즘 팀 분위기 때문에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은 내가 말도 많지 않고 대본만 보고 무게 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배우들과 좀 더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할 것 같았다. 내가 유해져야 상대방도 편하게 느낄 거고 모두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더라. 일본에서 공연할 때 그러지 못한 부분들에 아쉬움도 많았고. 한번은 (이)정열 형이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다른 배우들과 장난을 친 적이 있는데,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핀잔을 들어봤다.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하고 있구나’ 했다. 그래서 연습이 더 즐겁고 공연이 기대된다.


한국에서 활동한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나.

일적으로 보면. 물론 좋은 게 있으면 안 좋은 것도 있기 마련이지만 일단은 만족한다. 당장 내년부터는 캐스팅이 안 돼서 무대에 못 서게 될 수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극단 시키와 달리 스타 중심의 캐스팅이 주도하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많이 느꼈다. 하지만 그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스타 시스템을 반대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지만 <잭 더 리퍼>를 하면서 느낀 건 스타는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노력을 했을 것이고 잘하니까 스타가 된 거다. ‘그냥’은 없다. 물론 스타성만 활용하면 욕을 먹어야겠지만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들이 술을 좀 많이 드셔서 고생은 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오히려 일주일에 한두 번 공연했던 <지킬 앤 하이드> 할 때가 더 힘들었다. 공연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으니까. 배우로서는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작품 전체를 봐야 했고, 또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컴퍼니도 이해해야 했다. <조로>는 공연 횟수는 조율했지만 나중에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연출가와 달라서 고생한 경우고. 그런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더블캐스트로 참여할 땐 날짜, 요일 상관없이 반반씩 나눠서 공연할 수 있게 조율하게 되더라. 몇 회 더 한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인데 이왕이면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새해를 앞두고 바람이 있다면.

항상 그렇지만 내가 하는 연기나 노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고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행복해질 것이고 계속 공연하고 싶어서 기다려질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욕심 부리지 않기를 바란다. 욕심 없이 현실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싶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1호 2012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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