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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빵야> 하성광, 흐르는 물처럼 [No.220]

글 |최영현 사진 |표기식 2023-01-26 934

<빵야> 하성광
흐르는 물처럼

 

연극 <빵야>는 드라마 작가 ‘나나’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99식 소총을 소재로 드라마 대본을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은 99식 소총을 ‘빵야’라는 인물로 의인화하고, 나나가 쓴 드라마를 극중극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묵직한 연기로 관객을 매료시켰던 중견 배우 하성광이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목격한 빵야 역을 맡았다. 연기 인생 28년 차,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는 하성광을 만났다. 

 

 

역사의 비극을 연극으로

 

최근 출연작은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예요. ‘하성광’ 하면 연극배우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틈틈이 참여했더라고요. 어떤 계기로 매체에 진출하게 되었나요?
진출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처음 영화를 찍은 게 2005년 즈음일 거예요.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닌데, 영화 관계자분이 어찌 알고 오셨는지 같이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영화를 찍어본 일이 없었으니 재미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시작했는데 엄청 힘들더라고요. (웃음) 한 작품을 3~4개월씩 촬영하고, 여름엔 더위와 겨울엔 추위와 싸워야 하고. 영화 촬영 현장은 이렇구나 하는 걸 많이 배웠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매체와 무대를 구분 짓는 게 배우를 협소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나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죠. 매체에 가서 새로운 것도 배울 수 있고. 

 

연극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활동 영역은 넓지만 출연작이 많지는 않아요. 보통 1년에 많아야 세 편 정도 참여하시더라고요. 
딱 그만큼만 작품 제안이 들어옵니다. (웃음) 제가 멀티플레이어가 아니어서 작품이 많이 들어온다 해도 다 소화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주의죠. 한 작품이라도 올곧고 올차게 하길 바라요. (작품 선택 기준이 까다롭나요?)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그저 스케줄상에 문제가 없는지 잘 챙겨보죠. 일정이 겹치면 어찌 되었건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라 될 수 있으면 출연 기간이 겹치는 작품은 안 하려고 해요. 그리고 만약 비슷한 조건이라면 따뜻한 인물을 선호해요. 세상에 워낙 나쁜 게 넘쳐나잖아요. 따뜻한 인물로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죠.

 

올해의 첫 작품은 연극 <빵야>예요. 이 작품을 선택하신 이유는 뭔가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먼저 연락이 왔어요. 대본을 받아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한국 근대사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의미 있고, 그걸 총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것도 흥미로웠어요. 제가 또 김은성 작가를 좋아하기도 해서 “같이 해봅시다” 하고 창작산실 리딩 공연부터 참여했어요. 대본은 3년 전에 완성됐는데 그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이제야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김은성 작가도 그렇고, 참여하는 배우들도 그렇고, 다들 기분 좋게 준비 중이에요.

 

<빵야>는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총의 여정을 그리고 있어요. 처음에 ‘총’ 역할을 제안받고 어떠셨어요?
조금 놀랐지만 금세 수긍했어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만든 99식 소총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한 시대를 여행한다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총이지만 의인화되어 있어서 연기에 어려운 점은 없어요. <빵야>는 현실과 극중극으로 나뉘어요. 현실에는 드라마 작가 나나와 빵야가 있고, 극중극에는 나나가 쓴 드라마 대본 속 이야기가 펼쳐져요. 그래서 빵야뿐만 아니라 극중극 안의 인물도 연기하죠. 지금은 빵야와 극중극 인물이 잘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역사적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 시대 배경이나 장소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대신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 있어요. 연습 때 매일 스터디를 해요. 기본적인 역사 공부도 하고, 극중극의 군인들이 몸담았던 부대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죠. 

 

대본에 두 배우가 빠르게 대사를 주고받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한 문장의 대사를 나눠서 말하기도 하고요. 관객들은 재미있게 보겠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렵겠죠?
제가 받은 첫 대본에는 작가가 아예 이인극 형태로 쓴 작품이라고 써놨어요. 한 120쪽 분량의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이어가는데, 이대로 연기하다간 죽을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지금은 설정이 바뀌어서 여러 배우가 역할을 나눠 연기해요. 그렇지만 두 배우가 짧은 대사를 속도감 있게 주고받는 건 바뀌지 않았어요. 대사를 읽다 보면 이게 내 대사인지 상대방 대사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결국 한 사람의 말을 두 사람이 하는 거니까 장면 전체를 이해하고 대사를 전부 외워야 할 것 같아요. 

