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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불렛츠 오버 브로드웨이> [No.131]

글 |정예경(뉴욕 통신원) 사진 |Paul Kolnik 2014-09-16 4,057
뮤지컬로 온 우디 앨런식 코미디 
BULLETS OVER BROADWAY




오래전 ‘브로드웨이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개봉된 영화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원제는 ‘브로드웨이 위의 총알’, 즉 브로드웨이를 암암리에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을 은유한 것인데, 좀 더 스타일리시한 표현으로 바꿔 달았던 듯하다. 하지만 뮤지컬화 자체보다 우디 앨런의 극본과 수전 스트로먼의 연출, 두 천재의 콜라보레이션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게다가 우디 앨런이 ‘뮤지컬’을 시도하다니!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꽤 괜찮고 흠 잡을 데는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특별하고 기발한 작품도 아니었다. 분명 잘 만든 작품이지만,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만한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두 거장이 이미 나이가 든 채 만났기 때문일지 모른다. 서로 존중하고 자기 할 일에 충실하며 나름 베스트를 보여주긴 했지만, 더 새로운 것을 위해 서로 물어뜯는 젊은 창작자들의 기발함이나 절박함은 없었다. 또 ‘극’에 상당 부분을 치중하다 보니, 음악은 시종일관 카바레식이다. 뮤지컬이란 타이틀을 위해 음악을 기능적으로 배치한 것 외에 감동은 없었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현상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우디 앨런식 화법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들의 마음을 직접 건드리는 것은 그의 글쓰기가 아닌지라. 

우디 앨런식 엉망진창 소동극

때는 1920년대. 이상주의자 극작가 데이비드 셰넌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다. 프로듀서는 <갓 오브 아워 파더스(<대부(God Father)>를 패러디한 제목)>의 투자 유치를 위해 암흑가 보스의 정부 ‘올리브’를 조연으로 기용한다. 물론 올리브는 노래는커녕 화법, 태도, 재능도 몽땅 배우와는 거리가 멀다. 프로듀서는 알코올 중독과 과거의 명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왕년의 스타 ‘헬렌 싱클레어’를 주연으로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한다. 그 밖에 식탐으로 자기 관리가 안 되는 남배우와 애완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여배우도 기용한다. 



연습이 잘될 리가 없다. 일단 극본이 너무 이상적이다. 『햄릿』 같은 소설을 읊듯, 현학적인 언어 사용에 극은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한다. 게다가 올리브는 자신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눈치채고 애인인 두목에게 달려가 불평을 늘어놓는다. 두목은 자신의 오른팔 ‘치치’에게 연습 현장을 참관하라고 보낸다. 갱단이 지켜보는 연습 현장은 살벌하기 이를 데 없다. 설상가상으로 헬렌은 오랜 연륜(?)으로 새파란 애송이 작가 데이비드의 마음을 흔들며 극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는 헬렌이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다며 흥분하고, 작품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는다던 철학도 잊고 그녀 위주로 극을 바꾼다. 그를 자신의 재기에 이용할 목적이었던 헬렌은 애매모호한 말로 그의 마음을 교란시킨다. 데이비드는 오랜 기간 성심껏 자기를 뒷바라지했던 애인 ‘엘렌’을 버리려 하지만, 엘렌은 사실 그동안 그의 친구와 바람을 피웠다고 밝히며 오히려 그를 떠난다. 

망할 것이 뻔한 극 연습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는 치치는 답답하다. 그리고 하나씩 조언을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그의 지시대로 하니 극이 훨씬 나아진다. 데이비드는 그에게 점점 의지하게 되고, 밤중에 몰래 치치가 새롭게 각색한 대본을 받으러 다닌다. 처음에는 조언 수준에 그치던 치치의 간섭은 점점 대본 첨삭으로, 급기야 직접적인 글쓰기로 이어지고, 극에 대한 치치의 애정도 높아진다. 치치는 이 작품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데이비드는 이런 상황이 불안하다. 게다가 데이비드가 올리브를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치치는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자신의 위대한 작품을 그녀가 망치고 있다며 치치는 올리브를 죽여버리고, 그녀의 언더스터디가 대신 공연을 해 이 극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한편 데이비드는 헬렌에게 그간의 모든 사정을 말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그녀는 ‘보통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그를 단번에 버리고 천재 치치의 편으로 돌아선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를 파악한 보스는 치치를 찾아내 죽인다. 치치의 죽음으로 인해 무능한 작가인 자신을 발견한 데이비드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보통 남자인 자신을 사랑해줄 엘렌을 찾아 돌아간다. 

