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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식스> 여섯 왕비의 신나는 자기 외침 [No.216]

글 |여태은(뉴욕통신원) 사진 | 2022-10-14 657

<식스>
여섯 왕비의 신나는 자기 외침

 

영국 왕 헨리 8세와 여섯 왕비는 이미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룬 소재다. 하지만 헨리 8세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마다 왕비들의 이야기는 가십거리로만 소비될 뿐 제대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식스>는 헨리 8세의 그림자에 가려진 여섯 왕비를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세운다. 출연진과 밴드 멤버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식스>는 여성에 의한, 여성의 이야기다.

 

 

History가 아닌 Her Story


<식스>는 2017년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 후 오프웨스트엔드, 영국 투어 공연을 거쳐 마침내 2019년 1월 웨스트엔드 아트 시어터에서 초연했다. 원래는 16주간 공연할 예정이었다가 2021년 1월까지 공연 기간이 연장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2020년 3월부터 공연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2021년 9월부터 보드빌 시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2월 미국으로 건너온 <식스>는 브로드웨이 브룩스 앳킨슨 시어터에서 프리뷰 공연을 시작했지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해 브로드웨이가 셧다운되는 바람에 공연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연 중단 이후 무려 18개월이 지난 2021년 9월에서야 프리뷰 공연을 재개할 수 있었고, 10월에 정식 개막한 후 지금까지 순항하고 있다. 현재 <식스>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호주, 북미 투어, 영국 투어까지 전 세계에서 총 5개 프로덕션이 공연 중이다. 


공연은 무대 위로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섯 명의 배우가 등장하고 드라마틱하게 커튼이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배우들은 다 함께 오프닝곡인 ‘Ex Wives(전처들)’를 부르며 자신이 누구인지 간단히 소개하면서, 이 공연이 헨리 8세에게 “이혼당하고, 참수당하고, 죽거나, 이혼당하고, 참수당하고, 살아남은” 여섯 왕비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린다. 콘서트 형식을 차용한 <식스>는 콘서트의 진정한 리드 싱어가 누구인지 가리기 위해 누가 가장 고통받았는지를 겨룬다. 관객들은 쉴 새 없이 서로의 말을 받아치는 여섯 왕비에게 이끌려 왜 이런 경쟁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 잊은 채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첫 번째 곡이 끝난 후에는 각자 세상에 알려진 내용과는 조금 다른 자신들의 진짜 이야기를 노래로 펼쳐낸다. 이후 이어지는 곡은 뮤지컬에서 등장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나 감정을 털어놓는 노래를 일컫는 ‘아이 엠 송I'm Song’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뮤지컬 넘버가 솔로곡으로 진행되지만, 나머지 다섯 명이 코러스나 추임새를 넣고 같이 춤추면서 무대를 함께한다. 오프닝곡인 ‘Ex Wives’부터 마지막 곡인 ‘The Megasix(메가식스)’까지 80분간 이어지는 공연은 누구 하나 더하거나 덜하지 않는 분량으로 여섯 왕비가 같이 채워간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시각 요소들


콘서트 콘셉트 때문인지 <식스>의 무대 세트는 심플하다. 별다른 디자인 없이 단순한 구조에 LED 조명을 사용한 게 전부다. 하지만 애초에 작품이 지향하는 콘서트 분위기를 잘 살리는 데다 무대에 큰 공을 들이지 않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 무대 활용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네 번째 왕비인 클레페의 앤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한스 홀바인의 이야기가 담긴 ‘Haus of Holbein(홀바인 가문)’을 부를 때다. 초상화만 보고 신붓감을 고르는 왕족들의 모습을 마치 데이팅 앱에서 프로필 사진만 보고 데이트 상대를 고르는 현대인들에 빗대어 표현한다. ‘마음에 들면 Swipe Right오른쪽으로 밀기’를 시전해 합격자와 탈락자를 결정짓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외모 지상주의를 재치 있게 표현한다. 


