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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ALON] <킹키부츠> 엔젤 [No.155]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헤어·메이크업 | 신나나 2016-08-11 13,022

아름다운 남자들


폐업 위기에 처한 구두 공장이 여장남자를 위한 부츠를 개발하며 재기하는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킹키부츠>. 이 무대에는 화려한 의상과 아찔한 킬 힐, 짙은 화장을 하고 나타나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떨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여섯 명의 여장남자 ‘엔젤’이다. 늘씬한 몸매와 요염한 춤사위로 시선을 강탈하는 <킹키부츠>의 아이돌, 엔젤들과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완벽한 변신을 위하여


다섯 분은 초연 멤버이고 진상 씨는 재연에서 새롭게 합류한 멤버죠. 각자 엔젤 역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한선천  오디션 소식을 들은 건 한창 <댄싱9> 갈라 공연을 하던 때였어요. 당시 갈라 공연의 PD님이 새로 올리는 뮤지컬에 저랑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며 추천을 해주셨죠. 그때만 해도 뮤지컬이란 장르를 전혀 몰라서 망설였는데, 브로드웨이 공연 영상을 보니 엔젤들이 너무 사랑스럽더라고요. 이 역할은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용기를 냈어요.
김준래  전 처음부터 엔젤로 지원한 건 아니었어요. 3차 오디션까지 보고 나서 외국 크리에이티브 팀 눈에 띄었는지 엔젤 노래를 준비해 오라는 연락을 받았죠. 그래서 부랴부랴 아는 여배우에게 화장을 받고 노래 연습을 해서 갔어요.
송유택  저도 그날 형이랑 같이 오디션을 봤어요. 형이랑 저는 1차 오디션 때부터 바로 앞뒤 순서였는데 신기하게 끝까지 함께 올라왔죠.
우지원  저도 비슷해요. 원래는 다른 역으로 지원했는데 2차 오디션 때부터 엔젤 역을 준비해오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는 엔젤이 어떤 역인지도 잘 몰랐는데, 중요한 역할이라는 말만 듣고 좋다고 했죠.
권용국  저도 원래는 해리 역에 지원하려고 했다가 미국에서 <킹키부츠>를 본 친구에게 엔젤이 너무 멋지더라는 말을 듣고 급하게 바꿨어요. 여장이 필요한 역할인 건 나중에야 알았죠.
박진상  저는 <킹키부츠>가 초연했을 때 군대에 있었어요. 휴가를 나와 겨우 공연을 봤는데, 보자마자 엔젤 역할에 반해 버렸죠. 그러다 전역 후 <뉴시즈>에서 뉴스보이 스윙을 맡으면서 ‘버튼’이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어요. 단추 모으기가 취미인 소년인데 그때 제가 약간 여성스럽게 연기를 했거든요. 그걸 보고 안무 감독님이 엔젤 오디션을 제안해 주셨어요. 원래 차기작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너무 하고 싶던 역할이라 덥석 하겠다고 했죠.


오디션 때부터 여장을 하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고 하던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한선천  전 무용이 전공이고 뮤지컬 오디션은 처음이라서 오디션장에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다들 ‘푸르르~ 으아아!’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목을 풀고 있는 거예요. 게다가 여장까지 하고서! 너무 적응이 안 돼서 고개도 못 들고 스트레칭만 계속했어요. 저는 옷도 그냥 추리닝을 입고 갔거든요.
송유택  그래도 네가 제일 예쁘더라! 저는 여장이 처음이라서 어머니 친구분께 빌린 형광 에어로빅 복에 스티커 사진 찍을 때 쓰는 것 같은 오렌지색 삐삐 가발을 쓰고 갔거든요. 나중에 저희끼리 오디션 때 얘기를 하는데 형들이 그러더라고요. ‘그 오렌지색 가발 쓴 애 기억 나냐, 걔는 딱 봐도 떨어지겠더라.’ (일동 웃음) ‘그거 전데요’ 했더니 다들 충격 받았죠.
박진상  저는 다행히 <뉴시즈> 공연 중에 오디션을 봐서 분장 팀 누나들이 화장을 다 해줬어요. 속눈썹에 반짝이까지 붙여서. 그때 여자 옷도 처음 사봤죠.
우지원  저는 미용실에서 화장을 받았는데, 그대로 거리에 나가기가 민망해 오디션장까지 택시를 탔어요. 그런데 내릴 때 기사님이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먹고살기 힘드시죠?’ (웃음)
권용국  저는 다른 지원자와 다르게 여자가 아닌 게이 느낌을 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남자 옷을 입고 아이라인만 그린 채 오디션을 봤죠. 제대로 된 여장은 오디션에 붙고 나서 처음 해봤는데, 그때 사진을 어머니한테 보냈더니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젊은 시절 당신 얼굴이라며! (웃음) 어머니가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 제 사진을 올렸는데, 고향 친구들한테 어떻게 이렇게 젊어졌냐는 연락이 쏟아졌다면서 엄청 좋아하셨어요.



