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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윤성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No.129]

글 |송준호 사진 |김수홍 사진제공 |국립무용단 2014-07-08 4,035
우리 춤, 이제 해외 무대를 바라봐야 

과감하게 상반신을 탈의한 여성 무용수, 극도의 무표정과 절제된 동작, 초록과 빨강의 보색으로만 이루어진 모던한 무대와 의상. 정중동의 보법과 우아한 미소, 한국화를 연상시키는 단아한 무대로 대표되던 한국무용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지난해 현대무용가 안성수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의 협업을 기획한 윤성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기존 한국무용의 문법을 해체하고 그 본질만 추려낸 <단>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에 방점을 찍은 새로운 한국무용의 출현에 관객들은 국립극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국무용 공연이 국가나 학계의 지원이 아니라 오로지 작품으로만 관심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묵향>과 <회오리> 등으로 쇄신의 실험을 지속해온 윤성주 예술감독은 이번에 <단>과 <묵향>을 하루씩 교차 공연하며 또 다시 파격에 도전한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한국무용
                         
다음 달이 벌써 취임 2주년이에요. 한번 돌아볼 때가 된 것 같은데요.
2년이 아니라 한 10년은 한 느낌이에요. 기획한 공연들이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저 혼자 이룬 일은 아니죠. 저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니까 기획이나 마케팅 파트와 공조를 잘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어요. 남이 다 만들어놓은 것 가지고 하는 것보다는, 없는 걸 새로 만드는 걸 즐기는 스타일인가봐요. 그리고 생각은 누구나 하는 거니까 그걸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하잖아요. 시도한 걸 펼쳐놨을 때 기존의 관행이나 규칙이 흔들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좀 힘들긴 했죠. 하지만 뭐 그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 성격이라. (웃음)

예술감독은 큰 그림을 봐야 하는 자리죠. 취임 당시 국립무용단의 문제는 뭐라고 보셨나요. 그리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셨나요.
국립무용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단인데도 그런 대접을 제대로 못 받은 게 사실이에요. 단원들도 우리 것에서 벗어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 분위기였어요. ‘우리 것’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시각은 별로 없었죠. 춤을 더 잘 추는 것만 생각했지, 우리가 가진 독특함을 해외 시장에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그걸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안에서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세계와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처음에 들어올 때 방대한 사업 계획이 이제 첫발을 내디딘 거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죠. 

2년간 ‘윤성주’호 국립무용단의 방향은 한국무용의 기존 이미지 탈피에 있는 것 같습니다. 
‘탈피’까지는 아니에요. 원래의 것에서 벗어나거나 버린다는 생각은 없었으니까. 우리만이 지닌 독창성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어요. 지금 세계적인 추세가 여러 장르의 예술이 협업하는 것이니, 안무가가 꼭 한국무용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춤을 시대에 맞추거나 관객의 눈으로 우리 춤을 바라보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중적 인지도가 있고 우리 춤을 이해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죠. 특히 국립무용단이 접해보지 못했던 안무가에 더 중점을 뒀어요.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또 저거야?’라고 여겨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해보지 않았던 춤사위, 생각지 못했던 컨셉을 시도하자는 게 의도였어요. 

그래서인지 무용단의 춤이 확실히 대중적인 느낌이 강해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사실 우리의 자산이 관객 입장에서는 별로 획기적이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걸 다양한 방법으로 무대에 펼쳐보임으로써 관객들이 ‘국립무용단이 저런 춤을 추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럼 관객 개발도 가능할 거라 봤어요. 우리가 하는 새로운 시도를 궁금해하는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거죠. 그게 대중성이에요. 사람들이 대중성을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쉽고 낮은 수준의 춤이 대중적인 게 아니에요. 관객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아요. 그 순간엔 이해를 못 해도 결국엔 은근히 곱씹을 수 있는 작품이 대중적인 거죠. 

