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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초능력 천재 소녀의 귀여운 복수 <마틸다> [No.118]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3-07-31 6,774

아기다리고기다리던 그 <마틸다>를 드디어 만났다! 사실 공연은 진작에 시작됐지만 몇백 불짜리 티켓 몇 달분이 동이 나는 바람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토니 시상식도 다가오고 하루 빨리 한국 독자들에게 소문 무성한 <마틸다>를 꼭 소개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브로드웨이로 무작정 나서, 당일 취소표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마틸다>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유명한 영국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원작을 바탕으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다저스가 제작한 뮤지컬이다. “<마틸다>는 제작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놀라운 작품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광고하는, 현재 브로드웨이 최고의 ‘핫’한 작품답게 극장 인근 거리는 심하게 붐볐다.
 

 

 

어른들의 세상을 바꾸는 소녀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댄서 출신 엄마와 중고차 사기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마틸다. 이 싹수 노란 가정의 돌연변이 마틸다는 독서를 좋아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으며, 아무리 어려운 계산도 암산으로 척척 해내는 천재 소녀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딸이 못마땅하고, 자기는 딸을 원한 적이 없다며 대놓고 마틸다를 ‘아들’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놀러 가 사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틸다. 그곳에서 마틸다는 ‘하니 선생님’을 알게 되는데, 그녀는 학교에 입학한 마틸다의 담임교사가 된다. 마틸다가 입학한 학교의 교장은 ‘트런치불 여사’로, 엄격한 규율과 심술로 아이들을 괴롭히기로 악명이 높다. 착한 하니는 마틸다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상급반으로 월반을 시키려 애쓰지만 소득은 없다. 그 사이 마틸다는 점점 자신의 숨겨진 능력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초능력’. 눈으로 물건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틸다는 이 사실을 하니에게 말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믿지 못한다.
가난한 하니의 오두막집에 간 마틸다는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부모님을 갑자기 여의고 집마저 후견인에게 빼앗긴 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하니. 그리고 그녀의 보호자가 알고 보니 트런치불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틸다는 트런치불 여사가 무시무시한 일을 꾸며 하니의 집을 빼앗았다는 것을 직감한다. 마틸다는 트런치불의 수업 시간에 초능력으로 분필을 움직여 칠판에 ‘아가타!(교장의 이름) 하니의 집을 돌려줘. 그렇지 않으면 네가 하니의 부모들에게 했던 짓을 너에게 똑같이 해주마!’라고 쓴다. 겁을 먹은 트런치불 여사는 교실을 뛰쳐나가 도망가고, 하니에게 집도 돌려준다.
그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러시아 마피아는 마틸다의 아버지를 처단하려 하지만,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마틸다에게 반해 아버지를 용서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이때 하니가 나서서 자신이 마틸다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겠노라 제안한다. 결국 마틸다와 하니는 새로운 가족이 되고, 철없는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마틸다를 ‘딸’이라 불러주며 먼 길을 떠난다.

 


 

보는 뮤지컬? 훌륭한 세트, 의상 디자인

<마틸다>는 올해 토니상에서 무대 디자인을 비롯해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사실 올해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무대로만 따지면 <마틸다>에 견줄 수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마틸다>의 무대는 창의적이면서도 특유의 색깔이 있다. 막이 오르기 전 기본 무대만 봐도 세트 디자이너가 이 작업을 하며 얼마나 즐거웠을지 생생히 느껴질 정도다. 영특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를 상징하기 위해 알파벳이 쓰인 블록들로 무대의 천장을 모두 덮었다. 마치 알파벳이 모여 단어를 이루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자라날수록 지식과 생각이 자라나는 것을 표현하는 듯하다. 컬러풀한 알파벳 나무 블록들이 무대 전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무대는, 상징적이지만 결코 난해하게 보이지 않고 경쾌한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체적인 조명과 무대 톤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란색과 보라색 톤을 많이 활용했다. 사실 파란색과 알파벳을 조합하여 만든 <마틸다>의 광고조차도 많은 설명 없이 ‘마틸다’라고만 쓰여 있어서 굉장히 미스터리하게 보인다.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공포스런 분위기까지 느껴질 정도다. <마틸다>는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름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억압적이고 제멋대로인 어른들이 주도하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순수한 꼬마 철학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의상 역시 무대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괴한 아버지, 어머니의 이미지를 과장해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극대화했고, 과도한 프릴과 형광색, 큰 가발 등을 이용했다. 특히 트런치불 여사는 의도적으로 ‘히틀러’의 이미지를 본떠 만든 듯한 갈색 제복과, 애정 결핍으로 인한 유아기로의 퇴행을 상징하는 하늘색 에이프런의 부조화를 강조해 캐릭터를 한층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이 뮤지컬을 ‘보는 뮤지컬’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처럼 비주얼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도 멋지긴 했지만, 스토리를 받쳐주는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컨셉 탓에 보이는 것에 비해 귀에 오는 자극은 덜했다.

