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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YORK]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 [No.168]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Matthew Murphy 2017-09-25 4,412

해롤드 프린스에 대한 향수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

PRINCE OF BROADWAY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산증인 해롤드 프린스


스티븐 손드하임은 20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손드하임은 미국 뮤지컬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40~50년대를 이끈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영향을 받아 뮤지컬에 입문했고, 그의 작품이 20세기 후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손드하임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20세기 후반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지각 변동은 그를 비롯한 여러 창작자들의 제작 파트너였던 해롤드 프린스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1928년에 태어나 올해로 여든아홉을 맞은 해롤드 프린스는 1950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뷰 작품의 스테이지 매니저로서 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이후 약 70년 동안 60편이 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연출가이자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렸고, 뛰어난 재능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무려 스물한 차례 토니상을 받았다. 비단 숫자로 설명되는 경력 외에도 100년이 조금 넘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의 2/3를 함께한 해롤드 프린스는 미국 뮤지컬의 산증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경력을 지닌 해롤드 프린스의 지난 70여 년을 돌아보는 취지로 만들어진 신작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는 그의 성공적인 경력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그 과정에서 20세기 미국 뮤지컬의 뛰어난 재능을 동시에 기념하는 작품이라는 데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음악적으로 촘촘한 플롯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는 기존의 음악을 가지고 만든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이 떠오르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북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느슨한 플롯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는 레뷰에 더 가깝다. 극장에 들어서면 막이 쳐 있지 않은 무대 왼쪽 하수에 고스트 라이트(공연이 없을 때 빈 무대 위에 항상 켜두는 램프)가 켜져 있는데, 이윽고 객석 조명이 어두워지면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무전기 너머로 스테이지 매니저의 “공연 시작합니다. 배우들 스탠바이해 주세요”라는 음성이 들린다. 이와 동시에 무대 위에 토니 야즈벡이 등장해 자신을 해롤드 프린스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은 운이 좋다는 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토니 야즈벡이 퇴장한 후에 다른 배우들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모두 해롤드 프린스의 입장이 돼 그의 이야기를 한마디씩 들려준 후 무대를 가로질러 나가면 서곡이 시작된다.


<컴퍼니>,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스위니 토드> 등 뮤지컬 좀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작품들의 뮤지컬 넘버를 한데 녹여낸 3분짜리 서곡은 1998년 <퍼레이드>로 프린스와 함께 작업했던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쓴 노래다. <뉴욕 타임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프린스는 작품의 모든 노래가 새롭게 재편곡되어야 하고 오케스트레이션도 이전의 버전들과 달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은 서곡뿐 아니라 작품 전체의 음악을 조율하는 데 프린스의 의도를 꽤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오페라의 유령>의 가장 잘 알려진 멜로디와 <스위니 토드>의 가장 잘 알려진 코러스의 반주가 마치 한 곡처럼 부드럽게 연결된 서곡도 인상적이지만, 몇 장면 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유명 뮤지컬 넘버인 ‘Something’s Coming’이 ‘Tonight’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1막은 <댐 양키스>, <쉬 러브즈 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슈퍼맨>, <폴리스>, <리틀 나이트 뮤직>, <지붕 위의 바이올린>, <카바레>의 순서로 작품마다 한 곡씩 혹은 두세 곡을 들려주면서 진행된다. 2막은 <컴퍼니>, <에비타>, <쇼보트>, <메릴리 위 롤 어롱>, <퍼레이드>, <거미 여인

의 키스>, <스위니 토드>, <오페라의 유령>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마지막은 ‘할 일을 해’라는 새로운 곡이 장식한다. 장면 중간중간 해롤드 프린스가 어떻게 그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면은 작품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해롤드 프린스의 삶과 경력’이라는 느슨한 내러티브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런 느슨한 연결이 레뷰의 성격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물론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촘촘한 음악들이 드라마적인 느슨함을 메워주는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의 장면에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좀 더 웅장하고 단단했던 오리지널 공연들과 비교했을 때 작품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작품의 집중도를 높이는 뛰어난 배우들