확실히 <단>이나 <묵향>, <회오리> 같은 작품들은 기존 한국춤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반대로 보수적인 기성 관객들에게는 낯설었을 법도 해요. 
섭섭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건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전통춤을 버리고 그런 춤은 안 추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무용수들이 연습할 때는 우리 춤의 기본을 늘 몸으로 갈고닦고 있어요. 또 그런 성격의 춤을 개발하려고 늘 고민해요. 그게 바로 <묵향>이었는데 우리 춤의 성격을 그대로 갖고 가면서 무대 같은 시각적인 부분을 현대적으로 만든 작품이었죠. 덧붙이면 요즘 무용수들은 이제 굉장히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신체적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할 거예요. 어쨌든 관객들이 가장 먼저 보는 건 비주얼적인 면이라 그런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에요. 

그러다 보니 계속 제기되는 문제가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에요.
우리 춤 고유의 소재를 가지고 현재의 시각으로 새롭게 재조명하는 게 국립무용단이 할 일이에요. 승무나 살풀이처럼 전통춤만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관객이 보는 춤은 곧 컨템퍼러리를 의미해요. 그래서 한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컨템퍼러리가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꼭 버선을 신고 치마저고리를 입어야 우리 춤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건 아니에요. 전통을 복원하고 그대로 재현하고 후대에 전승하는 일은 국립무용단이 아니라 국립국악원이 할 일이에요. 지금은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해외 관객들이 봐도 보편적이고 현대화된 작품을 내놓을 때예요. 

이제까지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평하세요.
제가 처음 한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현대무용 안무가와 협업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과거에 있던 레퍼토리를 정착시키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쉽지는 않아요. 무대장치나 의상 등을 다 새로 해야 하니까 거의 창작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렇다고 지금 예산으로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어려워요. 예전에는 1억 원이면 할 수 있었던 작품이 지금은 3~4억 원 정도 들어요. 이런 공연을 한 편 하고 나면 1년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해요. (웃음) 또 대작 중심으로 가면 주역이 만날 주역을 독식해서 다른 사람은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요. 지금처럼 오디션으로 그때마다 최적의 인물을 뽑으면 관객들은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죠. 



한국무용의 도약을 위한 몇 가지 대안
               
지난해 <춤, 춘향>과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교차 공연해서 창단 51년 만에 첫 매진 사례를 기록했죠. 이번에는 <단>과 <묵향>이 그 뒤를 잇습니다. 매일 무대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해야 하는 이런 교차 공연은 국립단체라 가능한 도전 같기도 합니다. 
소위 ‘남는 장사’는 아니죠. (웃음) 사실 예술계는 남는 장사가 거의 없어요. 뮤지컬이 연일 흥행 소식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쪽도 들어간 제작비를 감안하면 다 그렇진 않을걸요? 또 뮤지컬이 15억? 20억? 이런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1년 예산이 그 4분의 1이나 5분의 1도 안 되니까 무대 규모는 작아질 수밖에 없고 한 번 만들면 오래 써야 해요. 그런 어려움이 있지만 감수해가면서 해내야죠. 무대장치도 이동이나 교체가 용이한 형태로 제작하고 있어요. 그래도 밤샘 작업은 필수죠. 

그런 시도가 가능한 건 예술에 대한 넓은 시야 덕분일 겁니다. 춤 외에 즐기시는 분야가 있으신지.
그럼요. 보기보다는 열정적이라 대중가요 콘서트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팝보다는 록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엔 못 가지만 한때는 김경호 콘서트도 다니고 그랬어요. 강단에 설 때였는데 학교 제자들을 콘서트장에서 만나서 좀 민망하기도 했죠. (웃음) 대학 때는 연극에 안무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춤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타 장르의 분들을 만나면 주로 얘기를 들으면서 그 분야를 상상하곤 해요. 워낙 혼자 상상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춤이 잘 쓰이는 장르 중 대표적인 게 뮤지컬이죠. 실제로 무용계 인력이 상당 부분 투입돼 있는 분야가 뮤지컬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제 제자들도 이미 여러 작품에 출연진이나 스태프로 몸담고 있어요. 얼마 전엔 안무로 참여하고 있는 제자 하나가 초대를 해줘서 <위키드>를 보고 왔어요. 그 작품은 라이선스라서 원 안무는 따로 있겠지만 나름대로 안무도 하면서 출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무용보다 낫지?”라고 물었더니 “돈벌이는 조금 나아요” 하던데요? (웃음) 

