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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ESSAY] <오페라의 유령>,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원형 [No.198]

글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 사진제공 |S&Co 2020-03-10 5,130

<오페라의 유령>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원형

 

 

시선을 사로잡는 뮤지컬과의 첫 만남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본 건 2001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런던 여행에서였다. ‘버킷 리스트’라는 말을 쓰지 않을 때인데도, 지금 생각해 보면 <오페라의 유령> 관람은 짧은 일정 가운데서 절대 놓칠 수 없는 필수 코스였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티켓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먼저 관람한 관객들의 지침 사항을 사전에 숙지해 뒀다. 모두 입을 모아 말한 한 가지 주의 사항은 “기둥을 피해라!”였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유령을 시선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기둥을 피해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예전 종로에 있던 극장 씨네코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둥이 얼마나 관람에 걸림돌이 되는지 잘 알 테다). 
 

관람에 앞서 기대도 최고조에 올랐다. 1986년 10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 후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한 작품이니까. 전 세계 37개국, 172개 도시에서 공연돼 1억 4천5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최장기 공연’이라는 수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숫자는 매일매일 갱신될 테니 ‘기록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공연에 심장이 뛰었다. 고급 레스토랑을 포기하고 저렴한 피시 앤 칩스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좋은 좌석 확보를 하자는 쪽으로 내 안에서 합의를 봤다.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오페라의 유령>을 상연 중인 허 마제스티 시어터에 도착했을 때 그 규모에 적잖이 당황했다.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여겨지는 공연은 주로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형 극장에서 공연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명성을 지닌 작품 또한 엄청난 규모의 대형 극장에서 할 거라 예상한 것이다.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영화 버전은 뮤지컬을 보고 난 몇 년 후 보았는데, 세트나 의상 등의 화려한 스케일로는 영화가 뮤지컬보다 앞서 보였다. 웨스트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브로드웨이 뮤지컬까지 본 후 느낀 것은 공연 무대가 생각보다 작다는 점이었다. 그땐 해외에서 뮤지컬을 본 게 처음이었으니, 그런 실망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렇게 규모가 작다는 첫인상은 유령과 크리스틴의 애절한 스토리가 드러나는 후반부로 가면서 완전히 깨졌다. 유령이 분장실 거울을 통해 크리스틴을 납치하여 지하 미궁의 수로로 노를 저어가는 판타스틱한 장면, 그리고 이때 울려 퍼지는 타이틀 곡 ‘The Phantom of the Opera’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자아내는 웅장한 분위기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극장 안에 울려 퍼지던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달받은 후, 그때부터 뮤지컬 장르가 가진 파워가 무엇인지 알게 됐으니,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을 잘 알지 못하는 ‘뮤알못’이던 당시의 나에게 장르의 매력을 알려준 입문용 작품과도 같다. 떠올려 보면 <오페라의 유령>이 주는 웅장한 감흥은 이후 본 다른 뮤지컬들과 확연히 달랐다. 뮤지컬 장르라는 틀 안에 있지만, 이 작품의 베이스는 유령이 지배하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다. 오페라 무대를 재연하는 데서 오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 그걸 뮤지컬 무대로 올려놓은 이중적 장치를 통해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영화로만 6차례, TV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등 끊임없이 창작자들이 탐을 내는 이유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페라의 유령>의 흡인력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거부할 수 없는 ‘유령’의 매력에 있다. 지하 수로부터, 극장 좌석까지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유령은 상당히 복합적인 면모로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 복잡한 캐릭터다. 흉측한 얼굴로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가지만, 유령은 오페라 하우스를 지배할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고 예술적 재능도 뛰어나다. 게다가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가진 창작자로서 자존심도 강한 캐릭터다. 크리스틴을 데려가지만, 또 사랑하는 그녀를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요동치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 정도로 역동적이자 논란이 되는 인물이 또 존재할까. 

 

사랑에 관한 원형적인 이야기

유령이 가진 원형을 따져 올라가면 한 핏줄 같은 캐릭터들이 적지 않은데 이 부분이 재밌다. 이를테면 유령은 드라큘라 백작, 프랑켄슈타인과 한 핏줄 남성이다. 이들 모두 일반적인 잣대로 보자면 ‘혐오감’을 주지만, 결국 추악한 겉모습을 벗고 미녀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재밌는 건, ‘유령류’의 이들 캐릭터들에게는 에로틱한 순간이 연출되며, 사랑을 완성하기까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성적 매력을 한껏 과시한다. 피해자인 여성의 목을 깨무는 순간을 에로틱한 행위로 보이게 만드는 드라큘라 같은 장치가 대표적이다. 최근 201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 등장하는 물고기 인간, 청소부 여자 엘라이자와 사랑에 빠진 양서류 인간 괴생명체도 유령과 같은 부류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델 토로 감독은 이 괴생명체를 진짜 남자보다 더 멋있게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고 한다. 인간 남성보다 훨씬 더 ‘섹시’해서, ‘키스하고 싶을 정도로 절대적인 매력’을 가지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조엘 슈마허 감독이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300>에서 ‘짐승남’으로 인기를 얻은 근육질의 배우 제라드 버틀러를 캐스팅한 것만 봐도 유령의 이미지가 어떤지 그려진다. 
 

따져보자면 유령은 동화 <미녀와 야수>나 <개구리 왕자>처럼 여성의 사랑을 얻기 전까지는, 야수나 개구리로 살아가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앞선 왕자들이 사랑의 쟁취로 마법의 저주를 풀고 얼굴을 되찾았다면, 유령은 결국 연적 라울의 등장으로 크리스틴의 사랑을 얻지 못했고, 저주는 지속된다는 점에서 동화 속 인물들보다도 훨씬 가련한 케이스다. 마스크 안에 숨긴 복잡한 사연과 내면, 그리고 그럼에도 끝끝내 숨길 수 없었던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을 가진 남자(크리스틴을 향한 강압적인 애정 구애에도, 유령에 대한 연민에 눈물 꽤나 흘렸던 기억이 난다). 사랑을 갈구하는 유령이 불러일으키는 규정할 수 없는 이 복합적인 지점들이야말로, 유령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의 매력에 지금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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