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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④]<난설> 이기쁨 연출∙정인지, 틀에 가둘 수 없는

글 |이솔희 사진 |맹민화 2024-03-08 1,985

더뮤지컬 여성의 날 특집 기획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더뮤지컬이 공연계 ‘여성 서사 작품’의 현황을 다시금 들여다봅니다. 먼저, 여성 아티스트와 여성 서사 작품을 다루는 공연예술월간지 『여덟 갈피』를 발행한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여성 중심 서사 뮤지컬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난설> <브론테> <여기, 피화당> 등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속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을 조명하고, 해당 작품의 배우와 창작진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뮤지컬 <난설>은 천재 시인 허난설헌(허초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2019년 초연, 2020년 재연을 거쳐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기쁨 연출가와 배우 정인지는 <난설>의 모든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두 사람이 4년 만에 다시 허난설헌의 삶을 마주하는 소감과 오랜 시간 무대에서 활동한 여성 예술인으로서의 생각을 전했다.

 

 

<난설>이 4년 만에 재 공연돼요. 다시 한번 <난설>과 함께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정인지   한 마디로, 되게 좋아요. (웃음) 설레고 기뻐요. 저는 대본을 보면서 ‘이 대사를 내뱉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작품에 마음이 가요. 그 문장에서 작품이 시작되는 기분이죠. <난설>은 말의 밀도가 특히 높은 작품인데, 대본을 봤을 때 많은 대사들 중에서도 “오색구름, 푸른 구슬로 만든 빛나는 다리. 우리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 것이다.”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 말을 무대 위에서 꼭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난설>은 허초희에게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접근한 작품이라서 좋았어요.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성역할에 갇히는 경우가 많은데, <난설>은 그렇지 않죠. 4년 만에 다시 허초희를, 그리고 이달과 허균을 바라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번 시즌에는 유독 ‘지음’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어요. 신분과 계급에 따른 차별이 있는 시대였는데,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교류하고, 관계를 이어 나가는 허초희와 이달의 모습이 참 좋더라고요.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었어요.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서로의 속마음을 알아봐 주는 친구를 뜻하는 ‘지음’이라는 관계성이 어떻게 굳어지는지 새롭게 발견하고 있어요.

 

이기쁨   <난설> 초연이 제 뮤지컬 연출 데뷔작이에요. 당시에 함께했던 배우, 스태프 모두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때의 좋았던 기억 덕분에 그 후에도 계속해서 뮤지컬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애정이 큰 작품이에요.

 

뮤지컬 연출에 도전하고자 마음먹을 때, <난설>이 허난설헌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어요.

이기쁨   저는 뮤지컬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고, 특히 음악을 어떤 식으로 운용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뮤지컬 작업에 도전할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난설> 제작사인 콘텐츠플래닝의 노재환 대표님이 허난설헌의 삶을 다루는 작품이 있으니 함께 해보자고 제안해 주셨을 때, 허난설헌의 이야기라면 저 스스로 조금 더 공부하고, 고민하고, 노력해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설>이 가장 좋았던 점은 허난설헌의 고난의 시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매력적이더라고요. 대신 그가 시를 쓰며 행복해했던 모습을 주로 보여주죠. <난설>이 허균과 이달이 허초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구조를 지녔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관객분들이 계신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허초희의 이야기만 해요. 물론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성 위인에 대한 작품이 아직 흔치 않았던 시기에 허난설헌의 이야기만 한 시간 반 내내 할 수 있다는 점이 제가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작품을 다시 만나기까지 4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흘렀어요. 이번 시즌만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이기쁨   전체적인 틀은 초, 재연을 거치면서 만들어 놓은 것을 따를 예정이에요. 더 나아가서 각 인물의 구체적인 상황이나 설정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기 위해 배우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허초희의 동생인 허균은 자유롭고 진보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러한 면모는 허초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허균이 허초희에게서 어떤 과정을 통해,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을까에 대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정인지   그래서 세 번째 시즌인데 마치 초연 같은 마음으로 연습 중이에요. (웃음) 작품을 처음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인지 씨는 최근 출연 중인 <여기, 피화당>에서도 여성 작가인 가은비 역을 맡았어요. 허초희와 가은비, 두 인물에게서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나요?

정인지   두 사람은 결이 굉장히 다른 인물이에요. 우선 가은비는 장르 소설을 쓰고, 허초희는 시를 쓰죠. (웃음) 사실, 이제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두 인물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작가’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둘은 그렇게 하나의 카테고리에 갇힐 만큼 작은 인물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주목해도 충분한 인물들인데 말이에요. 사실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이런 생각을 꾸준히 해왔어요. 최근에는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한 인물을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그런 태도가 그 인물의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여성’으로서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서 그 인물을 주목하는 흐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허초희는 시를 잘 쓰는 사람이었고, 가은비도 글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죠. 이들을 언제까지 ‘뛰어난 여성’으로서만 주목해야 할까요?

 

여성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다뤄야 한다는 말에 공감해요. 인지 씨는 <미드나잇> <데미안> 등의 작품을 통해 ‘젠더 프리’ 캐릭터에도 도전했었잖아요. 캐릭터의 성별을 떠나 한 인물로서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인지 씨의 바람을 조금은 충족시켜 주었을까요?

