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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오보이!>의 김현성 -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NO.84]

글 |배경희 사진제공 |김현성 2010-09-06 6,208

동물 복지와 환경에 신경 쓰면서 패션 사진가로 살아간다는 건 힘든일이라고 고백하는 사진가가 열정과 낭만으로 ‘환경과 동물 복지를생각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패션 문화잡지를 만들었다. 발행인뿐 아니라 편집장, 에디터, 사진, 디자인까지 전담하고 있는 독립 매거진 <오보이!>의 전방위 프로듀서 김현성을 만났다.

 

 

날이 너무 더워 시원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오려다 아차 싶어 관뒀습니다.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기꺼워하실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전 커피 자체를 잘 안 마셔요. 주위를 보면 (카페에서도 위생상) 일부러 머그잔에 안 마시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 좀 써도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안 죽는 게 아니라 탈 없거든요. 근데 꼭 일회용 컵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안타깝죠.


환경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10년도 안 됐어요.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에 신경 쓰기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환경’은 거리가 먼 주제처럼 느껴지잖아요. 당장 나한테 어떤 영향이 오지 않으니까. 의식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는 따로 없는데, 몇 년 전부터 환경 문제가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환경도 환경이지만 동물 보호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시죠. 끔찍한 동물 사랑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인가요.
어머니가 동물을 워낙 좋아하셔서 유기견을 많이 데려다 키우셨거든요. 저도 자연히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하게 됐죠. 많을 때는 서른 마리도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늙어서 다 죽고 강아지 네 마리랑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았어요. 어머니도 이제 나이가 드셔서 힘드신지 더 이상 안 데려 오시더라고요. 나이가 좀 더 드시면 시골 가셔서 동물 키우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서울에서 사시지 말고. 


서울의 보통 가정집에서 그렇게 많은 유기견을 키우신 거예요? 좀 특별한 풍경이었을것 같은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뭐예요?
집 안에서도 기르고 옥상에 새시로 집을 만들어서 거기서도 키우고 그랬죠.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키우던 첫 번째 강아지가 죽었을 때예요. 이름이 레니였는데 우리하고 되게 오래 살았거든요. 17년 정도? 처음 목격한 죽음이기도 했고요. 제가 마당을 파는 동안 엄마랑 여동생이랑 안고 계속 울고 있고, 결국에는 저도 못 참고 막 울었어요. 그리고 제가 <오보이!>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먹물이하고 밤식이(벽에 붙어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는 제가 결혼하고 새끼 때부터 데려와 자식같이 키운 애들이거든요. 먹물이를 두 번 잃어버렸다가 천신만고 끝에 찾았는데, 그때 쟤를 찾아 헤매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만약 그때 못 찾았다면 전 일도 못하고 거의 인생을 포기했을 거예요.


동물을 좋아하면서 패션 사진가로 일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하셨죠. 딜레마도 있었을 것 같고요.
네, 그렇죠. 예를 들어, 모피 광고 찍을 때 되게 찍기 싫었거든요. 근데 제가 안 하면 다른 누군가는 할 거잖아요. 그런 쪽에 인식이 없는 사진작가가 찍는 것보다는 제가 그걸 하고 받은 돈의 일부를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하는 게…, 그게 다 자기합리화이고, 저 속 편하자고 한 행동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합리화를 했죠. 그 이후에 모피 광고는 안 찍어요. 잡지 화보 촬영에 모피 의상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찍긴 하지만. 에디터들도 제가 싫어하는 걸 알죠.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어 봐요. 인식을 하고 찍는 것하고 안 하고 찍는 것하고는 다른 거니까.

 

독립 매거진을 만드는 일은 오래도록 품고 계셨던 꿈이었고, 앞서 말씀하신 대로 먹물이와 밤식이가 계기가 돼 그 꿈을 이루신 셈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기가 된 건가요?
비주얼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 잡지 하나 만들고 싶은 그런 꿈이 있어요. 저도 막연하게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목표 의식이 없으니까 그냥 생각으로 그쳤던 거죠. 그러다 먹물이하고 밤식이의 죽음을 계기로 제가 제일 잘하는 일로 환경과 동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과 동물 복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는 목표 의식이 생기고 나니까 실천으로 옮겨진 거죠. 제가 두 아이를 사랑했던 마음만큼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면 동물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만들 게 된 거예요.

 

잡지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첫 호가 나오기까지는 얼마의 기간이 걸렸나요?
먹물이가 작년 1월 28일에 죽었거든요. 그 후 4개월 동안은 계속 넋 놓고 있었고… 결심하고 실제적으로 준비한 기간은 4~5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Oh Boy!’는 책에서 지향하는 바와 쉽게 연결 고리를 찾기 힘든 제호예요. 그렇게 이름을 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쉬운 이름으로 하고 싶었고, 우리나라에 걸지(Girl 패션지)는 있는데 보이(Boy)지는 없으니까 호기심을 끌 수 있겠다 싶었죠. 어, 이거 보이 잡진가? 하는 호기심. 전혀 아니잖아요. 그리고 ‘오 보이!’가 아주 긍정적인 감탄사는 아니거든요. 환경이나 동물 복지에 관한 문제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아 그에 대한 감탄사랄까. 뭔가 좀 바꿔봐야 되지 않겠나 하는 의미에서 <오보이!>라고 지었어요.

