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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LIVE TALK] <에드거 앨런 포> 백형훈[NO.170]

진행·정리 | 안시은 2017-12-05 4,724

일상처럼 스며들다


자신이 일궈낸 위치를 스스로 알기란 쉽지 않다. 백형훈은 달랐다. 갓 서른 넘은 이 배우는 갈 길이 멀다며 차근차근 제 속도를 밟고 있었다. 무대에서 각기 제 역할을 해낼 때 비로소 빛난다는 걸 아는 현명함과 분위기를 이끄는 유쾌함도 겸비했다. <에드거 앨런 포>(이하 <포>)에서 악역에 도전하는 그의 행보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도전, 그리스월드                                            


THE MUSICAL 평소 이미지도 순수하고 착한데 그리스월드에 캐스팅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파격적인 도전이라 팬으로서 조금 걱정되기도 해요. (huhuh)
백형훈 오히려 그래서 더 재밌는 그리스월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씨왓아이워너씨>(이하 <씨왓>)에서 강도를 연기했어요. 처음에는 미스 캐스팅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한 번 하고 나선 많이 부족했다고 느꼈고요. 그런데 재공연을 할 때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캐릭터와 연기에 접근했어요. 김민정 연출님도 많이 도와주셨죠. (최)재림 형과 (정)상윤 형과는 완전히 다르게 연기했는데 관객들이 재밌게 봐주셨어요. <포>는 처음 참여하는 건데, 제가 억지로 ‘나 무서운 사람이야. 악랄한 사람이야’라고 한다고 보시는 분들이 공감하실 수 없거든요. 강요할 생각도 없고요. 연출님 의도대로 움직이되, 저와 어울리는 이미지와 목소리, 동작을 조금 더 연구해서 예상 가능하면서도 예상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THE MUSICAL 그리스월드 역할을 연구하면서 참고한 모델이 있나요? (anitamui)
백형훈 많이 참고한 건 아닌데 드라마 <구해줘>에 나온 사이비교주를 보고 있습니다. 
“<씨왓>을 할 때는 할리퀸이 많이 도움됐어요. 겉으로 볼 때 압도적이거나 무서운 이미지가 아니어서 통통 튀도록 표현했어요. 그런데 그리스월드는 머리도 좋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가벼운 사람은 결코 아니더라고요. 카리스마 있는 악역이죠. 여러 가지를 보고 있는데 본질을 따온다기보다 옷에서 색감을 보듯이 (캐릭터) 색깔만 보고 있어요. 사이비교주도 그렇고, 이병헌 선배님이 연기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박창이를 찾아보기도 하고요.”


THE MUSICAL <포> 넘버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리스월드 넘버 이외에 불러보고 싶은 넘버가 있나요? (boyaya)
백형훈 작곡가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스월드 넘버 외에 불러보고 싶은 넘버는) ‘달님의 시간’요.
“뮤지컬 넘버를 들으면 처음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뜨는 게 있고, 듣고 또 들어야 (머리에) 들어오는 게 있고, 한 번에 들었을 때 좋다고 느껴지는 게 있거든요. <포>는 후자인데, 노래가 어렵다는 건 두 가지로 나뉘어요. <쓰릴 미>나 <씨왓>처럼 노래가 대사화돼서 여러 가지를 신경쓰면서 불러야 하는 게 있고, <포>처럼 노래가 화려하고 음역이 많이 높은 게 있어요. 연출님이 포 역할은 음역이 높아야 할 수 있을 만큼 힘들다고 하셨는데, 그리스월드도 그만큼 음역을 내야 해요. 한국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유명한 스티브 발사모가 <포> 넘버를 부른 영상을 보면 그도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럼 말 다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달님의 시간’은 멜로디와 가사가 주는 느낌이 좋아서 불러보고 싶었어요. 쓰다듬어 주는 느낌.”


THE MUSICAL 그리스윌드를 연습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재밌어요? (hirinna)
백형훈 형들보다 어른인 척하는 거요. 크크.
“그리스월드는 악역이라는 판을 깔아주신 거니까 제 안의 의심과 흔들림을 배제하고 확신을 갖고 나가야 해요. 관객분들은 포 역할 배우들이 저보다 더 형님들이란 걸 아시니까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실제 관계는 매우 좋습니다. 연출님은 기본적으로 중후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사람들이 그리스월드를 우러러 보잖아요. 그런 아우라를 풍길 수 있도록 연구할 겁니다. 저는 뒤늦게 합류하는데 형들이 하는 것도 많이 보고 배우고 있어요.”