실제와 허구를 오가는 캐릭터

극작을 할 때는 정상인이 아닌 문제적 인물로 시작하고 그것을 극대화하라는 법칙이 있다. 캐릭터 설정 면에서 우디 앨런의 스킬은 참 뛰어나다. 이 극의 모든 캐릭터들은 연예계 직업군에 종사하는 문제적 인간 군상이 집약된 모습이다. 때문에 상당히 현실적이다. 반면 어떤 특징만을 부각시킨 해학적인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현실의 어두운 측면들은 과감히 생략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적당히 허구적’이고 ‘적당히 현실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자기가 천재라고 믿는 애송이 극작가 데이비드는 참 인간적인 캐릭터다. 글을 못 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출난 재능도 없는 전형적인 평범한 창작자다. 자신의 모든 글은 그 자체로 ‘아트’라 자평하지만, 라이터스 블럭(작가가 글을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 빠지면 극도로 위축된다. 배우나 평론가, 프로듀서들에게 비평을 당하면 ‘그들은 이해 못해’라고 일축하는 유리 멘탈의 소유자다. 그러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배우의 말 한마디에 설설 기며 타협한다. 

이런 소소한 재주를 지닌 남자를 애인으로서 이해하고 뒷바라지하다가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뒤안길의 여자들’을 대변하는 캐릭터 엘렌은 신파 드라마의 단골 캐릭터이다. 그녀는 ‘애인을 만들고 싶다면, 아티스트 말고 남자를 사귀어야 한다’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로맨틱한 감정으로 아티스트와 사랑에 빠져 청혼을 기다리지만, 시간만 보내다 정해진 결말을 맞는다. 그래도 통쾌한 것은 엘렌이 차이지 않고 데이비드를 차버렸다는 점이다. ‘너를 기다리다 못해 네 친구랑 잤다’라고 노래하는 엘렌은 극을 통틀어 가장 큰 박수를 받는다. 

반면 헬렌 싱클레어는 엘렌과 정반대의 캐릭터다. 상대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자신도 화답해야 하지만, 그것을 피하고 ‘단물’만 빼먹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 말도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여자다. 연예계에서 닳고 닳은 노련한 여배우가 눈물 한 방울로 애송이 작가 하나쯤 조종하는 건 일도 아니다. ‘남자가 아닌, 아티스트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라는 모토의 소유자인 그녀는 데이비드가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 즉시 그를 차버리고 치치에게로 돌아선다.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야망을 보여주는 인물의 정점에 있다. 

치치는 불운의 고스트라이터다. 드라마투르그, 어시스턴트 작가, 협력 작가, 협력 연출가 등의 다양하고 애매한 직함으로 대변되는 사람들 중엔 진짜 재능의 소유자들이 있다. 할리우드에 발로 채이는 수많은 고스트라이터들은 처음에는 다양한 이유로 이 일을 시작한다. 그중엔 치치처럼 연습 과정을 ‘보다 못해’ 자신의 책임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치치는 극작 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인생 밑바닥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작품을 쓰는 천재에 가깝다. 게다가 은연중에 연출의 위치까지 담당하게 된 치치가 재능 없는 배우를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심정도 굉장히 사실적이라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탕과 냉탕 사이, 조소와 위로 사이