단조로운 무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안무와 의상이다. <식스>의 안무가 캐리 앤 루이는 개성 강한 여섯 왕비의 음악 스타일에 맞춘 안무를 보여준다. 안무로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무대 전환이나 배우들의 등퇴장이 없는 공연 특성상 안무와 동선을 다채롭게 살린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캐리 앤 루이는 <식스>로 올리비에 어워즈와 토니어워즈 안무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식스>의 의상은 1990년대를 휩쓴 영국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리유니온 콘서트 의상을 담당했던 가브리엘라 슬레이드가 맡았다. 화려하고 재치 있는 의상은 보는 재미가 쏠쏠할 뿐만 아니라 안무와 마찬가지로 각 인물의 개성을 돋보이게 한다. 예를 들어 다른 왕비들의 질투를 사는 앤 불린의 옷은 질투를 상징하는 녹색을 사용했고, 헨리 8세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제인 시어모의 의상에는 순수함의 상징인 흰색을 썼다. 클레페의 앤은 솔로곡을 부를 때 모피로 된 겉옷을 찢고 보석과 가죽, 망사로 꾸며진 화려한 란제리 룩을 선보이는데, 재력을 과시하는 스웨그 넘치는 내용에 어울리는 연출이었다. 가브리엘라 슬레이드는 이 작품으로 2022년 토니어워즈 의상상을 받았다. 

 

 

남다른 뮤지컬 탄생기


<식스>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자본이 투입된 뮤지컬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거쳐 관객을 만났다. 이 작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94년생 동갑내기 친구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가 극작부터 작사, 작곡까지 공동 창작으로 완성했다. <식스>가 처음 소개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주로 획기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소규모 공연을 선보이는 페스티벌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한 <식스>는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이때 프로듀서 케니 왁스의 눈에 띄면서 웨스트엔드로 진출하게 됐다. 


<식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인기 몰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음악이다. <식스>는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르기 전인 2018년에 오프웨스트엔드 캐스트 앨범을 발매해 영국 앨범 차트를 휩쓸었다. 올해는 브로드웨이 개막 실황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앨범 차트 상위에 오르며 다시 한번 저력을 과시했다. <식스>의 음악은 기존의 뮤지컬 음악과 달리 팝 음악 스타일의 쉬운 멜로디와 반복적인 리듬이 특징이다. 또 재치 있는 가사는 라임까지 잘 살렸다. 한마디로 듣기 좋고, 부르기 쉬운 음악이다. 각 왕비의 음악 스타일은 비욘세, 아델, 리한나, 아리아나 그란데 등 인기 여성 뮤지션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익숙하고 흥겨운 음악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식스>의 열정적인 팬인 ‘퀸덤’을 탄생시켰다. <식스>가 가진 음악의 힘을 입증하듯, 토비 말로우와 루시 모스는 2022년 토니어워즈와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에서 음악상을 받았다. 


데뷔작인 <식스>로 소위 말해 대박을 터트린 두 젊은 창작자는 <식스> 이후에도 활발한 창작 이어가고 있다. 배우로도 활동 중인 토비 말로우는 <식스> 이후에 <핫 게이 타임머신Hot Gay Time Machine>을 공동 창작하고 직접 배우로 출연했다. <식스>의 공동 창작자이자 연출가인 루시 모스는 연출가로서의 활동이 돋보인다. <식스>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할 당시 26세였던 루시 모스는 브로드웨이 최연소 여성 연출가로 이름을 올렸다. 또 2022년 토니어워즈에 공동 연출가인 제이 아미티지와 함께 연출상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틱톡 뮤지컬 <라따뚜이>의 연출을 맡았고, 최근에는 런던 리젠트 파크 야외 무대에서 공연한 <금발이 너무해>를 연출하며 흥미로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목소리는 내는 여섯 왕비