그나마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브로드웨이 베테랑인 여덟 명의 배우들이 백 퍼센트 이상의 몰입도를 보여준 몇몇 장면들이다. 언더스터디를 제외한 여자 다섯과 남자 넷으로 이뤄진 앙상블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두 시간 반가량 각각 8~9명의 다른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데, 한 작품당 길어야 세 곡 정도 부르는 짧은 순간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관객의 집중도를 순간적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자넷 디캘이 <슈퍼맨>의 ‘You’ve Got Possibilities’를 부르는 장면과 토니 야즈벡이 격정적인 탭댄스를 추며 <폴리스>의 ‘Right Girl’을 부르는 장면, 카렌 지엠바가 <카바레>의 ‘So What’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슈퍼맨>의 ‘You’ve Got Possibilities’는 시드니가 클락 켄트에게 조금만 손대면 그래도 꽤 쓸 만할 것 같다면서 부르는 노래로, 작품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름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아는 곡이다. <인 더 하이츠>에서 니나 역을 맡았던 자넷 디캘은 특유의 몰아치는 듯한 에너지를 안무에 잘 녹여내 그녀의 움직임에 조심스럽게 반응하는 클락 켄트와 코믹한 합을 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의 백미는 토니 야즈벡이 <폴리스>에서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 샐리를 향해 느끼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애절함을 담은 노래 ‘Right Girl’을 부른 후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토니는 이 장면에서 족히 오 분 넘도록 쉬지 않고 춤을 추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데, 때로는 부드러운 차차차나 폭스트롯계의 사교댄스로, 그리고 또 때로는 휘몰아치는 박자의 탭댄스를 선보여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토니 야즈벡의 뛰어난 움직임 자체도 감탄스럽지만, 그런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면서 감정의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에 자신의 실수를 고백할 때면 여러 수단을 통해 복합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깊이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또 마지막으로 <카바레>에서 카렌 지엠바가 부르는 ‘So What’ 역시 현재 미국의 상황과 맞물려서 가사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 물론 브로드웨이 베테랑인 카렌 지엠바의 조소와 슬픔을 가득 담은 연기는 가뜩이나 <카바레>의 블랙코미디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려내 트럼프 치하의 미국, 뉴욕, 그리고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더욱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1막과 비교해 좀 더 느슨하고 처지는 2막은 상대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이 없는데, 나름 화려하게 시작해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 같은 마무리는 아무래도 아쉽다.




미니멀리즘과 화려함 그 중간 어딘가의 조잡함


해롤드 프린스는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의 기획 단계부터 각각의 장면이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새롭게 보이길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무대 세트는 기본적으로는 미니멀한 ‘빈 무대’를 추구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대형 무대 장치보다는 배우들이 직접 움직이는 대소도구나 천장에서 내려오는 막 또는 스크린을 통해 심플하게 각각의 장면을 그려낸다. 정말 해롤드 프린스의 빈 무대 컨셉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열일곱 편의 작품을 위한 열일곱 개의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컴 프롬 어웨이>나 <브롱스 테일> 등에서 멋진 무대를 보여줬던 무대디자이너 베오울프 브리트의 작품치고는 초라해 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해롤드 프린스가 원했던 빈 무대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들의 화려함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실패해 화려하지도, 미니멀하지도 않은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무대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무대의 전환에서 장치와 천장에서 내려오는 막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나름대로 단조롭지 않게 진행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조잡한 세트는 느슨한 내용과 함께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무대 세트뿐만 아니라 작품의 구성도 그와 비슷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1막 초반에는 한 작품의 노래가 시작될 때 각 배우가 해롤드 프린스가 돼 ‘자신의 얘기’라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그 노래의 메시지가 작품을 만들던 당시의 삶에 연결되는 듯했는데, 중반쯤 지나서는 그런 연결고리가 사라져 그가 작업했던 공연을 나열해 보여준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중반이 지날수록 이 뮤지컬이 왜 지금 현재 브로드웨이에 올라와야 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생긴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이, 해롤드 프린스는 뮤지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며, 이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뛰어난 창작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단지 그것만을 위해 굳이 ‘신작 뮤지컬’을 만들어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아쉬움을 남기는 기획 의도


해롤드 프린스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함께한 <뉴욕 타임스>의 인터뷰 말미에 프린스는 “만약 사람들이 이 뮤지컬을 보고 ‘그때가 좋았지’라고 한다면, 나는 차라리 죽겠다”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다. 발언의 취지는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는 과거를 돌아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자는 의미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앞으로 더 신 나게 발전할 뮤지컬의 미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는데, 작품을 본 사람으로서 이 발언은 꽤 씁쓸했다. 물론 작품 마지막에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네가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야 해”라는 고무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넣긴 했지만, 그 곡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1950년의 <파자마 게임>에서 1986년 <오페라의 유령>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이 황금기를 거쳐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던 시대를 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린스는 2007년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극작가 알프레드 어리가 쓴 <러브 뮤직>(현재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가 올라간 맨해튼 시어터 클럽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별로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고 60회 만에 막을 내렸다.)을 제외하면 1993년에 올라간 <거미여인의 키스>가 그의 마지막 연출 신작이다. 그 외에는 보통 잘 알려진 작품의 재연을 공연했고, 21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작품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는 어쩔 수 없이 20세기 후반 뮤지컬계에 대한 찬가일 수밖에 없다. 나름 의미는 있지만 미래를 내다보겠다는 목적보다는 지나간 시절들에 대한 향수를 담겠다는 좀 더 솔직한 의도로 작품을 만들고, 그에 맞게 뮤지컬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연을 만들었다면 작품의 톤도 좀 더 일관되고, 관객들도 좀 더 부담 없이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롤드 프린스의 업적이 빛이 바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8호 2017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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