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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키다리 아저씨> 임혜영 [No.164]

글 |배경희 사진 |이배희 장소협찬 | 비투프로젝트(02-6369-2900) 2017-05-26 5,302


영원한 소녀에서
성숙한 숙녀로


지난해 가을 마지막 작품을 끝내고 잠시 공백기를 보낸 임혜영이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 에보트로 돌아왔다. 지난해 초연된 <키다리 아저씨>는 동명의 인기 소설을 2인극 무대로 옮겨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신인 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줄곧 대극장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해 온 임혜영이 소극장 무대에 서는 것은 10년 만이다. 밀도 높은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작은 극장에서 사랑스러운 소녀의 성장 드라마를 보여줘야 하는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가을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끝내고 나서 오랜만의 작품 소식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브로드웨이 42번가> 지방 공연이 작년 10월 말쯤 끝난 것 같아요. 그 작품이 특별히 힘들었던 건 아닌데, 공연을 한 템포 쉬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 10년 동안 정말 쉼 없이 달려왔거든요. 근데 마침 원래 하려던 공연 계획이 변경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죠. 쉬는 동안 운 좋게 드라마도 살짝 경험해 봤고요. 드라마 출연은 계획에 없던 건데,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신 피디님이 <오 마이 금비> 출연 제의를 해주셔서 오디션을 보게 됐거든요. 아무래도 드라마 쪽에서는 제가 신인이다 보니 조금 뻔한 말일지 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다 생각하고 누렸던 것들이 사실은 굉장히 특별한 것들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됐죠.


쉬는 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어땠어요? 뭐가 가장 후회되던가요?
후회는 항상 해요.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항상 아쉽고, 너무 후회되고. (웃음) 제일 아쉬움이 남은 작품은 데뷔 초에 했던 <마이 페어 레이디>인데, 한편으론 신인 때 어떻게 그런 큰 작품을 했나 싶기도 해요. 이십 대 후반이었으니까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요.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나 <미스 사이공>의 킴도 좀 더 나이 먹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고요. 지금 만약 킴을 다시 하면 관객들을 펑펑 울릴 수 있을 텐데! (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 경험이 부족했을 때 내면의 깊이를 요구하는 작품을 만났던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그때 당시엔 최선을 다했지만, 기회가 좀 더 천천히 찾아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은 거죠.


한 템포 숨고르기를 한 만큼 작품을 고르는 데도 더욱 신중했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만나길 기다렸어요?
작년에 <드라큘라>를 할 때, 새삼 뮤지컬 배우라서 참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작품 음악이 정말 좋았거든요. 개인적으로 뮤지컬은 웬만하면 다 음악이 좋은 것 같은데, 사람마다 더 와 닿는 게 있잖아요. <드라큘라> 때의 행복한 기억 때문인지 무엇보다 음악이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했죠. 그리고 계속 소극장 무대에 대한 욕심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대극장 뮤지컬과 소극장 뮤지컬의 경계가 생기면서 대극장 뮤지컬은 가창력이 중요하고, 소극장 뮤지컬은 연기력이 중요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이 생겼잖아요. 그런데 사실 배우라면 노래든 연기든 다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거든요. 편견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서 감사하죠. 


<키다리 아저씨>는 오디션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했다죠.
솔직히 처음에 <키다리 아저씨> 오디션 콜을 받았을 때는 순간 내가 아직도 오디션을 봐야 하나 싶은 오만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노래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럼 오디션 봐야지, 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죠. (웃음) 오디션은 경험이 아무리 많다 해도 항상 떨리는데, 그 감정을 누르면서 뭔가를 해내는 희열이 있거든요. 이젠 경력이 적지 않은 만큼 긴장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제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고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 오디션 때 그게 딱 깨졌어요. 스스로도 못했다 싶어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게다가 실제 제루샤 연령대도 아니니까 떨어질 수 있겠다 싶었죠. 연륜이 쌓일수록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라지는 것들도 분명히 있잖아요. (웃음) 오디션 본 날 차에 앉아 혼자 울먹울먹했는데, 오디션에 붙었다니 정말 기뻤죠.



작품에 대한 간절함이 컸나 봐요.
재작년에 <팬텀>을 하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확 들었어요. 지금까지 좋은 작품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 더는 하고 싶은 작품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언제까지 이렇게 운 좋게 작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공연하는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까웠어요. 공연하고 나선 공연에 대한 스위치를 꺼야 한다고들 하는데,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오늘 공연 어떻게 했지’ 그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도 물론 작품을 할 때마다 감사했지만, 감사함을 넘어서는 소중한 기분이었다고 할까. 공연이 너무 소중해지니까 제 삶의 전부가 돼버리더라고요.