그렇게 대중예술에서 쓰이는 춤을 제외하면 무용은 여전히 대중에게 불편한 존재 같아요. 무용계의 영원한 과제인 ‘무용의 대중화’는 어디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루이틀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우선 교육 환경이 바뀌어야 해요. 우리나라는 무용수 양성이 철저히 대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건 한편으로 단점이 되기도 해요. 외국에서는 16세가 되면 무용수로 활동을 하는데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시작하는 거니까요. 우리 무용단만 해도 최연소자가 29~30세 정도에요. 또 일반인들도 공연 관람에 대한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을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모든 교과 과정이 철저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시스템으로만 되어 있잖아요. 무용에 친숙해질 기회 자체가 없는데 흥미나 관심이 안 생기는 건 당연하죠. 교육 시스템 내에서 공연 관람 문화를 습득할 기회가 있어야 해요.

결국 ‘접점’의 문제인데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는 이 접점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신지요.
가장 중요한 건 일단 관객들이 많이 보게 하는 거죠. 그러면 자연스레 자기만의 시각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우선 연습실을 공개하고 있어요. 타 분야의 유명 안무가들이 우리 무용수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는 건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거든요. 또 무용수들이 땀 흘리고 합을 맞춰가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워하더라고요. 이렇게 일반 대중에게 무용을 여러 통로로 보여주면서 느끼게 하는 게 먼저예요. 그렇게 자신만의 관점이나 취향이 생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러 오게 되는 거죠.

그러고보니 국립무용단의 대표 스타인 장현수, 김미애, 이정윤 씨 외에 새로운 얼굴들이 고르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송설 씨는 이미 팬덤도 생긴 것 같던데요.
다행이에요. 하지만 송설 외에 또 스타가 나와 줘야 해요. 취향에 따라서 팬들이 갈리기도 하고 경쟁도 붙어야 관람하는 재미가 생기는데 아직까지는 그게 미흡한 것 같아요. 그래도 예비 스타가 몇 명 힘을 받고 있으니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임기가 약 1년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에 또 어떤 실험을 하실 계획인가요.
지금처럼 신작도 염두에 두고 있고, 그 후에는 소품 레퍼토리가 있는데 모던하면서도 우리 춤 원래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작업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내년 초에는 초청 프로젝트가 무용단의 위상을 올려놓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드디어 해외 시장에 내놓을 작품을 갈고닦고 있으니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듯해요. 또 한국-프랑스 커넥션이 2015년부터 시작인데, 프랑스와 함께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작업을 준비 중이에요. 이런 계획들이 차질 없이 이루어져서 훗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었으면 좋겠어요.

국립무용단은 여러 면에서 일반 관객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요. 국립무용단이 국내외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이제 국내에만 안주하면 안 돼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잖아요. 가서 보고 싶게 하는 춤을 만들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지금까지는 그쪽만 지향했다면 이제부터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무용단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1년 중 반 이상은 양질의 작품을 들고 해외 투어를 해야 해요. 국내 관객과 해외 관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과 단체로 발전해야 할 거예요.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거대 담론의 고민을 많이 하실 겁니다. 하지만 춤 관객의 개발은 항상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일반 관객들이 춤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용수나 안무가, 기획자들이 어떤 춤을 선보여야 할까요.
무용단에 들어올 때부터 생각한 건데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게 있어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과 접목해서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우리의 문학’ 시리즈를 내놓는 거예요. 중편 정도의 작품을 중극장 규모로 한다면 적절할 것 같고, 문학계와 함께 호흡하면서 작품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확장되면 청소년 관객도 끌어들일 수 있고, 문학이 무용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는 문학 독자들도 잠재 관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미흡하겠지만 이런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9호 2014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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