THE MUSICAL <나폴레옹>에선 숨도 못 쉬게 하는 거랑 <서른즈음에>는 보고 갈 때 한 곡 정도는 흥얼거리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목표가 무엇인가요? (madeleine)
백형훈 제가 계속 여러 의미로 생각났으면 좋겠어요.





시작과 끝                                                         


THE MUSICAL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백형훈은 어떤 느낌인가요? (sweets0519)
백형훈 20대가 혼란이었으면, 30대는 새로운 시작인 것 같아요. 지금 행복합니다.


THE MUSICAL <서름즈음에>를 보기 전에 미리 듣고 왔으면 좋겠다거나 읽고 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을까요? (lshchoi)
백형훈 강승원 1집을 듣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서른즈음에>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있지만 장르물은 아니고, 우리네 얘기예요. ‘당신에게 20년 전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현재 당신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비슷한 시기에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에 비해 보이는 무게감은 가벼울 수 있지만 메시지는 묵직하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가 많아요. 가사에 맞춰 드라마가 매끄럽게 흘러가게 하는 부분이 힘들었는데, 뮤지컬을 처음 하시는 분들이 제작해서 기존에 봐온 뮤지컬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THE MUSICAL 현식을 연기할 때 신경쓰는 부분이 궁금해요. (lshchoi)
백형훈 젊음과 중년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식을 두 명이 연기해서) 고민했는데 20년이 흐르면서 사는 모습도 달라졌기 때문에 결이 같지 않아도 됐어요. 젊은 현식을 맡은 저와 산들이는 젊은 패기로 자유롭게 연기하고 중년 현식을 연기하는 선배님들이 오히려 저희의 젊음에 맞춰서 해주고 계세요.”


THE MUSICAL <나폴레옹>에서 뤼시앙 말고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걸 하고 싶나요? 이유는? (needheartj)
백형훈 동생 했으니까 형을 해보고 싶습니다.


THE MUSICAL 뤼시앙을 보내는 마음이 어떤가요? (lshchoi)
백형훈 뤼시앙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간직한 인물이었어요. 보낼 때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국정농단이 올해 우리나라 이슈 중 하나였잖아요. 뤼시앙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캐릭터라 연기할 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뤼시앙은, 형을 물론 사랑하지만, 애국심이 더 커요. 그래서 형을 과감히 떠날 수 있었고, 말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작품 안에선 뜻이 실현 안 된 거잖아요. 아픔이 크게 다가왔어요. 형도 잃은 것 같고, 내 이상마저 잃은 것 같았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모습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서 공연을 끝내고 떠나보낼 때도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유연함을 찾아가다                                                       


THE MUSICAL 역할에 몰입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untriedwings)
백형훈 그 캐릭터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해요.
“운 좋게 좋은 선배님들과 같이 작품을 많이 했어요. 선배들이 걸어온 세월이 뒤따라가는 후배들에게 정말 귀감이 되더라고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배우가 적극적으로 연출님과 상의하면서 만들어가는 캐릭터는 훨씬 입체적이었어요. 초반에 혼란의 시기를 겪다가 30대에 가까워지면서 그런 선배님들의 모습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 눈을 뜬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지금 제가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요. 뮤지컬은 협업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 돋보이는 건 팀워크를 해친다고 생각해요. 계속 조언을 듣고 배우면서 제가 해보고 싶은 것도 해보는 식으로 역할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THE MUSICAL 초연처럼 캐릭터를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과 재연처럼 관객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재해석해야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나요? (etoile8)
백형훈 저와 캐릭터가 만나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도 어렵잖아요. 친해지고 속 깊은 얘기를 하기까지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비슷한 과정 같아요. 지금 텍스트 안에 있는 인물과 그 마음을 잘 읽어야 하는데 얘(캐릭터)는 대답도 안 해주잖아요. 그래서 늘 연출부의 확인을 받아야 해요. 역할과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감성이 탁 맞는 순간이 와요. 그 순간이 올 때 전율을 느껴요.”


THE MUSICAL 했던 캐릭터들 중에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sts676)
백형훈 그 시작이 본하였던 것 같아서 본하로 꼽겠습니다.
“연출님들이 정말 잘 가르쳐주시고 모든 배우가 연출님 구상 안에서 움직이는데, 배우의 역량을 인정해 주는 과정이 있어요. 그런 걸 <트레이스 유>에서 해본 거죠. 자유롭게 한 번 연기해 봤는데 감사하게도 김민정 연출님이 (생각하는 걸 해볼 수 있도록) 다 열어주셨어요. 그때 자신감이 커졌어요. 다음 작품이 <씨왓>이었는데 그때도 민정 연출님이었거든요. 그때 탁 트인 느낌이었어요.”