 

패션과 환경, 동물 복지라는 양립된 두 분야를 동시에 이야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 데요.
소비를 부추기는 패션지에서 동물 복지와 환경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한데…, 사실 동물 복지나 환경에 관한 잡지는 많지만 그런 잡지는 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안 보게 되거든요. <오보이!>는 대중 스타나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동물 복지와 환경을 이야기하기에 패션지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무분별한 소비가 아닌 환경과 타인을 생각하는 현명한 소비를 말하는 패션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요. 친환경 기업의 제품을 선호하고, 모피 사진을 싣지 않으며, 가죽 제품의 노출은 최소화한다든가 하는 제 나름의 철칙이 있죠.


 

 

처음 책을 봤을 때 잡지를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두 가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하는 거지? 아니, 이많은 배포처는 다 어떻게 뚫은 거지?
100퍼센트 광고 수익. 첫 호부터 광고를 줬던 광고주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죠. 제가 생각해도 저 사람들이 날 뭘 믿고 저러나 싶었어요. 참 고마웠죠. 아직 수익이 날 정도는 아니고 겨우겨우 인쇄비 정도만 나와요. 배포처는 스튜디오 직원들하고 차로 돌면서 직접 책을 보여드렸죠. 지금도 차 몇 대로 나눠서 직접 배포하는데 그때마다 괜찮은 카페나 배포할 만한 곳이 있으면 들어가서 보여드려요. 대부분 좋아하시더라고요. “어, 이거 좋죠, 고맙습니다!” 하는 데도 있고, “네, 주세요.” 하는 데도 있고. 그리고 이달부터 할리스 커피 전국 매장에 한두 권씩 비치가 될 예정이라 이제는 지방 분들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기획, 섭외, 촬영, 인터뷰, 디자인까지 직접 하시잖아요. 인터뷰 같은 경우에는 정말 생소한 일일 텐데 하실 만한가요?
제가 기자가 아니니까 부담 안 가져요. 그 부분은 바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제가 살면서 진짜 궁금했던 거 물어 봐요. 일반인으로서 궁금한 질문들. 그렇게 큰 부담은 없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오보이!>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인 호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제일 큰 이유는 달라서가 아닐까요. 메이저 잡지는 너무 상업적이고 독립적인 잡지는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강한데, <오보이!>는 그 중간점에 있다고 할까. 전하는 메시지도 있고.

 

그런 반응이 고맙기도 하실 테고요.
너무 고맙죠. 5호 표지가 유노윤호였는데 그때 진짜 난리가 났어요. 극성팬들이 너무 열심히 책을 구하러 다녀서 배포처에서 영업에 지장이 있었나 봐요. 그때 배포처가 좀 많이 끊겼어요. 그 친구들이야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거니까 원망하진 않지만 좀 속상했죠. 근데 그때 어린 친구들한테 메일이 많이 왔어요. 유노윤호가 좋아서 <오보이!>를 봤다가 환경하고 동물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자기도 동물 보호에 더 신경을 쓰겠다고요. 그게 딱 제가 바라는 바거든요. 제가 책을 만드는 이유가 그건데 그럴 때 기분이 정말 좋죠.

 

어느새 열 번째 마감을 앞두고 계세요. 이번 호 특집 기사를 위해 베를린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앞부분 4~50페이지에 매달 주제가 바뀌는 특집 기사가 들어가거든요. 문화 전반에 걸쳐 제가 관심 있는 걸 주제로 잡아 특집으로 싣는 건데, 제가 꾸준하게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각 나라의 다양한 도시를 다루는 거예요. 여행을 많이 다니는 건 아니지만 워낙에 출장이 많고 하니까 기회가 되면 아주 심층적이진 않더라도 제가 그 도시에 머물면서 찍은 사진들, 짧은 생각들을 담고 싶어서 기획한 거죠. 1년에 두 번 정도는 도시 특집을 싣고 싶어요.

 

인원도 충원하고 좀 더 제대로 팀을 꾸려 만들어 갈 계획은 없으세요?
있어요. 지금 사람을 충원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안 할 수가 없죠. 처음에 혼자 만들었던 이유는 어설프게 사람 몇 명 모여 가지고 제 머릿속에 있는 결과물을 100 퍼센트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거든요. 힘들더라도 제가 혼자 만들면 제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가 있으니까 그랬던 거지 끝까지 혼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오보이!>를 계속 만드는 것 외에 앞으로 꿈이 있다면 뭘까요.
제가 제일 즐거울 때가, 아, 말하는 게 계속 무슨 성직자 같은데 저는 그냥 동물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요. 유기견 보호시설은 많아도 제대로 된 시설은 없잖아요. 나중에 시골에다 나라의 지원을 좀 받아서 좀 좋은, 제대로 된 시설을 만들어서 거기서 동물들을 도와주고 사는 게 제 꿈이에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84호 2010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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