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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성숙의 강을 지나 다시 만난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의 옥주현 [No.87]

글 |정세원 사진 |로빈 킴 2010-12-13 5,528

 

옥주현에게 <아이다>는 서투르고 마음이 먼저 앞섰던 첫사랑 같은 작품이다. 뉴욕에서 처음 만난 <아이다>는 그녀에게 뮤지컬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꿈을 꾸게 했고, 이듬해 한국에서 만난 <아이다>는 그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한 오디션과 두 달간의 연습을 통해 그녀는 가수 옥주현이 아닌 뮤지컬 배우로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네 편의 뮤지컬 <시카고>, <캣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몬테크리스토>의 무대를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자신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하기보다는 꿈을 향한 열정과 누구 못지않은 노력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해 온 그녀가 또다시 <아이다>에 도전한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었지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더 큰 아쉬움으로 남았던 첫사랑과의 재회. 데뷔 5년차 뮤지컬 배우 옥주현은 “준비된 마음과 준비된 자세로 작품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다”며 <아이다>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아이다>를 위해 칼을 갈았다”는 옥주현은 5년 만에 다시 경험하는 작품 연습에 푹 빠져 있었다. 예정보다 진행이 늦은 드라마 <더 뮤지컬> 촬영으로 하루 쉬는 일요일을 반납해야 하지만 힘든 내색은커녕 당연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 알았다면 평일에도 촬영이 가능한 다른 배우를 택하는 게 나았을 거라며 미안해하는 그녀다. 어떤 작품에 참여하든 연습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던지는 옥주현에게 일 년 전부터 참여하기로 되어 있던 <아이다>는 그 어떤 일로도 시간을 나눠 가질 수 없는 작업이었다. 맨 처음 라디오 방송 제안을 고사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시작한 지 6주 만에 7주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이 양심적인 일 같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위한 선택임을 알기에 방송국은 그녀가 공연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덕분에 <아이다>에 재도전하는 옥주현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옷장 안에 넣어두었던 아이다의 의상을 다시 꺼내 입은 기분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옥주현은 많은 것들이 새롭고 신기하다고 했다. 모두 잊은 줄 알았던 아이다의 대사와 동선, 움직임을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연습 기간을 포함한 10개월을 아이다로 지내면서 들였던 노력의 시간들을 증명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느라 작품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때는 주어진 동선 안에서 자유롭지 못해 답답했어요. 모든 대사와 노래에는 어떤 의도가 분명히 담겨 있을 텐데 그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던 거죠. 또 공연 전에는 요가 사업으로, 공연 후에는 사이렌 켜고 라디오 진행하러 가느라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했어요. 컨디션이 좋아서 노래도 괜찮고 대사도 안 틀리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공연을 잘 마쳤다고 생각했죠. <시카고>를 하면서 어느 순간 나보다 작품을 먼저 보게 되는 시야가 조금씩 생긴 것 같아요. 앙상블과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고요.”

 

옥주현은 지난 5년의 시간을 무대 위에서 보내면서 수많은 물음표들을 느낌표로 바꿔왔다. 그러는 사이 배우로서 부족함을 점점 더 많이 느끼게 됐던 <아이다>는 이제 굳이 찾지 않아도 보이고 느껴지는 작품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무대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서로 마음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배우들과의 조화는 그녀가 이번 공연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Dance of the Robe’ 장면에서 격렬한 춤뿐만 아니라 표정에서도 이미 누비안 노예들의 절절함을 표현하는 배우들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예요. 그들과의 조화 속에서 얻는 배움을 통해 제가 조금씩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관객들에게 이 느낌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요.”


다시 <아이다>로 돌아오기 전까지 옥주현은 <시카고>의 귀여운 악녀 록시 하트, <캣츠>의 그리자벨라,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열정을 지닌 무명 코러스 걸 페기 소여, <몬테크리스토>의 아름다운 메르세데스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국내 뮤지컬의 황금기라 불린 시기에 데뷔 무대로 여우신인상을, 차기작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스타 여배우의 프로필이라 하기에는 그녀가 대신 살아온 인생이 그리 많지가 않다. 자신이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 중심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강하고 화려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의외의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도도한 벨마가 아닌 백치 말괄량이 록시를, 세월의 상처와 아픔을 경험한 그리자벨라를, 노래보다 춤이 더 많은 페기를, 극 중 비중이 적은 조연급 주연 메르세데스를 택한 일 모두 그랬다. “십 년을 넘게 봐 온 연예인 옥주현, 언론에서 다뤄졌던 이미지들을 기준으로 삼아서 더 그런 것 같다”는 그녀는 “누구나 예상하는 역할을 맡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하며 웃었다.

 

옥주현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새로운 작품을 욕심내기보다 이전 공연에 재도전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로 무대에 오르면서도 꾸준한 연습과 공연을 일상처럼 즐기고자 하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매 작품마다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을 결정하면 어떻게 해서든 최상의 위치에 도달해야 하는 게 제 목표예요. 제가 작품을 잘 선택한다고들 하시는데 그건 운 좋게도 출연작들의 결과가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전 겁도 많고 스스로 자신감도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연습이 부족하면 긴장되고 말도 빨라지고 스트레스도 엄청 많아져서 연습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어요. 하지만 관객들은 시작과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보게 되는 거잖아요. 제게는 성공 여부를 계산해서 작품을 선택하는 능력까지는 없어요.”


지난 1월에 공연한 <시카고>를 통해 혼자 책임지는 무대를 경험한 그녀는 3개월간 공연하는 <아이다>에도 홀로 무대에 오른다. “처음엔 많이 무서웠어요. 매일 쉬지 않고 공연하기 위해 체력과 컨디션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인가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다가 극장에 가서 공연을 했는데 그동안 걱정했던 게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저 연습한 것 그대로, 또는 그것 이상만 좀 더 보여주면 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연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거구나’ 싶었죠.” 다른 사람의 캐릭터로 살 수 있어 매력적인 뮤지컬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책임감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옥주현은 알고 있다. 분장 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메이크업을 하면서 캐릭터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의 이름보다 작품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는 옥주현. 노력을 통해 쌓은 실력과 신뢰는 인기나 명성처럼 쉽게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자신의 모든 열정을 작품 안에 쏟아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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