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인터뷰] 예술가의 순수한 미소 - 기타리스트 이병우 [No.91]

글 |김유리 사진 |김호근 2011-04-18 4,670

4월, 섬세하고 다정한 감성의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화음 쳄버오케스트라가 봄을 맞아 <로맨틱 멜로디 콘서트>를 마포아트센터에서 선보인다. 우리에겐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장화, 홍련>(2004),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괴물>(2006), <해운대>(2009) 등을 통해 영화음악가로, 5장의 솔로 앨범을 낸 기타리스트로 잘 알려진 그 이병우다. 그의 섬세하고도 다정한 기타 선율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관객의 마음에 깊고 따스한 봄볕을 드리울 예정이다. 꽃샘추위가 봄과 실랑이를 벌이다 눈이 내리던 3월의 어느 날,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렇게 하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라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내게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이에요.” 인터뷰이 인생의 드라마틱한 포인트를 예상하고 건네는 질문에, 이렇게 둔탁하지만 큰 펀치를 가하는 답변이 또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을 모아 의미를 부여하려는 기자의 습성상 일반적으로 인터뷰에서 어떤 계기나 의미 등을 묻게 되는데, 이런 답변이 돌아올 경우 기자는 얼른 자신의 의도를 버리고, 그 대화의 결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985년 한국 언더그라운드 록의 기념비적인 밴드 ‘들국화’의 데뷔 앨범 중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후 조동진, 양희은, 하덕규 등의 뮤지션들과 일하며 내공을 쌓고, 이어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프로젝트 듀오 ‘어떤 날’을 결성하며 두 장의 앨범을 낸다. 1989년 첫 기타 솔로 작품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을 공개한 후 고전 음악을 공부하고자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갈 때는 1년을 생각하고 떠났지만, 6년 후 미국으로 건너 가 결국 유학을 마치기까지 11년이 걸렸고, 유학 중 시작했던 영화음악으로 이제는 영화음악가란 타이틀이 더 익숙해졌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대학 교수란 직함까지 더해졌다. 언뜻 뜨겁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온 사람의 행보로 보이지만, 그는 오히려 “뜨겁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지금까지의 삶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 자꾸 다가오기 때문에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배워왔던” 과정이었다.     

 

장르나 방법의 틀을 넘나드는 아티스트
지난해 그는 피아니스트 김광민, 가수 윤상 등과 합동 콘서트 와 10월 마지막 밤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인 콘서트 <어느 멋진 날>로 관객과 만났다. 올해 그는 클래식 기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에 나선다. 4월에 있을 <로맨틱 멜로디 콘서트> 무대에서 그는 J.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을 연주하고, 공연 중 관객에게 클래식 기타에 대한 해설을 직접 들려줄 예정이다. ‘아랑훼즈 협주곡’은 기타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으로, 오랜 기간 ‘주말의 명화’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었던 곡이다. 주로 대중음악가로 활동해왔던 그에게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는 참 오랜만이다. “외국에 있었을 땐 클래식만 연주했는데, 한국에 오면 대중음악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 클래식을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앙상블을 하게 되면 제가 정말 많이 배워요. ‘아, 오케스트라 소리가 이런 것이었지, 무척 아름다웠지’ 새삼 느끼게 되기도 하고요. 사실 주위에 계속 있었을 뿐인데, 그걸 잘 못 보는 게 우리의 눈인 것 같아요. 제가 ‘아랑훼즈 협주곡’을 그렇게 많이 연주했어도, 또 리허설을 하다보면 ‘아, 이 부분이 이렇게 아름답게 소리가 나는 부분이었구나. 정신없이 내 연주하느라 못 듣고 있었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 고마워하죠.”
11세부터 클래식 기타 레슨을 받기 시작한 그는 중학교 때는 여느 남학생들이 그렇듯 일렉트릭 기타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뭔가 채울 수 없는 갈망이 있었다. 그래서 클래식 소품 악보도 구해서 연주하며 그 목마름을 채워 나갔다. 고등학교 때 무릎에 이상이 생겨 학교를 1년 간 쉰 일은 어쩌면 그로 하여금 더욱 기타와 음악에 천착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에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음악을 좋아하고, 관심과 호기심이 많았어요. 클래식 음악도 좋아하게 되고, 클래식 학교도 가게 되고, 제가 처음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었죠.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들 하잖아요. 큰 꿈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늦어서 그렇지 항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와 있었고, 거기에 응하면서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서양과 동양의 고전 음악과 컨템퍼러리 음악까지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영화음악에서 특히 빛을 발해왔다. 1996년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에서 담백한 기타 선율로 시작된 작업은 상처받은 소녀들의 예민한 속내를 듣는 듯한 <장화, 홍련>, 하프시코드를 사용한 바로크풍의 실내악과 가야금을 사용한 국악의 변주가 인상적이었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대금 등의 전통 악기와 서양식 악기가 크로스 오버되며 펼쳐지는 <왕의 남자>, 한강에 괴물이 등장한 후 벌어지는 촌극 같은 상황을 서커스풍으로 풍자하고 소시민의 애환을 녹여내었던 <괴물> 등 관객이 음악만으로도 각각의 상황을 충분히 그리고, 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예민한 감성의 음악을 펼쳐왔다. 이렇게 각 장르를 잘 수용하고, 자기화하여, 듣는 이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음악은 그의 성격에서 비롯되었다고. “저란 사람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경향이 많은 사람이에요. 글쎄요, 뭐든지 선을 긋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죠.”

