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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카르멘 존스>, 죽음으로 운명에 맞선 자유로운 영혼 [No.179]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Joan Marcus 2018-08-07 4,514

<카르멘 존스>(CARMEN JONES), 죽음으로 운명에 맞선 자유로운 영혼

 


 

뮤지컬 무대에서 새로 태어난 유명 오페라

1875년에 초연한 오페라 <카르멘>은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앙리 메이약과 루도빅 알레비가 대본을 쓰고, 조르주 비제가 작곡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오페라 중 하나가 됐지만 초연 당시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집시 여인인 카르멘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그녀로 인해’ 멀쩡하던 인생이 어그러지는 군인 돈 호세의 삶을 그린 내용 탓에 관객들에게 비도덕적이고 선정적이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하바네라’부터 ‘투우사의 노래’까지 오페라가 낯선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와 대중적인 레퍼토리가 됐다.
 

지난 7월 뉴욕 다운타운 유니언 스퀘어 근처에 자리한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카르멘 존스>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 콤비 중 해머스타인 2세가 1943년 홀로 만든 작품이다. 작품은 오페라의 기본적인 내용과 음악은 그대로 가져오고 시대와 장소 배경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남부 낙하산 공장으로 옮겨 왔다. 가사는 해머 스타인 2세가 직접 각색했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등장 인물을 흑인으로 설정했다는 점이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2세의 <오클라호마!>가 브로드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인지, 익숙한 음악 덕택이었는지, 혹은 하위 문화와 상위 문화를 적절하게 섞어서 관객들을 끌었던 해머스타인 2세의 능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194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당시 500여 회가 넘는 공연을 하고 꽤 성공을 거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첫 프로덕션 당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는 자주 공연되지 않아 ‘좋은데 올려지지 않는’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여러모로 현재 공연하기에 까다로운 점들이 많다. 일단 카르멘이라는 인물에게 남자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팜므파탈이라는 낙인을 찍어, 카르멘보다는 돈 호세에게 연민을 갖게끔 쓰여 있는 원작 이야기가 그렇다. 또 백인 창작자가 흑인 공동체의 이야기를 그려냈다는 점도 조심스럽다. 특히 후자의 지적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해머스타인 2세는 흑인 공동체 설정에 대해 “특수한 연극적 수를 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현대적인 카르멘을 그려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작품의 리브레토 첫 페이지에 나름의 의견을 써놓았다. 덧붙여 “흑인은 그의 감정을 단순하고, 솔직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며 “몸에 리듬을 타고났고, 가슴속에 음악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미국 사회에서 스페인의 집시와 가장 비슷한 집단은 흑인”이라고 설명을 더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의 선택에 대해서 이해를 돕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머스타인 2세가 타자화한 흑인과 집시 집단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편견을 보여준다. 덧붙여 비제가 쓴 스페인풍의 음악은 서인도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 흑인들도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이라고 하며, 자신의 각색에 정당성을 주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어쨌든 이러한 설명으로 작품 속에 내재된 타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내러티브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좀 더 짧고, 간결해진 이야기

1943년에 초연된 뮤지컬과 비교해서 이번 프로덕션의 가장 도드라진 차이는 원래는 2막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을 인터미션 없이 95분가량 공연되는 단막으로 줄인 점이다. 작품은 오페라 <카르멘>의 기본 멜로디를 뼈대로 만들어진 뮤지컬 음악을 기초로 한다. 음악감독을 맡은 브로드웨이 베테랑 조셉 주베르는 뮤지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6인조 밴드로 재즈풍의 모던한 음색을 만들어냈다. 이야기 또한 조금은 산만했던 내용의 곁가지들을 다 정리했다. 간결해진 이야기는 주인공인 카르멘과 그가 사랑에 빠지는 군인 조, 조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신디 루 그리고 카르멘이 나중에 사랑에 빠지는 허스키 밀러의 이야기로 압축된다. 카르멘은 조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조는 순수한 첫사랑 같은 신디 루와 카르멘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카르멘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마침 그 동네에 경기가 있어서 지나가게 된 격투기 선수 허스키 밀러가 카르멘을 마음에 두고 시카고로 그녀를 초청하자 카르멘은 상사와의 문제로 군대에서 입지가 어려워진 조를 설득해서 함께 시카고에 간다. 카르멘만 바라보고 시카고에 따라온 조는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카르멘에게 점점 더 화를 낸다. 그들 사이는 점점 나빠지고, 카르멘은 조를 떠나 허스키에게로 간다. 마침 신디는 집에 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조를 찾아온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카르멘을 찾아온 조는 마지막으로 카르멘에게 매달리지만 그녀의 마음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카르멘을 죽인다.
 

작은 곁가지들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위와 같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감정을 따라가는 깊이나 속도에서 오페라 <카르멘>의 요약본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카르멘이 조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나 조가 카르멘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엉성하게 보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비제의 음악 자체는 좋지만, 여타 뮤지컬처럼 음악이 이야기의 진행을 도와주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오페라 성격을 띄어 뮤지컬도, 오페라도 아닌 애매한 음악이 됐다. 카르멘의 이야기는 대다수의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 빠르고 피상적으로 진행되더라도 관객들이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다. 또한 이야기의 초점이 카르멘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게 맞춰져 있어 부족한 개연성을 보완해 준다.  



