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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Oh! Broadway 브로드웨이 인맥 관계도 [No.83]

글|지혜원(공연칼럼니스트) 2010-09-28 6,285

우리나라만큼이나 좁은 시장인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바로 ‘It`s a Small World’다. 특히 한 편의 작품을 위해 다수의 제작자와 창작자가 협업을 해야 하는 뮤지컬계에서는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도, 동지도 없을 만치 좁은 인간관계로 얽혀 있는 뮤지컬계에서 오랜 시간 남다른 인연으로 함께한 이들의 특별한 관계를 살펴본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미국에 이어 최근 국내에도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를 이용하다 보면 공연계 인사들의 인맥 관계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제작자와 창작자는 물론 배우와 스태프들까지도 몇 단계만 거치면 모두 아는 사이가 된다. 케빈 베이컨 6단계 게임(미국 영화계의 배우들이 몇 단계만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되는 지를 찾는 놀이)이 무색할 정도다. 이처럼 ‘헤쳐 모여’를 거듭하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공연계의 인맥 관계도에서 유독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며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인맥의 교차로, 카메론 매킨토시
현존하는 공연 제작자 중 가장 성공한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카메론 매킨토시의 인맥은 그의 명성만큼이나 흥미롭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 등 소위 ‘세계 4대 뮤지컬’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으니, 아직까지는 그에 대적할만한 프로듀서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뮤지컬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 한두 편은 보았을 정도이니 제작자로서는 그야말로 성공일로를 걸어온 셈이다.


카메론 매킨토시는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전 세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지난 1998년 그의 공연제작 데뷔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런던의 라이시움 극장에서 열린 특별 공연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에 참여한 공연관계자와 배우들의 면면들만 보아도 그의 화려한 인맥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줄리 앤드루스, 레아 살롱가, 마리아 프리드만, 마이클 볼, 버나뎃 피터스, 휴 잭맨 등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앤드의 수많은 유명 배우들이 기꺼이 그를 위한 특별한 자리에 함께 했다. 이들과 함께 자리를 빛낸 특별한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런던과 뉴욕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스티븐 손드하임이었다. 그 동안 각기 다른 작품들로 카메론 매킨토시와 인연을 맺어온 그들은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며 특별한 인연을 과시했고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1981년 <캣츠>를 함께 작업하며 이어진 카메론 맥킨토시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인연은 1986년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다시 한번 공고히 다져졌다. 수십 년간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사랑받는 뮤지컬 명작을 함께 제작해 온 인연을 통해 두 사람은 명실공히 런던을 대표하는 프로듀서와 작곡가로 여전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현대 뮤지컬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스티븐 손드하임과 카메론 매킨토시의 인연은 1976년에 제작된 뮤지컬 레뷔 <사이드 바이 사이드 바이 손드하임> (Side by Side by Sondheim)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카메론 매킨토시는 <폴리스> (Follies)의 런던 리바이벌 프로덕션에도 제작자로 참여했다.

 

카메론 매킨토시의 화려한 인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의 오리지널 프로듀서이자 <올리버>, <마이 페어 레이디>, <헤어> 등 수많은 작품의 제작자로 참여함으로써 수많은 창작자, 배우들과 남다른 관계를 유지해왔다.

 

 