 


 


 

인상적인 안무와 훌륭한 무대 연출

‘보는 뮤지컬’을 증명하듯, 안무가는 무대와 음악을 100% 이해하고 상당히 고난도의 안무를  만들었다. 가장 멋졌던 장면은 마틸다가 학교에 들어가는 날, 학교 교문에서 학교 선배들이 노래를 하던 부분이다. 노래가 고조되며 사람들은 불규칙한 크기의 알파벳 나무 블록을 이 철제 교문에 껴넣기 시작하고, 알파벳 블록이 새로 생길 때마다 정확하게 박자를 맞춰 그 블록을 딛고 올라가며 춤을 추는 안무였다. 음악과 춤, 배우, 무대가 하나가 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음악도 빨라서 알파벳 블록을 하나라도 잘못 끼우거나 놓치면 무대가 순식간에 엉망이 될 수 있는 장면인데, 그 많은 배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알파벳 블록이 쌓일 때마다 점차 더 화려해지는 안무는 압권이었다. 이 장면은 생각의 퍼즐을 맞춰가며 지식이 자라나는 곳이 ‘학교’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박자 하나마다 의미를 두고 안무를 만들어 결코 복잡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음악을 더욱 살려주는 재능 있는 안무가를 만나는 것은 모든 작곡가들의 꿈일 것이다.
무대는 이미 처음부터 알파벳 블록들이 불규칙하게 쌓여 입체적인 ‘네모’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철제 교문 역시 작고 큰 네모로 구성된 평면의 이미지로 시작한다. 거기에 블록이 끼워지면서 또 다시 평면 네모가 입체적인 네모의 이미지로 변환되고, 조명까지 더해지며 한층 밝은 분위기로 바뀐다. 이런 일련의 계획적인 네모 이미지의 2D, 3D 변주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면서도 다양한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무대에 그네가 등장하는 장면의 연출도 무대예술이 지닌 미를 한껏 보여줬다. 아이들이 그네를 뛰어 무대 앞 관객석 바로 위까지 나오는 3D 같은 장면은, 단순한 연출로도 무대의 공기를 일순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 그네에 탄 아이들이 같은 교복을 입은 어른들과 순식간에 교대하며 미래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아이디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주얼을 강화시키는 사운드 디자인

