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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인터미션」의 프로듀서 이정열

글|이민선 |사진|심주호 2010-07-07 5,915


더 아름다운 2막을 기다리며 즐기는 잠깐의 여유

 

뮤지컬 배우들이 낸 재미있는 음반이 하나 나왔다. 당신이 지금 머리에 떠올리고 있는 그런 뮤지컬 넘버들이 담긴 것이 아닌, 가요 리메이크 음반이다. 그 타이틀은 막간 휴식을 뜻하는 「인터미션」. 뮤지컬을 본업으로 하는 배우들이 잠깐 무대에서 내려와 음반 속에 목소리를 담는 휴식 같은 외도를 행하였으니, 인터미션이라는 타이틀이 그럴싸하다. 배우 이정열은 자신의 인터미션을 위해, 그리고 동료 배우들의 인터미션을 위해, 이 음반의 프로듀서 역할을 자임했다. 그리고 5월 7일, 따끈따끈한 음반이 그의 손에 올려졌다.

 

무대에서 내려와
인터뷰를 위해 이정열을 만난 날이 마침 음반이 발매된 날이었다. 직접 만든 신보를 영접하는 기분이 남다를 텐데, 그의 소감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전 애가 셋이거든요. 애 하나 더 낳은 기분이죠.”
그가 가요 리메이크 음반에 끌어들인 배우는 모두 일곱 명이다. 서범석, 배해선, 박정환, 박건형, 박은태, 윤형렬, 차지연. 그를 포함한 여덟 명의 배우가 가요 아홉 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혔다. “처음부터 이런 번듯한, 트랙 아홉 개짜리 음반을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음반 재킷도 없고, 마치 매직으로 ‘안 팔아요!’라고 써 있을 듯한 싱글 음반, 재미로 만드는 음반을 생각했죠.”
이정열은 2002년까지 네 장의 개인 음반을 냈으며, ‘그대 고운 내 사랑’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가수 출신이다. 그런 그가 솔로 음반이 아닌, 뮤지컬 배우들과의 가요 리메이크 음반을 낸 이유가 궁금하다. “뮤지컬 배우들의 매력적인 소리를 들으면서, 배우들에게도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목소리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자신의 음악적인 소리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가수에 비해 비교적 자기 고유의 음색을 내기 어려운 뮤지컬 배우들의 숨겨진 목소리가 궁금했던 것이다.
이정열은 친한 동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알기에, 각자의 소리가 가진 색깔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의 제안에 동료 배우들은 우려 반, 기대 반으로 그를 따랐고, 색다른 경험을 흥미로워했다. 생소한 작업에 임하며 놀라워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이정열 역시 재미를 느꼈다. 이 음반 작업은 모두에게 놀이 같은 일이었다.

 

