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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카페인> 멀티맨 빼고 남녀 두 명만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No.89]

글|이영미(대중문화평론가) |사진제공|에스플러스엔터테인먼트 2011-02-07 4,637

소규모 창작뮤지컬에서 이른바 ‘멀티맨’이라 불리는 인물을 빼고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특히 로맨틱 코미디에서 말이다.

 


‘멀티맨’이라는 실용적 이름으로 불리는 일인다역의 감초 연기 인물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흔히 접하는 극예술에서는 거의 만나볼 수 없는 연극적 설정이다. 진짜 거리, 진짜 아파트에서 진짜 살아가는 사람처럼 연기하는 배우를, 카메라의 실사 화면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진짜처럼 보이기’ 원칙과 충돌하는 일인다역이란 설정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래 극이라는 것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가상이고 설정일 뿐이다. 현빈은 까도남 김주원이 아니고 하지원도 길라임이 아닌 것이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온 저 인물이 폐소공포증을 앓는 재벌 3세가 아니라 실제로는 얼마 후 군대를 가야 하는 배우임을, 계속 인식하면서 드라마를 보기란 참으로 힘들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다르다. 배경부터 진짜 거리와 진짜 응접실이 아니니, 그 모든 것이 연기일 뿐이고 가상의 설정이란 것을 관객은 훨씬 잘 깨닫게 된다. 20세기에 카메라 안에 극을 담아내는 극영화가 나오면서, 아무리 사실주의적으로 만들어진 세트를 제공해도 관객이 그것이 진짜라는 환영을 형성하기는 참 힘들어졌다. 결국 현대의 연극이 선택한 방법은, 연극이 가상이고 설정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연극이란 것이 원래 역할을 맡아 놀아보는 놀이란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며, 이로써 연극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재미를 찾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공연 예술에 익숙지 않은 초보 관객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이들에게 공연만이 지니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며 공연에 맛을 들여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멀티맨의 남용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창작뮤지컬, 그것도 소규모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멀티맨이 설정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지고, 그 쓰임새도 점점 조야해지기 시작했다.


소규모의 창작뮤지컬에서 멀티맨이 자주 설정되는 것은, 한편으로 극작의 미숙함과 무관하지 않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연 예술로서의 연극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한정된 한두 공간에서 소수의 인물들로만 사건을 집약하는 데에 능하지 못하다. 대신 카메라를 이 공간 저 공간으로 옮겨 다니면서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즉 극적인 집약성이 약하고, 인물과 사건을 나열하여 늘어놓는 서사성에 더 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명의 인물과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한정된 무대 안에 집약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물을 맡아줄 일인다역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2000년대 이른바 뮤지컬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기에 창작뮤지컬이 급증하면서 이런 멀티맨 설정이 많아진 것도 그런 까닭이다. 뮤지컬이 인기를 모으면서, 한정된 공간과 소수의 인물로 극을 만들어가는 기본적 극작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쉽게 작품을 쓰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 예로 1990년대 소극장의 창작뮤지컬로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는 <사랑은 비를 타고>는 멀티맨이 없는 작품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 하나의 공간에서 형제의 대립을 풀어놓는데, 여기에 끼어들어 이 갈등을 가속화시키고 때때로 이완시키는 인물은 멀티맨이 아니라, 어쩌다 얼떨결에 그곳에 와버린 이벤트 회사 직원인 여자이다. 그리 매끈한 것은 아니지만, 두 명의 주인공 사이에 감초 조연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창작뮤지컬이 양산되면서, 이런 기본적 극작술을 익히지 않은 채 그저 새 인물이 필요하거나 배경 변화가 필요하면 멀티맨으로 안이하게 처리해버리는 작품들이 점점 늘어났다. 정교한 연극적 장치여야 하는 일인다역이, 그저 부족한 극작술을 메우는 ‘땜빵’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아지면서, 멀티맨은 식상한 설정이 되어가고 말았다.