 

글로만 봐도 대사의 리듬감과 속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맞아요. 대본 자체가 속도감 있게 쓰여 있어요. 두 사람이 대사의 흐름을 타면 막 달리게 되죠. 게다가 지금은 테이블 작업 중이라 대본을 보면서 연기를 해서 그런지 다들 대사 속도가 너무 빨라요. 속으로 ‘적당히 좀 하지’라고 생각하죠. (웃음) 그래도 아주 재미있어요. 제가 평소 말투가 좀 느린 편이지만 민폐 끼치면 안 되니까 속도에 맞추려고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극 중 나나의 대사로 “비극적인 역사를 드라마로 재현해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말이 나와요. 나나의 질문에 직접 답한다면 뭐라고 하실 거예요?
아까 우리 팀이 매일 역사 공부를 한다고 했잖아요. 우리 팀에 30대부터 50대 배우들이 모여 있는데, 매번 이런 일이 진짜 있었냐고 서로 물어보기 바빠요. 우리나라 역사라 잘 알 것 같지만 모르는 게 많아요. 연극은 학문이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전달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역사를 잊지 않도록 혹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환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역사를 연극으로 재현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빵야>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는 작품이에요. 각각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 근대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는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작품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냥 재미있는 연극 한 편으로 봐주셔도 좋고요.

 

 

조용히 흐르는 물처럼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 싫어서 연극배우가 되셨다고 했어요. 학창 시절에 연극을 많이 접하셨나요?
전혀요. 저는 전남 진도 시골 출신이라 어릴 적에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연극과 관련된 경험이라고는 국어책에서 『마지막 잎새』 희곡을 읽은 게 다였어요. (그런데도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냥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극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요. (웃음) 극단 막내의 삶은 회사원보다 더 빡빡했어요. 아침부터 청소하고, 포스터 붙이고, 밥 먹고, 공연 준비하고, 공연 끝나면 밤 10시고. 그렇게 매일 쳇바퀴 돌 듯 지냈어요. 그래도 그때는 불평하기보다 빨리 공연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연극배우가 되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신 거예요?
제대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왔죠. 누님이 서울에 계셨지만 연극 쪽에 연고는 없었어요. 서울에 오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혜화역으로 갔어요. 마침 역에 단원 모집 공고가 붙어 있어서 그걸 들고 극단에 찾아갔어요. 그렇게 무작정 시작해서 무작정 여기까지 왔네요. 

 

원하던 배우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무명 생활이 길었어요. 혹시 그 시간 동안 연극을 그만두어야겠다고 고민했던 적이 있나요?
2006년에 <리어왕>에서 에드거 역을 맡게 됐어요. 근데 연습 기간 내내 연출 선생님께 연기를 못한다고 많이 혼났어요. 그때 아주 힘들었죠. 제 능력이 부족해서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못 견디겠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연극은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대신 마지막이니까 할 수 있는 한 즐겁게 마무리하자 생각했죠. 그런데요, 인생이 되게 웃겨요. 그 역할로 저한테 상을 주는 거예요. 그때 받은 상이 서울연극제 신인상이에요. 어안이 벙벙했죠. 살라는 건가 죽으라는 건가. 기뻤지만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여전히 고민됐죠. 고민하는 동안 몇 년이 흘렀어요. 그사이 작품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계속 와서 어쩌다 보니 여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네요. (웃음)

 

연극배우의 길에 접어든 지 벌써 28년 차예요. 그동안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많은 사람이 하성광의 대표작 하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꼽아요. 동의하세요? 
동의해요. 상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건 아니고요. 가장 오래한 작품이라 그래요. 한 작품을 재공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015년 초연 후에 다섯 번 공연됐어요. 긴 시간 동안 관객의 관심과 사랑을 잃지 않고 공연된다는 게 대단한 일이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은 늘었죠. 하루는 드라마 촬영장에 갔는데 한 스태프가 오더니 “선배님, 공연 잘 봤습니다.” 그러더라고요. 드라마 스태프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에요. 그런데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연을 보고, 또 잊지 않고 저에게 인사를 해주는 게 참 고마웠어요. 사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하면서 상도 받고 칭찬도 받았는데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스태프의 인사를 받는 순간, 배우로서 인정받았다는 걸 체감했죠. 책임 의식도 느껴지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배우 하성광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은 뭐였다고 생각하세요?
그냥 흘러온 것 같아요. 연극배우로 사는 게 힘들지 않냐 하는데 주변에 나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힘든 줄도 몰랐어요.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대단한 야망도 없었거든요. 나한테 맡겨진 작품이나 잘 하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흘러왔죠.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으세요?
작품을 하면 그 인물을 잘 구현해 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어떤 상을 받아야겠다, 대단히 유명해져야겠다, 그런 목표는 없어요. 바람이 있다면 매체 쪽에 가서는 카메라 앞에서 좀 더 편했으면 좋겠고, 무대에서 안 떨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품 할 때 남들에게 민폐를 안 끼쳤으면 하고요. 여기서 살짝 더 욕심을 부리면 주변에 도움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1등 하려고 하지 말고 중간에 서고 싶어요. 그 위치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0호 2023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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