정인지   물론 ‘젠더 프리’를 도입해 남성 캐릭터를 여성이 연기하면서 관객분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순간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성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어떤 캐릭터이든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해야 해요. 그러면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성별이 바뀌어도 큰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죠. 배우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품이, 캐릭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기쁨 연출가는 <난설>을 비롯해 뮤지컬 <유진과 유진>, 연극 <줄리엣과 줄리엣>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어요.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유독 많이 드는 감정이 있다면요.

이기쁨   여성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혹여나 내가 이 이야기를 잘못 전달할까 봐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어요. 과거에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예민하고, 날 선 상태로 작업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덜 예민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앞서 인지 씨가 한 얘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인데, 여성들의 이야기를 거쳐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 하나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더 크고, 더 넓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들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여성 신예 창작자가 정말 많아졌어요. 여성 창작자의 현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이기쁨   요즘 뛰어난 역량을 지닌 여성 작가, 작곡가, 스태프가 정말 많아졌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예전에는 극단에 속해서 도제식으로 교육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런 단체에서 ‘누구에게 먼저 기회를 줄 것인가’라는 논의가 나올 땐 결국 남성 창작자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이제 그런 도제식 구조의 단체는 거의 사라지는 추세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교육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창작자는 점점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당연히 좋은 창작물을 선보이는 창작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상당수가 여자였죠. 동시에, 어려운 시기를 함께 버텼던 여성 스태프들이 이제 각자의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시기도 온 것 같아요. 이런 변화의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요.

 

 

공연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여성 예술가로서 한계에 부딪힌 경험이 있나요?

이기쁨   분명히 있었어요. 많았고요. 그런데 막상 생각하려고 하면 생각이 잘 안 나요. 생각하기 싫은가 봐요. 요즘 저는 화내는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을 해요. 현실에 순응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싸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불합리한 상황에는 즉각적으로 들고 일어서고, 편협한 생각이 담긴 말 한마디도 참지 못해 꼬투리 잡으며 맞서고…. 그땐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잘못된 상황을 눈감고 넘어가는 성격은 아니지만, (웃음) 그런 순간에 대응하는 마음의 형태가 조금은 정돈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나 자신을 무너트리면서까지 맞서지는 말자는 생각이에요. 자멸할 것들은, 어떻게든 자멸하게 되어있으니까. 좋은 얘기할 시간도 부족해요 우리. 제가 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옳은 일들과 사람들이 제 손을 잡을 거라 믿어요.

 

정인지   기쁨 연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기억을 헤집어 봤는데 바로 떠오르는 사건이 없는 거예요. 그런 경험이 없었던 건 절대 아닌데 말이죠. 생각해 보니, 어떤 편견과 불이익을 겪는 게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었어요. 세상이 변한 뒤 돌아보고 나서야 ‘그때 내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었구나’를 알게 된 거죠. 하나만 떠올려 보자면, 여성 배우로서 한계를 느꼈을 때는 성별 그 자체가 캐릭터가 된 순간을 마주했을 때였어요. 여성 캐릭터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첫사랑 등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는 역할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억울했어요. 나는 그저 사람의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였는데! (웃음)

 

다양한 여성의 삶을 그리는 작품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인물이 그저 정의롭거나, 아픔을 극복하는 등 비슷한 결로 그려지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관객 역시 많습니다. ‘여성 서사’ 작품에 대한 논의는 이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기쁨   여자는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불의를 못 참아야 하고, 정의로워야 하고. 이런 조건을 붙여야만 여성을 이야기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만연한 것 같아요. 이제는 정말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요. 구질구질하고 비겁한 여자도 있고, 너무 못 돼서 ‘쟨 진짜 왜 저럴까’ 싶은 여자도 있잖아요. 이 세상에 다양한 모습의 여성이 얼마나 많은데, 스테레오타입화 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만 많은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제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뻗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정인지   여성 캐릭터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지 않을 때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대중에게 다양한 취향이 있으니, 저희도 그 취향에 맞출 수 있는 다양한 인물을 보여줘야 해요. 그런데 인물을 넓게 펼쳐내지 않고,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리면 관객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까지 묶어버리는 거나 다름없죠. 여성 캐릭터를 카테고리로 덜 묶을수록 관객분들이 작품이나 캐릭터를 보는 관점도 다양해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여성 캐릭터를 향한 관심도 커지겠죠. 이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할 때가 왔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은 대부분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최소한의 책임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죠. 우리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정인지   질문을 받고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조금은 ‘꼰대’ 같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도 여전히 후회로 점철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웃음) 그런데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겼어요. 여성에게는 유독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사회적 제약이 많아요. 나이도 그렇고 몸무게도 그렇고. 왜 이런 잣대가 유독 여성에게만 날카로운 걸까요? 우리 세대는 아직까지도 그런 제약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부디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이기쁨   인지 씨의 말처럼, 결국에는 나 자신을 지키면서,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웃음)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와보니 나를 지키는 동시에 상대방에게도 예의를 지키고, 주변을 조금씩 살피면서 함께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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