 

듣는 이의 일상에서 숨 쉬는 음악
그의 음악엔 현실적인 일상의 정서가 잘 녹아 있다. 친구와 이별하는 순간, 밀려오는 추억으로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비가 오는 풍경과 그 정서를 줄의 질감으로 묵직하게 표현하기도 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길을 달리기 시작할 때의 신선함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섬세한 표현은 영화에서 캐릭터의 정서에 세밀함을 더 부여하여 캐릭터가 한층 강화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늘 기타를 끼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에게 기타는 호기심의 대상 이상이었음을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는 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어렸을 적엔 기타에서 들리는 화음이 신기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답이 바뀌는 시험 문제들로부터 떠날 수 있는 피난처였으며, 가끔 들어가 있던 병실에서 새살이 나길 기다리며 우두커니 내 옆에 있던 친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기타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의 시대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다. 나는 이 타임머신을 타고 심지어는 300년 전의 음악으로 날아갈 수 있다. 악보라는 암호 같은 기호를 통해 그 옛날 증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뻘 되는 이의 감정을 그것도 내 방에 앉아서 해독하기 위해 매일 연습한다. 악기나 그 시대 상황에 서툴면 작곡가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레이블 ‘무직도르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
인터뷰 중에도 그의 기타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려놓았다가도 어느 새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 기타는 그의 눈이고 입과 같은 존재이며, 기타 연주는 생활의 일부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상징성을 현실에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게 고민한다. 바로 그가 들고 있는 넥이 없는 기타 바(Guitar Bar)는 연주자의 허리와 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 기타를 만들고자 그가 2년 이상 연구하며 상용화한 예다. 어쩌면 의미 없을 질문을 또 한번 던져봤다. 당신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역시 그 다운 답변이 온다.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영화음악 할 때 영향받는 건 일상적인 일들이에요. 음악에만 전념할 순 없고, 일상적인 일들과 함께 병행이 되니까요. 살면서 들어오는 일상적인 태클들, 예를 들면 날짜 지난 공과금 고지서, 차가 고장이 난달지, 개밥이 떨어지거나 그런 거죠.”

 

현재를 살아가는 아티스트
그는 “현실을 사는 모두가 예술가”라 생각한다. “주로 음악과 미술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예술가라 하는데, 전 사실 누구나 다 예술가인 것 같아요. 다 각자의 방법으로 예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다 자신만의 예술 활동을 펼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자신을 기타를 업으로 삼고 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라 설명하는 그의 ‘뜨겁지 않은 마인드’ 덕택에 스스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 조율을 거쳐야 하는 영화음악 작업 역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정답으로 가길 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뭐가 더 재미있을까 하고 같이 고민하며 찾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어요. 두 가지가 다 재미있어요. 저마다 생각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 이해가 가죠. 이 상황에선 이러이러하니 이렇게 가는 게 좋겠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는 지난 3월부터 성신여대 문화융합예술대학 내 실용음악학과 전임 교수로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여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자의 삶을 연구해보니 한시라도 빨리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가능한 가르치는 학생들이 연주하고 작곡을 해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수입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여학생들이라 더더욱 자신만의 전문성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이라도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달라요.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무대에 올라가면 작은 사람이 있고, 연주를 잘 못해도 무대에서 사람들을 휘어잡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논리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음악이 항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말도 안되는 음악을 할지라도 되는 경우가 있어요. 매력이라는 거죠. 학생들에게 제일 얘기해주고 싶은 건 어떤 것도 정답이 없으니까 옳고 그름에 대해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걸 캐치해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제 경험으론.”

인터뷰가 끝나고 이어진 촬영에서 기타를 안고 소년처럼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 다시 보였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순수함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꿈을 차근차근 현실화시키며 자족하는 사람의 순수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3년 이후 8년째 소식이 없는 솔로 앨범에 대한 계획을 묻자 “아이디어는 생각해두었으니 한 5년 안에는 나올 거예요. 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라 말하며 또 한번 웃었다. 

 

 

이병우와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로맨틱 멜로디 콘서트>

일시 | 2011년 4월 22일(금) 오후 8시

장소 |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문의 | 02-3274-8600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1호 2011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