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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톺아보기 [No.223]

글 |안세영, 이솔희 사진 |섬으로 간 나비, 컬처마인, 컴퍼니 일상,적 2023-04-13 354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톺아보기 

 

우수 창작 작품 발굴을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이하 창작산실)에 선정된 <청춘소음> <다이스> <앨리스>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이 지난 1월부터 차례대로 무대에 올랐다. 그중 『더뮤지컬』 221호에 소개되었던 <청춘소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외부 참여자: 박초희(더뮤지컬 리뷰어 1기), 이우정(더뮤지컬 리뷰어 3기)
 
 
 
낯선 존재와 마주하는 법 <앨리스>
 
이우정 <앨리스>는 자폐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보기 드문 뮤지컬이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변주해 자폐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비자폐인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세계가 자폐인에게는 오히려 ‘이상한’ 나라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공연을 보니 자폐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어린아이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안세영 최근 자폐증과 같은 신경 질환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신경다양성’ 개념이 힘을 얻고 있지 않나. 주인공 나영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틀린 게 아닌 다른 관점으로 제시하고, 관객이 공연을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공연은 자폐인이 세상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어떻게 시청각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박초희 실제 나이가 17세인 나영을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것이 자폐인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무대 미술마저 아동극 느낌이 난다. 지난해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등학생의 이야기로 재창조한 연극 <틴에이지 딕>에서 주연을 맡은 하지성 배우가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착하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자폐인 나영이 바라보는 세상이 마냥 동화 같으리라는 발상 역시 비자폐인의 편견이 아닐까? 
최영현 <앨리스>는 나영이 일련의 모험을 통해 홀로 서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성장 스토리의 외양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나영이 자폐 특성으로 인해 비자폐인 중심의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폐인의 대표적인 특성이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인데, 극 중 나영은 길에서 만나는 낯선 타인과도 금세 가까워진다. 
안세영 나영의 성장을 보여주려면 그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타인에게 다가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야 한다. 반대로 비자폐인이 나와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자폐인과 소통하기 위해 혼란을 겪는 과정 역시 현실감 있게 그려져야 한다. 지금은 모든 등장인물이 처음부터 나영에게 친절한데, 갈등이라는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화합에 이르려고 하니 억지스럽다. 나영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공동체가 함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영이 아버지 없이도 다른 사람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결말에 설득력이 실릴 것이다.
 
 
 
