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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머더 발라드> 강태을 [No.123]

글 | 이민선 |사진 | 김수홍 2014-01-02 5,007

이제 무대에서 솔직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강태을은 <그날들>과 <머더 발라드>의 무대에 올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눈에 띄는 외모와 안정된 실력으로 꾸준히 대형 공연에 출연해왔지만, 두 작품에서 본 강태을은 이전까지 알던 그와는 분명히 달랐다.

 

 

 

 

 

기대와 실망의 동행

2008년 뮤지컬계에서 반짝하고 사라진 시도가 있다. 뮤지컬 TV 공개 오디션. 국내에서 <슈퍼스타K>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이 붐을 일기 전이었지만, 막 영국과 미국에서 뮤지컬 TV 공개 오디션의 성공 사례가 나온 때였다. 대중들의 관심 속에 새로운 인물을 선발하고, 그 배우가 출연한 공연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이런 선례를 이어가길 기대하며, <마이 페어 레이디>와 <헤드윅>, <돈 주앙>의 세 제작사는 방송사와 손을 잡고 서바이벌 오디션을 치렀다. 그때 오디션을 통해 신데렐라처럼 주인공의 자리에 오른 이가 임혜영과 이주광, 강태을이다. 임혜영과 이주광은 국내에서 몇몇 작품을 경험하며 막 배우로서 발을 뗀 이들이었으나, <돈 주앙>의 주인공을 거머쥔 강태을은 국내 뮤지컬 관계자나 관객들에게 생소한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혜성 같은 신인 배우의 등장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강태을의 훤칠한 외모와 또렷한 인상, 탄탄한 실력은 대형 신인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국내 관객에게는 낯설었지만, 그는 준비된 신인이었다. 2004년 일본 극단 시키의 연구생으로 연수를 받기 시작해, 2008년까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아이다>, <캣츠> 등에서 앙상블 또는 조연으로 무대에 섰다. 체계적인 수업과 까다로운 연습으로 유명한 극단 시키에서 배우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다지고 대형 무대 경험까지 갖춘 상태였던 것. 그런 그를 뮤지컬 관계자들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돈 주앙>의 TV 오디션 결과가 나온 후 실제로 공연이 개막하기까지 반 년가량의 시간이 남았고, 강태을은 돈 주앙을 연기하기 전에 고궁뮤지컬 <대장금>과 컬트 뮤지컬 <록키 호러 쇼>에서 먼저 관객을 만났다. 한국 뮤지컬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연이어 세 작품의 캐스팅 보드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게다가 <대장금>에선 당시에 뮤지컬 스타였던 조정석과 더블 캐스팅됐고, 그와 더불어 <록키 호러 쇼>의 주인공 프랑큰 퍼터 역을 맡은 홍록기와 송용진, 김태한은 경험과 인지도, 실력에서 그보다 앞서는 이들이었다.


5년이 지난 후, 강태을은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정신없었죠. 이렇게 많은 일을 해도 되나 걱정돼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누구나 꿈꾸는 정말 감사한 기회니까 일단 열심히 소화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 말씀이 맞았어요. 당시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다 제 안에 차곡차곡 쌓였어요.” 국내 무대에 데뷔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세 작품을 마쳤고,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쉬이 꺼지지 않았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어쌔신>, 원맨쇼에 가까운 록 뮤지컬 <헤드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쉬운 작품이 있겠냐마는) 난이도 ‘상’의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는 영광을 얻은 강태을은 “(그땐) 무대에서 즐겁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신인 배우가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그를 향하던 시선에 거품이 걷히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한국에서 배우로 자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지배적이었어요. 그래서 큰 작품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맡는 게 처음엔 좋았는데, 공연을 하고 나면 즐겁기보단 허전하고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대장금>이나 <록키 호러 쇼>에서 저랑 더블 캐스팅된 선배들의 연기 내공을 보면서 ‘저들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게 나오지? 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런 다음에 만난 게 <어쌔신>이었어요. 연기파 배우들이 힘 하나 안 들이고 분위기를 확확 바꿔버리는데, 저는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쓰고 노래를 불러 봐도 맘대로 되질 않는 거예요. 게다가 <헤드윅>은 혼자 이끌어 나가며 관객과 호흡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했죠. 그땐 정말 와르르 무너졌어요. ‘아, 더 나아갔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브레이크를 걸었어요.” 강태을에겐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뜨거웠던 한 해가 그렇게 갔다.