스튜디오 안으로
음반에 담을 후보 곡으로 우선 90여 곡을 선정했다. 1980~90년대의 서정적인 발라드 위주였는데, 오래도록 들어도 좋은 음악을 추구하는 그의 생각이 반영된 선곡이었다. “그중에서 배해선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감정, 윤형렬의 목소리에 담긴 느낌, 차지연이 가진 추억, 이런 걸 고려해서 부를 노래를 결정했죠.”
가수로서 여러 차례 음반 작업을 했던 이정열은 가요 녹음이 익숙지 않은 동료 배우들에게 소리를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무대에서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내야 하지만, 스튜디오 녹음 때는 역량의 백퍼센트를 압축시켜서 노래의 팔십 퍼센트만 완성시키는 거죠. 이십은 듣는 사람이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박은태가 부른 ‘편지’가 그 자체로도 좋은 곡이지만, 듣는 사람마다 그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을 거예요. 저마다의 감상이 합쳐졌을 때, 그 곡이 주는 감동은 백이 아니라 만, 이만이 될 수도 있어요. 저의 얄팍한 생각이 그렇습니다.” 그는 멋쩍은 듯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다른 사람과 함께 노래를 들으면서도 마치 그것이 나만을 위한 노래인 듯 느껴져 끝도 없는 감동에 휩싸인 경험은 누구나 다 있음직하기에, 그의 지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미션」에서 이정열이 부른 곡은 조하문의 ‘같은 하늘 아래’이다. 재미있게도 윤형렬과 박은태의 경우, 1987년에 나온 이 노래를 이번에 처음 접했다고.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있는지 묻자, 난감한 듯 한바탕 웃고는 말을 돌렸다. “이 노래는 작곡한 이정선 형님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못 만날 이유가 있었던 거겠죠. 또 그럴 만한 이유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른 배우들이 부른 곡 중에서는 故 김광석의 1집 수록곡인 ‘너에게’를 가장 좋아한다고, 게다가 서범석이 너무 잘 불러서 탐난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녹음 당시엔 서범석 씨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결국은 이렇게 잘 부르셨지만.” 뮤지컬 무대에만 서온 서범석은 뮤지컬 창법에 익숙해져 있었고, 스스로 음악 작업에는 젬병이라며 녹음 전에 더 많은 연습을 고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좋은 결과가 나와서, ‘역시 서범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녹음 중의 에피소드는 또 있다. 녹음 당시 <모차르트!> 지방 공연 중이던 배해선과 윤형렬은 감기로 고생 중이었다. 윤형렬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정상적인 컨디션에서의 그에게 듣기 어려운 탁성이 흘러나왔다. 평소 윤형렬에게 탁성의 파워가 있다고 느꼈던 이정열은 누구를 흉내 낸 것도 아닌 독창적인 소리가 나와 오히려 기뻤다. 지영선의 ‘소원’을 부른 윤형렬의 노래에서, 1절의 후렴 부분에서는 가성을, 2절의 같은 부분에서는, 이정열의 표현에 따르면, “발가락에 힘을 줘서 내게 했다”는 조금 거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기계음의 도움을 받지 않은 윤형렬만의 새로운 목소리에 그는 만족감을 표했다.

 

가수로 돌아와
2002년 4집을 끝으로 음반 활동은 접고 뮤지컬 무대에 서온 이정열에게 이번 작업은 무척 오랜만의 음악 작업이었다. 가수로서의 실력을 발휘한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그는 「인터미션」 음반 작업을 구체화시키면서, 그동안 발표한 음반과 공연 자료들을 훑어보았다고 한다.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가수로서 활동하는 동안 성급한 욕심으로, 혹은 서투른 생각으로 놓쳤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보이더란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보이지 않던 것이 더 잘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가수 활동을 하는 동안은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자신의 목소리를 팔려고 애쓰던 시기도 있었다. 스스로 만족한 음악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 것에 의연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그 일이 짐으로 느껴졌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가수라는 이름에서 해방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용기가 생겼다고 이정열은 고백했다.

 


「인터미션」 음반을 만들면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곡들을 부를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과거의 향수를 느끼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과거를 재현해냈다는 것이다. 눈으로 즐기는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듣는 음악이 설 자리가 좁아진 시대에 듣기 좋은 음악을 음반에 담는 작업 자체가 그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된 듯하다. 그는 스튜디오 분위기를 떠올리며, 편곡가와 연주자, 가수, 엔지니어가 모두 모여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음악을 즐겼다고 회상했다. 작곡 파일을 컴퓨터로 전달하면 세션 따로 녹음하고, 가수가 노래하고 가면 엔지니어가 기계적으로 음정을 수정해주는 요즈음의 작업 방식을 고려했을 때, 그는 「인터미션」은 녹음 방식조차 ‘리메이크’라며 웃었다. “연주하는 사람이나 녹음, 믹싱하는 사람 모두 오랜만에 재미있는 작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추구한 것이 단순히 뮤지컬 배우들의 색다른 모습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인터미션」 음반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음반을 통해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경험할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있다. “「인터미션」 두 번째 앨범은 트로트를 해볼까 해요.” 인터뷰에 동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어, 진짠데?” 그의 반응이 진지하다. “박은태야말로 최고의 뽕짝 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 간드러짐은 예술이라니까. 다 죽을 거야.” 1집에서는 서정적인 곡 위주로 들었지만 2집과 3집에서는 어떤 색깔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지, 또 어떤 배우들이 참여할지 기대된다.
6월에는 「인터미션」 배우들과의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인터미션」에 수록된 곡은 물론,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연습 중이다. 물론 뮤지컬적인 쇼 말고 음악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와 객석이 나누어진 자리가 아닌, 관객과 어우러져 음악을 즐기는 그런 공연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피아노나 기타를 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전혀 색다른 노래를 들려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얼굴로 무대에 서는 배우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들려줄 가수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1호 2010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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