운명과 자유 의지의 대결 <다이스>
 
이우정 <다이스>는 트로이 전쟁 도중 병사들이 지루함을 견디려고 주사위를 발명했고, 주사위를 굴려 나온 결과를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속설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신이 부여한 운명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주사위라는 소재와 그럴듯하게 엮어냈다. 이야기의 방향성이 명확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해 세 작품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관람했다. 
박초희 동감이다. 이 작품에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거짓을 꾸며내는 사람과 진실을 밝혀 자유를 되찾으려는 사람이 나온다. 각각의 인물이 추구하는 바와 이들 사이의 갈등이 명확하게 그려진다. 
안세영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권력자가 성벽을 세우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두려움으로 군중을 통제한다는 설정은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만의 예리한 통찰력을 발견할 수 없고, 전개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문다. 전체적으로 이런저런 클리셰를 모아 놓은 느낌이다.
최영현 클리셰가 클리셰인 이유는 그만큼 대중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클리셰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다이스>는 초반부 설정에 클리셰를 적절히 활용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중반부부터 대부분의 시련이 대사 몇 마디와 솔로곡으로 쉽게 해결되어 긴장감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기존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장면이 충분히 통쾌하게 그려지지 않아 아쉽다. 
이우정 다이스와 셀리나 공주가 성벽 안팎의 사람들을 규합해 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좀더 스펙터클하게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작품의 규모를 키워 성벽 안팎을 오가는 모험담을 더욱 대담하게 그려도 좋을 것 같다. 
안세영 지금보다 큰 무대에 어울리는 이야기다. 소극장에서 세트 변화 없이 공연하다 보니 각각의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의 특색이 잘 살지 않아 모험담의 재미가 반감되더라. 소품 활용만으로는 성벽 안과 밖, 동굴, 신전 등의 장소를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어 종종 인물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박초희 그래도 효율적인 동선과 대형으로 좁은 극장에서 여러 인물을 산만하지 않게 움직인 점을 높이 산다.
최영현 개인적으로 <다이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최근 창작뮤지컬은 노래할 때만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이스>는 배경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장면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거짓말 뒤에 숨은 사연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박초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은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미발표작으로 알려진 희곡을 두고 벌어졌던 위작 논란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재미있는 소재에 비해 극의 완성도는 아쉬웠다. 100분가량의 공연을 흥미롭게 끌어나가기에는 이야깃거리가 부족했다.
이우정 이 작품은 헨리와 사무엘 부자가 셰익스피어의 미공개 희곡을 위조한 혐의로 재판장에 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작가의 진짜 관심사는 두 인물이 위작을 만들어 선보이게 된 내밀한 사연을 보여주는 데 있더라. 이러한 방향성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인물들을 움직이는 내적 동기가 일관성 있게 그려지지 않아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안세영 초반부에는 아버지 사무엘이 진심으로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셰익스피어를 숭배하고, 자신이 쓴 글이 혹평받자 상처받은 모습을 보이니까.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글보다는 돈과 명성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무엇을 추구하는 인물인지 모르겠다. 
박초희 아들 헨리에게서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엿보이긴 하지만 흐릿하다. 헨리가 작가를 꿈꾼다면, 비록 위작일지라도 자신이 쓴 희곡이 호평 또는 혹평을 받았을 때 감정적 동요를 느껴야 마땅하지 않나? 하지만 헨리는 오로지 아버지의 관심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다. 미지의 신사 H는 흔히 말하는 ‘관념 캐릭터’로, 다른 두 인물의 욕망이 반영된 캐릭터다. 그런데 헨리와 사무엘의 욕망이 모호하다 보니 H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호하다.
최영현 큰 틀에서 보면 헨리가 아버지 사무엘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가는 이야기 같은데, 사무엘의 욕망이 불분명하니 그에게 인정받거나 저항하고자 하는 헨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불분명하다. 아버지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아들의 이야기든, 작가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든 노선을 분명히 정해야 하지 않을까.
안세영 무대화에 적합한 이야기였는지도 의문이다. 뮤지컬은 무대 위에 구현되는 장르인 만큼 움직임을 통해 어떤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작품 속 인물들이 주로 하는 일은 가만히 앉아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이다. 또한 관념 캐릭터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라는 주제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여타 창작뮤지컬과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우정 그래도 작품의 규모가 작은 데 비해 무대 세트와 의상의 만듦새가 좋았다. 앞서 얘기한 대로 글을 쓰는 장면이 주가 되다 보니 무대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텐데 무대 디자인이 어느 정도 볼거리를 보완해 줬다. 암전이 많지 않고 장면 전환이 빠르며, 현악기 선율이 돋보이는 음악도 듣기 좋았다.
 
 
창작산실,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때
 
최영현 창작산실이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레드북> <마리 퀴리> <호프>와 같이 작품성을 인정받는 창작뮤지컬이 창작산실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과 만났다. 특히 상업 뮤지컬에서 쉽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의 작품들이 창작산실의 지원을 받아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선정작 대부분이 소재만 참신하고 극작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아쉽다.
박초희 더 나은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15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선정 방식의 변화를 꾀할 시점이다. 
안세영 색다른 소재의 대본만 찾을 게 아니라 음악, 안무, 무대 미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의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
이우정 흔치 않은 소재의 선정작이 꾸준히 공연되지 못하고 잠깐 화제가 된 뒤 사라지는 것도 안타깝다. 신작 발굴도 좋지만 가능성을 인정받은 올해의신작의 재공연을 지원해 작품을 다듬어나갈 기회를 확대해 제공한다면 한층 완성도 높은 공연이 탄생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3호 2023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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