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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모차르트>의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No.75]

글 |정세원 사진 |심주호 2010-01-05 5,618


 

보편적 인간에 대한 노래는 한국에서도 통할 것

 

2010년 국내 초연 무대를 앞두고 있는 <모차르트>는 흔히 알고 있는 하늘이 내린 작곡가의 괴팍한 천재성이 아닌, 작곡가가 귀족과 성직자에게 봉사했던 중세시대에 근대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가졌던 인간 모차르트의 성장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일어권 뮤지컬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작곡가인 실베스터 르베이가 한국을 찾았다. 8세 때부터 음악 공부를 시작해 우리 나이로 올해 64세가 된 이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는 1975년 실버 컨벤션의 ‘Fly Robin Fly’로 그래미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엘튼 존, 도나 썸머, 시스터 슬레지, 허비 맨 등의 팝 가수들과 음악 작업을 했고, 1980년 이후 할리우드로 적을 옮겨 <코브라>, <핫샷>, <터치 앤 고우>, <플래시 댄스> 등의 영화음악 작업을 하면서 20여 년을 보냈다. 미국 TV 액션 시리즈 <에어울프>의 주제곡 역시 그의 작품.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삶을 뒤로 하고 실베스터 르베이가 뮤지컬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독일어권 뮤지컬의 자존심이라고 칭송받는 극작가 미하엘 쿤체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룬 <엘리자베트>가 ‘독일어권에서 가장 성공한 뮤지컬’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실베스터 르베이 또한 뮤지컬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그의 세 번째 뮤지컬 <모차르트>는 <엘리자베트>의 화려한 성공을 맛본 이후의 작업이라 결코 쉽지 않았을 작품이다. 연습실에서 만난 실베스터 르베이는 초연한 지 10년 만에 성사된 <모차르트>의 한국 공연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하기 전에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뮤지컬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오랜 친구인 미하엘 쿤체로부터 <엘리자베트>의 음악 작업을 제안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중음악과 영화음악 작업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인정도 받고 나름의 커리어도 쌓고 있었지요. 뮤지컬 작곡은 상당히 매력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음악은 배우의 연기와 영상, 대사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인 데 반해 뮤지컬은 음악과 가사를 통해 작품 전체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곡을 쓰는 사람에게 뮤지컬만큼 매력적이고 도전적인 장르가 또 있을까 싶었지요. 미하엘과의 첫 작품인 <마녀, 마녀> 이후로 할리우드에서의 음악 인생을 포기했지만 저나 제 아내 모두 멋진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하엘 쿤체와 아주 오랜 친구시더군요. 그와 함께 작업한 실버 컨벤션의 ‘Fly Robin Fly’는 당신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와는 1972년 뮌헨의 한 뮤직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우연히 그곳을 들렀는데 그가 프로듀싱하고 있는 곡의 피아노 작업을 같이 해주지 않겠냐고 해서 잠시 도움을 준 적이 있었지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한동안 같이 음악 작업을 했습니다. ‘Fly Robin Fly’는 데모 연주를 미하엘이 듣고 같이 작업해서 독일의 여성 3인조 디스코 그룹인 실버 컨벤션을 통해 발표한 곡입니다. 팝 댄스 곡인데 1975년 미국에서 3주간 1위를 기록한 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지요. 이후에 발표한 ‘Lady Bump’와 ‘Get Up and Boogie’도 독일과 미국에서 히트했습니다. 다시 함께 작업하기까지는 10년도 더 걸렸지만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긴밀하게 지냈습니다.


두 분의 뮤지컬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습니까.
대체적으로 미하엘이 전반적인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해 방향을 정한 것을 토대로 인물의 분위기나 이미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한 후에 곡 작업을 합니다. 스토리는 인간의 감정적인 경험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내가 작곡을 할 때 기본적인 동기가 되며, 음악과 스토리와 감정이 늘 함께 하는 것이 제 작업의 목표입니다. 한편, 멜로디적으로도 완전함을 유지하려고도 노력하는데, 중요한 넘버인 경우에는 곡을 먼저 쓴 후에 가사를 붙입니다. <모차르트>의 넘버 중 난넬의 곡 ‘왕자는 떠났어(Der Prinz Ist Fort)’와 볼프강의 모든 메인 테마, 아버지 레오폴트의‘네 마음을 꼭꼭 숨겨라(Schliess Dein Herz In Eisen Ein)’, 대주교 콜로레도가 부르는 ‘어떻게 가능할까?(Wie Kann Se M쉍lich Sein?)’, 콘스탄체의 ‘어디선가는 춤을 추고 있겠지(Irgendwo Wird Immer Getanzt)’는 곡 작업을 먼저 한 노래들입니다.


당신과 미하엘 쿤체가 탄생시킨 <모차르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재 음악가를 그리지 않습니다. 고전 의상을 입은 인물들 사이에 청바지를 입고 샤우팅을 하는 모차르트를 세운 것만으로도 작품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미하엘과 같이 작업을 하면서 모차르트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주위 환경-아버지, 대주교,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이라는 점에서 선구적인 음악가였습니다. 저희는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그는 귀족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결정하고 작곡하는, 창조적인 작업에 있어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이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가 ‘위대한 현대적인 투사’인 동시에 굉장히 미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쓴 오페라 <마술피리>만 보더라도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작품이 아닙니까.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신동으로 사랑받던 어린 시절의 모습 ‘아마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진정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자유롭기를 바라는 볼프강의 인생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었습니다.                                