<카페인>(성재준 극작.연출, 김혜영 작곡, 원미솔 음악감독)은 두 젊은 남녀가 투닥거리다가 알콩달콩 사랑에 이르는 다소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이다. 그런데 멀티맨이란 식상한 설정을 제거해 버리고, 주인공 남녀 단 둘이 극 전체를 버텨 나간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신선한 지점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극적으로 다른 설정이 필요했다. 갈등을 만들기 위해 남자 주인공인 소믈리에 지민이 한편으로 멋진 매너의 정민으로 가장을 하여, 바리스타 세진을 속인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연극적 아이디어이다. 연애는 잘하다가 막판에 결혼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바리스타 세진과, 그 카페의 저녁 시간에 근무하는 소믈리에 지민은,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 채 사랑에 대한 전혀 다른 생각으로 서로 갈등한다. 지민은 여러 휴대폰을 갖고 다니며, ‘여러 빈티지의 여자들’(지민이 여자를 와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과 가벼운 만남을 계속하는 남자이다. 지민은 세진을 놀려주기 위해 아침 시간에 매너남 정민이 되어 세진과 연애를 시도하고, 저녁에는 못생긴 소믈리에 지민이 되어 세진에게 그 연애에 대한 충고를 해주는 친구가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대로 둘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남자의 정체가 탄로 나는 위기를 거쳐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맺는다.


한 인물이 속임수로 애인과 친구 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설정은 극을 만들어가기에 적합한 설정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멀티맨 발상의 변주였으며, 극적 사건을 좀 더 집약적으로 만드는 고도의 극작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혼자서 한 장면을 버티느라 독백이 많아지거나, 인물의 행동 동기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등의 어설픔이 도처에서 노출되었다.


무엇보다도 도대체 소믈리에 지민이 왜 그렇게 무리하고 힘든 속임수로 생면부지의 세진을 골려주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과정을 통해 세진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하는 것이 관객에게 납득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민은 마지막 부분에서, 모닝커피를 즐기는 감성적인 정민과 연애를 분석하여 가르치는 소믈리에 지민이, 사실은 자신 속에 있는 양면적 성격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이는 그저 대사 한마디로만 전달될 뿐 극적 흐름 속에서 구현되어 있지 않다. 뮤지컬에 미숙한 아이돌 스타 김형준의 연기는 이런 연극적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뻔한, 그러면서도 상당히 무리가 많은 극작치고는 뮤지컬이 비교적 매끈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는 극작과 연출을 도맡은 성재준이 극작의 문제를 연출로 보완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어 보인다. 즉 관객이 이런 극작의 문제점을 그다지 문제 삼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커피와 와인이라는 핵심 소재가 주는 묘한 낭만적 사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성취한 일등공신은 노래였다. 작곡가 김혜영은 카페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 사랑의 달착지근한 분위기를 잘 살리는 예쁘고 세련되면서도 연극적인 노래를 만들어냈고, 성재준 역시 극작보다 훨씬 뛰어난 작사 실력을 보여주었다. 초반부에 배우 혼자 버텨야 하는 장면에서 ‘주여! 절 버리시나요!’, ‘와인과 여인’ 같은 넘버는 자연스럽게 성격 형상화를 도와주었고, ‘칠판전쟁’ 같은 넘버는 긴 기간에 점점 상승하는 두 주인공의 대립을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하는 뮤지컬 넘버의 중요 기능을 잘 수행했다. 반복된 넘버 ‘릴렉스’ 역시 노래가 배우의 액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좋은 넘버였다. 주제가 격인 ‘내 안의 카페인’은 보사노바풍의 재즈 곡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커피와 와인이라는 소재가 불러일으키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잘 구현하는 예쁜 노래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뮤지컬적인 노래를 성공시킴으로써 작품의 부드러운 진행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극작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대목에서, 두 명의  배우가 비사실적인 무대에서 무리하지 않게 집약된 극을 만들어가고, 어쿠스틱한 현악기로 만든 음악이 유려하게 어우러졌던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가 새삼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9호 2011년 2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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