<마틸다>는 극장 전체를 무대로 썼다. 배우 등퇴장을 관객석으로 하는 장면도 빈번하고,  학생들이 합창하는 장면에서는 박스석에서 갑자기 배우들이 나와 노래를 한다. 연출가는 아마 호기심 덩어리인 마틸다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이렇게 무대에 옮겨놓은 듯하다. 이미 블록으로 가득찬 무대를 답답하게 느끼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감각을 분산시켜 놓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이런 컨셉에 부응하는 듯, 굉장히 ‘확장된’ 소리를 구현하는 것에 목표를 둔 듯했다. 뮤지컬 극장에서의 보편적 사운드 이미지와는 다른, ‘영화적’인 사운드를 창조해낸 걸 보면 말이다. 극장 어느 곳에서도 노래가 잘 들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보통 극장의 목표인데, <마틸다>의 사운드 디자이너의 접근 방식은 좀 달랐다. 소리를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영화 사운드 트랙 같은 믹싱을 한 것이다. 마틸다의 상상 신이나, 트런치불의 과거 등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필요할 때, 시공간을 순식간에 바꿔주기 위해 소리의 방향을 다르게 디자인한 것 역시 상당히 재미있었다.
사운드에서는 풍부한 음감과 함께 여러 가지 실험이 느껴져서 좋았지만, 다양한 변수를 컨트롤하는 데는 역시 어려움도 있었다. 확실히 오케스트라가 이처럼 영화 같은 풍부한 사운드에 보컬 트랙을 함께 살려주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아역들의 높은 주파수대 목소리, 성인 배우들의 강한 발성, 연기할 때의 건조한 톤과 상상 신의 촉촉한 사운드의 전환 등을 모두 한꺼번에 고려하여 계속 설정을 바꿔주는 것은 아무리 브로드웨이 최고의 베테랑 디자이너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틸다>는 실험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사운드 디자인이 많이 들어간다. 보통의 공연 매뉴얼대로라면 컨트롤이 불가능한 공연 형태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수정한다면, 좀 더 안정된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연출가의 일관된 의도와 사운드 디자이너의 실험이 맞물려, <마틸다>가 흥미로운 이유가 하나 더 생겼음은 분명하다. 

 

완벽한 작품과 개인의 취향 사이 

필자에게 감히 평점을 매기라고 한다면, 98점을 주겠다. 나머지 부족한 2점은 너무 완벽해서 뭔가 아쉬운, 해소감이 덜한 느낌 탓이다. 말하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킨키 부츠>가 뻔한 소재와 전개, 인공적 감동에도 불구하고 베스트 뮤지컬 상을 가져간 걸 보면, 아마도 심사위원단이 느낀 것이 필자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분명 <마틸다>는 굉장히 참신하고 매 장면이 아름답고 굉장하며 공이 많이 든 작품이다. 그런데 그토록 멋있는 비주얼의 향연과 훌륭한 넘버들, 세트 디자인, 연출, 무대를 봤는데, 이상하게도 극장을 나서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교장의 악역 연기였다. 왜였을까. 이 뮤지컬의 강점은 원작 스토리와 이미 널리 사랑받는 강력한 캐릭터들에 있었다. 그리고 배우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동화 속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어느새 세상을 웬만큼 아는 왕언니가 된 필자에게 <마틸다>는 아름답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동화’였기 때문에 <킨키 부츠>가 주는 해소감을 느끼기에 부족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랑스럽고 영특한 마틸다를 어릴 적 동화로 만났다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까? 또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둔 부모였다면? 디즈니 작품들 역시 동화적이지만, 좀 더 심한 갈등 구조와 해소의 장치를 만들어놓는다. 반면 <마틸다>는 원작 자체가 더 얌전하고 담백하다. 다소 루즈하게 전개되는 면이 없지 않다. 아마도 이 점이 이번 토니 어워드에서 <마틸다>가 <킨키 부츠>에게 베스트 작품상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재능 있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와 어른을 대변하는 현실적인 캐릭터의 단순 대결이었달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럼 <마틸다>의 타깃은 누구였을까? <신데렐라>나 <킨키 부츠>는 타깃이 분명했다. 반면 <마틸다>는 어른이 봐도 좋고 아이가 봐도 좋은, 중간 지점에 있다. 아마도 이는 원작이 지닌 성격 탓일 것이다. 『마틸다』는 아이들 책으로 적격이다. 생생한 캐릭터 묘사로 아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도, 에피소드 형식으로 되어있어 아이들의 매일 매일의 일상을 다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큰 긴장, 갈등 구조 없이 예쁘게 흘러가지만, 아이들에겐 오히려 부담없이 다가오기 때문에 에피소드식 구성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마틸다>는 그래서 동화를 철저히 살려내는 것 이상으로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마틸다>는 보기 드물게 참 참신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의 등장으로, 적어도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작품’ 1위에 철이 한참 지난 <애니>를 올리는 일은 없어져서 다행이고 반갑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8호 2013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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