                                   

                                        <모차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 작곡가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은 작곡가로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듯합니다. 미하엘 쿤체의 작품들이 인물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시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요구한다는 점도 그렇고 말입니다.
제가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매우 독창적이고도 천재적인 모차르트의 음악이었습니다. 미하엘과 저는 모차르트를 다룬 거의 모든 책들과 그의 작곡 일지 등을 거의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의 영혼으로 통하는 캐릭터의 문을 찾고 그의 인생을 나의 음악으로 구현해내려면 그의 음악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를 지배했던 영혼까지 알아야 제 음악 안에서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볼프강의 어머니가 죽는 장면에서는 인물 고유의 캐릭터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를 알아야 했지요. ‘곡 작업에 앞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차용할 것인가’, ‘오롯이 내가 만든 곡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야 했습니다. 결국 제 음악 안에서 그를 녹여내기로 했지만, 극 중에서 모차르트의 또 다른 자아인 ‘아마데’가 작곡을 하는 장면에서는  모차르트의 곡을 16마디 정도 삽입하는 아주 대담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모차르트의 엄마가 죽는 장면과 레오폴트와 싸우는 장면, 그리고 거의 미쳤을 때의 장면에서도 그의 음악을 아주 조금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 제가 갖고 있는 모차르트의 음악 중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곡도 몇 곡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스타일을 가진 곡도 있고, 또 어떤 곡은 베토벤의 ‘운명’과 멜로디가 비슷한 곡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후대 음악가들을 위해 신께서 모차르트를 먼저 데려가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이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굉장히 많은 노력과 준비가 필요했을 듯합니다. <모차르트>의 경우 얼마나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했을까요.
6년 정도 걸렸습니다. <엘리자베트>는 5년, <레베카>는 6년 동안 준비했지요. 저희는 매일 온종일 계속해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2~3개 장면 정도를 한 주에 작업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하다가 4~5주 후에 다시 만나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작업을 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두고 검토를 했지요. 중요한 것은 드라마와 음악 모두가 하나가 되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기 위해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30퍼센트 정도의 재작업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여 무대에 올렸다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요.
미하엘이나 저는 ‘거울을 앞에 둔 아티스트’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지요. 경제적인 흥행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간 관객들에게 남아있는 작품에 대한 느낌이 더 중요합니다. 객석에서 보여주는 관객들의 반응에도 많은 신경을 씁니다. 실제로 <모차르트> 초연 당시 두 번째 장면에서 볼프강이 부르는 노래에 대한 관객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서 며칠 후에 ‘빨간 치마(Der Rote Rock)’로 교체했고, 이 곡은 그 후로 관객들이 좋아하는 곡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볼프강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나 음악을 통해 그들에 대한 애정도 많이 느껴집니다. 작곡가로서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까.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갈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볼프강의 누나인 난넬에 대한 애잔함을 갖고 있습니다. 모차르트 못지않은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난넬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 극의 특성상 많은 희생을 요구받습니다. 또한 대책 없이 자산을 탕진하는 볼프강을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는 착한 누나이기에 그녀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엘리자베트>

 

당신의 작품들은 풍요롭고 화려한 오케스트라와 코러스의 깊은 울림이 인상적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역사적인 인물을 현대적인 록과 팝, 재즈 등의 음악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트>를 처음 작업했던 때가 1988년이었습니다. 한 세기 전의 인물인 엘리자베트를 현시대로 불러오기 위해서는 음악을 현대식으로 융화시키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모차르트>는 그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쓴 작품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라는 클래식한 부분과 현대적인 록이 무대 위에서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랍니다만, 특별히 록 음악을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저는 11살 때 프랭크 시나트라 등의 미국 음악을 좋아하게 됐고, 14~15세 때에는 마일즈 데이비스 등의 재즈에 빠져들었습니다. 영화음악 작업을 할 때는 일렉트로닉 음악도 경험을 했지요. 뮤지컬 음악을 작업할 때는 다양한 장르를 사용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클래식 음악을 기초로 두어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하엘 쿤체와 당신이 발표한 작품들이 곧 독일어권 뮤지컬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에 따르는 책임감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글쎄요. 미하엘과 저는 ‘독일’ 뮤지컬보다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뮤지컬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독일어권을 대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정확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 작품이 어느 나라에서 공연을 하든,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도움을 주어야겠지요. 지금 한국에 와서 배우들을 만나고 당신과 인터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유럽 왕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일까요, 당신의 작품들에 대한 일본 관객들의 애정은 매우 특별한 것 같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 일본에서 초연 무대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엘리자베트>와 <모차르트>의 일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토호 극단이 미하엘과 제게 엔도 슈사쿠의 원작을 토대로 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먼저 제안해 왔습니다.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은 프랑스 왕비의 삶도 흥미로웠지만 일본 극단, 일본인 연출가와의 협업이 재밌었습니다. 일본 관객들과의 만남 또한 환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엘리자베트> 이후로 모든 작품들이 일본에서 공연되었는데, 제 생각에 일본 관객들은 약간 멜랑콜리한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슬픈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에도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어 공부를 많이 하는 듯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모차르트> 한국 공연의 성공 가능성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 작품의 목표는 인간에 대한 드라마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함부르크에서도 모차르트에 대한 관심이 비엔나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우리 자신의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배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까.
오디션 영상으로 봤을 때도 기량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그들의 열정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기분 좋았습니다. 배우들의 노래 연습을 지켜봤는데 각 인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듯했습니다. 특히 정선아는 그동안 봐왔던 콘스탄체들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배해선은 상상했던 난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눈물까지 흘렸지요. 배우들에게 바라는 주문은 하나뿐입니다. 노래를 할 때 멜로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고 가사에 충분히 빠져든 후에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공연의 연출과 음악감독과의 이야기 도중에 프롤로그를 시작하기 전에 2~3분 정도의 서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직접 작곡해서 한국 관객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5호 200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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