 

최소한의 무대와 최대치의 감정

이야기의 집중도를 좀 더 높여주는 또 한 가지 요소는 무대 장치나 구성에서 산만한 부분이 적고 배우들의 연기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최근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여러 공연의 무대를 디자인하며 주목받는 스콧 파스크의 무대는 사면에 관객이 앉는다. 무대 중앙은 실질적으로 비어 있는데, 이 공간에 군용 상자들과 몇 가지 천으로 공장, 동네 술집, 그리고 시카고의 상류층 클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그려낸다. 카르멘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의상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카르멘은 새빨간 색을 기본으로 버튼 다운 드레스로 시작해 몸의 실루엣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는데, 실루엣의 변화를 통해 그녀가 맞닥뜨릴 상황들이 더 강렬해질 것을 예상하게 한다. 시각적으로 비어 있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배우들의 노래와 음악이다. 카르멘 역을 맡은 아니카 노니 로즈는 토니 쿠쉬너가 대본을 쓴 뮤지컬 <캐롤라인 오어 체인지>로 토니상을 받은 배우다. 이번 공연에서 주인공인 카르멘 존스를 맡아 클래식한 음악과 잘 어울리는 음색으로 카르멘의 비극을 노래한다. 깨끗하고 청아한 목소리에 고혹적인 표정과 몸짓으로 ‘하바네라’를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조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매력에 빠진다. 그와 상반되는 상대역인 조 역을 맡은 클리프턴 덩컨의 깊고 진솔한 음색은 신디 루와 함께 부르는 듀엣 ‘You Talk Just Like My Maw’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소란을 피워 감옥에 가게 된 카르멘이 그녀를 호송하는 조를 대놓고 유혹하는 곡인  Dere’s A Cafe On De Corner’는 전형적인 러브 듀엣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이들 관계의 위험성을 암시해 준다. 주요 인물뿐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도 다들 성량과 기교가 좋아서 목소리와 음악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작품의 본질에 집중하는 무대 연출은 연출가 존 도일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지난 2005년 브로드웨이에 무대 장치 없이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 컨셉의 <스위니 토드>

로 미니멀한 무대 연출에 새 역사를 써 토니상을 받았다. 이어 2006년에도 손드하임의 <컴퍼니>를 같은 방식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2016년 <칼라 퍼플>에서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의자와 합판으로만 무대를 구성해서 음악과 이야기에 집중해 극을 효과적으로 끌어 나갔다. 작년부터는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의 예술감독으로 초빙되어 다양한 작품들의 연출을 맡고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에서도 말과 노래의 음악성에 초점을 맞춘 간결한 연출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카르멘 존스>도 존 도일다운 시각적인 여백의 미가 분명 존재한다. 아쉬운 점은 그의 다른 작품과 달리 <카르멘 존스>는 이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더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배우의 노래와 음악이 이런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주지만, 무대 구성과 연출 그리고 배우의 연기는 마치 리딩 공연을 연상시켰다. 예를 들어 카르멘과 조, 혹은 신디 루가 관객들을 바라보거나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장면들은 공간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였다. 또 배우의 동선이 뚜렷한 목표 없이 작위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 와중에 빌 티 존스가 앙상블이 술집에서 부르는 ‘Beat Out Dat Rhythm On A Drum’의 안무를 맡아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긴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리딩 공연이 연상될 정도로 심심한 인상을 남겼다.  



 

2018년에 듣는 ‘카르멘 존스’의 이야기

이번 공연은 격분한 조가 카르멘을 죽이고, 그녀를 끌어안고 자리에 주저앉으면 그 둘 위에 조명이 떨어지고 차차 암전되어 그 장면이 관객들의 머리에 새겨지면서 끝을 맺는다. 이전 카르멘의 이야기가 자신 있고 솔직한 매력적인 여자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바탕으로, 여자에 의해 삶이 망가지는 돈 호세(혹은 조)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공연은 카르멘과 신디 루에게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긴 하다. 조의 뮤지컬 넘버보다는 카르멘과 신디 루의 뮤지컬 넘버들이 훨씬 더 무게 있게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마지막 장면은 조가 아닌 카르멘에게 맞춰져 있다. 그리고 오페라가 아닌 재즈풍의 뮤지컬로 보고 듣는 카르멘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게 지나가고, 배우들의 가창력과 기교 역시 역대 오페라 가수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나 1943년에 백인 노인이 흑인과 집시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품고 만든 공연을 2018년 백인 노인이 연출한 공연으로 보는 것은 시작점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한다. 물론 존 도일은 클래식 스테이지 컴퍼니의 이전 예술감독보다 백인 남성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존 도일은 이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 ‘정형화된 흑인을 연기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조언했다고 한다. 정형화된 흑인의 모습을 벗어나서 연기하길 원하는 연출의 목소리가 신선하고 고무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정형화된 흑인 그리고 여성성을 염두에 두고 쓰인 원작에서 정형화된 요소를 제거하고, 이야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얼개가 엉성해지고 음악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 점이 아쉬웠다. 이 작품이 지닌 음악적인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1943년의 카르멘 이야기를 듣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달라져 있는 게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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