또한 지난 2004년에는 이미 소설의 공연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1964년 제작된 영화와 음원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디즈니 시어트리컬과 함께 <메리 포핀스>를 공동 제작하며, 웨스트앤드와 브로드웨이(2006)에서 막을 올렸다. 이는 당시 웨스트앤드와 브로드웨이의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들의 결합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성공한 프로듀서일수록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 또한 넓고 두터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카메론 매킨토시의 어시스턴트로 3년간 일 했던 지인의 말을 빌자면, 그의 인맥의 중심에는 전 세계 뮤지컬계를 넘나드는 막강한 영향력 이전에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보다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작업하고, 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공연계 관계자들이 카메론 매킨토시를 가장 성공한 프로듀서만이 아니라 명실공히 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프로듀서로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함께일 때 더욱 빛나는 창작 파트너
작사, 작곡가 콤비로 함께이기에 그 명성이 더욱 높아진 파트너들도 있다. 1940-50년대 수많은 히트작을 함께 작업한 작곡가 리차드 로저스와 작사, 극작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기 이전에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각기 다른 파트너와 함께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1927년 제롬 컨과 함께 발표한 <쇼 보트>를 통해 입지를 다졌으며, 리차드 로저스는 로렌즈 하트와 함께 <더 보이 프롬 시라큐스>, <팔 조이> 등을 작업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공동 작업은 제롬 컨과 로렌즈 하트가 각각 두 사람과의 작업에 동참하지 않을 뜻을 밝힌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우연히 뜻을 같이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작업해 발표한 작품이 바로 <오클라호마>(1943)이다. 뮤지컬 드라마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작품은 음악과 춤이 자연스레 플롯에 녹아들며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5년 넘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공연된 <오클라호마>는 1955년에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되어 다시 한 번 인기를 얻었다. 성공적인 첫 합작품을 선보인 이들 콤비의 차기작은 <카루셀>(1945년)이었다. 브로드웨이에 이어 1950년 웨스트앤드에서도 공연된 작품은 당시 비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최초의 뮤지컬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이후 수차례 리바이벌되어 지금까지도 뮤지컬 고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1956년에 만들어진 영화 <카루셀>의 리메이크 버전이 현재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 주연으로 제작 중에 있기도 하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또 다른 역작으로는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남태평양>(1949), <킹 앤 아이>(1951), 그리고 이들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사운드 오브 뮤직>(1959) 등이 있다. 이들의 파트너십은 아쉽게도 1960년 오스카 해머스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끝이 났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콤비가 여전히 근대 뮤지컬에 중요한 인물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흥겨운 노래들로 가득한 뮤지컬을 만들면서도 인종차별이나 계급 간의 갈등과 같은 당시 사회적인 이슈들을 함께 건드리며 뮤지컬 드라마의 새 장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송라이터 콤비로 작곡가 존 칸더와 작사가 프레드 엡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는 <시카고>로 잘 알려져 있는 이들의 파트너십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두 사람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캬바레>(1966)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두 사람의 전성기는 1975년 <시카고>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두 작품 모두 각각 1972년, 2002년에 영화로 제작 되어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외에도 <우먼 오브 더 이어>(1981), <거미여인의 키스>(1982), <커튼스>(2007) 등에서 호흡을 맞췄다. 지난 2004년 프레드 엡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끝이 났지만, 이들의 마지막 협업 중 하나인 <커튼스>가 2007년 브로드웨이에서 선을 보인데 이어 지난 3월에는 프레드 엡의 또 다른 유작 <더 스코츠보로 보이즈> (The Scottsboro Boys)가 무대에 올라 팬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연출자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창작자도 있다.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티븐 손드하임이다. 아직 정식으로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스위니 토드>, <암살자들>, <컴퍼니> 등에 불과하지만 손드하임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자주 견주어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올해로 80세를 맞은 손드하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플롯보다는 캐릭터와 주제에 초점을 맞춘 ‘컨셉뮤지컬’ <컴퍼니>(1970)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시작된 연출자이자 프로듀서인 해롤드 프린스와의 파트너십은 약 10여 년간 무려 여섯 작품을 통해 이어졌다. <폴리스>(1971)에 이어 <소야곡>(1973), <퍼시픽 오버쳐>(1976), <스위니 토드>(1979), <메릴리 위 롤 어롱>(1981)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메릴리 위 롤 어롱>의 실패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들의 재결합은 지난 2003년 시카고의 굿맨 시어터에서 선보인 <바운스>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바운스>는 안타깝게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데는 실패했고, <로드 쇼>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스위니 토드>와 <컴퍼니>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연출했던 존 도일이 연출을 맡아 지난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막이 올랐다. 해롤드 프린스와 결별한 손드하임은 보다 아방가르드한 성향의 연출가로 평가받던 제임스 라핀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조지와 함께 일요일 공원에서>(1984)는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다시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고 이듬해 퓰리처 상 드라마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숲속으로>(1987), <패션>(1994) 등으로 이어졌다.

 

 

제작의 역할을 분담하는 프로듀싱 파트너
한 편의 작품을 위해 적어도 서너 명, 많게는 수십 명의 프로듀서가 함께 모여 제작비를 조달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브로드웨이이다 보니, 제작자들 사이에도 ‘헤쳐 모여’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중에도 오랜 파트너십으로 다수의 작품에 제작에 함께 관여해온 파트너들이 있다. 가장 오랫동안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는 이들은 <프로듀서스>, <헤어스프레이>, <영 프랑켄슈타인> 등을 제작해 온 프랭켈 바루 비에텔 라우쓰 그룹 Frankel Baruch Viertel Routh Group이다.

파이낸싱에 능한 전직 부동산업 종사자 톰 비에텔과 스티븐 바루는 공연 전문가 리차드 프랭켈, 마크 라우쓰와 힘을 모아 각기 보다 능숙한 역할을 분담하며 효율적인 프로듀싱 체제를 유지해왔다. 우리나라 공연 <난타>의 현지 파트너 회사로 잘 알려진 브로드웨이 아시아 역시 이들 회사의 자회사 격으로 이들 프로덕션의 작품만이 아니라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작품들의 아시아 투어와 라이선스 업무를 전담하는 등 글로벌 유통망을 함께 구축하고 있다.

 

<렌트>, <애비뉴 Q>, <인 더 하이츠> 등을 함께 제작한 케빈 맥컬럼과 제프리 셀러 역시 효율적인 파트너십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프로듀서로서 작품 제작에 참여하지만, 개인의 취향과 성격에 따라 그 역할이 다소 상이하며 프로듀싱 오피스라는 제너럴 매니지먼트 회사를 공동 운영하면서 제작의 효율성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넓은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브로드웨이 역시 소수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장이다. 따라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는 것은 좋은 작품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성공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어렵게 몇 다리를 거쳐야만 하는 일도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면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기도 하고, 자칫 한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다른 사람과의 일에도 지장을 받기도 한다.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다행히도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은 예전에 비해 그다지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효과적인 매개가 되어주고 있다. 무더운 8월의 오후 한 가운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접속해 브로드웨이 공연계의 인맥 탐험을 하며 머리를 식혀보는 것을 어떨까? 좁고 긴밀한 그들의 인간관계를 탐색하는 것은 의외로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3호 2010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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