공연 전부터 여자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연습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우지원  네, 그래서 저희끼리 명동에 여자 옷을 사러 가기도 했어요. 다들 쭈뼛거리며 할인 코너에서 한두 벌씩 골랐는데, 그중에 신상품을 한아름 안고 돌아온 사람이 한 명 있었죠.
한선천  저요. (웃음) 다들 4만 원 정도 나왔는데 저만 10만 원 넘게 나왔더라고요. 근데 연습할 때 펑퍼짐한 추리닝 입는 거랑 딱 달라붙는 여자 옷 입는 거랑 확실히 느낌이 달라요. 태도부터 걷는 스텝까지 달라지거든요. 제일 힘든 부분은 계속 하이힐을 신는 거였어요. 걷는 것도 힘든데 춤추고 점프까지 해야 하니까 발바닥부터 허리까지 안 아픈 데가 없더라고요.
우지원  외국 스태프는 하이힐 신은 저희를 보고 ‘밤비’라고 불렀어요. 무릎도 못 펴고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걷는다고. 초반엔 빨리 익숙해지라고 쉴 때도 신발을 못 벗게 했는데, 정말 울고 싶더라고요. 여자들에게 빨리 걸으라고 재촉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반성했어요.
권용국  그래도 여자들이 왜 힐을 신는지 알겠더라고요.
한선천  맞아요! 다리 라인도 예뻐지고 자세도 당당해지니까.
우지원  늘 다리가 긴 모습만 보다가 힐을 벗으면 그렇게 초라해질 수 없더라고요. 거울을 보면 계속 다리가 짧아 보여서 공연 끝나고 자신감을 되찾기까지 3개월은 걸렸어요.


한선천  공연 때마다 화장하는 것도 일이었죠. 항상 콜 타임보다 일찍 가서 분장을 받는데, 무대 화장이다 보니까 되게 두껍거든요. 피부 트러블로 고생 좀 했어요.
우지원  처음에는 분장 시간도 길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분장 팀도 손이 빨라져서 한 달쯤 지났을 땐 20분이면 끝나더라고요.
권용국   저는 초반에 분장을 세 번쯤 바꿨어요. 처음에는 진짜 세 보이게 분장했거든요.
송유택  난 그때 형 보고 복서인 줄 알았잖아. (웃음)
권용국  나도 놀랐다니까. 근데 전 오히려 마음에 들더라고요. 어차피 예쁜 걸로는 승부를 보기 힘드니까 아예 강하고 불량스러운 컨셉으로 가고 싶었어요. 말하자면 롤라의 오른팔처럼! 근데 외국 스태프가 보더니 너무 놀라며 이건 아니라고 해서 결국 바꿨죠.
송유택  하이힐처럼 화장도 연기할 때 자신감을 더해 줘요. 분장 마지막에 입술이랑 가슴골은 저희 스스로 그리는데, 처음에는 다들 소심하게 그리다가 점점 경쟁이 붙어서 나중에는 가슴골이 쇄골까지…. (일동 웃음)
박진상  그 맘 알 것 같아. 얼마 전에 의상 피팅을 하다가 ‘초연 배우보다 가슴이 작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괜히 자존심이 상하더라고.
송유택  너도 이제 올려 그려야지.