 

 

 

 

 

새로운 도약
한동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무대에 올랐지만, 한때의 영광은 금세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전처럼 강태을을 주목하지 않았다. 남들의 기대가 주춤할 때 자신을 향한 애정과 노력에 게을렀던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서 정말 다행이다. 올해 <그날들>에서 유준상과 오만석이라는 이름에 다소 가려졌던 강태을은 의외의 호평을 받으며 다시 자신의 이름을 빛냈다. “어떻게 연습했는지가 무대에 그대로 반영되더라고요. 연습하는 게 재밌으면 공연도 정말 즐기면서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이 공연을 하면서 ‘다음 작품은 뭐하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 하는 작품에 집중하면서 연습을 그렇게 재밌게 한 건 <그날들>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머더 발라드> 역시 연습실에 가서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 만나는 것부터가 좋았어요. 주위에서도 제가 정말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단 게 느껴진대요. 공연하는 기쁨과 행복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신인 배우가 데뷔하자마자 줄곧 막중한 배역을 맡았고 잘 해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이 심해서, 주어진 대로 자신의 몫을 해내는 데 급급했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 그러던 그에게 변화를 안겨 준 작품이 <몬테크리스토>였다. 데뷔할 때의 스포트라이트가 걷힌 후 처음으로 조연을 맡았다. “과거에 주연을 맡았을 땐 정해진 것 하느라 바빴어요. 그런데 조연이라 절대적 비중이 적은 만큼, 제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이렇게 또 저렇게 시도해볼 여유가 많았어요. 연습 때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치는 게 중요하단 걸 그때 알게 됐죠.” 그런 깨달음이 있은 후, 올해에 선보인 <그날들>과 <머더 발라드>에선 머릿속으로 상상한 걸 더듬는 대신 자신의 내면에 있는 걸 끄집어내 보여주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전에는 제가 할 수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내서 연기했다면, 지금은 솔직하게 저를 보여줄 수 있게 됐어요.” 2013년은 자신이 어떤 배우인지 알게 된 해였다고 말하며, 강태을은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헤드윅>과 <렌트> 등 강태을은 록 뮤지컬에 다수 참여했다. 현재 공연 중인 <머더 발라드>도 팝과 록이 주를 이룬다. 고등학교 때 록 그룹 활동을 했고, 처음 인상적으로 들었던 뮤지컬 넘버 속 목소리가 아담 파스칼의 것이었다며, 그는 록 음악에 대한 관심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Mouth Tattoo’를 벨소리로 저장해둘 정도로 <머더 발라드>의 음악에도 애정을 드러냈다. 더불어,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맡은 탐 역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탐이 나쁜 남자 같지만 정말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에요. 탐은 넷 중 유일하게 누굴 죽이려는 마음을 안 먹었거든요. 그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서 말한 배우 강태을의 변화가 이런 것인가 실감할 수 있었다. “<머더 발라드>는 음악과 형식이 매력적이죠. 어느 곳을 봐도 관객이 있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말하듯 노래하고 관객과 소통할 수 있죠. 제가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고, 일본에서 발레와 재즈 댄스 등 다양하게 연습했어요. 몸 쓰는 건 자신 있죠. 바 위를 뛰어다니니 신나고 재밌어요. 관객 분들은 뭐든 좋으니 각자가 바라는 대로 상상하면서 보시면 좋겠어요.” 시원한 보컬과 힘 있고 날렵한 움직임, 강인한 외모는 탐 역에 ‘딱’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어쩐지 강태을의 평소 목소리와 말투에선 전혀 ‘나쁜 남자’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스럽고 ‘허당’ 같아 귀여움이 묻어난다. 친해지고 나면 애교도 잘 부린단다. 아쉽게도 그런 그의 실제 모습이 드러나는 연기는 본 적이 없는 듯하다고 말하자, “저의 최종 목표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해 큰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도 제게 로맨틱 코미디를 맡겨볼 생각을 못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한테 오기만 하면 아작 납니다. 지금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어느 정도 한정돼 있잖아요. 전 거기에 찬물을 좀 끼얹고 싶어요.(웃음) ‘너네만 하지 말고 같이하자~’ 그들을 밀어내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살짝만 비켜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그러나 어쩌나, 애석하게도 차기작은 <영웅>으로 정해졌다. 다음 해에는 강태을의 로맨스 연기를 볼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의 ‘로코 잠재력’이 발휘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3호 2013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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