음악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기능적 측면 외에도, 뮤지컬이 연극과 다른 점은 장르 자체에 상업성이나 오락성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연극과 뮤지컬 사이 그 어딘가에 놓여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전형적으로 상업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비상업적이거나 예술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재미는 있지만 뼈 있는 말이 오고 가며, 말도 안 되는 상황 같지만 무섭도록 사실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주는 뒷맛은 상당히 묘한데, ‘페이소스’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인물들이 현실적인 면을 갖췄더라도 전개되는 사건의 형태는 아주 ‘극’적이다. 사람을 죽일 때 결코 진지하지 않고, 무대 끝으로 사람을 몰아넣어 보이지 않게 한 뒤 총을 쏴버리고 ‘죽였노라’ 하는 설정으로 간단하고 우습게 현장을 보여주는 식이다. 상황이 진지할지언정 절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진지하게 이입이 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극적인 장치들이 여럿 있다. 찬물과 더운물을 잘 섞는 우디 앨런 특유의 재주다. 캐릭터들은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지만, 극 자체는 ‘난 연극일 뿐이오!’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시니컬한 작가에게 농락당한 것 같지만 욕을 할 순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극을 썼고, 연출가는 연출을 했다. 우디 앨런과 수전 스트로먼은 거대 담론을 제시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 분야에서는 자신이 스트라이커가 된다는 프로 의식이 확실했다. 특히 스트로먼의 안무가 어찌나 치열한지, 배우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정말 숨도 못 쉬고 어려운 자세에서도 춤을 소화하는 배우들이 존경스럽다. 

데이비드의 여자 친구 엘렌 역의 베치 볼프는 노래를 참 잘한다. 지난해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오프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의 주인공을 맡아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어 여러 사람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올해 단번에 브로드웨이로 왔고, 극 중 박수도 제일 많이 이끌어냈다. 재밌는 건, 바로 옆 극장에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신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기대와는 달리 그저 그런 성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재미있는 쇼와 사람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다 보면, 쇼 비즈니스의 매력에 더욱 끌릴 수밖에 없다.  



뜨겁고도 차디찬 쇼 비즈니스 세계

‘쇼 비즈니스 같은 비즈니스는 그 어디에도 없다’라는 뮤지컬 넘버가 있다. 정말 맞다. 화려하게 포장된 상위 1%의 매력을 향해 영혼을 팔아가며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잘되면 확실히 잘돼서 다른 것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 큰 시장이고, 망하면 확실하게 망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천지인 곳이다. 투자금 회수나 이윤을 목적으로 생각한다면 절대 시도할 수 없는 ‘비밀의 정원’이 이곳이다.  

능구렁이 100마리가 들어있는 듯한 프로듀서, 투자를 방패로 권력을 휘두르는 치졸한 투자자, 현실 도피와 자기 방어에 능한 능력 부족 애송이 작가, 재능은 있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거나 어떤 사정들로 남의 뒤를 닦아주는 드라마투르그, 거칠게 살아가며 명성을 탐하고 우아한 척하지만 전전긍긍하는 하루살이 배우, 스폰서와 돈으로 부족한 재능을 커버해보려는 낙하산 등등. 우디 앨런은 이들을 거침없이 냉소적으로 표현하지만, 인간적으로 포장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심한 그들이 주변 사람이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고해준다. 

헌데, 쇼 비즈니스가 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 진짜도 있어 이 비즈니스가 절대 망할 수가 없다. 그 진짜는 정말 드물기 때문에, 모두 그 진짜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진짜 명배우가 있고, 진짜 문장과 곡을 써내는 작가와 작곡가가 있다. 안목 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승부사 프로듀서도 분명 존재한다. 10년에 한 번 ‘명작’이란 게 가끔 탄생하는 세상이 이곳이다. 그래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마약 같은 곳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리스크에 기꺼이 돈을 거는 투자자들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디 앨런이 여러 인간 군상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쇼 비즈니스 같은 비즈니스는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예술이 아름다워 보여서, 무대를 동경해서 이 업계에 몸을 담은 사람들이 3년 내에 떠나고 마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세계는 무대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꿈의 장소가 아니다. 어느 곳보다도 치열한 전쟁터이고, 마지막에 살아남아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만이 굵고 짧게 한마디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우디 앨런이 이런 풍자극을 쓴 이유는 자신도 그렇게 살아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렛츠 오버 브로드웨이’의 총알은 극 중에서는 갱스터의 권력을 뜻하지만, 사실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꿈을 이루기 위해 거치는 모든 시험의 관문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1호 2014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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