여섯 색깔 엔젤


각자 ‘엔젤에서 이것을 맡고 있다’는 자기소개 멘트가 있죠. 그건 어떻게 정한 거예요?
한선천  인사 멘트가 필요하다고 해서 저희끼리 얘기해 정했어요. 저는 원래 ‘여자보다 예쁜 한선천입니다’였는데 전에 TV 토크쇼에 나가서 그렇게 소개를 하니까 반응이 싸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지금은 그냥 ‘막내 엔젤’로 바꿨죠.
권용국  저는 초연 때 오만석 형이 지어주셨어요. ‘군기반장’이라고.
송유택  딱 봐도 군인 느낌 나지 않아요? (웃음) 형이 연기할 때 제스처는 엄청 여성스러운데 실제로는 상남자 스타일이에요. 대기실에서도 웃통 다 벗고 있고.
김준래  형, 동생 구분도 없다니까요. 누구든 친구처럼 대해서 형인 저한테도 ‘준래~ 이리와 준래~’ 이래요. 근데 그게 또 밉지가 않아.
송유택  준래 형은 다리가 워낙 예뻐서 ‘각선미’ 담당이에요. 지원 형은 ‘백치미’ 담당이었나?
우지원  난 업그레이드했어. 단아함으로. (일동 웃음)
송유택  저는 ‘목소리’를 맡고 있어요. 엔젤 중에 유일하게 대사가 있거든요. 하이 톤으로 목소리를 내야 해서 고생했는데 이젠 적응됐어요.
김준래  유택인 작년에 성우 시험도 봤어요.
송유택  아유, 그냥 한번 본 거예요. 제가 더빙 만화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주변 사람 목소리 흉내 내는 것도 좋아하고.
박진상  저는 재연에 새롭게 합류해서 ‘신선함’을 맡기로 했어요.
한선천  이제 같이 연습하면서 다른 걸로 바꿔야죠.
김준래  그럼. 우리끼린 벌써 질렸는데. (웃음)


여섯 명의 엔젤 모두 개성이 다른데, 처음부터 주어진 캐릭터가 있었나요?
김준래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가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있긴 해요. 유택이랑 선천이는 금발, 지원이는 붉은 머리, 그리고 저랑 용국이는 흑인이라는 설정이죠.
우지원  통념적으로 금발은 백치미가 있고, 붉은 머리는 섹시하고, 흑인은 야성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게 캐릭터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 같긴 해요.
한선천  하지만 저희가 정해진 대로 연기하는 건 아니에요. 배우마다 자기가 가진 색깔이 우러나오는 거죠. 연습하면서 각자 그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송유택  연습을 시작할 때 외국 스태프가 재밌는 숙제를 내줬어요. 대중적인 스타 중에 네가 드랙 퀸이 된다면 본받고 싶은 모델을 찾아보라고요. 제 롤모델은 케이티 페리였어요.
우지원  전 스칼렛 요한슨.
한선천  전 비욘세요. 외국 스태프가 보여준 드래그 퀸 쇼 영상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드래그 퀸이라도 제각각 개성이 다르다는 걸 그 영상을 보며 깨달았죠.



김준래  저는 ‘In This Corner’에서 심판으로 등장해 노래와 춤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데, 외국 스태프가 ‘티나 터너를 봐라, 그녀는 노래하면서 절대 춤을 멈추지 않는다’고 해서 티나 터너 공연 영상을 많이 참고했어요.
박진상  제 롤모델은 제이핑크예요. 남자 춤을 출 땐 제이블랙, 여성 춤을 출 땐 제이핑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댄서인데, 그런 파워풀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요.
권용국  저는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에서 만난 분들! 초연 때 공부삼아 다 같이 트랜스젠더 바에 찾아갔거든요. 전 개인적으로 몇 번 더 갔어요. 다들 너무 유머러스하고 말을 잘해서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누가 뭐라던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으로 가득해서 멋있었어요.
송유택  그러니까 바라보는 저희도 더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엔젤을 연기할 때 그런 태도를 많이 본받았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가 하나같이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설치는 거예요. (웃음)
권용국  트랜스젠더 바에서 만난 분들이 저희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하셨어요. 2열쯤에 단체로 앉아서 흐뭇하게 지켜보다 가시더라고요.
송유택  공연이 끝나고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영감을 받아 준비한 공연을 다시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소통이었던 것 같아요. 신기한 경험이었죠.


