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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객석 등이 꺼지지 않는 공연, 미국에 떠오른 릴렉스 퍼포먼스 [No.187]

글 |여태은 뉴욕 통신원 2019-04-20 5,591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

 

‘4월’ 하면 어떤 기념일 먼저 떠오르는가. 식목일? 임시정부 수립일? 4·19 혁명 기념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기념일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4월에는 하나의 기념일이 더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말이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 관객을 위한 최대 배려인 휠체어석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관객을 위한 관람 문화가 형성되는 일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인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객석 등이 꺼지지 않는 공연, 미국에 떠오른 릴렉스 퍼포먼스



 

릴렉스 퍼포먼스와 AFP, SFP 
 

AFP: Autism-Friendly Performance(자폐성 장애 친화 공연)

SFP: Sensory-Friendly Performance(감각 친화 공연)
 

릴렉스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는 영국에서 처음 사용된 개념이다. 미국에서는 릴렉스 퍼포먼스 외에 오티즘-프랜들리 퍼포먼스(Autism-Friendly Performance, 이하 AFP) 또는 센서리-프랜들리 퍼포먼스(Sensory-Friendly Performance, 이하 SFP)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AFP와 SFP의 차이는 전자가 주로 자폐성 장애 관객을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극에 민감한 모든 장애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릴렉스 퍼포먼스는 장애인뿐 아니라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온 가족, 즉 모든 사람이 편안한 환경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욱 포괄적인 개념이다. 현재 브로드웨이서 이뤄지는 이 같은 개념의 공연은 별도로 제작되는 것이 아닌 기존의 공연에 변화를 주어 특별 기획 형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릴렉스 퍼포먼스와 AFP, SFP의 공연 진행 방식은 비슷하다. 공연 관람일에 앞서, 공연장 시설 소개나 작품 설명 등 관람에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를 관객들에게 미리 제공한다. 공연 당일에는 장애 관련 전문가를 비롯한 일반인 자원봉사자를 공연장 곳곳에 배치해 소음을 차단하는 헤드폰, 긴장감을 낮춰주는 손 장난감 등을 나눠준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연 중 무대와 객석의 조명을 완전히 끄는 암전을 자제하고 자극적인 조명과 음향 사용을 지양하는 등 외부 자극에 예민한 관객들이 편안히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공연 중 일상생활에 필요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데 제한을 두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또한 일반 공연과 달리 공연 진행 중에도 쉽게 객석과 로비를 오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로비 한쪽에 휴식 공간을 마련해 놓고 이를 편히 이용하도록 한다. 화장실은 남녀용을 따로 나누지 않고 온 가족이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TDF가 앞서 실천하는 AFP 

브로드웨이에 AFP의 필요성이 대두된 계기는 2015년 링컨센터에 오른 <왕과 나> 공연 중 자폐성 장애 아이와 그의 가족들이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다른 관객들에게 항의를 받아 퇴장 당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왕과 나>의 출연진이었던 한국계 배우 케빈 문 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AFP와 같은 포용적인 공연의 필요성에 대해 호소했는데, 이 내용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되면서 사회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 적지 않은 티켓 값을 지불해야 하는 공연의 특성상 ‘관크(다른 관객에게 관람을 방해받는 일)’를 당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포용적인 관람 문화를 위해 링컨센터를 비롯한 주류 단체가 앞장서AFP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한 것이다.

브로드웨이의 포용적 공연 예술은 지난 2011년에 ‘Theatre Development Fund(공연 발전 기금, 이하 TDF)’의 접근성 프로그램 중 하나인 AFP가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과 함께 <라이온 킹>에 이 같은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TDF는 뮤지컬 <메리 포핀스>, <스파이더맨>, <위키드>, <마틸다>, <오페라의 유령>, <알라딘> 등의 AFP를 1년에 1~2회 기획해 왔다. 연극으로는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브로드웨이에서 AFP를 시행한 첫 작품이다. TDF는 매 시즌 AFP를 시행할 작품을 발표하는데, 2018-2019 시즌에는 뮤지컬 

<스펀지밥 스퀘어팬츠>, <라이온 킹>, <프로즌>, <알라딘>이 이를 도입해 매진 행렬을 이루었고 현재는 <마이 페어 레이디>만이 유일하게 예매 가능한 AFP이다. 라인업에서 볼 수 있듯, TDF가 실행하는 AFP는 주로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의 작품들로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인 경우가 많다. 

자폐성 장애인과 가족 및 보호자에게 공연 관람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온 가족이 다 함께 보기에는 만만치 않은 티켓 가격에도 있다. 그래서 TDF는 각 공연당 1회차(주로 일요일 낮 시간대)의 전 좌석을 구매해 TDF 공식 웹사이트에서 티켓을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AFP를 진행한다. 관객들은 TDF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티켓을 구매할 수 있으며,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0%에서 최대 50%까지 할인된 금액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기획이 가능한 이유는NYSCA(The New York State Council on the Arts, 뉴욕 예술 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와 개인의 후원이 있기 때문이다.

 

AFP 자원봉사기 

필자는 대학원 재학 중에 TDF의 Accessibility Program(접근성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던 동문이 수업 중 초청 연사로 AFP를 소개한 것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공연 예술계에 꼭 도입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라 생각되어 기회가 닿는 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행사에 참석해 왔다. 많은 자료 가운데 ‘Ted Talk×브로드웨이’에 케이티 스위니가 발표자로 나선 ‘모두를 위한 공연(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가 TDF를 통해 브로드웨이 공연을 관람한 실제 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에 특히 감명받아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인 릴렉스 퍼포먼스를 주제로 석사 졸업 논문을 쓰기도 했다. 사실 릴렉스 퍼포먼스는 영미권조차 아직 명확한 개념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근에서야 공연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릴렉스 퍼포먼스를 주제로 한 논문 리서치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직접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는데, TDF의 2018-2019 AFP 작품이었던 <라이온 킹>과 <프로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자원봉사는 참가자 명단에 등록된 사람들이 직접 참석 가능한 날짜를 신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오전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아침 식사를 함께한 후 공연장으로 이동하는데, 구역별로 배치된 자리에서 장애 관련 전문가들을 도와 관객들에게 손 장난감이나 헤드폰 등 필요한 물품을 나눠주고 화장실과 휴게 공간을 안내하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를 맡는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점은 포용적인 관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응대하는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자폐성 장애인들이 공연을 관람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들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발표한 것이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본인이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가족 구성원 중에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이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자폐성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이를 감안한 사려 깊은 기획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극에 예민한 관객들을 고려해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착용하거나 향이 강한 향수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의상 또한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에서 제공하는 티셔츠를 입도록 되어 있다. 공연 후에는 디즈니에서 파견된 교육 전문가의 주도 아래 배우 및 스태프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진다. 단순히 묻고 답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 특별한 공연을 함께한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자리여서 공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디즈니의 <라이온 킹>과 <프로즌> AFP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 대해 새삼 존경심을 갖게 됐다. 공연 예술 관람의 진입장벽을 낮추어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배리어프리 공연 외에 다양한 포용적 예술 지원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 감수 : 

김효선(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사업운영팀)

* 참고 사이트 :

TDF(www.tdf.org) 

TED×Broadway(www.tedxbroadway.com)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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