<식스>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여섯 왕비의 이야기다. 오프닝곡이 끝나면 차례대로 여섯 왕비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가장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왕비는 아라곤의 캐서린이다. 헨리 8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아라곤의 캐서린은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당했다. ‘No Way(절대 안 돼)’에서는 사실상 캐서린을 내쫓을 명분이 없었음에도 자신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한 것에 대해 “절대 안 될 일”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아라곤의 캐서린은 순종적이고 연약한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식스>의 아라곤의 캐서린은 빠른 비트의 댄스곡에 맞춰 파워풀한 고음에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이며 관객을 압도한다. 아라곤의 캐서린에 이어 등장하는 앤 불린은 자신은 그저 즐기고 싶었을 뿐 누군가를 다치게 할 마음은 없었다며 “미안한데 안 미안해. 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했는데?”라고 발칙하게 반문한다. 영국 역사상 희대의 스캔들 주인공인 앤 불린은 흔히 권력욕에 휩싸인 악녀 이미지로 그려진다. 하지만 <식스>의 앤 불린은 ‘Don't Lose Ur Head(정신 줄 잡아)’를 부르며 헨리 8세와의 만남부터 처형에 이르는 과정을 재치 있는 가사로 풀어내 헨리 8세의 잘못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헨리 8세가 참된 아내라고 생각했다는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는 팝 가수 아델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발라드 ‘Heart of Stone(굳건한 사랑)’을 노래한다. 모두가 그렇듯 제인 시모어도 자신이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았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헨리 8세의 곁을 지키겠다는 사랑 고백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제인 시모어는 훗날 에드워드 6세가 되는 왕자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제인 시모어의 절절한 사랑 고백으로 숙연해진 분위기를 다시 띄우는 것은 ‘Haus of Holbein(홀바인 가문)’이다. 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아내를 고른 헨리 8세가 실물을 보고 이혼했다는 이야기로, 초상화의 주인공인 클레페의 앤이 부르는 ‘Get Down(엎드려)’이 이어진다. 클레페의 앤은 다소 황당한 이유로 이혼당했지만 헨리 8세에게 받은 위자료 겸 위로금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았던 가장 행복한 왕비다. “주변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남자 한 명 없이 이 많은 돈을 갖고 어떻게 사냐”며 “참으로 비극”이라는 대사는 그녀의 행복한 삶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얘들 중에 내가 제일 예쁜 거 알지?”라는 대사로 당차게 등장하는 캐서린 하워드는 간통죄로 처형당한 왕비다. 하지만 캐서린 하워드의 솔로곡 ‘All You Wanna Do(당신들이 원하는 것)’에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바와 조금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예뻤던 탓에 남자들에게 늘 이용을 당한 그녀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표현된다. 10대 후반에 만난 헨리 8세도 통하는 게 없었고,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토마스 컬페퍼마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육체적인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노래는 당돌한 시작과 달리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헨리 8세의 사망으로 끝까지 왕비의 자리를 지켰던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는 경쟁은 무의미하다며 기권을 선언한다. 하지만 나머지 왕비들은 캐서린 파의 노래까지 듣고 리드 싱어를 결정해야 한다며 그녀의 솔로곡 ‘I Don't Need Your Love(네 사랑은 필요 없어)’를 부르게 한다. ‘I Don't Need Your Love’는 캐서린 파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토머스 시모어에게 헨리 8세의 간택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하는 편지로 시작한다. 하지만 노래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내 삶은 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라는 고백으로 이어지고,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은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으로 역사에 남을 게 아니라 여성 교육을 위해 힘썼고, 여성 화가에게 초상화를 맡겼던 작가로 후대에 전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캐서린 파의 노래가 끝난 후 나머지 왕비들도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야기가 다소 급히 마무리되는 인상을 주었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속도감 있게 공연이 진행된 덕분에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마지막에 이르러 여섯 왕비들은 자신들을 헨리 8세의 여섯 부인 중 한 명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노래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무엇보다도 관객들에게 그런 삶의 태도를 향해 가도록 응원하는 것이 여섯 왕비가 <식스>를 통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6호 2022년 9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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