등장할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뀌는 스타일도 인상적이에요.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의상은 뭐예요?
한선천  ‘In This Corner’에서 입는 비키니요. 처음 입었을 땐 너무 창피해서 도저히 무대에 못 설 것 같았는데 공연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에는 비키니 라인도 더 파달라고 하고, 다리도 쫙 벌리고 섰어요. (웃음)
김준래  ‘In This Corner’에서 입는 심판 의상은 디테일이 재밌어요. 조그만 호루라기와 권투 글러브가 달려 있고 69라는 숫자도 써 있는데 대극장이라 관객 눈에 안 보이는 게 아쉬워요.
송유택  저는 ‘Everybody Say Yeah!’에서 입는 밝은 노란색과 초록색 옷이요. 제가 입으면 ‘뽀미 언니’가 따로 없는데, 노래에 맞춰 춤출 때 더 신 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권용국  제 의상은 전체적으로 여전사 느낌이에요. 그중에서도 피날레 옷은 온통 체인으로 둘러져서 진짜 무겁거든요. 걸을 때마다 철컥철컥 소리가 나고, 벗을 때도 쿵 떨어져요. 어깨에는 뾰족한 뿔도 달려 있어서 춤추다 손을 찔린 적도 있어요. 마무리 동작을 하는데 손에서 피가 쫙! (웃음) 그 옷이 가장 힘들면서도 애착이 가요.
우지원  저도 피날레에서 입는 핑크 드레스가 가장 맘에 들어요.
박진상  저는 영상으로 봤을 때 ‘The Land of Lola’에서 쓰는 단발머리 가발이 섹시해 보이더라고요. 그걸 제일 기대하고 있어요.

본인이 등장하는 장면 중에 주목해서 봐주었으면 하는 장면 하나씩만 소개해 주세요.


한선천  저는 아무래도 비키니 입고 라운드 걸로 등장하는 장면이요.
권용국  같은 장면에서 저는 바닥에 누워 다리로 복싱 링을 잡고 있는데, 관객분들이 그걸로 많이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나름 누운 채로 연기도 열심히 해요. 다른 배우가 지나갈 때면 머리카락 밟지 말라는 제스처도 취하고, 돈이 가까이 오면 싫어하기도 하고. 하지만 조명이 다리까지만 비추니까 자세히 안 보면 모르실 거예요.
우지원  엔젤들 넘버가 음역대도 엄청 높은 거 아세요? 저랑 준래 형은 3옥타브 레샵까지 찍거든요. 저희 둘은 찰리의 넘버인 ‘Soul of A Man’에서도 무대 뒤에서 코러스로 노래해요. 찰리의 감정이 최고조에 있는 곡이기 때문에 저희도 최선을 다해 열창하고 있죠. 
김준래  저도 이 장면을 뽑고 싶어요. 안 보이는 곳에서 찰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노래하지만 저희 솔로 곡처럼 온 힘을 다하고 있어요.
박진상  저는 힐 신고 백텀블링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잘해서 오디션에 합격하지 않았나 싶어요. 힐 때문에 엄청난 기술을 보여드리긴 힘들 것 같고, 헤드스핀이라면 할 수 있으려나?
송유택  진상이가 비보이 출신이라 몸을 진짜 잘 쓰거든요. 춤도 금방 외우고 끼도 많아서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저는 뭐, 엔젤이 나오는 장면은 다 좋아요. 엔젤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가 단체로 춤을 춰도 그중에 특정 엔젤을 기억해 주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한선천  근데 연습할 때 보면 유독 신 스틸러 느낌이 나요. (웃음)
송유택  제가 꼭 하나씩 더 하죠. 손가락 하나라도 더 움직이고. (웃음) 초연 때는 그런 선의의 경쟁이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로 작용한 것 같아요. 이번 재연에서도 열심히 해봐야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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