THE MUSICAL <쓰릴 미>에서 리차드를 연기해 줄 생각은 없나요?
백형훈 기회가 온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전 네이슨만 내 마음 속에 저장!
“꼭 네이슨(나)만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리차드)’는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거잖아요. <쓰릴 미>를 끌고가는 주체는 ‘나’라는 거죠. 배우로서 책임감이 컸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확실히 실력이 늘었어요. ‘그’는 그때 당시 제가 잘하지 못할 것 같았고, 자신도 없었어요. 담배 피우는 연기도 어색할 것 같았고. 지금 ‘그’를 하라고 기회를 주신다면 하고 싶죠.”


THE MUSICAL 안 했던 작품들 중에서 하고 싶은 작품이랑 역할이 있다면? (Annie)
백형훈 작품은 <노트르담 드 파리>(이하 <노담>), 배역은 그랭구아르 아니면 페뷔스 하고 싶어요. 최고로 하고 싶은 건 유다입니다.
“<노담>은 기회가 온다면 꼭 해보고 싶어요. 감사한 일인데 <쓰릴 미> 때 박용호 대표님이 ‘형훈이는 ‘그’와 ‘나’를 다 할 수 있으니 스태프들이 (역할을) 알아서 정해 주십시오’해서 원래 ’그‘로 뽑혔다가 리딩을 거치면서 ’나‘를 하게 됐어요. <노담> 했던 선배님들한테 물어보면 ‘너는 그랭구아르도, 페뷔스도 다 어울려’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 같아요. 실력은 제가 증명을 해야 하는 일이고요.”


THE MUSICAL 4년 후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lhjy91)
백형훈 헤드윅. 더 일찍 할 수 있어도 좋고요.


THE MUSICAL <록키호러쇼> 때 춤을 잘 추던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춤실력은 10점 만점에 몇 점인가요? (kabalkabal)
백형훈 의심 없는 5조 5억 점.
“제게 흑역사가 하나 있어서 (춤질문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춤을 못 춘다거나 뻣뻣하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 제가 강요하지는 않아요. <록키호러쇼> 때 보셨듯이 곧잘 춥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스트레칭이나 훈련을 해야 하는데 뻣뻣하고 유연하지 않아서 발레나 (춤에 대해) 기본적인 걸 익히신 분에 비하면 진짜 부족해요. 하지만 장면에서 필요한 흥이나 에너지를 쓰는 동작은 <록키호러쇼>의 우주 최강 안무가 채현원 선생님께 직접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겠습니다.”


THE MUSICAL 고음을 부를 때 유난히 시원시원한데 목 관리 비법이 있을까요? (Anais81)
백형훈 묵언 수행하면 제일 좋습니다.


THE MUSICAL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poopooo)
백형훈 슬픈 멜로?
“20대 때는 멜로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다른 배우분들이 인터뷰에서 ‘정말 한 사람을 바라보고 진하게 사랑하는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라고 할 때 형식적인 말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형과의 관계가 중요한 뤼시앙을 연기하면서, 문득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는 상황이라면 내가 어떻게 연기할까 궁금해졌어요.”






5조 5억짜리 귀여움                                                        


THE MUSICAL 애교는 모태 애교인가요? 노력형 애교? (pjcb1017)
백형훈 못해애교용.
“뮤지컬 자체가 협업인데 애교가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긴장감도 풀어주고 대인관계를 좋게 해주더라고요. 사회생활할 때 어디 가도 막내였고. 억지로 하면 힘들 텐데 모태 애교라. 장남인데 동생이 오히려 더 무뚝뚝해요. 부모님한테는 이렇게까지 못하고요. 오히려 자중하라는 소릴 듣죠.”


THE MUSICAL 강하(반려견)와 옥상 나들이 영상 공개할 의향 없나요? (hj6683)
백형훈 언젠간 저도 공개하고 싶습니다.


THE MUSICAL 핸드폰을 자주 하는 것 같던데 뭘 하는 건가요? 혹시 하는 게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muny59)
백형훈 게임을 못해서 저는 주로 인터넷 검색만 합니다. 웹툰 보고요.


THE MUSICAL 라이브토크에 참여한 소감은? (hseiren)
백형훈 <에드거 앨런 포>와 <서른즈음에>, <나폴레옹>까지 공연과 저에 대한 관심 정말 감사드리고, 이런 채팅 채널을 따로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감사드려요.
“뮤지컬을 한 지 8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갈 길이 정말 먼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포>도 악역이니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막상 보면 ‘언제 끝났지?’ 그렇게 되도록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고 싶어요. 제가 악역을 했는지, 선한 역을 했는지가 보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관객들께 좋은 배우로 인식될 수 있도록 <포>도 그렇게 노력할 거고요. 맡은 역할에 맞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9호 2017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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