2007년 <사랑은 비를 타고> 이후 10년 만에 소극장 무대에 서는 건데, 두려움은 없었어요?
무서웠죠. 소극장 무대에 대한 감을 너무 많이 잊어버려서요. 아무래도 화려하고 큰 작품에 익숙해져 있는데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작품에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그리고 소녀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가 솔직히 제일 고민이에요. (웃음) 성인이 된 2막은 어떻게든 하겠는데 십 대로 나오는 1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제가 정말 온전히 제루샤로 보일 수 있을지 신경이 많이 쓰여요. 캐스팅 공개가 되고 나서 많은 분들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응원해 주셨지만, 사람 마음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나라도 들으면 신경 쓰이잖아요. 좋은 이야기 아홉 개에 안 좋은 이야기 하나 있다고 치면, 보통 안 좋은 이야기 하나만 계속 생각나지 않나요? (웃음) 게다가 주위에 <키다리 아저씨>를 한다고 하면 다들 첫 반응이 ‘나 그 작품 정말 좋아하는데!’였거든요. 더 부담이 되는 거죠. 오죽하면 요새 잠을 잘 못 자요.


상대역 제르비스에 캐스팅된 세 배우 모두 초연에 참여했잖아요.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신)성록이는 데뷔 작품을 같이한 오래된 동갑내기 친구거든요. 서로 서슴없이 장난치는 편한 사이인데, 저만 보면 이건 무조건 대본을 빨리 외워야 하는 작품이라고 근처에 고시원이라도 끊으래요. <키다리 아저씨> 팀 단체 카톡방에서도 맨날 저랑 (강)지혜 보고 대본 외우고 있냐고 오늘은 몇 쪽까지 외우라며 감독해요. 엊그제 밤에는 지혜가 답을 안 하니까 ‘강루샤’는 대본 안 외우고 자나 보다고 뭐라 하고. (웃음) 어젠 저한테 뜬금없이 <키다리 아저씨>가 저의 첫 연기 인생작이 될 거라고 자기가 보장한다면서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에, “뭐야, 왜 첫 인생작이야, 그럼 난 그동안 뭐한 거냐” 그랬더니 “지금까진 그냥저냥 그랬잖아”래요. 원래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 같은 친구인데, 결혼하고 아빠가 돼도 그건 안 변하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이 작품을 워낙 좋아해서 저희도 같이 잘했으면 하나 봐요. 얼마 전에 연습을 시작해서 작품에 깊이 들어가진 못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저도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성숙해진 마음으로


세 명의 제루샤 중 가장 맏언니라서 느끼는 책임감도 있을 것 같아요.
<드라큘라> 할 때도 제일 나이가 많아서 당황했어요. 다들 “누나, 누나” 이러는데, 왠지 슬프더라고요. (웃음) 사실 예전에는 더블 캐스트가 저보다 어려도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서로 비교되니까 배우로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이 드는 거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욕심이 전보단 덜해요. 내 코가 석 자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보면 ‘나도 신인 때는 저랬지’ 제 어렸을 때가 떠올라서 배려해 주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작품 하는 동안 지혜에게 좋은 선배가 됐으면 좋겠는데, 연습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순간들이 오지 않을까 싶어 그게 좀 걱정이에요. (웃음) 예민하게 준비하는 게 무대 위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한테는 불편을 끼칠 수 있잖아요. 옛날에는 이런 생각도 안 했지만요. (웃음) 이 작품하면서 구석에 가서 몇 번 울 각오는 하고 왔으니까 너무 예민해지지 않고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루샤를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랐을 것 같은데요?
극 초반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으로 대학에 가게 된 제루샤가 쓰는 편지 중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18년 동안 고아원에서 한 방에 스무 명씩 살다가 혼자 방을 쓰니 평화로워요. 난생처음 제루샤 애보트라는 아이와 조용히 대화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루샤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그 대사를 읽었을 때, 제 어린 시절이 확 떠올랐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강원도 강릉에서 살다가 대학 때 서울로 오면서 정말 신 났거든요. 이제 서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음악도 하고 서울 학교 생활이 얼마나 재밌을까 하고 들떴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까 예고를 다녔던 다른 애들에 비해 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도 제루샤처럼 주눅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웃음)



대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제루샤 대사는 뭐예요?
개인적으로 ‘행복이란’이라는 곡을 부르기 전에 나오는 대사가 정말 좋아요, “용기가 필요한 건 엄청난 위기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엄청난 위기엔 누구나 용기를 내서 맞서잖아요. 하지만 사소한 위험 앞에서 웃을 수 있으려면, 영혼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현명할 수 있지 깜짝 놀랐어요. 제루샤는 제가 연기할 캐릭터라서가 아니라 정말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에요.


이번 작품을 마친 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이번에 쉬는 동안 마인드 컨트롤을 좀 더 잘해서 앞으로 어떻게 배우 생활을 할지에 대해 생각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를 하면서 그런 걱정이 조금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엔 미래만 걱정하면서, 정작 하루하루는 마치 후루룩 국물 마시듯 정신없이 보냈는데, 이젠 지금 현재의 저한테 충실하려고요. “현재를 살기,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이 순간을 느끼며”라는 ‘행복이란’ 가사처럼이요. 그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4호 2017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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